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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 세쌍둥이와 함께 보낸 설피밭 17년
이하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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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삼십번에 삼십번을 제곱하며, 퇴사 혹은 딴짓을 고민하는 나로서는(막상 서평인데 나 일안한다는 소리만 하는구나 ㅠ ), 언제나 이런 내용의 책들을 보면 쫌 부럽다. 뭐 항시 나라는 인간이 원래 내가 살지 못하는 다른 삶을 무턱대고 동경하니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주저하는 삶의 결정을, 어렵게나마 쉽게나마 결정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삶을 차곡차곡 살아가는 꾸준함과 담담함이 부럽다는 이야기다.

참 그 결정이라는 것이 이렇게 어려워진다. 멋모를적에는 아 그래? 그럼 오케이 알겠어. 하며 단칼에 공기라도 베듯 흔쾌히 내 길을 외쳤던 기억이 조금은 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정을 미루는 결정을 최선으로 삼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 막히다가도 또 이냥저냥 살다가 또 생각하고 속터지고 다시 살고 그런다. 최선보다는 차선, 한 보 보다는 반 보 라는 기묘한 타협점으로 이도저도 아닌 그냥저냥, 심보선의 싯구대로 사는 둥 마는 둥 사는 뭐 그런거.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부린 젊은 날의 게으름과 객기로 괜히 불러일으킨 자격지심 만큼이나 익숙해진 사회생활의 굴레의 은근한 편함도 커지니 사실 차선이든 반보든 뭐든 그 이상 나올 내 최선은 생각보다 궁하니 그렇기도 하고.

사실 재미있는 건 정작 내 생각고 별반 차이없는 소리에 은근 위로받으며 산다는 거다. 이전에 잠시 다닌 학원강사가 자신은 매일매일 너무 바빠서 돈을 모아도 막상 어딘가를 갈 수도 없고 그래서 인터넷이나 책자 등에서 참 좋은 여행지, 뭔가 감성적이면서도 마음을 빼앗길 것 같은 환상의 경치가 함께하는 음식점이나 호텔 등을 찾으며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는 이야기를 했던 걸 생각해보면, 알면서도 그 앎에서 조금 떨어진 곳 앞에서 서성대는 것, 그나마의 위안 거리로 또 하루를 살아간다는 방식은 생각보다는 대세고 의외로 최선이겠구나 싶기도 한다. 뭐 그만큼 재미는 반감되겠지만.(사실 말을 이래도 나 역시 가고픈 데는 모두 TV로 보며 그저 우와 하고 말아버리는 처지임 ;;;)

항상 썰이 길어 문제지만, 곰배령, 그리고 그 안의 설피밭은 참 아름다워 보인다. 물론 17년 동안 다져지고 빻아지고 숙성되고 말려져 그 곳과 어느정도 동화된, 그리고 글로 정제되며 좀 더 가다듬어졌기에 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상, 계절마다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는 그 공간에서도 사실은 하루하루가 매우 다름을, 어제는 어제대로 오늘은 오늘대로, 1년뒤 오늘도 오늘대로, 1년전 오늘도 오늘대로 그 자체로 각별히 소중함을 안 사람에게서 듣는 그곳 이야기는, 매양 새로우면서도 친근하다. 

곰배령이라는, 미지의, 무언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있을 곳에 지내면서도 문명이 가져다 주는 나름의 혜택도 재미나게 누려주고(인제군에 세금내지만 책 대출은 가기편한 양양에서 하는 등)과 부자되고프고(엄마는 애당초 삼백억 정도의 소규모 부자를 목표로 삼았으나 그만 딸의 사주로 엉겁결에 천억으로 급 돌변, 이게 다 그놈의 별똥별이 떼로 몰려다녀 그리 된 것이니 역시 별똥별은 한 밤에 한 개 정도 내려야 소중, 그래야 소원 빌 시간이 없.. ;; 솔직히 김유신 월성전투 때 별똥별 미친 듯 떨어졌음 어쩔 뻔했어, 연 하나가지고 안된다고. 이건 또 뭔소리), 베스트셀러작가도 되고픈 솔직한 심경을 술술 털어놓는 모습도 후훗, 반가웠다.(뭐냐 막상 써놓으니 막 고자질하는 듯한 느낌은 ;;)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곰배령에 사는, 무언가 다른 것을 추구하는 다른 사람, 이 아니라 곰배령에 살고 있는, 누군가와 특별히 다르지 않는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추석날 오손도손 송편만들듯, 왁자지껄 김장담듯 여러 기분을 담아 써낸 그런 발랄함, 곰배령을 그대로 마음으로 담아내어 어느새 내겐 생경했던 생동감이 더욱 반가웠다는 게다. 

게다가, 내가 개청춘에 대한 서평을 쓸 걸 미리 예상이라도 했듯, '개'에 대해 이렇게나 온순하고 멋들어지게 해석하는 대목에서는 그저 아아, 역시 17년은 해야.. 하는 생각뿐이었으니, 역시 멀었구나 서평은 늦더라도 꼭 쓰자 하는 결심까지 하게 하고.

   
 

 혹여 강아지에게 닿을 새라 발걸음도 조심조심, 구석에 몰려있는 강아지들을 입으로 배 쪽으로 밀면서 자리를 잡고 누운 꽃순이. 이토록 지극한 예절과 절도가 느껴지는 꽃순이를 보면서, 나는 사람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는 것처럼 개도 개 나름인데, '개'라는 말을 되는 대로 한 덩이로 묶어 사용하는 사람들이 무척 모순되게 느껴졌다. 이제는 '개'가 붙는 말을 때론 덕담으로 들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개보다 못한'이란 말은 욕이라기보다는, 습관적으로 살고 있는 나의 일상에 자연의 섭리가 울려주시는 '개만큼이라도 정신 차리라는 경종'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걸 먼저 읽고 개청춘 리뷰를 썼더라면, 그래도 좀 더 아름답게 쓸 수 있었던 것을.

어쨌거나 이 책을 읽은 나는 또 그새 떠오른 딴짓거리를 최우선으로 삼는 걸 보면, 에고 갈 길은 역시 험함을, 늘어난 건 변명임을 새삼 또 깨닫고 만다. 뭐 나름 생각난 김에 일어나서 서평을 쓴 걸로 오늘은 나름 위안을 삼고 자면 되겠지.

 

p.s  

내 기준 다음 서평은 유모아 극장이던데 큰일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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