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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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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생님이 그러셨다, 잘 쓴 논문은 다 쓴 논문이라고. 물론 논문 쓰는데 애먹고 어려워 하는 무식한 제자(나는 1빠)를 위해 힘을 북돋아 주시고자 했던 선생님의 넓은 마음씨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다 쓴 소설이 나왔다. 책을 하나 다 읽는 데에도 허덕이는 나로서는 어떤 책을 다 쓴다. 라는 그 행위자체가 여전히 놀랍고 대단하게 여겨지기에 일단 책을 보면 놀라고 본다. 아 또 누군가 책 한권 썼구나. 라고.  

역시나 쓰면쓸수록 오해에 오해를 거듭하는 내 서평의 특성상 오늘도 오해는 계속 될 예정인데, '근본은 애절한 러브스토리'에 '미스터리 스릴러의 장르적 요소를 많이 가미'했다는 이 소설은 어찌저찌 힘겹게 마쳤다는 느낌이 강하다. 잘 써내려가다가 가끔 탁탁 끊기는 문장을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나마 다행으로 보이는 건 모든 사랑(꼭 사랑뿐이랴, 인생이 다 그렇지)이 가지고 있는 우연과 운명이라는 두 저울 사이에서 권지예는 운명에 무게를 두고 소설을 써내려갔고 결국 그 운명을 택한 게 의외로 소설의 모양새가 변형(드릴러 장착)됨에도 불구하고 별 탈없이 소설을 마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렇게 되면 결말은 아무래도..

하지만, 문제는 어떤 소재와 결말을 선택했는가가 아니다. 연장이 좋아도 일단 잘 썰어야 먹을 만한 요리가 나오듯, '만날 사람은 만나야만하고, 사랑할 사람은 사랑하고야 만다는' 운명이라는 진부하고도 멋들어진 연장을 소설을 써내려가는 힘과 소설을 진부하게 만드는 힘 모두에 쓰다보니 너무 둔탁하게 턱턱 잘려진 느낌이다. 사실이 그런게, 운명은 정말 힘이 강한 단어 아닌가? 오히려 다른 한 축에 있는 우연보다도 더 강해 보이며 운명에 대한 믿음 덕분에 살아가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게 힘이 강한 연장을 몇백쪽에 걸쳐 썰어가려니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덕분에 운명은 안그래도 진부했던 게 더 진부해졌다. 그 진부해진 운명을 이어가려고 하는, 아니 이어가야 한다는 힘겨움이 난 좀 불편했다.

게다가 주인공 서인. 은 어쩌면 권지예와 꽤 닮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하면 너무 심한 오해일까? 적어도 서인의 생김새를 묘사한 대목을 읽고, 이 책에 나온 권지예의 사진을 보면, 의도하였건 아니건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 많이 담고 있으니 하는 소리긴 하지만. 예쁘게 그리고팠던 자화상이 마치 덧칠에 덧칠을 거듭한, 이상한 추상화마냥 되버린 느낌이 강하게 들어 좀 아쉽다.  

예쁘게 그리고 싶었을 텐데.

p.s 

그럼에도, 소설에 그려낸 두 연인의 사랑에 대해서는 도착적으로 보이든 어떻게 보이든 충분히 공감하고 이미 정해진 운명일수도 있겠거니 라는 생각은 든다. 운명은 아니더라도 질긴 인연이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나로서는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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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소한 발견 - 사라져가는 모든 사물에 대한 미소
장현웅.장희엽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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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스테이플러보다 클립을 더 자주 애용한다. 클립은 종이에 상처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종이를 위한 작은 배려랄까. 보통은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기 위해 또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대에게 쉽게 상처를 내는 우리는 클립에게 배워야 할 부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존하고 도움을 주면서 최대한 서로를 보호해준다는 것. 그것은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일 테니까, 그래서 노르웨이 사람들은 이런 의미때문에 이 작은 클립을 사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는 그 사람 자체로 보다 그 사람과 나누는 무언가로 삶의 의미와 애정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사는지도 모르겠다.(아 그게 그말인가?) 나와 대면하는 사람과의 온기어린 손과 맑은 눈, 애정어린 대화에 더해 서로를 통해 건네받는 작은 물건들은 더욱 기분도 좋게 하고, 신나게도 하니까 이런 생각도 괜히 해보는 게다.

