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로 역 번지 없는 땅 마호로 역 시리즈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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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의 [마호로 역 번지 없는 땅]을 읽었다. 마호로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이다. 일본에서 출판된 년도를 살펴보니 2009년이라고 나오는데, 첫 번째 이야기 이후 3년이 지난 후에야 두 번째 이야기가 펼쳐지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특히 마지막 부분에 교텐의 갑작스러운 광기어린 행동이 궁금증을 자아내며 그의 과거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란 생각에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그 모든 비밀과 사연이 드러날 것인지 기대가 된다. 주인공이 다다 게이스케와 쿄텐 하루히코인 것은 변함없지만 새로운 에피소드가 펼쳐지면서 첫 번째 시리즈에 나왔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하며 마치 점선으로 그들의 인생이 얽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아직 야쿠자라고는 할 수 없는 사탕 장수 호시는 이번 편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난폭한 장면을 그려냈다. 마호로 시리즈는 다다 심부름집이라는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삶을 살아가는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는 평범한 남자의 삶을 그려내는 것 같이 시작하지만, 막상 그 안에서 호시와 같은 인물을 맞닥뜨리게 되면 피가 낭자한 잔인한 일이 발생되는 하드보일드함을 갑작스럽게 그려내는 특징이 있다. 


아무튼 전편에서는 호시는 그냥 못돼 처먹은 양아치에 불과한지 알았는데, 엄마와 만나서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모습은 좋은 대학을 들어간 모범생이라는 양면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권에서 호시가 약 장수의 길에 들어선 이유가 드러날까? 또한 유라 라는 꼬맹이도 또 다시 등장하는데 쿄텐과의 어이없는 하루가 호시의 난폭함과는 정반대의 명랑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이번 편에서 꽤나 큰 비중으로 나오는 소네다 할머니는 치매 증세가 완화되어 산책을 나간 길에 다다와 쿄텐에게 자신의 러브스토리를 들려준다. 1945년이 우리나라에 광복을 가져왔다면 일본은 패전국이 되어 한동안 전후의 어려운 상황이 소네다 할머니의 이야기에 담겨 있었다. 소네다 할머니의 삼각관계에 해당되는 남자는 야쿠자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정혼한 남자가 패전 후에도 돌아오지 않자 야쿠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와의 밀회를 즐기던 와중에 정혼한 남자가 돌아와 곤란한 상황들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일본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나라의 조폭에 해당되는 야쿠자의 존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공권력을 가진 경찰도 그들을 어쩌지 못한다는 정황이다. 이탈리아에서 마피아를 인정하듯이 일본에서도 야쿠자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치안이 유지되지 않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야쿠자인 소네다 할머니의 남자를 로맨틱하게 그려내는 저자의 의도는 조금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두 번째 시리즈의 막바지에 이르러 다다에게 새로운 사랑이 싹트는 만남이 생긴다. 죽은 자의 집을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방문한 빌라는 살던 사람의 개인적 일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수집품만이 가득했다. 집 정리를 부탁한 사람과 죽은 사람은 어떤 관계일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의뢰자가 연락이 되지 않아 쿄텐은 호시에게 정체를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하고 집 정리를 의뢰한 사람은 마호로의 거대한 식당 체인업 주인임을 알게 된다. 가시와기 아사코는 아버지뻘의 나이의 남자와 결혼하며 지내다 남편이 죽기 2년 전에 갑자기 집을 나가서 지내고 싶다고 하기에 바람이라도 난 줄 알았지만 남편은 갑작스럽게 아무런 말도 없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다다와 쿄텐과 집정리를 하던 아사코는 그제서야 남편의 죽음을 인식하며 울음을 터트리고 슬플을 토로하게 된다. 다다는 아사코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며 그 안에서 다시금 사랑이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의아해 하고 쿄텐의 다다의 감정을 눈치채고 다다와 아사코를 연결해주려고 그녀가 운영하는 식당을 애써 방문한다. 세 번째 시리즈에서는 다다의 사랑이 이루어질까? 


