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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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 작가의 [튜브]를 읽었다. 어릴때 물놀이를 갔다가 죽을 뻔한 기억이 있다. 그것도 실외 수영장에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구조의 수영장이었는데, 아마도 좁은 공간에 애, 어른을 한 번에 수용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초등학생의 어린 나이에 어울리는 높이였던 수영장이 몇 발자국 내밀자 갑자기 몸 전체가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당황해서 물을 연거푸 마시고 팔을 휘적거리다 누군가의 머리를 누르고 간신히 물 위로 머리를 내밀려는 찰나 다시 몸이 가라앉아 순간적으로 이렇게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하는구나라는 찰나의 생각이 스치는 순간, 누군가 내 몸을 들어올렸고 살아났다는 기쁨도 잠시 먹을 물을 토해내느라 컥컥대며 더는 수영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이 멍하니 앉아 있던 일이 있었다. 사실 어릴 때 이렇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을 겪으면 상당수가 트라우마가 생겨 물을 가까지 하려 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다시 물놀이를 즐기게 되었고, 바다에서도 수영장에서도 수영을 잘해보려 더 애쓰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끈기의 부족으로 수영강습을 받다가 그만둬 마스터하지 못한 것은 불쑥 불쑥 솟아나는 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핑계를 만들어낸다. 


수영이야 뭐 안하면 그만이지만, 우리 삶에는 수영처럼 하다가 만 일들이 꽤나 많다. 워낙에 뭘 배우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사교육에 대한 알러지 때문인지 새로운 것을 꾸준히 배워서 일정한 수준에 오른 적이 없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를 꾸준히 성실하게 잘 해낸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누군가가 농담삼아 한 말이 내 실제의 본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은 바로 ‘끈기만 더 있었어도 대학로에 갔을텐데’라는 사실 가능성에 제로에 가까운 농담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주 얼토당토 없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일이 시작된건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지만, 지금의 나도 가끔 믿기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내가 연극의 주인공을 했다는 것이다. 한 반에 50명이나 되는 아이들 중에서 평소에는 별로 까불지도 튀지도 않았던 내가 ‘스크루지 영감’을 맡아 꽤 길었던 대사를 어렵지 않게 외우고 나중에는 선생님의 권유로 앵콜공연까지하는 기염을 토하는 연기를 했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연기 비슷한 것을 해 본적이 없다. 그래서 나의 평소 언행을 보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끈기만 있었어도 대학로에 갔을텐데’라는 말은 어쩌면 내 마음이 원하는 소리에 진작 귀를 기울였다면 실제로 이뤄졌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찌되었든 우리에게는 다양한 재능과 관심이 있고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것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일은 스스로의 선택과 기나긴 노력이 이어진 시간으로 판가름된다. 소설의 주인공 김성곤 안드레아는 그냥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패한 가장이다. 아내 란희와 결혼해 아영을 낳을때까지만 해도 그의 삶은 순탄했다. 하지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연이어 사업에 실패하자 김성곤의 영혼은 점점 피폐해져갔고 차마 해서는 안되는 말을 아내에게 내뱉으며 루저가 되어갔다. 사업 실패와 아내와의 갈등, 늘어난 빚을 안고 별거 생활을 시작한 김성곤은 한강 다리 위에서 자살 시도를 하다가 낮과는 다르게 차가운 기운에 그만 삶을 놓아버릴 용기마저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된다. 그리고 그가 2년 전에 시도했던 자살 시도의 순간으로 돌아가 무용한 2년의 시간을 보낸 과정이 펼쳐진다. 그가 우연한 계기로 허리를 곧추세우며 자세를 바꾸는 시도를 통해 지푸라기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고 행운처럼 다가온 교통사고는 거대한 상업자본과 손을 잡고 비상하게 된다. 하지만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행운의 요소들은 다 소진되어버리고 다시금 불행의 기운이 스멀스멀 김성곤을 원래의 있던 자리로 돌이켜놓는다. 결국 김성곤은 절대 변하지 않은 루저에 불과한 것인지 자포자기 할 무렵 김성곤의 지푸라기 프로젝트는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낸다. 


진짜로 인생에서 성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완전히 알지 못한다. 성곤의 어릴적 성당 친구 규팔의 모든 것이 다 변한 것 같은데도 뭔지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끼게 만든 것은 여전하다는 내용에서, 모든 것은 결국 사고 파는 과정이라는 성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규팔의 생각으로 인해 김성곤은 사회적 성공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닐까. 피자가게 사장과 직원의 관계에서 오피스텔을 공유하는 전사장과 초보 유투버인 성곤과 진석의 재회는 지푸라기에 잔뜩 부풀어 올라 튜브처럼 물 위로 자신들을 떠오르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황당한 희망조차도 진심을 다해 응원하게 만든다. 이들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장면은 우리는 모두 응원받을 자격이,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오늘 본 란희의 얼굴엔 아무런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커다란 체에 좋은 것들, 그러니까 즐거움, 애정, 행복 같은 걸 탁탁 거르고 다시 한번 분노와 슬픔을 툭툭 걸러낸다. 마지막으로 온갖 앙금과 미련과 애증이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모든 감정을 시간의 태양 아래에 말린다. 그러고 나서 남은 흔적 같은 게 아까 자신을 바라본 란희의 얼굴에서 본 표정이었다. 그 체의 역할을, 란희에게서 그 모든 것을 앗아간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김성곤 안드레아 자신이었다.(133)”


“세상에 던져졌으니 당연하지요.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는데 좁은 배 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가 갑자기 발가벗겨진 채로 세상에 던져졌잖아요. 인간은 탄생부터가 외롭고 불안한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슨 수로 알겠어요.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일단 쥐어보는 거지요. 쥐었던 게 운 좋게 잘 풀리기도 하고, 이건 아닌데 싶지만 쥐었던 걸 놓을 용기는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꼭 쥐고 있기도 하죠. 그러다가 누군가가 그걸 빼앗아 가면 다시 세상에 던져진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불안해하는 겁니다. 손에 잡히는 것도, 의지할 데도 없이 발가벗겨진 채로 버둥거리고 있으니까. 다들 그러고 삽니다.(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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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책장 2022-09-1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제코루 2022-09-12 13:48   좋아요 0 | URL
축하 인사를 받고 뿜뿜해지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