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이
로미 하우스만 지음, 송경은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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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 하우스만의 [사랑하는 아이]를 읽었다. 독일 작가의 책은 실로 오랜만에 접해보는 것 같다. 기차를 타기 전 급하게 들른 서점에서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을 고르다가 예전에 잠깐 살펴보았던 이 책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더 이상 다른 책을 살펴볼 여유가 없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처음 보는 작가의 이름이었고, 표지에 쓰인 베스트셀러 1위라는 광고 문구는 오히려 읽고 난 후에 더 큰 실망감을 자아내기에 큰 기대를 갖지 않고 읽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몰입하게 되었다.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했듯이 추리소설의 단골 소재 중의 하나는 납치범이 인질을 데리고 있다가 도망친 생존자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도 23살의 젊은 여성이 갑자기 실종되어 누군가에게 납치되었다는 배경이 깔려 있다. 레나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이 실종된지 십수년이 흘렀지만 그녀의 아버지 마티아스는 딸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소설이라는 가정이기에 이런한 긴장 상태가 극의 재미를 더하기는 하지만 막상 이러한 일을 실제로 겪은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감히 헤아려본다. 요즘도 가끔 지하철과 기차역에 모퉁이에 붙어 있는 실종자들의 사진을 볼 때가 있다. 어떤 곳에서는 식당 탁자 위에 놓인 안내지를 통해서도 잃어버린 이들의 얼굴과 인적사항을 살펴보기도 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훑어보지 않을 것이고 실종된지 오래된 경우에는 분명 얼굴도 많이 달라졌을 테니 이렇게 찾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부터 생길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리는 이들의 경우에는 티끌만한 단서라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고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행여나 제보가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루 하루를 보낼 것이다. 이렇게 실종자를 애태게 찾는 마음이 소설 속에서도 레나의 아버지 마티아스와 어머니 카린의 대화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마티아스는 자신의 경찰 친구 게르트가 밤 중에 전화를 걸어 레나와 비슷한 인상착의의 교통사고 환자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의 지체도 없이 곧장 병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절망에 빠진 마티아스는 레나와 닮은 소녀 한나를 발견하게 되고 한나가 자신의 손녀임을 단숨에 알아챈다. 

대부분의 실종자 가족들이 그렇듯이 마티아스와 카린은 레나의 시신조차 찾지 못했기에 딸과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장기간 딸을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면 대부분의 가족들은 일상은 무너져 버릴 수 밖에 없고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레나와 비슷한 인상착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야스민 그라스는 납치범에 잡혀 가 오두막에 감금되어 한나와 요나스의 엄마 역할을 강요당하게 된다. 야스민은 자신이 레나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납치범은 폭력과 구타로 야스민을 공포로 몰아넣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 오두막에서의 규칙을 준수할 것을 명령한다. 야스민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납치범을 스노볼로 때려 도망치다 달려오는 차에 치었기 때문인데, 어째서 한나가 같이 구급차에 타고 병원까지 온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된다. 

