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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 - 사라져가는 모든 사물에 대한 미소
장현웅.장희엽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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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테이플러보다 클립을 더 자주 애용한다. 클립은 종이에 상처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종이를 위한 작은 배려랄까. 보통은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기 위해 또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대에게 쉽게 상처를 내는 우리는 클립에게 배워야 할 부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존하고 도움을 주면서 최대한 서로를 보호해준다는 것. 그것은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일 테니까, 그래서 노르웨이 사람들은 이런 의미때문에 이 작은 클립을 사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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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그 사람 자체로 보다 그 사람과 나누는 무언가로 삶의 의미와 애정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사는지도 모르겠다.(아 그게 그말인가?) 나와 대면하는 사람과의 온기어린 손과 맑은 눈, 애정어린 대화에 더해 서로를 통해 건네받는 작은 물건들은 더욱 기분도 좋게 하고, 신나게도 하니까 이런 생각도 괜히 해보는 게다.
그렇다면 사물. 이라는 무생물이라도, 오히려 그 가치는 사람과 사람사이를 오가는, 삶과 삶이 이어질 수 있는 역할로 기능하기에 더 소중해 지려나 싶다. 위에서 인용한 클립에 대한 이야기처럼 어떤 의미에서 클립을 발명한 자와 직접 만난적은 없어도 서로가 공명하는 모습으로도 보이기도 하니, 사물이나 그 모든 행위를 포함한 일상에 대한 소소한 관찰과 관심, 깨달음은 비록 그 순간은 혼자만의 깨달음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굳센 노끈이 되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바로 이심전심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런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사물을 통해서 사람을 보는 데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기 어렵다. 책에 대한 평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느끼는 아쉬움이라는 이야기다. 나와 너가 완벽하게 꼭 맞게 합쳐지는 방법은 정말 그저 어렵고 어려운 걸까. 잡아야 할 손 대신 나는 그 손에 다른 무언가(정신, 물질의 차원이라도 상관없이)를 쥐어주는 것으로만 소통한다면 그 소통은 손과 손 사이의 거리마저도 좁히지 못한 채 존재하는 불통의 또 다른 의미는 아닌걸까. 손과 손을 맞잡으며 부어넣어야 할 애정과 관심대신 손과 손사이에 오간 사물을 통해 추억하며 그리워하는 것밖에는 하지 못하는 걸까. 라는 그런 바보같은 아쉬움, 말이다.
사물에 대한 사소한 발견이라는 소소한 의미를 기쁘게 느끼며 사람에 대한 사소한 발견을 더더욱 그리워하게 되는 하루다. 뭐 날씨 탓이려니, 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