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숲의 아이들
손보미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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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작가의 [사라진 숲의 아이들]을 읽었다. 오랜만에 읽은 탐정, 형사 추리물과 같은 소설이었다. 하지만 과도한 난폭함, 긴장감, 잔인함 등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등장 인물들의 심리 묘사와 일반적이지 않은 기괴한 패턴을 가진 행동들이 가진 의미를 묘사한 부분들이 극의 긴장감을 가속시켰다. 또한 베트남 전쟁 때에 월남으로 파병갔던 군인들만이 아니라 파월노동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노동자와 군인으로 목숨을 건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와서도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자 당시 그들을 월남으로 보냈던 회사에 불을 지르고 저항하다 주동자들이 구속된 일이 있었다는 사실 또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분명 뉴스와 신문 기사에 오르내리며 주목을 받았겠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얼마든지 언론은 조작될 수 있었고 상당수의 시민들은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결국은 그렇게 억울함을 폭력으로 표현한 이들은 불운한 삶을 보내게 되었고 소설 속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그들 중 보상을 받은 이들은 아무도 없으며, 불을 지른 이들을 감옥에 보낸 회사는 그 주변의 땅을 야금야금 사들이고 그곳에서 살던 이들을 내쫓아 서울의 랜드마크라는 건물까지 올리게 되었다. 소설 속의 표현처럼 그렇게 올린 건물에서 문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벌이며 즐기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의 역사적 사건을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아서 그런지 읽는 내내 어디선가 그런 억울함을 안고 한 평생 남을 원망하거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가족들에게 화풀이와 폭력을 행사하며 스러져간 이들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떠올려본다. 소설의 주인공 채유형과 진경언 형사와의 만남은 마치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길을 선택한 이들에게 그러한 선택 말고도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사랑은 자기들을 망가뜨린 이들이 결코 빼앗을 수 없는 사랑일 거라고도 말해주는 것 같다. 사회부적응자인 채유형은 지방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붙지 못했으며그 이후에 들어간 어느 회사에서도 오래 붙어 있지 못했다. 마지막은 항상 해서는 안될 말까지 내뱉으며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외톨이처럼 지내왔다. 하지만 유형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회적으로도 유명한 성공한 이들이었고 이들은 유형을 채근하지도 몰아세우지도 않았다. 하지만 유형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에게 그렇게 거리감을 갖고 대하는 이유가 자신이 입양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6살 때 입양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고등학생 무렵 3년 동안 이어진 의문의 우편물은 유형의 친부가 파월 군이이었고 그가 어느 건물에 불을 질러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이었다. 


어쩌면 유형이 자신을 학대하며 벌을 주기 시작한 것은 이렇게 간과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자의 피가 흐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유형에게 어느날 학교 후배라는 윤종에게 연락이 오고 외주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의 피디로 입사하게 된다. 그곳에서 유형은 범죄의 재구성이라는 자극적인 내용의 만드는 팀에 들어가게 되고 최피디를 만나게 된다. 회사의 젊은 사장이 부임하면서 최피디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종용당하고 유형은 최피디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윤종과 함께 살인죄로 재판을 앞둔 10대 학생 심효전을 만나게 된다. 소설의 제목인 [사라진 숲의 아이들]에서 엿볼 수 있듯이 심효전은 동갑인 여학생과 그 여학생이 만난 2살 위의 남자를 죽이게 된다. 여기까지는 막나가는 10대의 극단적인 행동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형이 새로운 사건을 찾다가 부루퉁한 얼굴의 진형사를 만나면서 심효전의 사건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다가오게 된다. 


진형사는 바쁘고 정신없는 동료 형사들과는 다르게 평온하게 책상에 앉아 새로운 빵집과 맛있는 빵의 레시피를 끄적거리며 유형을 차갑게 대한다. 유형은 진형사에게 뭐라고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진형사에게 빵과 커피를 사다주게 되고, 진형사는 그때부터 유형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진형사가 경찰서에서 그렇게 무인도에 있는 사람처럼 지내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서서히 실마리가 드러나게 된다. 채유형과 진형사 그리고 최피디와 윤종 등 등장인물들이 서로 연락하고 통화하거나 또는 연락을 외면하는 수단으로 휴대폰이 자주 등장한다. 마치 현대 사회는 언제 어디서든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막상 상대방이 자취를 감취려고 잠적하게 되면 경찰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상대방과 연결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언제 끝날지 모를 막연함을 가진채 인내심을 갖고 내 연락을 받길 바라며 지속적으로 연결시도를 해야만 한다. 채유형과 진형사가 서로 모진 말을 내뱉으며 상처를 주고 서로의 연락을 기다리는 사이 사건의 실마리가 풀려나가고 서로가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결국 유형에게는 진형사가, 진형사에게는 유형이 구원자가 되어준다. 이는 유형이 처음으로 연락하지 않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본가를 찾아간 것과 진형사가 자살한 후배 형사가 선물로 준 변압기가 필요한 커피 머신을 치워버리는 일로 상처가 극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빌딩숲이 가득한 서울 한복판에 아무도 살거나 일하지 않는 멀쩡한 빌딩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곳이 꽃이 피는 숲으로 모든 것을 다 갖고 누리고 있으면서도 불만한 가득한 아이들과 그 정반대로 아무것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어 항상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순간적인 일탈을 벌이는 장소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우리사회의 각박함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마치 그 두 부류의 아이들이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일탈의 행동을 할 때에는 가까워진듯 해도 결국은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고 말 것이라는 소설속 아이들의 외침은 단지 소설 속의 가정된 이야기만이 아니라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이제는 전설 속의 말로 사라졌다는 슬픈 자화상을 확인시켜주는 것만 같다. 어디선가 이 세상은 쓰레기이고 자신들도 쓰레기 같다는 생각을 만드는 것들이 사라지고 진짜로 자기들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어른이 나타나기를 바라본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을 지나가는 그 가냘픈 통증의 정체가 수치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끄러움, 무자비하게 자신을 덮치는 참혹한 부끄러움.(119)"


"넌 어때?

이 세 글자를 볼 때마다, 아니, 이 세 글자를 보고 있지 않을 때에도 그녀는 그 의미를 생각해보곤 했다. 그리고 그 의미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바뀌곤 했다. 끔찍한 일을 저지른 남자의 딸로서 살아가는 게 넌 어때? 부모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삶을 사는 게 넌 어때? 다른 사람들과 평범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게 넌 어때?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는 게 넌 어때? 거칠게 바닥에 펼쳐져 있는 기사와 사진들을 다시 가방에 넣은 후 옷장 안 깊숙이 숨겨두었다.(193)"


"비교 우위를 점하는 것. 객관적 관찰자가 되어서 사태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건 기만적인 태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때로는 사태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를 통해, 기만적이고 오만한 태도를 통해서만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삶이 존재했다. 그런 식으로만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게 되는 삶이 존재했다.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진실이 있다.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 여기에, 바로 여기에.(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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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1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쓰기그림그리기 2022-08-1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었는데 이렇게 같은 책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