딸 레나 대신 손녀 한나를 만나게 된 마티아스는 이성을 잃고 딸을 찾기 위한 무모한 짓을 하게 된다. 무능한 경찰을 욕하며 진절머리나는 기자들을 상대로 단서를 흘리게 되고, 야스민이 레나에 대한 내용을 알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야스민에게 공포심을 자아낼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은 절정에 이르러 야스민이 경찰을 만나 납치범으로 추정되는 이의 몽타주를 보고 그는 납치범이 아니라 자신을 차로 치고 구급차를 부르려던 남자였음을 기억하게 된다. 그렇다면 납치범은 살아있다는 말인가? 납치범은 의외로 마티아스가 계속해서 접촉해왔던 인물이었고 그는 야스민을 다시 납치해 오두막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다 마티아스와 야스민의 친구 키르스텐까지 죽여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때서야 레나와의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고 마티아스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당신은 우리가 오두막에 갇혀 당신의 절대적인 통제를 받으며 살아간다고 믿겠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파리에도 가고, 바다에도 가고, 세상 어디든 못 가는 곳이 없다. 당신은 출입문과 창문을 잠가놓으면 우리가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그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 
그게 바로 우리가 가진 힘이다. 
나는 털실로 만든 고양이를 살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사방이 가로막힌 공간에서도 태양이 환하게 비쳐들게 할 수 있다. 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따올 수도 있다. 내 아이들이 언제나 내 눈을 통해, 내 설명을 통해 접한 것들을 실제로 대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되리란 걸 알고 있다. 언젠가는 내 아이들이 오두막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리라는 것도. 
바로 그것이 희망이다. 내 희망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내가 가진 힘이다. 
당신은 우리를 가둘 수 없다. 소유할 수 없다. 
이 오두막은 당신의 감옥이다. 결코 우리의 감옥이 아니다.(44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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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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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 작가의 [대불호텔의 유령]을 읽었다. 인천에서 태어나고 지금까지 살았음에도, 또 개항기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차이나타운 지역을 밥 먹듯이 지나다녔음에도 점점 낙후되어 가는 지역적 현실을 개탄할 뿐 제물포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개화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이 소설을 읽기 얼마 전에 우연히 대불호텔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었다는 정보를 접하고 왜 지금까지 그 호텔을 우연히도 본적이 없을까 의아했는데 이미 철거되어 자리만 남아있기 때문임을 알고 조금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몇년 전 인기리에 방영된 <미스터 션사인> 드라마에서 쿠도히나가 운영하는 서양식 호텔이 극의 중심적인 장소가 되고 그곳에서 코히를 마시며 허세를 부리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기에, 지금까지 대불호텔이 남아 있었다면 드라마에서 재연된 장면들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제목은 [대불호텔의 유령]이지만 요즘 유행하는 좀비나 귀신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환청에 시달리는 모습이 그려지지만, 헛것을 보거나 토템적인 요소가 아닌 인물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내면의 변화를 다른 목소리로 대변하고 있다. 소설의 형식 또한 독특한데, 화자가 이야기를 시작하고 중간에 다른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액자식 구성이 몇 겹으로 연결되어 있는듯해,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이 사람이 주인공인가 싶으면, 또 다시 다른 비중있는 인물이 등장하여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흐름은 갈팡질팡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의 주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화자인 ‘나’는 소설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엄마의 친구 보애 이모의 아들 ‘진’을 통해서 보애 이모의 엄마 박지운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나의 엄마와 보애 이모는 둘도 없는 절친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의례 그렇듯이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연락이 끊기게 되지만 서로를 잊지 않고 지냈던 덕에 다시금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보애 이모의 엄마 박지운은 당시 드물게 청인, 지금은 화교라고 불리는 이와 결혼했지만 남편 뢰이한이 죽고 나서 재혼을 하게 되고 딸에게 무척이나 매정한 엄마로 그려진다. 처음 뢰이한 이라는 청인의 이름이 등장했을 때에는 박지운과 뢰이한의 애틋한 사연이 주된 스토리가 될까 생각했는데, 뢰이한이 일했던 중화루에 머물던 고연주와 지영현이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후의 전개는 고연주와 지영현이 어떻게 대불호텔을 운영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곳에 장기가 머물게 된 미국인 셜리와의 관계에서 극의 고조는 절정에 달한다. 특히나 지영현은 월미도에서 미군의 폭격을 받아 홀로 살아남아 인천으로 건너온 인물로 6.25 전쟁 발발 후 좌익과 우익의 어처구니 없는 대립으로 형제와 이웃이 서로를 죽고 고발하는 악연이 된 역사적 배경을 삼고 있다. 

