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쇄 위픽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구병모 작가의 [파쇄]를 읽었다. 위즈덤하우스 위픽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다. 표지에는 “일단 마음 먹고 칼을 집었으면 뜸들이지마”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어쩌면 구병모 작가를 알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는 [파과]를 읽고 나서 이렇게 다양한 어휘를 적재적소에 구사할 수 있다니 놀람을 금치 못했는데, 내용 또한 기존의 킬러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부셔버리는 신선함이 돋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몇 년이 지나 [파과]의 프리퀼이라고 할 수 있는 [파쇄]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게 벌써 1년이 지나버렸다니. 그리하여 위픽 시리즈는 벌써 50권째에 이르고, 한 손에 가볍게 들리는 무게와 분량으로 잠깐 이동하는 도중에 몰입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닌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 아닌가 싶다. 


[파과]의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조각이라는 이름의 노년에 이른 여성이 오랜 시간 킬러로 활동해 왔다는 내용이 파격적으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조각이 어떻게 프로페셔널한 킬러가 되었는지 [파쇄]를 통해 극적인 한 장면을 엿볼 수 있었다. 영화든 드라마든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킬로로 다룬 경우는 꽤나 많다. 여리여리한 몸으로 장정 몇 명을 순식간에 때려눕히는 장면들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코웃음이 쳐지기도 하지만 미적 관조의 충족감과 더불어 항상 남성보다 한계를 지닌 육체적 존재를 넘어서는 장면들이 진부하고 반복된 캐릭터임에도 비슷한 호응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늙고 지친 킬러를 다룬 영화들은 많지 않다. 젊은 킬러가 있다면 당연히 그들도 나이가 들어갈 텐데 말이다. 


이번 작품에서 조각은 산장 어딘가에서 탄탄한 끈에 묵힌 채 정신을 차리게 된다. 처음엔 조각을 훈련시키던 실장과 더불어 적의 공격을 받고 납치되었거나 고문을 받는 중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조각은 의식을 회복해가며 두 손을 묶은 끈을 풀기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비탈진 흙바닥에서 서서히 미끌어질 수 있다는 위협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실장과 산장에 올라와 받던 훈련의 시작이 그려진다. 아마도 영화나 드라마의 실사로 촬영되었다면 보는 이로 하여금 좀 더 실감나고 긴장감있게 그려졌을지 모르겠지만, 소설 속에 나온 조각의 훈련을 그대로 재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실장은 조각을 거칠게 다룬다. 산장에서 실장이 조각의 반응을 테스트 하기 위해 갑자기 칼을 휘두르며 공격을 가했을 때, 조각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면 그녀의 눈은 이미 예리한 칼에 도려내어졌을지도 모른다는 부분은 능숙한 킬러가 되기 이전의 풋내기 같은 조각의 긴장되고 흥분된 모습을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실장의 훈련 강도는 점점 높아지고 두 나무 사이에 줄을 걸어 놓고 조각이 매달려 턱걸이를 하도록 하는 장면은 독자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에 땀이 흥건해지며 기력이 다한 채 한 손으로 매달려 밑으로 떨어질 경우 다리 하나 정도는 가볍게 부러질 것이라는 조각의 시선에 긴장감을 최고조시켰다. 조각이 매달린 줄을 칼을 던져 한 가닥씩 끊을 정도의 무공은 어떻게 쌓을 수 있는 것일까? 조각을 훈련시키고 언젠가는 같은 팀이 되어 실행하게 될 지령과 임무는 또 다른 적대자의 그룹이 있음을 상기시키고 어찌보면 세상 무용한 일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게 된 조각과  실장과 같은 인물들은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었는지의 사연이 궁금해지기만 한다. 


#구병모 #파쇄 #위즈덤하우스 #위픽1 #wefic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