"<남자 둘과 여자 하나의 삼각관계는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의 삼각관계에 비해 알 만하잖아. 전자가 결론을 빨리 내리기 쉽지. 어느 남자를 고르는 게 득인지 여자는 바로 판단해서 결정하고, 남자 둘은 서로 눈짓하다 적당한 시점에서 한쪽이 발을 빼지. 내 여자를 그 녀석에게 양보했다고 생각하면, 발을 때도 남자의 자존심은 상처 입지 않으니까.> 

쿄텐은 끄덕거렸다. 정말로 알아들었나, 이 인간, 하고 다다는 생각했다. 

<그런데 후자는 어때, 질질 끄는 일이 많지. 남자는 혼자 정하지 못하고 여자는 절대 결탁하지 않기 때문이야. 남자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할 때까지, 상대 여자가 항복하고 물러날 때까지, 조용히 치열하게 싸우지.>(124)"


"시시한 고집 싸움으로 소중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나도 비슷할지 모른다. 오카 부인은 생각했다. 이미 남편과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 함께 시간을 보낸 탓에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부부라는 사실조차도 무뎌졌다. 하지마 마음속에 있는 등불 같은 것은 꺼지지 않는다. 남녀나 부부나 가족이란 말을 넘어서 그저 뭔지 모르게 소중하다는 느낌. 저온이지만 끈질기게 지속되는, 조용한 기도와 비슷한 경지. 

포기와 타성과 사명감과 아주 약간의 따스함. 소소하게 매일 일하고 자기 역할을 다할 때의 심정과 같은 느낌으로 가늘게 맺어져 있다. 그런 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할 말은 없다. 없어서 당혹스럽다. '아내와 남편'으로 끝내고 안온하게 지내는 남편에게 짜증 난다. 그러나 같이 있는 것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그 이유를 사랑이라고 한다면 아주 간단하지만.(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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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칸타빌레 - '가다' 없는 청년의 '간지' 폭발 노가다 판 이야기
송주홍 지음 / 시대의창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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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홍 님의 [노가다 칸타빌레]를 읽었다. 부제는 "'가다'없는 청년의 '간지' 폭발 노가다 판 이야기"이다. 일드이자 일본만화인 '노다메 칸타빌레'를 오마주하여 얼핏 노가다를 노다메로 봐서 다시 한 번 눈길을 끄는 작전이 성공한 듯한 제목은 원작인 클래식과 변주곡인 노가다와의 엄청난 간극이 표면상으로 느껴짐에도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지금까지 내가 몇 번의 클래식 공연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다가왔다. Cantabile는 원래 이태리어로 '음악적인, 노래같은, 부드럽게 움직이는' 뜻을 가진 단어다. '노가다'라는 거친 활동이 우리를 감동에 젖어들게 만드는 칸타빌레의 결과물을 가져오는 것은 어쩌면 매일 매일 먹고 살기 위한 일환으로 선택한 노동을 성실히 임한 이들 덕분에 편안함 주거지가 생긴 것을 뜻함이 아닐까. 


저자의 책에서도 수없이 나오는 노동 현장의 단어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쓰던 말이 그대로 차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별히 노가다를 해보지 않은 사람도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노가다의 대표적인 용어들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언젠가 일제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노동 현장에서 일본어로 된 용어들을 쓰지 말자는 말을 들었었는데, 저자의 글을 보니 아마 지금까지 써온 용어들이 우리말로 대체되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카페에서 계피가루 말고 시나몬을 뿌려달라는 어이없는 상황을 진짜로 겪은 적이 있다. 요즘 오트 라떼가 유행이라 한 번은 카페 라떼를 주문하면서 우유를 귀리 우유로 바꿔달라고 했다. 그러자 점원이 못 알아들은 듯이 네? 라고 반문하기에 다시 귀리라고 해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오트 밀크요. 라고 하자 네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이. 그러니 삽질 좀 해봤다는 남자들 사이에서도 '아시바'가 뭔지는 알아도 그게 우리말로 '비계'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내가 건설현장에서 쌍욕을 들어가며 어리바리 행동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국 어디를 가도 아파트 건설 현장을 볼 수 있다. 이전까지는 대체 저 많은 아파트에는 누가 살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자면, 이제는 아 저 많은 아파트 건설현장에 오늘 내가 읽은 노가다꾼들이 일하고 있겠구나 라는 감탄이 밀려왔다. 세상사 쉬운 일이 어디이겠느냐만은 매일 책상에 앉아서 뱃살만 키우는 입장에서 새벽부터 고된 노동을 하는 이들에게 나는 얼마나 우스워보일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나 저자가 기자에서 콘텐츠 기획자로도 일한 경력이 있는데, 오히려 노가다를 시작하면서 불면증과 우울증이 사라지고 격한 노동 후에 꿀잠에 빠지는 내용은 인간이 땀을 흘려 일하는 것이 신성하다는 옛말을 떠올리게 했다. 