그렇다면 사물. 이라는 무생물이라도, 오히려 그 가치는 사람과 사람사이를 오가는, 삶과 삶이 이어질 수 있는 역할로 기능하기에 더 소중해 지려나 싶다. 위에서 인용한 클립에 대한 이야기처럼 어떤 의미에서 클립을 발명한 자와 직접 만난적은 없어도 서로가 공명하는 모습으로도 보이기도 하니, 사물이나 그 모든 행위를  포함한 일상에 대한 소소한 관찰과 관심, 깨달음은 비록 그 순간은 혼자만의 깨달음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굳센 노끈이 되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바로 이심전심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런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사물을 통해서 사람을 보는 데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기 어렵다. 책에 대한 평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느끼는 아쉬움이라는 이야기다. 나와 너가 완벽하게 꼭 맞게 합쳐지는 방법은 정말 그저 어렵고 어려운 걸까. 잡아야 할 손 대신 나는 그 손에 다른 무언가(정신, 물질의 차원이라도 상관없이)를 쥐어주는 것으로만 소통한다면 그 소통은 손과 손 사이의 거리마저도 좁히지 못한 채 존재하는 불통의 또 다른 의미는 아닌걸까. 손과 손을 맞잡으며 부어넣어야 할 애정과 관심대신 손과 손사이에 오간 사물을 통해 추억하며 그리워하는 것밖에는 하지 못하는 걸까. 라는 그런 바보같은 아쉬움, 말이다.

사물에 대한 사소한 발견이라는 소소한 의미를 기쁘게 느끼며 사람에 대한 사소한 발견을 더더욱 그리워하게 되는 하루다. 뭐 날씨 탓이려니,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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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2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2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2010-03-2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아니, 나는 상대에 따라서는 스테이플러가 더 좋더란 말이지.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러니까, 그렇게 확 찍어 놓아 옴짝달싹 못하는 관계, 일단 찍히면 구멍이 뚫리는 것 쯤은 감수해야 하는 관계, 떼어내려면 찢어지거나 숭 뚫린 구멍을 감당하거나 뭐 그런 관계, 지워지지 않는 멍으로 기억되는 그런....그러니까, 내 인생은 항상 쪽박인가?^^ 그래서 이제는 좀 살살 하려고, 그러니까, 이제는 클립이 더 좋더란 말이지. 아~ 일관성 없다!!!

風流男兒 2010-03-23 13:39   좋아요 0 | URL
사실 누나 저도 말은 저렇지 누나보다도 더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그게 스테플러였다는 사실 조차도 잊고지내기도 하는 듯 싶구요.. 그런데! 누나 인생이 무신 쪽박이에요!(인정못해요 전) 여튼, 저도 클립이 점점 좋아지는 건 분명해보여요 ㅎ 아 어제와 달리 오늘은 날이 너무 좋아요 +_+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 세쌍둥이와 함께 보낸 설피밭 17년
이하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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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삼십번에 삼십번을 제곱하며, 퇴사 혹은 딴짓을 고민하는 나로서는(막상 서평인데 나 일안한다는 소리만 하는구나 ㅠ ), 언제나 이런 내용의 책들을 보면 쫌 부럽다. 뭐 항시 나라는 인간이 원래 내가 살지 못하는 다른 삶을 무턱대고 동경하니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주저하는 삶의 결정을, 어렵게나마 쉽게나마 결정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삶을 차곡차곡 살아가는 꾸준함과 담담함이 부럽다는 이야기다.

