<삼한지> 가제본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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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지 세트 - 전10권
김정산 지음 / 서돌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1.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아니면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 그 대답에 답할 자 누가 있겠냐마는, 어찌되었던 역사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수도 없는 영웅들의 전기는 이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오뒷세이아, 삼국지, 수호지, 열국지, 등등으로 이어지며 내려온다. 하물며 성경도 영웅전으로 읽혀진다고 하지 않는가.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그 책은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이스라엘 무협지라고 불린다고 하니.
영웅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자도 그 영용함과 비범함에 수많은 일화가 더해지고 더해져 역사에 이름을 남기며 영웅이 된다. 어쨌거나, 역사에 이름이 남는 다는 것, 적어도 족보에도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명성을 남기고자 하고 그것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워 하는 걸 보면, 역시나 호사유피에 인사유명은 여전히 만고에 길이남을 속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항상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영웅을 도시 누가 필요로 하는가',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영웅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뜻에 맞추기 위해, 정당화를 누리기 위해 써온 오래도록 뻔하면서도 효과적인 수단 아니었던가. 이미 삼한지에 나오는 위정자들 역시 자신의 뜻을 합리화하기 위해 고전의 영웅들을 언급하는 걸 보면 굳이 따로 예를 들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우리' 영웅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광개토의 호령과 호방한 고주몽, 헌원과 대적한 치우, 을지문덕, 계백, 화랑 등. 이미 그 영웅들은 이제는 지면을 넘어 화면으로도 만날 수 있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우리 영웅에 대한 이야기라니, 분명 구미당기는 이야기임은 틀림이 없겠다.
2.
(그놈의 핏줄과 족보가 뭐라고) 경주 김가의 후손으로 족보에 적혀있는 나로서는, 고등학교 시절 꼭 나올 만한 이야기였던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으면 어떠했을까. 라는 질문만큼 곤혹스러운 게 없었다. 도대체 내가 신라의 후손인지는 족보외에는 그 어떤 근거를 찾을 수 없고, 그 족보마저도 이미 혼란스러운 시대를 틈타 어디엔가에 줄기를 접붙이듯 붙여졌을 가능성도 충분함에도 어찌되었던 본이 어디냐는 말에 항상 경주 김가올시다 라고 말하는 나였기에 괜히 그 시간에는 고구려대신 나라의 반만 통일시킨 신라의 죄짐(?)을 괜히 떠안는 무거운 기분이었다. 물론 그 덕에 역사 공부는 조금 더 열심히 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가정의 문제는 무얼 가정하든 언제나 한없는 싸움만 있을 뿐이니, 크게 말해봐야 무엇하겠나 라는 생각이었지만, 그럼에도 고구려가 통일했더라면 넓고도 넓은 요동과 발해를 우리가 가지게 되었을 거라는 오직 하나의 고구려 통일 찬성론에는 조금 불만이었다. 그 땅을 얻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라던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저 그 논리 하나였다는 게 그냥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는 말이다.
3.
이제 삼한통일을 다 못이룬 신라에 대한 아쉬움을 대변하려는 무리한 소리일랑 그만두고, 소설로 잠시 들어가 보면, 개인적으로는 잘 쓴 소설이라 생각한다. 길고도 긴, 역사 소설을 마쳤다는 것 자체로도 그렇고, 단어 하나하나까지 심혈을 기울여 조금 더 우리 본말을 찾고 싶어한 엄청난 노력, 호흡은 좀 길어도 그 긴 호흡마저도 무색하도록 정성스레 문장을 써낸 모습은 마치 한땀한땀 공에 공을 들여 작업한 작품을 보는 느낌이다. 혼란스러웠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전란을 배경으로 나타난 수도 없는 영걸들의 신묘한 계책과 사건들의 묘사도 흥미로웠다.
3-1.