공사판일을 막일이라고 폄하하는 표현들이 많았는데 막상 저자가 소개하는 노가다 현장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서 어느 직업군 못지 않은 질서와 요령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특히나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상당수 건설 현장에 투입된다고 하니, 저자가 건설 노조 편에서 강력히 주장한 내용 '불법 다단계 하도급' 시스템이 하루 빨리 개선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얼마전에 사고로 희생된 분들과도 같은 비극적인 일이 사라지지 않을까. 지난해 읽었던 이혁진 작가의 [관리자들]에서 공기를 당기기 위해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다가 결국 희생자가 발생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저자가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겉으로 보여지는 안전 대책 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음은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몇 시간이고 책상에 앉아 고작 몇 줄을 쓰는 그 지지부진한 시간이 나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게 했다>라는 최은영 소설가의 말에, <어! 나랑 똑같네. 하하>하고 감탄하는 사람이 될 순 없었겠지. 노가다 판에서 흙먼지 뒤집어쓰면서도 <아, 오늘 컨디션 좋은데? 힘이 넘치는데?> 하면서 농담하는 사람이 되진 않았겠지. 친구들 만나서 <야, 나는 낮에는 집을 짓고, 밤에는 글을 짓는 살마이야. 라임 죽이지 않냐?>라면서 낄낄거리는 놈이 될 순 없었겠지.(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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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년
이희주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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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주 작가의 [성소년]을 읽었다. 제목과 표지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범상치 않은 기운은 뭔가 예기치 않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해준다. 스토킹의 비극적 집착의 끝을 보여준 ‘미저리’라는 영화 덕분에 최애를 자기만의 것으로 만드려는 욕구가 얼마나 어리석고 이기적인 선택인지 이미 우리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보여준 요셉이라는 아이돌에 대한 안나, 미희, 나미의 광적인 집착은 이미 그들에게 결핍되어 오래 축적된 내적 공허함이 구체적 사랑으로 드러날 때의 광기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영화와는 또 다른 묘미와 긴장감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요셉에 대한 광기로 인해 어이없게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을 두 명이나 죽이게 되었음에도 과연 그들을 파괴적으로 만들어간 과거의 상처와 결핍들이 무엇인지 산장에서의 대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사랑에는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트로트가 대세인 시대에는 예전처럼 누구누구의 팬이 된다는 것은 단지 유년기 시절의 학생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중년의 누군가도, 노년의 누군가도 열성적인 팬이 되어 조공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최애에게 열과 성의를 다해 집중한다. 최애를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광팬이 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뭐하러 그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굿즈를 사고 비싼 콘서트를 몇 번씩이나 가느냐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왜 그렇게 최애를 좋아하고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아끼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이런 대답을 한다. ‘최애가 나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기 때문이라고’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대답을 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최애를 통해서 얻게 되는 만족감과 기쁨은 가족이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얻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행복인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공리주의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이 그런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애에 대한 욕구가 선을 넘게 되면 이 소설과 같은 사태가 생겨날 수 있다. 안나는 이미 남편과의 유학 생활 중에 무료한 나날을 위로받기 위해 몸을 파는 미소년과 관계를 맺게 된다. 자신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젊은 육체에 대한 탐닉은 돌아와서도 멈추지 않는다. TV를 통해서 본 요셉의 춤추는 모습은 유럽에서 만났던 미소년과 오버랩되어 요셉의 공연장을 맴돌게 만든다. 그곳에서 미희와 나미를 만나게 되고 그들은 요셉을 자기들만의 최애로 만들기 위해 납치 계획을 세운다. 아주 오래전에는 권력과 부를 가진 이들이 여러 명의 아내를 둘 수 있었다. 그렇지 않는 사람도 첩이라는 이름으로 아내를 둘 이상 두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높아져 첩을 두는 사람은 거의 보기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갑자기 신의의 삶을 살게 된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폴리아모리라는 원래 폴리가미(일부다처제)에서 파생된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연애 형태가 조금씩 유행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 