고연주와 지영현의 비극적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소설가 나는 ‘진’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자신의 소설을 완성시킨다. 진의 할머니 박지운이 치매를 앓으며 그때 그때 이야기를 다르게 전했다면 중화루의 지금까지도 이어온 이청화를 통해서 전혀 다른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셜리, 고연주, 지영현, 뢰이한이라는 인물들이 남긴 흔적들은 폐허가 된 흔적을 떠도는 망령이나 유령이 아니라 나를 안심시키시려는 고단한 시기를 보낸 이들이 전하는 위로의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느닷없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나는 시련이 사람을 강하게 해준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시련은 시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고통 이후 단단해지는 마음이나 냉정한 판단력 같은 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여유가 생겼다는 뜻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을 여유 잇게 만드는 것일까. 사람마다 다르다는 건 알겠다. 물질적인 안정일 수도 있고, 정서적인 휴식일 수도 있고, 새로인 닥쳐온 또다른 고난일 수도 있고, 하지만 누군가에게 여유란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 불가해한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지속되는 원한.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 가라앉지 않는 분노.(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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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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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경 작가의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를 읽었다. 구체적인 장소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카지노가 허가된 강원도 정선이 이야기의 배경이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카지노에서 도박에 중독되어 폐가망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혹 듣기는 했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은 도박중독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중독이라는 말이 붙은 것처럼 한 번 빠지게 되면 자신의 의지로는 절대로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렇게 도박에 빠진 이들이 갖고 있는 차나 시계나 값이 나는 물건들을 맡기는 전당포에서 일하는 십대를 갓 벗어난 인물이다. 기면증을 앓고 있어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전당포에서 의례 기도를 볼 정도의 체격도 갖추지 못했지만 흰 캐딜락을 몰고 와 전당포를 차린 성사장은 진을 꽤나 신뢰한다. 

이야기는 카지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장수꾼들과 그들의 물건을 맡긴 전당포 사람들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곧바로 주인공인 진이 경쟁 전당포의 진규에게 쫓겨 화장실에 숨어들었다가 성사장의 캐딜락에서 깨어나는 장면은 본격적인 판타지 요소가 개입될 것을 암시한다. 카지노 주변의 인물들은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이들은 남들에게 드러내지 못하는 비밀을 안고 있다. 바로 이들 중에 포트를 열어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법한 신비로운 능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과거에 심장 이식을 불법적으로 해상에서 해왔던 사건과 연결되어 흥미를 유발한다. 포트를 열어 공간 이동이 가능한 능력자의 심장을 이식받게 되면 동일한 능력을 갖게 된다는 설정으로 한 회장은 주인공 진의 심장을 원하게 된다. 아직 자신의 능력을 각성하지 못한 진은 자신이 기면증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급박한 순간에 포트를 열어 위기를 모면했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자신을 보살핀 아줌마가 사실은 엄마였다는 조금은 진부한 설정과 더불어 그 엄마가 진의 심장을 원하는 한 회장의 수하였다는 것은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리지만 진과 성사장의 특별한 인연은 결론을 궁금하게 만든다. 

다른 포트를 여는 이들과는 다르게 진에게는 공간 이동과 더불어 시간까지도 이동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이는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을 오마주 한 것처럼 진이 포트를 열어 공간 이동을 하려는 찰라 그에게는 여러 가지 장소가 쳅터처럼 선택할 수 있어 시간 이동까지도 가능한 것이다. 진에게만 있는 능력을 시기하는 포트를 여는 다른 이들은 진에게 큰 위협이 되지만 진의 엄마와 성사장의 도움으로 진은 위기를 벗어나게 되고, 그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던 심 경장에게 8년 전으로 돌아가 딸을 살릴 수 있는 거래를 한다. 결국 생명을 잃을 수 있는 8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포트를 열은 진은 심 경장을 과거의 시간으로 돌려보내고 그 이후의 미래는 조금씩 달라졌음을 깨닫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성사장이 한계령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그려지는데, 과거로 돌아간 심 경장의 죽음과 그의 딸이 살아나는 변화로 인해 성사장 또한 진과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판타지 소설에서나 가능한 텔레포트의 능력은 SF 영화를 보는 듯 흥미로웠지만 그럼에도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개별적인 특성은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사건과의 연관성이 희미해보여 맥이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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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래 -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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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건축가의 [공간의 미래]를 읽었다. 부제는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이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자 공항에 가본지 참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공항에 가서 출국 수속을 밟고 보안 검사까지 끝나고 나면 단출한 몸가짐으로 면세점을 이곳 저곳 훑어본다. ‘아 이제 여행의 시작이구나.’ 낯선 곳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설렘을 안고 장시간의 비행도 기꺼이 무릅쓰고 이코노미석에서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기내식도 먹으며 슬쩍슬쩍 모니터에 표시된 경로를 살펴본다. 시차와 장시간의 비행으로 초췌해진 몰골로 커다란 캐리어까지 끌고 나와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게이트를 나서면 가장 먼저 낯선 곳의 공기와 바람이 나를 맞이한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바람냄새가 긴장감을 고조시키지만 그 불안정이 주는 묘한 매력에 끌려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런 일상을 빼앗기다 못해 생존의 위협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해외여행을 못가는 아쉬움을 토로할 때가 아니라는, 그런 배부른 투정을 부릴 때가 아니라는 묵직한 현실감이 일상의 터전을 지키는 것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코로나19로 변화된 일상이 단순히 우리에게 주어진 반성의 시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의 궁극적 원인이 전세계적으로 절제하지 못하고 방만하게 자연을 훼손한 결과라는 말에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테지만, 그렇다고 엎질러진 물을 앞에 두고 망연자실하게 있을 수 만은 없는 것이다. 앞으로의 세계가 변화할 수 밖에 없다면 기꺼이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아니 오히려 변화의 선두로 앞장서 우리만의 고유한 색깔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될 수도 있다고 저자는 권고한다. 