참 그 결정이라는 것이 이렇게 어려워진다. 멋모를적에는 아 그래? 그럼 오케이 알겠어. 하며 단칼에 공기라도 베듯 흔쾌히 내 길을 외쳤던 기억이 조금은 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정을 미루는 결정을 최선으로 삼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 막히다가도 또 이냥저냥 살다가 또 생각하고 속터지고 다시 살고 그런다. 최선보다는 차선, 한 보 보다는 반 보 라는 기묘한 타협점으로 이도저도 아닌 그냥저냥, 심보선의 싯구대로 사는 둥 마는 둥 사는 뭐 그런거.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부린 젊은 날의 게으름과 객기로 괜히 불러일으킨 자격지심 만큼이나 익숙해진 사회생활의 굴레의 은근한 편함도 커지니 사실 차선이든 반보든 뭐든 그 이상 나올 내 최선은 생각보다 궁하니 그렇기도 하고.

사실 재미있는 건 정작 내 생각고 별반 차이없는 소리에 은근 위로받으며 산다는 거다. 이전에 잠시 다닌 학원강사가 자신은 매일매일 너무 바빠서 돈을 모아도 막상 어딘가를 갈 수도 없고 그래서 인터넷이나 책자 등에서 참 좋은 여행지, 뭔가 감성적이면서도 마음을 빼앗길 것 같은 환상의 경치가 함께하는 음식점이나 호텔 등을 찾으며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는 이야기를 했던 걸 생각해보면, 알면서도 그 앎에서 조금 떨어진 곳 앞에서 서성대는 것, 그나마의 위안 거리로 또 하루를 살아간다는 방식은 생각보다는 대세고 의외로 최선이겠구나 싶기도 한다. 뭐 그만큼 재미는 반감되겠지만.(사실 말을 이래도 나 역시 가고픈 데는 모두 TV로 보며 그저 우와 하고 말아버리는 처지임 ;;;)

항상 썰이 길어 문제지만, 곰배령, 그리고 그 안의 설피밭은 참 아름다워 보인다. 물론 17년 동안 다져지고 빻아지고 숙성되고 말려져 그 곳과 어느정도 동화된, 그리고 글로 정제되며 좀 더 가다듬어졌기에 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상, 계절마다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는 그 공간에서도 사실은 하루하루가 매우 다름을, 어제는 어제대로 오늘은 오늘대로, 1년뒤 오늘도 오늘대로, 1년전 오늘도 오늘대로 그 자체로 각별히 소중함을 안 사람에게서 듣는 그곳 이야기는, 매양 새로우면서도 친근하다. 

곰배령이라는, 미지의, 무언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있을 곳에 지내면서도 문명이 가져다 주는 나름의 혜택도 재미나게 누려주고(인제군에 세금내지만 책 대출은 가기편한 양양에서 하는 등)과 부자되고프고(엄마는 애당초 삼백억 정도의 소규모 부자를 목표로 삼았으나 그만 딸의 사주로 엉겁결에 천억으로 급 돌변, 이게 다 그놈의 별똥별이 떼로 몰려다녀 그리 된 것이니 역시 별똥별은 한 밤에 한 개 정도 내려야 소중, 그래야 소원 빌 시간이 없.. ;; 솔직히 김유신 월성전투 때 별똥별 미친 듯 떨어졌음 어쩔 뻔했어, 연 하나가지고 안된다고. 이건 또 뭔소리), 베스트셀러작가도 되고픈 솔직한 심경을 술술 털어놓는 모습도 후훗, 반가웠다.(뭐냐 막상 써놓으니 막 고자질하는 듯한 느낌은 ;;)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곰배령에 사는, 무언가 다른 것을 추구하는 다른 사람, 이 아니라 곰배령에 살고 있는, 누군가와 특별히 다르지 않는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추석날 오손도손 송편만들듯, 왁자지껄 김장담듯 여러 기분을 담아 써낸 그런 발랄함, 곰배령을 그대로 마음으로 담아내어 어느새 내겐 생경했던 생동감이 더욱 반가웠다는 게다. 

게다가, 내가 개청춘에 대한 서평을 쓸 걸 미리 예상이라도 했듯, '개'에 대해 이렇게나 온순하고 멋들어지게 해석하는 대목에서는 그저 아아, 역시 17년은 해야.. 하는 생각뿐이었으니, 역시 멀었구나 서평은 늦더라도 꼭 쓰자 하는 결심까지 하게 하고.