결혼에 대한 거부감은 비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고 비혼이라고 해서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며, 이성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동성 간의 사랑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젠더 의식이 확대되어 폴리아모리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랑의 속성 중에 우리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특징 중의 하나가 사랑하는 대상을 독점하고 싶은 욕구와 그 대상의 내밀함을 차지하고 싶은 욕구가 상당히 강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바람피는 사람을 윤리적으로 비난하고 나와의 친밀함으로 만들어진 속내를 또 다른 타인에게 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질투와 시기를 유발시킨다. 그런데 폴리아모리에서는 그런 질투와 시기를 용인할 수 있다는 쿨함을 보여준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이런 내밀함의 욕구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종종 발생되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다른 친구와 가까이 지내는 모습을 보고 이유없이 짜증이 나기도 한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서 요셉을 함께 납치하여 산장에서 한달 동안 먹이고 씻기고 돌보며 최애를 독점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지만 결국 그 산장을 찾은 주인 할아버지의 손자에 대한 우발적인 살인과 그 손자를 찾기 위해 온 친구들이 차를 훔쳐 돌다가 경찰에 적발되어 차주를 찾으러 온 경찰을 또 다시 죽이게 되는 비극적 결말을 가져온다.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더욱 충격적인 결말은 이미 요셉이 기획사의 시나리오로 살인 연극이 실제로 죽음에 이르게 된 후 요셉의 시신을 발견한 세 명의 여자가 요셉의 시신을 돌보며 환각 상태에 머물러 있었음이 밝혀진다. 최애의 부재에 이르러 미희와 나미가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려는 모습은 결국 요셉이 없이는 그들이 살 이유가 없다는 안타까운 결말을 보여준다. 이들의 집착과 광기는 정말로 사랑이었을까?