내가 사는 지역만 해도 끊임없이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출근을 하며 매일 매일 조금씩 층수가 올라가는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를 보면서, ‘저렇게 자기복제처럼 아무 개성없는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도 분명 다 짓고 나면 엄청난 분양가가 매겨지고 웬만한 사람은 엄두도 못낼 정도로 비싼 가격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푸념처럼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파트가 많은데, 그 많은 아파트 중에 내 집이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되냐’라는 말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작년에 생전처음 고층 오피스텔에서 지내보았다. 오피스텔 안에 여러가지 편의시설이 있어서 생활하기에 편리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막상 지내보니 엘리베이터 하나 타는 것부터가 스트레스였다. 특히나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분리수거를 위해서 1층 수거함으로 왔다갔다 해야만 하는 수고는 꽤나 큰 일거리였다. 가뜩이나 방이 좁은데, 코로나19로 이것저것 주문배달 받은 것이 많다보니 박스는 쌓여가고, 뉴스에서 그 박스에 행여나 바퀴벌레 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하루라도 저것들을 내 방 안에 놔두고 싶지 않는 오피스텔에 살기전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온갖 잡다한 잡일들이 늘어나니 최신식 오피스텔에 사는 것도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극심했던 작년 봄에 이탈리아에서는 지역간의 봉쇄와 거주지에서도 쉽지 외출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자 그들은 아파트 발코니로 나와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집안에만 있기에는 당연히 답답하고 불안했을테지만 그렇게 발코니에 나와서 서로가 안정된 거리를 유지하고 음악을 공유하며 심적 안정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이탈리아에 살 때는 그렇게 그 나라 사람들을 욕하고 하루 빨리 내 나라 한국으로 돌아가 편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었는데, 그렇게 많은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발코니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그들을 보니 갑자기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공간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왜 그렇게 발코니 넓은 공간을 원하는지, 요즘 핫플레이스인 카페나 식당들이 루프탑에 있는 경우가 많은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공간의 변화는 우리의 생각과 습관을 변화시키고 결국은 우리의 문화를 변화시킨다. 우리가 아주 오랜 시간 길들어진 것들은 단지 말과 글로는 바뀔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말과 글이 실제로 적용될 수 있는 공간의 변화가 말과 글을 만들어낸 사람을 변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나라 계층 간 갈등의 일정 부분은 잘못 디자인된 공간 구조 때문이다. 현관 문을 열고 나오면 만나는 모든 공간이인도나 차도 같은 이동하는 공간이다.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공원도 없고 길거리에 벤치도 거의 없다. 앉으려면 커피숍에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서울은 전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커피숍 숫자가 제일 많은 도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긴다. 돈이 많은 사람은 5,000원을 내고 스타벅스에 들어가고 적은 사람은 1,500원을 내고 빽다방에 간다. 이 도시에는 돈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이 한 공간에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같은 도시에 20년을 살아도 공통의 추억을 가질 가능성이 적다.(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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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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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조와 박쥐]를 읽었다. 저자의 35주년 기념작에 걸맞게 대작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탄탄한 스토리가 연이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어찌보면 단지 살인 사건의 하나로 분류될 수 있는 이야기를 등장인물들의 빈틈없는 연계성을 통해 인간의 죄와 벌이 이분법적으로만 해결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철학적인 결론에 이르게 만든다. 꽤나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가까운 나라지만 일본 이름이라 입에 잘 붙지 않지만 특별히 외우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각각의 인물들이 눈앞에 그려질 정도로 촘촘히 묘사되어 있었다. 