   
 

 혹여 강아지에게 닿을 새라 발걸음도 조심조심, 구석에 몰려있는 강아지들을 입으로 배 쪽으로 밀면서 자리를 잡고 누운 꽃순이. 이토록 지극한 예절과 절도가 느껴지는 꽃순이를 보면서, 나는 사람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는 것처럼 개도 개 나름인데, '개'라는 말을 되는 대로 한 덩이로 묶어 사용하는 사람들이 무척 모순되게 느껴졌다. 이제는 '개'가 붙는 말을 때론 덕담으로 들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개보다 못한'이란 말은 욕이라기보다는, 습관적으로 살고 있는 나의 일상에 자연의 섭리가 울려주시는 '개만큼이라도 정신 차리라는 경종'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걸 먼저 읽고 개청춘 리뷰를 썼더라면, 그래도 좀 더 아름답게 쓸 수 있었던 것을.

어쨌거나 이 책을 읽은 나는 또 그새 떠오른 딴짓거리를 최우선으로 삼는 걸 보면, 에고 갈 길은 역시 험함을, 늘어난 건 변명임을 새삼 또 깨닫고 만다. 뭐 나름 생각난 김에 일어나서 서평을 쓴 걸로 오늘은 나름 위안을 삼고 자면 되겠지.

 

p.s  

내 기준 다음 서평은 유모아 극장이던데 큰일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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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개청춘>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위풍당당 개청춘 - 대한민국 이십대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 잔혹사
유재인 지음 / 이순(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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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래, 앞으로도 이런 책이 좀 더 나오는 것도 괜찮겠다. 소소하고 소상한 이야기들을 술술, 자기 감정 자기 썰을 재미나게 푼다면 그거 참 좋겠다.(어, 난 사실 이미 싸이 일기로 그러고 있긴한데) 여튼 너무 무겁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고 그런 내용은 참 읽기에도 괜찮다. 무슨 제목을 가져다 붙여도 오케이. 하긴 이미 다 알았던 모냥이다. 벌써 '개'자로 시작해서 曰曰曰하는 개가 내는 소리로 끝나니. 하하핫.  

하긴 그러고보면 예전에 딴지일보도 독자투고란에 왼쪽에는 개그림, 오른쪽에는 노가리 그림을 그려서 어떤 독자가 얼마나 성의있게 글을 써도 개소리나 하고 노가리나 풀고가시지요 암요, 하는 그들의 뜻에서 아무도 벗어날 수 없었던 기억도 나는구마. 정말 되도 않는 딴지기사에 내가 광분하여 쓴 글이 꽤 추천도 받았었지만, 거기서 그렇게 써봐야 어차피 개소리에 노가리나 풀다가는 용도 이상은 못되는 그런. 아이참 정말 못됐었네 그 사람들 그땐 ㅎㅎㅎ

어쨌거나, 참 소상한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는 건 또 다르구나. 뭐 조금 더 솔직하자면, 훌륭한 자본주의 시대는 역시 구매력있는 독자층을 찾아내고야 만 게고. 어쨌거나 재밌게 잘 읽었다.  

다만, 책의 부제로 대한민국 이십대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 잔혹사라 했지만, 사실 잔혹사로 공감되는 사항이 별로 없으며 게다가 99년 수능봤으면 올해 31세이기에 생일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생일이 안지나 만으로 나이쳐서 카피를 이십대로했든 혹은 취업시 기준삼아 이십대로 잡았든 뭐든 이러면 곤란하다는 점을 아쉬운 점으로 당당히 밝히는 바이다. 

하나 더, 정말 그 아리땁고 아리따운 '청춘'이라는 단어 앞에 '개'를 한번에 붙여버린 그 만행은, 도무지 이 봄에 뭐하는 짓인가라는 한탄을 자아냈음도 역시 밝히는 바이다. 어차피 처음 그림도 개 그려놓고, 마지막 그림까지 개 다 그리며 끝낼거 였으면서 개청춘까지 해놓은 건 인간적으로 봐도 개적으로봐도 솔직히 너무하는 처사다 버럭!!