“괜찮은 인생이란, 광고에서처럼 매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행복이 늘어서는 거였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의 행복은 메마른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아서, 눈알이 아프도록 혀를 내밀고 지켜본 끝에야 간신히 한 방울을 맛볼 수 있었다. 엄마는 그 갑갑한 기다림을 참지 못했다. 그렇다고 순리가 이끄는대로 천천히 말라죽어가는 것도 견디지 못해서, 차라리 화끈하게 혀에 불을 지르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런 인간형은 미희와 길거리를 전전한 여자애들 중에도 있었다. 물론 정말 오갈 데 없는 애들도 있었지만 사정이 괜찮은 애들도 많았다. 멀쩡한 애들이 단 몇 초 지나가는 요셉을 보기 위해 길바닥에 쪼그리고 있었다. 맨바닥에서 자고, 수풀에 들어가 오줌을 누고, 서로 맞고 때리면서 요셉의 주위를 얼쩡거렸다. 그들은 열 길 물속보다 여러운 한 길 사람 속을 알고 싶어했다. 그게 사랑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들이 지루해 미칠 것 같던 순간에 요셉이 눈앞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쏟아붓는 것만큼 괜찮은 자극도 없었다.(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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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 요리 전문가부터 미식가까지 맛을 아는 사람들을 설레게 할 이야기
장준우 지음 / 북앤미디어디엔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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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우 작가의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를 읽었다. 부제는 "요리 전문가부터 미식가까지 맛을 아는 사람들을 설레게 할 이야기"이다. 음식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이미 여러차례 먹어본 후에도 고기의 다양한 부위나 생선의 여러 회의 이름에 거의 무지했다. 고기를 굽는 좋은 식당에 가면 의례 이건 이런 부위라고 아는 척하는 사람이 꼭 있고, 갓 잡아올린 신선한 생선을 바로 회로 준비한 식당에 가면 예쁘게 데코레이션 된 모양만 보고도 광어, 우럭, 돔 등을 바로 구별해내는 출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그럴때마다 드는 생각이 관심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당최 그런걸 어떻게 기억해내는지 신기하기만 했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주에 대해 이슬파와 처음파로 나눠지는 것은 단순히 상표에 대한 기호일 뿐 맛을 구별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했다. 술을 좋아하는 다른 누군가가 그 말에 동조할 수 없다고 하자, 그럼 맥주를 맛 만으로 구별해보자고 제안했다. 소주가 양대산맥이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 라거 맥주에도 하이트와 카스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던 당시에 미국 라거 맥주 밀러까지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 보았다. 흑맥주나 에일 맥주처럼 확연히 맛과 색깔이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동일한 맥주잔에 부은 3가지 상표의 맥주는 모두 똑같아 보였다. 다년간의 음주로 자신만만했던 그는 제안자가 술 잔을 돌리는 사이 눈을 감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드디어 맛을 보고 이름을 외쳤는데, 정말 어이없게도 하나도 맞추지 못했다. 테스트를 자신했던 이는 면구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한 번 해보자고 고집을 피웠고, 제안자는 거보라고 소주도 마찬가지로 이슬이든 처음이든 맛은 다 똑같은 거라며 아무거나 마셔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음식에도 관심이 없던 내가 술 맛을 구별할리 만무했지만, 그날의 테스트는 꽤나 오랫동안 나의 머릿속을 잠식했다. 고기나 회의 대한 잡다한 지식이 없어도, 눈으로 한 번 보고 구별하지 못해도 누군가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을 권리가 있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가 먹을 음식을 준비한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음식을 남기면 죽고 난 후에 지옥에 가서 코로 먹어야 한다는 음식을 남기지 말자는 터부 같이 말이 전해져왔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배를 곯느냐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조금만 주위를 살펴보면 무상급식을 하는 곳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주어진 한 하루의 제대로 된 한 끼를 위해서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줄을 선 허름한 복장이 이들을 지켜본다면, 부의 편재만큼이나 가장 기본적인 식생활의 부재가 심각한 이들이 우리 주변에 언제나 상존해 왔음을 깨닫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아직 식사 시간이 한 참 남았음에도 이유없는 침이 새어나오고 꼬르륵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아직도 내가 먹어보고 싶은 음식들이 전세계 어디에든 널려 있으며, 좋은 식재료들이 어디선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정성스럽게 자라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어딘간 낯선 곳에 머물며 맛보았던 음식들이 이 책을 계기로 되살아나 그 음식을 먹을 때의 정황과 설레임이 고스란히 내 안에서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맛집 탐방이라는 원대한 목표는 아니더라도 식재료와 음식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을 통해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다시금 낯선 음식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과감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살아왔던 삶의 흔적들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두를 물에 불린 후 맷돌에 갈아 끓이면 콩물이 되고 건더기를 짜내면 비지가 나온다. 짜고 남은 액체는 두유가, 두유에 간수를 넣고 그대로 응고시키면 순두부가 된다. 순두부의 물기를 짜내면 우리에게 익숙한 두부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젓갈 같은 육수를 넣고 발효시키면 취두부가 된다. 갈지 않고 불려 익힌 콩에 누룩균을 배양시켜 따뜻한 곳에 두고 발효시키면 청국장과 낫토가 만들어진다. 같은 과정으로 삶은 대두를 으깨 뭉쳐 발효시킨 것이 메주,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더 발효시키면 간장과 된장이 탄생한다. 대두를 이처럼 많은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런 방법을 찾아낸 인간이 더 경이로울 따름이다.(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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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마호로 역 시리즈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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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의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을 읽었다. 마호로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인 이번 책은 주인공 다다 게이스케와 교텐 하루히코의 우연한 재회로 시작된다. 어찌된 이유인지 회사를 그만두고 심부름센터가 아닌 심부름집을 시작한 다다는 외로움의 냄새가 짙게 베어 있는 듯 하다. 마호로 외곽의 어느 집의 노인에게 부탁을 받고 그 집 정원을 정리하며 버스가 시간표대로 운행을 하지는 지켜보라는 의뢰를 받은 다다는 일을 마치는 길에 버스가 끊긴 정류장에서 쿄텐을 만나게 된다. 고등학교 동창생인 교텐은 친구들의 장난으로 제단기에 새끼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이야기의 후반에서 장난치던 친구들이 교텐을 밀치게 된 원인은 다다가 일부러 의자를 빼놓았기 때문이라는 진실이 드러난다. 아무튼 쿄텐의 잘라졌던 다시 붙은 새끼손가락은 약간은 두터운 하얀 실을 두른 듯한 모양이 되고 그 손가락의 끝 부분만 온기가 전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다다가 쿄텐의 손가락에 대한 죄책감은 자주 반복되며 다다의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오갈데 없는 쿄텐이 다다의 심부름집에 빌붙으며 본격적인 어색한 동거가 시작된다. 쿄텐은 다다가 원치않은 조수 역할을 하며 주인이 버리려고 맡긴 치와와 ‘하루’를 키우던 소녀를 만나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려다 매춘부 루루와 하야시를 만나게 된다. 강아지를 찾아주고 정원을 정리하고 버스 운행시간을 확인하는 자잘한 일을 하던 다다 심부름집은 소소한 감동과 재미를 주는 이야기인 줄로만 생각했는데, 중간에 갑자기 쿄텐이 하야시를 스토킹 하던 마약 브로커에게 칼을 맞으며 급격히 하드보일드로 전환된다. 일본의 다른 소설과는 다르게 매춘부가 일하는 지역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마약 브로커들이 어린이들을 꼬드겨 운반책으로 이용하는 상당히 부정적이고 어두운 세계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특히나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되지 않은 나이의 호시는 야쿠자를 연상시키며 자신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다다와 쿄텐에게 살해의 위협도 마다하지 않는 스릴러의 여운까지 남겨주었다. 


