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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 다양한 선택을 존중하며 더불어 혼자 사는 비혼의 세상
곽민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2월
평점 :
곽민지 작가의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를 읽었다. 부제는 “다양한 선택을 존중하며 더불어 혼자 사는 비혼의 세상”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미혼이라는 말은 있어도 비혼이라는 말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있어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들은 적이 없었을 수도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 적령기에 다다르면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고, 노처녀 노총각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부모님께 불효를 범하고 싶지 않아서 가정을 꾸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면밀히 들여다보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과거에도 독신주의라는 이름으로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던 것 같다. 결혼을 당연시 여겼던 시대의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족 중 누군가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의 삶을 사는 것을 흠이라 여기며 그들의 친족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를 힘들어 했기에 다른 이들 앞에서 얘기하기를 꺼려했기에 잘 몰랐던 것은 아닐까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기억이 하나 있는데, 몇 년 전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아는 동생을 만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는 동생은 앞으로도 아이를 갖지 않을 계획이라는 그야말로 말로만 들었던 딩크족을 직접 마주하니,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맹이 몰아쳤는지 그 동생의 생각을 바꾸고 말겠다는 의지가 용솟음쳤다. 그 당시에 사랑에 대한 여러가지 관점의 분석을 준비하고 강의하러 다니다보니 완전 무결한 사랑의 정점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강의하는 주된 내용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철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을 바탕으로 하기에 사랑의 정점에는 당연히 자녀 출산이 귀결되어야 한다고 얼굴을 붉혀가며 강조했다. 1시간 넘게 지속된 내 열변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그 아는 동생은 그저 묵묵히 내 얘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동일한 내용을 강의할 때마다 그 아는 동생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대체 왜 그렇게 나의 생각을 강요했던 것일까 란 고민에 빠졌다. 결국 정말로 내가 원했던 것은 그 아는 동생이 결혼 생활을 잘 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녀 출산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너보다 훨씬 논리적이고 옳은 생각을 갖고 있음을 잘난척 하고 싶었던 것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내가 강의하는 내용의 주된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을 제시하고 난 후 꼭 이렇게 덧붙인다. 누군가와 결혼을 생각할 정도의 나이가 된 사람들은 누구나 구태여 가족이나 지인들이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아도 무엇이 자신에게 옳은 길인지, 아닌지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믿고 지켜나갈 수 있도록 내적인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와 삶의 형태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개성과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혼자 튀는 행동을 하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이 밸이 꼬일 때가 있다. 그래서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고, 딩크족이라는 이름으로 지들끼리만 즐기며 사는 것이 꼴베기 싫어지고, 사랑에 있어서는 더 이상 성별을 논하지 말자고 말하는 이들은 이 사회를 혼란시킬 불순분자로까지 바라본다. 유럽에서 공부할 때 놀란 사실 중에 하나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정식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로 사는 커플들의 자녀들에게 정식 결혼을 한 이들의 자녀들과 동일한 법적 권한을 준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에게도 그러한 변화와 적용이 생기기까지 오랜 시간의 사회적 합의를 위한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처음에는 그런 상황을 보고 망조가 든 것인가 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가 어쩌면 그들이 우리보다 결혼을 더욱 신중하게 생각하기에 그러한 현상들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책을 읽으며 비혼에 대한 세태의 흐름을 알고자 했는데, 사실 우리에게 비혼에 대한 호감이나 비호감의 선호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타인에 대한 나의 시선이 어떠했느냐 가 아닐까 싶다. 바로 내가 아는 동생에게 우를 범했던 것처럼 내가 생각해온 관념들을 타인에게 강요하며 내가 너보다 나은 존재임을 과시하고 싶은 옹졸한 욕구를 돌아보게 해 주었다. 나와 참 다른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나를 해치는 사람이 아니며, 어쩌면 오히려 나의 단순한 삶의 스펙트럼을 넓혀줄 조력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쿨하게 서로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서로에게 무례하지 않는 길은 우리가 얼마나 다채로운지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조심하는 길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 기준에서의 보통은 나에게만 국한된 고유한 세계라는 것, 내 기준에서의 정상은 내가 규정한 정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글로 쓰는 일, 결국 자신의 세계를 말하는 일은 우리가 서로에게 실수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기회를 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26)”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인과의 관계를 포함해,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스쳐 지나가버릴 수도 있는 타인이 서로에게서 나와 같은, 혹은 상대에게서 전이받고 싶은 타일 조각을 발견하고 멈춰 서서 마주 보는 게 아닐까 하는, 우리는 같지 않고, 하지만 서로를 겁줄 만큼 다르기만 하지 않고, 내가 어떻게 관여해볼 수 있는 멋짐을 가진 둘 혹은 둘 이상의 사람들이어서 서로에게 뭔가를 남길 준비를 하고 여기 함께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