어쨌거나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발랄했달까. 글의 소재를 겪을 때의 기분은 절대 발랄하지 않았겠지만, 누가 낸 오타처럼 고통은 사실 시적인 거고, 시간이 지난 후의 고통을 쓰다보면 또 거기에 나름의 새로운 의미도 담기는 것이고. 다만 책에 수록된 산문들 보다는 기실 진짜 더 하고픈 얘기는 많았을 것 같다는 마음도 좀 들었더랜다. 아님 말고.

아 떠오른 김에 하나 더 붙이는 아쉬운 점으로는 기왕에 내는 거 책값은 좀 많이 떨어뜨려 나왔으면 좋았겠다는 것이었다. 부담없이 사보게 말이다.

뭐, 또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만, 난 그저 부디 시대가 갈라놓은 사랑에 상처받아 와인 두병을 나눠마신 말까지 걸죽하여 분명 완소 매력적일듯한 '구혜선보다 예쁜 친구의 연애운'을 진심다해 사력으로 빌 뿐이고!! (아 결국 또 해버렸다. 무슨 말)

참, 그리고 이미 남친은 남편으로 글 안에 이미 그려졌었으니, 굳이 너무 아쉬워 할 것은 없고, 
이젠 더없는 속물로 살아가는 우리네 삼십대(이젠 이십대 아닌거 다 알게되었으니)를 또 열심히 그려봐주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고. 하여튼 커트 보네거트 책 사본다는 걸 잊고 있었는데 짧게나마 그 이름 언급한 덕분에 알라딘 주문 또 할 수 있어, 참 고마웠던 책. 


첨부 : 오늘도 신묘한 오탈자 찾기.

'신유자유주의'. 신유집회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사상을 담은 말.
신자유주의의 오타로 오해받기도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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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3-17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흘륭하십니다. 짝짝짝~
저는 무엇보다 개청춘이라는 제목 때문에...들고다니기 좀 부끄러웠어요. 그래도, 뭐, 술술 재밌게 읽히는 게 재밌는 블로그 하나 본다는 생각으로. ㅎㅎㅎ

風流男兒 2010-03-17 09:48   좋아요 0 | URL
어휴 훌륭하긴요 ㅎㅎ 이제 남은 책들을 보고 있어요 ㅎㅎ 3월은 서평의달로 삼고자하는? ㅎㅎ 나 하루만 딱 들고 다녔지요 ㅎㅎ
 
<삼한지> 가제본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삼한지 세트 - 전10권
김정산 지음 / 서돌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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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아니면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  그 대답에 답할 자 누가 있겠냐마는, 어찌되었던 역사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수도 없는 영웅들의 전기는 이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오뒷세이아, 삼국지, 수호지, 열국지, 등등으로 이어지며 내려온다. 하물며 성경도 영웅전으로 읽혀진다고 하지 않는가.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그 책은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이스라엘 무협지라고 불린다고 하니.  

영웅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자도 그 영용함과 비범함에 수많은 일화가 더해지고 더해져 역사에 이름을 남기며 영웅이 된다. 어쨌거나, 역사에 이름이 남는 다는 것, 적어도 족보에도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명성을 남기고자 하고 그것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워 하는 걸 보면, 역시나 호사유피에 인사유명은 여전히 만고에 길이남을 속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항상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영웅을 도시 누가 필요로 하는가',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영웅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뜻에 맞추기 위해, 정당화를 누리기 위해 써온 오래도록 뻔하면서도 효과적인 수단 아니었던가. 이미 삼한지에 나오는 위정자들 역시 자신의 뜻을 합리화하기 위해 고전의 영웅들을 언급하는 걸 보면 굳이 따로 예를 들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우리' 영웅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광개토의 호령과 호방한 고주몽, 헌원과 대적한 치우, 을지문덕, 계백, 화랑 등. 이미 그 영웅들은 이제는 지면을 넘어 화면으로도 만날 수 있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우리 영웅에 대한 이야기라니, 분명 구미당기는 이야기임은 틀림이 없겠다.