이야기의 장르가 사회추리소설이다보니 서정적이고 심오한 내용보다는 정황 묘사와 사건의 진행 등을 추론할 수 있는 단서들이 많다보니 분량이 꽤 많지만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미니 시리즈 드라마 한 편을 본 것처럼 그 다음이 다음이 궁금해서 빨리 페이지를 넘길 수 밖에 없었다. 이 소설은 "살해당할 이유가 없을 듯한 양심적인 변호사의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고다이 형사, 살인을 자백한 구라키의 아들 가즈마, 살해당한 시라이시 변호사의 딸 미레이, 세 사람의 시점을 따라가며 경찰 수사본부의 형사들, 검사, 변호인, 피해자 참여제도 후원 변호사와의 이야기가 잘 짜인 허구의 세계로 조곤조곤 흥미롭게 펼쳐진다.(564)"


시라이시 변호사가 살해당한 후 펼쳐지는 수사의 전개는 고다야 형사와 그의 동료 나카마치 형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해변의 산책로에서 살해당한 후 거리가 떨어진 길가의 차량 뒷좌석에 방치된 시라이시 변호사는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의로운 삶을 살아왔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범인의 행방은 미궁으로 빠져드는듯 했으나 시라이시 변호사 사무실에 통화한 구라키라는 사람의 심문을 통해서 그의 의문스러운 행적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된 수사에서 구라키는 조금은 어이없게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실토한다. 아니 이렇게 빨리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것인가? 또 다른 사건이 단편식으로 이어지는 형식인가? 의아함이 들었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구라키의 아들 가즈마와 시라이시의 딸 미레이가 평소와는 다른 아버지의 행적에 의심을 품고 경찰과 검찰, 변호인마저 마무리지으려는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로 인해 35년 전의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마치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이 하나의 진실이 드러나며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던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이 밝혀져 대체 이 사건은 어디까지 연결된 것일까라 놀라움이 생겨난다. 각 나라마다 사법 절차가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일본과 우리나라의 확연하게 다른 범죄과 신상 공개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보통 우리나라는 아주 극악무도한 범인 아니고는 뉴스 보도에서도 얼굴과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아직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범죄자의 신상을 모두 공개해 버리는 편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소설에서 나온 것처럼 가즈마와 미레이가 살인자의 아들과 딸이라는 이유로 온갖 비난을 받게 되고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게 된다. 물론 우리나라도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슷한 처지에 놓이곤 한다. 특히나 인터넷의 발달로 익명성에 숨어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일임에도 그들을 쉽게 단죄하려고 한다. 


이 소설의 제목이 [백조와 박쥐]인 것처럼 처음에는 구라키가 공소시효 때까지 살인한 것을 숨기고 그러한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시라이시 변호사를 살해한 것으로 인해 그의 아들 가즈마가 나락까지 떨어진다. 그런데 사실은 시라이시 변호사의 35전 살해사건의 진범이며 구라키는 다른 이유로 그 모든 것을 짊어지려 했던 것이다. 미레이는 한 순간에 피해자의 딸에서 파렴치한 살인범의 딸로 전락한다. 종이 한 장의 차이처럼 미레이와 가즈마가 진실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백조와 박쥐처럼 살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백조와 박쥐가 완전 뒤바뀌는 반전을 맞이하고도 미레이는 후회하지 않는다. 진실을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는 것으로 자신이 감당해야할 현실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누군가의 잘못을 너무나도 쉽게 단정지으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알 고보면 누군가의 죄는 단순히 그로부터 기인했다기보다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촘촘히 연결된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n분의 1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해 준다. 


"그분이야말로 가해자 가족이라는 걸로 큰 고통을 겪었어요. 아마 지금은 이전의 일상을 회복했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한 일도 잘못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 올바른 행동이었다, 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분이 행복해졌다면 그건 나한테도 구원이니까.(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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