그럼에도 아쉬웠던 점 중 하나는, 결국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승자의 역사인 삼국사기만이 작가가 쓴 소설의 근거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우리' 영웅에 대한 확실함을 보장하고 싶어서였을까, 물론 철저한 고증과 조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에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기왕에 소설로 쓰게 되었다면 좀 더 소설적 요소를 더해 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특히 수도 없는 영걸들이 쏟아진 신라에 비해 그렇게 빛을 발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 고구려와 백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아쉬운 점 두번째는 여기서 튀어나오는데, 삼한통일은 참 멋져보이는 말이지만, 동시에 통일한 자의 정당성을 허락해주는 용어임도 맞는 바, 결국 삼한통일을 달성한 신라에 좀 더 우호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철저한 고증과 조사, 그리고 정사로 일컬어지는 삼국사기를 바탕으로 역사를 그려내려한 그 꼿꼿한 정신이 괜히 한켠 아쉬웠다. 물론 일리아드의 저자 호메로스 역시 그리스에 우호적이긴 했지만, 오히려 열국을 침착하게 언급한 열국지나, 오히려 패배자였던 유비와 촉나라의 애잔함이 강조되었던 삼국지연의의 시각을 좀 더 고려해보는 건 어떠했을까 싶었다. 나름 의협의 상징으로 간주되던 관우가 신이 되고, 유비와 공명이 여전히 존경을 받는 모습을 생각해 볼 때 말이다.
물론, 이건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도 의연하고 꼿꼿한 사람들에게 더더욱 박수를 쳐대는 나의 성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삼한의 통일로 더 이상의 싸움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김유신과 김춘추 등 신라에 집중되어 묘사되는 면(직접 언급하니..)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결국 신라였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괜한 조마조마함이 나 스스로 좀 그랬다는 소리기도 하고.
조금 더 나아가 보면 작가의 말에서는 스스로 '민족이나 동족의 개념은 아예 없었던 삼국시대에 신라가 외세를 등에 업고 동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멸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굳이 말하라면 고구려, 백제와 신라, 가야는 전혀 다른 종족이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말하는 한민족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비로소 생겨난 개념이다. 신라 문무왕이 백제와 고구려 유민은 물론 일부 말갈족까지 흡수하여 백성으로 삼은 것이 우리 민족의 시초이며 원형이다.'라고 밝혔지만, 소설 내의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점점 신라에 국운이 쏠리며 각국이 서로를 한민족으로 여기는 언급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사소한 걸로 꼬리를 잡는가 싶지만, 역시 '우리'나라가 만들어지는 시점에 이르러 서로를 한민족인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이미 신라의 통일에 대해 좀 더 우호적인 모습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게 나쁘다는 것보다는, 좀 더 관점을 멀리 떨어뜨려 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라는 게다.
3-2
'앞사람이 살아간 별 같은 흔적을 더듬고, 민족사에서 훌륭한 족적을 남긴 선조를 찾아내어 영웅으로 받들고 섬기는 일은 뒷사람의 당연한 몫이자 민족 전체의 저력을 키우는 초석이며 지름길'이라는 작가의 생각에 각을 세워가며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에 반하든 찬하든 이미 수도 없이 영웅은 만들어지고 있고 그 영웅들 틈바구니에서 대한민국은 움직여지는 듯 보이니까. 한 왕이 죽고 나서야 겨우 그 왕에 대해 평가하는 그 옛적의 객관적 노력마저 지금은 시장과 마케팅, 선거, 등등의 중요하게 여겨지는 권력의 쟁투속에서 무시되고, 살아있고 싶어하는 자들은 이미 스스로를 역사로 여겨 걸어다니고 기록을 남기며 심지어는 그 기록을 책으로 적어내는 실록을 살아생전 만들어 내지 않는가.
그렇지만, 굳이 이전의 영웅들이 너무 없어 우리가 불행하다는 작가의 생각에 대해서는 조금 이견이 있음을 밝힐 수 밖에 없다. (물론 진짜 영웅이 없어 불행한 면도 조금은 있겠다만..) 또한 한 집을 다시 여러 갈래로 나누지 못해 안달하는 현실을 아쉬워 하지만, 그 원죄는 굳이 따지자면 여러 집을 한집으로 만든 자들에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역사시간에 하나하나 배운 태조 왕건이 남겼다는 훈요십조 중 8조만 곰곰이 생각해봐도 그렇지 않는가.
4.
그렇게 영웅이 굳이 필요하겠냐라고 말하던 무식한 나지만, 숙연했던 부분은 당연히 있었다. 백제를 끝까지 지켜내려 했던, 이 싸움의 끝을 알면서도 지켜내려했던 백송같았던 충신들의 마지막 싸움 부분이었다. 촉나라를 지켜내려던 제갈공명의 유지를 이어 삼국을 통일하려던 강유의 눈물겨운 노력과 그 노력의 허무함이 더더욱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의 백미를 이끌어 낸 것처럼, 그 덕분에 후삼국지니 하는 아류작들이 다 이루지 못한 촉의 유지를 이으려 한 문학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개인적으로 10권의 나당대전보다 계백과 백제의 옛 충신들이 사력을 다해 눈물로 충성을 다 바쳤던 9권, 백제의 멸망은 좀 더 소설로 빠져들 수 있었다. 원효와 더불어 영웅으로 담고 싶었던 몇 안되는 인물들이 쏟아져나온 부분. 그래서일까, 아까도 언급하긴 했지만, 살수대첩이나 나당대전의 승리처럼 백제의 힘겨운 싸움에 좀 더 숨결을 불어넣어주고 조금 더 세밀하게 조명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특히나 역사의 관점에서 상당부분 그 자리보다 낮게 위치해온 백제사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더 그렇다.)