2.
(그놈의 핏줄과 족보가 뭐라고) 경주 김가의 후손으로 족보에 적혀있는 나로서는, 고등학교 시절 꼭 나올 만한 이야기였던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으면 어떠했을까. 라는 질문만큼 곤혹스러운 게 없었다. 도대체 내가 신라의 후손인지는 족보외에는 그 어떤 근거를 찾을 수 없고, 그 족보마저도 이미 혼란스러운 시대를 틈타 어디엔가에 줄기를 접붙이듯 붙여졌을 가능성도 충분함에도 어찌되었던 본이 어디냐는 말에 항상 경주 김가올시다 라고 말하는 나였기에 괜히 그 시간에는 고구려대신 나라의 반만 통일시킨 신라의 죄짐(?)을 괜히 떠안는 무거운 기분이었다. 물론 그 덕에 역사 공부는 조금 더 열심히 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가정의 문제는 무얼 가정하든 언제나 한없는 싸움만 있을 뿐이니, 크게 말해봐야 무엇하겠나 라는 생각이었지만, 그럼에도 고구려가 통일했더라면 넓고도 넓은 요동과 발해를 우리가 가지게 되었을 거라는 오직 하나의 고구려 통일 찬성론에는 조금 불만이었다. 그 땅을 얻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라던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저 그 논리 하나였다는 게 그냥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는 말이다. 

3. 
이제 삼한통일을 다 못이룬 신라에 대한 아쉬움을 대변하려는 무리한 소리일랑 그만두고, 소설로 잠시 들어가 보면, 개인적으로는 잘 쓴 소설이라 생각한다. 길고도 긴, 역사 소설을 마쳤다는 것 자체로도 그렇고, 단어 하나하나까지 심혈을 기울여 조금 더 우리 본말을 찾고 싶어한 엄청난 노력, 호흡은 좀 길어도 그 긴 호흡마저도 무색하도록 정성스레 문장을 써낸 모습은 마치 한땀한땀 공에 공을 들여 작업한 작품을 보는 느낌이다. 혼란스러웠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전란을 배경으로 나타난 수도 없는 영걸들의 신묘한 계책과 사건들의 묘사도 흥미로웠다.  

3-1.
그럼에도 아쉬웠던 점 중 하나는, 결국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승자의 역사인 삼국사기만이 작가가 쓴 소설의 근거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우리' 영웅에 대한 확실함을 보장하고 싶어서였을까, 물론 철저한 고증과 조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에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기왕에 소설로 쓰게 되었다면 좀 더 소설적 요소를 더해 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특히 수도 없는 영걸들이 쏟아진 신라에 비해 그렇게 빛을 발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 고구려와 백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아쉬운 점 두번째는 여기서 튀어나오는데, 삼한통일은 참 멋져보이는 말이지만, 동시에 통일한 자의 정당성을 허락해주는 용어임도 맞는 바, 결국 삼한통일을 달성한 신라에 좀 더 우호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철저한 고증과 조사, 그리고 정사로 일컬어지는 삼국사기를 바탕으로 역사를 그려내려한 그 꼿꼿한 정신이 괜히 한켠 아쉬웠다. 물론 일리아드의 저자 호메로스 역시 그리스에 우호적이긴 했지만, 오히려 열국을 침착하게 언급한 열국지나, 오히려 패배자였던 유비와 촉나라의 애잔함이 강조되었던 삼국지연의의 시각을 좀 더 고려해보는 건 어떠했을까 싶었다. 나름 의협의 상징으로 간주되던 관우가 신이 되고, 유비와 공명이 여전히 존경을 받는 모습을 생각해 볼 때 말이다.  

물론, 이건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도 의연하고 꼿꼿한 사람들에게 더더욱 박수를 쳐대는 나의 성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삼한의 통일로 더 이상의 싸움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김유신과 김춘추 등 신라에 집중되어 묘사되는 면(직접 언급하니..)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결국 신라였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괜한 조마조마함이 나 스스로 좀 그랬다는 소리기도 하고.  