쳅터가 바뀔 때마다 다다 심부름집이 의뢰받은 내용에 따라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나와서 주인공만 다다와 쿄텐이고 매번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형식인가 했더니, 새롭게 나온 등장인물들이 앞 쳅터의 인물과 마치 아주 긴 실로 연결된 것처럼 얽혀 있어 어떤 결말이 이어질 것인지 뒤로 갈수록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또한 아주 시크하면서도 때로는 지혜롭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쿄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던 터에 쿄텐의 전처와 딸이 등장하며, 이 소설이 나올 2006년도 당시 우리나라에는 생소하기까지 했을 동성간의 결혼 생활을 위해 계약관계를 맺고 쿄텐의 정자로 인공수정을 한 사실에는 조금 놀랍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최근에야 소설 주제로 언급되는 소재를 이렇게 주인공의 과거 이력으로 설정했다는 것은 사회 변화가 우리보다 빨랐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쿄텐 만큼이나 미스테리하나 인물인 다다는 쿄텐과의 동거생활로 어느덧 자신의 상처를 토로하게 된다. 어떤 의뢰인 부부의 창고를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일을 하다가 나오는 길에 자신을 미행한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되고, 그에게 창고를 정리해달라는 부부가 생물학적인 부모일 것이라고 자신을 키워준 부모는 병원에서 아기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다다는 그 남자의 고백으로 인해 자신이 아내와 이혼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게 된다. 아이를 가질 무렵 아내가 바람을 핀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아내를 용서하기로 마음 먹고 태어날 아기도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내가 친자확인을 하자는 말을 듣고 다다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고 태어난 아기는 얼마되지 않아 죽게 된다. 이 고백을 한 후 다다는 쿄텐에게 심부름집에서 나가줄 것을 부탁하고 쿄텐은 다다를 떠나게 된다. 이후 일상생활을 시작한 다다는 생각보다 큰 쿄텐의 빈자리를 느끼게 되고 자신과 쿄텐을 아는 세 명의 사람에게 전화를 하며 쿄텐을 찾게 된다. 


“<알고 난 뒤에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지.> 그 순간 쿄텐의 표정은 숲속의 은둔자처럼 감정에서도, 욕망에서도 해방된 듯 보였다. <마음 내키는 데까지, 끝까지 나아갈 수밖에 없겠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불행해질지도 모르는데?>

<불행하지만 만족할 순 있지. 후회하면서 행복할 순 없어. 어디서 멈출지는 기타무라 씨가 스스로 결정할 일 아냐?>(278)”


“어때? 아물었지? 새끼손가락이 다른 손가락보다 조금 차갑긴 하지만, 문질러주면 온기가 돌아. 원래대로 돌려놓을 순 없어도 회복할 순 있다는 말이야.(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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