그럼에도, 작가는 오히려 이 설움과 울분이 생을 이어가는 단 하나의 힘이었을 백제의 유신들의 감정을 참 잘 그려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소하게 느낀 소설의 백미랄까. 신라와 당의 파상공세를 모두 막아낸 임존성의 지장 지수신이 흑치상지와 맞서다 내뱉는 말 한마디에 나는 그만 온 마음을 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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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려서부터 세상에 둘도 없는 벗이 아니었나? 내게 먼저 기회를 한 번만 달라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가? 다시는 이런 소릴랑 하지 않을 테니 한 번만 내 뜻에 따라주시게."
흑치상치의 음성은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 누구의 말도 통하지 않을 것 같던 지수신의 강직한 태도가 그제야 약간 누그러지는 듯 했다.
"......날더러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
"나하고 같이 부여융의 밑으로 들어가세나."
"그건 싫네."
지수신이 말을 분질렀다.
"기대하기도 실망하기도 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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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시대앞에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의 가장 애처로운 말이 아니었을까.
역사라고 읽던 이 소설이 사실은 소설임을 알게 해준,
그러면서도 가장 마음을 움직인 한마디였다.
긴장과 긴장으로 엮어가던 부분 중에 자그맣게 지나가는 한마디에
빨라지는 맥박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5.
후대에 널리 회자되지 않는 역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작가의 의식과 그로인해 '우리'영웅이 더 탄생하길 바라는 소망은 내가 평소에 가진 생각과 비슷하지는 않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수없는 가정을 만들어 역사에 질문하길 좋아하는 나로서도 그 생각과 판이하게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역사와 영웅에 대한 생각은 분명 다르겠지만.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할 점은 충분히 있고, 특히 학창시절 그저 짧은 몇 단락으로 정리된 차트나 표로 배운 우리의 지난 역사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어떤 국가나 제도 같은 커다란 의미에서의 접근보다 사람이라는 존재에 기대 서서 다시한번 고민할 수 있는 소설의 형식을 빌려 역사를 이야기한 점은 앞에 적은 무지렁한 사고에서 비롯된 아쉬움의 표현들을 충분히 덮고도 남는다. 그 아쉬움을 풀어내는 건 내 몫이기도 하니.
사람이 만들어내는 더럽고 치사하면서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시대를 구수하고 맛깔나는 좋은 문장으로 다듬어 낸 열권의 책을 만나게 되어 매우 즐거웠다. 언제나 그렇듯, 마감은 한참 넘겨 쓰게되었지만.
P.S
오늘도 헤집는 더 사소한 질문과 의뭉스러움들.
(1) 1권에 나오는 주요지도에 울릉도와 독도의 섬들이 그려져 있지 않은 이유가 괜히 궁금하다. 나름 신라장군 이사부가 복속시킨 울릉 역시 우리의 땅인 것 같긴한데, 탐라는 집어넣고 우산국은 왜 안넣었는지를 묻고 싶다.
(2) 1권 첫장에 각주1의 표시가 되어있지만, 막상 밑에는 각주의 설명이 없다.
(3) 덕만공주가 태후에게 박염도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각주를 적용하여 이 박염도가 이차돈임을 밝혀주는 건 어땠을까 한다. 박염도가 이차돈이었음은 이 부분 이후에나 나오니 말이다.
(4) 2권 마지막장에 양쪽 다 248쪽으로 인쇄되어 있다. 250쪽으로 끝나야 하지만 249쪽으로 끝난다. 그리고 두번째 248(원래는 249)쪽에 언급된 각주가 그 다음장에도 중복으로 나타난다.
아마 가제본을 받아 읽었기에 이런 것들이 나왔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실제 책을 들여다보지 않아 물어보는 것이고, 크게 중요하지도 않다.
봉황처럼 절대 날지 못하는 참새의 수작정도로 여기면 되지 않겠나,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