조금 더 나아가 보면 작가의 말에서는 스스로 '민족이나 동족의 개념은 아예 없었던 삼국시대에 신라가 외세를 등에 업고 동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멸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굳이 말하라면 고구려, 백제와 신라, 가야는 전혀 다른 종족이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말하는 한민족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비로소 생겨난 개념이다. 신라 문무왕이 백제와 고구려 유민은 물론 일부 말갈족까지 흡수하여 백성으로 삼은 것이 우리 민족의 시초이며 원형이다.'라고 밝혔지만, 소설 내의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점점 신라에 국운이 쏠리며 각국이 서로를 한민족으로 여기는 언급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사소한 걸로 꼬리를 잡는가 싶지만, 역시 '우리'나라가 만들어지는 시점에 이르러 서로를 한민족인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이미 신라의 통일에 대해 좀 더 우호적인 모습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게 나쁘다는 것보다는, 좀 더 관점을 멀리 떨어뜨려 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라는 게다.

3-2
'앞사람이 살아간 별 같은 흔적을 더듬고, 민족사에서 훌륭한 족적을 남긴 선조를 찾아내어 영웅으로 받들고 섬기는 일은 뒷사람의 당연한 몫이자 민족 전체의 저력을 키우는 초석이며 지름길'이라는 작가의 생각에 각을 세워가며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에 반하든 찬하든 이미 수도 없이 영웅은 만들어지고 있고 그 영웅들 틈바구니에서 대한민국은 움직여지는 듯 보이니까. 한 왕이 죽고 나서야 겨우 그 왕에 대해 평가하는 그 옛적의 객관적 노력마저 지금은 시장과 마케팅, 선거, 등등의 중요하게 여겨지는 권력의 쟁투속에서 무시되고, 살아있고 싶어하는 자들은 이미 스스로를 역사로 여겨 걸어다니고 기록을 남기며 심지어는 그 기록을 책으로 적어내는 실록을 살아생전 만들어 내지 않는가.

그렇지만, 굳이 이전의 영웅들이 너무 없어 우리가 불행하다는 작가의 생각에 대해서는 조금 이견이 있음을 밝힐 수 밖에 없다. (물론 진짜 영웅이 없어 불행한 면도 조금은 있겠다만..) 또한 한 집을 다시 여러 갈래로 나누지 못해 안달하는 현실을 아쉬워 하지만, 그 원죄는 굳이 따지자면 여러 집을 한집으로 만든 자들에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역사시간에 하나하나 배운 태조 왕건이 남겼다는 훈요십조 중 8조만 곰곰이 생각해봐도 그렇지 않는가. 

4. 
그렇게 영웅이 굳이 필요하겠냐라고 말하던 무식한 나지만, 숙연했던 부분은 당연히 있었다. 백제를 끝까지 지켜내려 했던, 이 싸움의 끝을 알면서도 지켜내려했던 백송같았던 충신들의 마지막 싸움 부분이었다. 촉나라를 지켜내려던 제갈공명의 유지를 이어 삼국을 통일하려던 강유의 눈물겨운 노력과 그 노력의 허무함이 더더욱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의 백미를 이끌어 낸 것처럼, 그 덕분에 후삼국지니 하는 아류작들이 다 이루지 못한 촉의 유지를 이으려 한 문학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개인적으로 10권의 나당대전보다 계백과 백제의 옛 충신들이 사력을 다해 눈물로 충성을 다 바쳤던 9권, 백제의 멸망은 좀 더 소설로 빠져들 수 있었다. 원효와 더불어 영웅으로 담고 싶었던 몇 안되는 인물들이 쏟아져나온 부분. 그래서일까, 아까도 언급하긴 했지만, 살수대첩이나 나당대전의 승리처럼 백제의 힘겨운 싸움에 좀 더 숨결을 불어넣어주고 조금 더 세밀하게 조명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특히나 역사의 관점에서 상당부분 그 자리보다 낮게 위치해온 백제사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더 그렇다.)

