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싱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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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 (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 첫머리부터 이게 뭐냐 싶지만, 지금은 새벽.
밖에서는 오늘 한국의 16강 진출을 오지게 축하한 나머지 속을 게워내며 8강을 축하하고픈 어느 취객의 복근발성형꾸우우에에엑이 들리고 있다. 문제는 그 꾸에에에에엑의 분사 장소. 빗물이 흘러가는 하수구에라도 했다면, 그의 꾸에에에에엑과 지면은 적어도 훌륭한 싱크를 이뤄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라면?? 싱크가 제대로 되지 않음을 탓하는 경비아저씨의 레벨 53짜리 분노의 빗자루질 소리를 듣게 될테지.
사실, 항상 버스를 탈 때 교통카드를 찍는 나로서는 카드리더기와 카드를 찍는 승차자와 버스운전기사 사이에서 제대로 싱크되지 못하는 현실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른다.
실제 사례를 예시를 들어 설명해보자.
앞선 승차자 : 두명이요, (그러면서 먼저 교통카드를 리더기에 삑)
기사님 : 띡띡(두명분 누지르는 행동)
뒤이어 탄 나 : 띡(카드 대는 소리), (찍히는 돈 1800)
자 이런 싱크의 문제가 발생하면 이제부터 얼굴을 붉히는 건 승차자와 기사님, 혹은 승차자와 내가 아니라, 나와 기사님이다. 제대로 싱크되지 못하면 얼마나 어두운 현실이 펼쳐지는 지를 잘 보여준다.
나 : 아저씨. 저 1800 찍혔..
기사님 : 네??(사실 모르시는 건지, 모르는 척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 : (혼자 슬 열 받으며) 아니 아저씨 1800원 찍혔다구요. (내가 뭐 동수랑 버스타나..)
기사님 : 침묵의 함대(아무말 없으시다는 뜻)
나 : 아저씨, 이게 뭐에요 증말.
기사님 : (아 운전하는 내가 그걸 어찌 알아 하는 표정으로) 그럼 내 돈 가져가 1000원.
나 : 아우 아저씨 됐어요, 아저씨 돈으로 이 돈을 무는 게 어딨어요. 괜찮아요 그러지 마세요.
대차대조표라도 그려봐야 하나. 이 되도않는 현금흐름을.. 파악하게.. 어쨌거나 이 불쌍한 직장인인 나의 900원이 5세 아동을 위해 쓰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저 경악에 경악이다.
문제는 뭘까.
애시당초 두명이요 하고 바로 카드 찍으면 카드리더기가 예 고객님하며 바로 두명요금모드로 변신하는 것도 아니요, 아저씨가 눈빛만으로 카드리더기를 작동시키는 싱커도 아니고, 결국 찍히는 금액은 보지도 않고 카드를 찍고 이미 자리에 앉아버린, 그래 너 바로 그대 승차자가 문제의 핵심이다. 만일 자리에 널찍이 앉은채 땀 뻘뻘 흘리는 날 보고 저자식은 멍청한놈 보지도 않고 찍어서 아저씨랑 웬 옥신각신이람 하며 있다면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그냥 확. 이렇게 될지도 모르니..
이렇게 그저 죄는 뒤에 탄 죄밖에 없고, 지갑에는 천원따위도 없고(만원은 있다는 건 더더욱 아님, 영수증은 무지 많음), 교통카드 환승안하면 무지 손해볼거 같은 마음으로 카드를 찍은 내가 잘못이다. 뭐 아저씨랑 말 몇마디 섞고 난 후면 버스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진정한 디스토피아가 구현된다.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없고, 잘못한 것도 없지만, 그래도 기분은 꽁기해지고, 마음은 심연보다도 어두운 그늘이 진다. 주위 사람들의 눈이 뭔가 부담시럽고, 그 부담을 받아내기엔 난 이미 땀에 쩔어 머리는 떡지고 얼굴에는 기름이 흐르고있는 지성인(脂性人) 상태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집에 데려다 주는 고마운 버스래도 타고 있는 동안은 참 그르타. 눈앞이 깜깜..하다.
자 헛소리는 집어치우고(이미 다 했다), 좋은 판타지 소설이 나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판타지는 지금의 참 뭣도안되는 현실이라는 디스토피아를 제대로 그려내야 제맛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찍혀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판타지의 주된 장면은 언제나 어둑하고 흐릿하다못해 치릿한 그런 암전상태처럼 비춰지는 듯 싶다. 그리고 나그네가 오밤중에 빛을 찾아 헤매이는 전통적인 방식 대신, 더 어두운 곳을 찾아가는 걸음이 주된 흐름이 되지 싶다. 그렇지만 그 디스토피아의 근원을 제대로 찾아 들어갈 때, 그리고 가장 위험하고 위협적인 장소에 들어갈 때, 비로소 유토피아의 희망을 - 무협지에서 하도 지겹게 써먹은 장면이지만, 굴러 굴러 떨어진 기암절벽화초백만년짜리 동굴 속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뭣땀시, 숨겨둔 일주일이면 당신도 60갑자. 의 기서처럼, 가장 깊은 물에 들어갈 때 보이는 희미한 빛처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떠나 지쳐 쓰러질 때쯤 만나게 되는 운명의 연인처럼..(응??) - 그나마 조금은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희망을 희망하게되는 것, 그게 어쩌면 판타지가 주는 매력인지도 모르지.
게다가 생각해보니, 어쩌면 우리의 미래소설에 대한 희망은 은근 희망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뭐 꼭 PC방과 온갖 온라인게임과 및 기타 오락기들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판타지에 상당히 친밀해진 그들에게서 나올 판타지는 지금의 우리가 겨우 써내는 판타지보다는 몇갑절, 몇갑자 더 성장한 채로 나오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는 소리다. 특히나 판타지가 그렇게 소설스럽지 않게 여겨지는 듯한 현실에서, 더더욱 판타지가 계속 나왔으면 하는 판타지를 가진 나로서는 더욱 더 이렇게 되길 바라고 있다.
사실, 죽기전에 절대 팔리지 않을 4.87류급 판타지 소설을 쓰고픈 나로서는 판타지가 가지고 있는 그런 은근한 위장, 꼭 비유나 은유라고 말하지 않아도 직설적이지 않아도 될 기발한 발상과 표현들이 참 맘에 든다. 게다가 그런 비유와 은유는 내 멋대로 해석해도 되지 않는가. 얼마나 좋나. 별생각 없이 썼을리 없을 곰'쥐'라는 표현말이다. 게다가 그 곰'쥐'들이 상당히 위협적이라는 데에는 무언가 깊디 깊은 생각이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니, 아우 오늘은 일단 잘 자겠다, 싶다. 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