그럼에도, 작가는 오히려 이 설움과 울분이 생을 이어가는 단 하나의 힘이었을 백제의 유신들의 감정을 참 잘 그려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소하게 느낀 소설의 백미랄까. 신라와 당의 파상공세를 모두 막아낸 임존성의 지장 지수신이 흑치상지와 맞서다 내뱉는 말 한마디에 나는 그만 온 마음을 놓아버렸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세상에 둘도 없는 벗이 아니었나? 내게 먼저 기회를 한 번만 달라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가? 다시는 이런 소릴랑 하지 않을 테니 한 번만 내 뜻에 따라주시게." 
 흑치상치의 음성은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 누구의 말도 통하지 않을 것 같던 지수신의 강직한 태도가 그제야 약간 누그러지는 듯 했다.
 "......날더러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
 "나하고 같이 부여융의 밑으로 들어가세나."
 "그건 싫네."
 지수신이 말을 분질렀다.
 

 "기대하기도 실망하기도 지겨워."

 
   

 그래.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시대앞에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의 가장 애처로운 말이 아니었을까.
 역사라고 읽던 이 소설이 사실은 소설임을 알게 해준,
 그러면서도 가장 마음을 움직인 한마디였다.
 긴장과 긴장으로 엮어가던 부분 중에 자그맣게 지나가는 한마디에
 빨라지는 맥박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5.
후대에 널리 회자되지 않는 역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작가의 의식과 그로인해 '우리'영웅이 더 탄생하길 바라는 소망은 내가 평소에 가진 생각과 비슷하지는 않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수없는 가정을 만들어 역사에 질문하길 좋아하는 나로서도 그 생각과 판이하게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역사와 영웅에 대한 생각은 분명 다르겠지만.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할 점은 충분히 있고, 특히 학창시절 그저 짧은 몇 단락으로 정리된 차트나 표로 배운 우리의 지난 역사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어떤 국가나 제도 같은 커다란 의미에서의 접근보다 사람이라는 존재에 기대 서서 다시한번 고민할 수 있는 소설의 형식을 빌려 역사를 이야기한 점은 앞에 적은 무지렁한 사고에서 비롯된 아쉬움의 표현들을 충분히 덮고도 남는다. 그 아쉬움을 풀어내는 건 내 몫이기도 하니.

사람이 만들어내는 더럽고 치사하면서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시대를 구수하고 맛깔나는 좋은 문장으로 다듬어 낸 열권의 책을 만나게 되어 매우 즐거웠다. 언제나 그렇듯, 마감은 한참 넘겨 쓰게되었지만. 

 

 

P.S 
오늘도 헤집는 더 사소한 질문과 의뭉스러움들. 

(1) 1권에 나오는 주요지도에 울릉도와 독도의 섬들이 그려져 있지 않은 이유가 괜히 궁금하다. 나름 신라장군 이사부가 복속시킨 울릉 역시 우리의 땅인 것 같긴한데, 탐라는 집어넣고 우산국은 왜 안넣었는지를 묻고 싶다.  

(2) 1권 첫장에 각주1의 표시가 되어있지만, 막상 밑에는 각주의 설명이 없다.  

(3) 덕만공주가 태후에게 박염도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각주를 적용하여 이 박염도가 이차돈임을 밝혀주는 건 어땠을까 한다. 박염도가 이차돈이었음은 이 부분 이후에나 나오니 말이다.

(4) 2권 마지막장에 양쪽 다 248쪽으로 인쇄되어 있다. 250쪽으로 끝나야 하지만 249쪽으로 끝난다. 그리고 두번째 248(원래는 249)쪽에 언급된 각주가 그 다음장에도 중복으로 나타난다. 

아마 가제본을 받아 읽었기에 이런 것들이 나왔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실제 책을 들여다보지 않아 물어보는 것이고, 크게 중요하지도 않다.
봉황처럼 절대 날지 못하는 참새의 수작정도로 여기면 되지 않겠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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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2010-03-09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역시 한땀한땀 정성스레 쓰셨네요
까칠까칠 하다 보들보들 하다 아주 아슬아슬 잘 읽었습니다 ^^

,,,기대하기도 실망하기도 지겹다,,, 뼈가 쩌는 대사가 여기 있었네요.

風流男兒 2010-03-09 22:0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냥 지나다니는 생각 겨우 정리한 거지 뭐.
음, 이상하게 난 저 말이 제일 마음에 와 닿아 ㅎㅎ

참고로 저 지수신은 저 대화 이후로 다시 돌아오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