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대삼각형 오늘의 젊은 작가 51
이주혜 지음 / 민음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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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 작가의 [여름철 대삼각형]을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51번째 작품이다. 별자리에 별 관심이 없던터라 제목을 보고 내용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표지를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밤하늘을 수놓은 밝기가 조금씩 다른 별이 점처럼 찍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소설의 첫머리에 오리온 자리에 대한 서양과 동양의 해석이 길잡이처럼 나왔음에도 '여름철 대삼각형'이 세 개의 빛나는 별에 대한 독특한 명칭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갑자기 '우주소년단'에 들어갔다. 그동안 별과 별의 마당인 우주에 관심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더 늦기 전에 뭔가 단복을 갖춘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표면적 이유였을테고, 초등학생 때 보이스카웃 활동에 돈이 많이 들어가 애초에 가입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뒤늦은 보상심이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주소년단의 단복은 스카웃 단복처럼 그럴싸한 스카프와 베레모은 커녕 어디서 물을 들인건지 모를 시퍼러둥둥하니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미 회비를 지불했으니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고 마음에 들지 않는 단복을 입고 남쪽의 먼 지역까지 캠프에 참가하여 처음보는 아이들과의 어색함을 견디지 못했던 기억이 남았다. 지금도 앨범 어딘가에 우주 공간에서 조이스틱을 움직여 이동하는 영화에 등장하는 모빌을 타고 몹시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찍은 사진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렇게 처음보는 이들과 순식간에 친해지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성정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전국에서 지극히 촌스러운 단복을 입고 모인 이들과 친분을 쌓고 거대한 천체망원경으로 바라본 별자리를 재미있게 논할 줄 알았다. 우주소년단 모임 때문에 별자리에 더 관심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성인이 될때까지 반딧불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남쪽 나라의 휴양지에서 반딧불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고, 야트막한 배를 타고 현지 가이드의 후레쉬 불빛에 반응하는 엄청난 무리의 반딧불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그때 가이드는 이렇게 인위적으로 반딧불에게 후레쉬 불빛을 비추는 것이 그들의 개체수를 줄이기 때문에 얼마 안가 반딧불 투어를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말을 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어떨까? 그런데 최근에 제주도를 방문했다가 반딧불 투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한 해의 어느 짧은 계절에만 볼 수 있는 반딧불을 구경하기 위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스마트폰 불빛과 어린 아이들의 반짝이는 신발 불빛까지 차단한 채 앞사람과 여러번 박치기할 뻔 하며 1시간 넘게 어둠의 곶자왈을 걸었다. 띄엄띄엄 눈 앞을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아니 그 옛날 선비들은 반딧불로 글공부를 했다는데 대체 얼마나 많은 반딧부를 잡은 것인가, 그때 반딧불은 지금보다 더 크고 밝았던 것인가 엉뚱한 상념에 사로잡히며 어서 이 코스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꽤나 많이 걸어서인지 출발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가 대절되어 있었는데, 차에 오르니 근래에 빅히트를 친 '나는 반딧불이'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이 얼마나 절묘한 타이밍이란 말인가 싶기도 하고, 그냥 짧은 생을 살다가는 자연의 반딧불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돈벌이가 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반딧불 투어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였다. 어린이들이 무척 많았기에 요즘 저출생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어린이들은 엄마, 아빠, 조부모의 손을 잡고 아마도 처음 마주할 반딧불을 볼 생각에 몹시 흥분되어 있었다. 소설 속 중년의 세 여성과 우주와 시오가 무주의 반디별 소풍 프로그램에 참석해 다른 이들이 대부분 가족 단위로 참석했다는 것을 의식했던 것처럼, 제주의 반딧불 투어 또한 유사한 느낌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 태지혜, 송기주, 반지영은 비슷한 또래의 중년 여성이다. 태지혜가 두 번의 유산을 겪고 아픔을 이겨내고 있을 때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고 손을 털듯 쉽게 이혼했다면, 송기주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할머니의 손에 자라 사랑인지도 모른 채 남편의 고백과 직진에 결혼하여 태어난 딸 시오에게 전심전력을 다하지만 점점 손에서 멀어지는 관계를 무력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상태라면, 반지영은 오십대의 엄마를 지난한 암투병으로 떠나보내고 재벌집 사모의 운전기사로 살며 친자식보다 사모 딸의 시중을 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가 그려진다. 


그리고 태지혜에게는 이혼하고 7년이 지난 후 시누이의 딸 우주가 고등학생의 몸으로 갑작스럽게 임신 사실을 고백하며 아이를 지우고 검정고시를 봐 대학에 갈때까지 함께 살게 해달라는 어이없는 부탁을 받게 된다. 송기주는 딸바보인 남편 지철과 다르게 시오가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시오는 점점 더 멀어지며 급기야 독립을 하기 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을 들어간다. 시오의 서운한 말과 행동에 상처받지만 당장이라도 시오의 원룸에 가서 밀린 청소와 빨래를 하고 반찬을 한가득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억누르며 '너 노예냐'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던진다. 반지영은 엄마의 바람대로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지만 영어 수행능력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수호의 엄마가 학교에 이의제기를 하며 위기를 겪게 된다. 하지만 지영이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은 수호 엄마의 몰상식한 행동으로 인해 느낀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 수호의 성정체성을 드러나게 만든 자신의 무심경함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세 명이 중년 여성에게는 공통된 삶의 장애물이 있었는데, 바로 반복되는 악몽을 꾼다는 것이다. 


태지혜와 우주, 송기주와 시오, 반지영과 수호가 가족과 직장이라는 사회적 구조 안에서 나이와 무관한 깊은 연관을 맺게 되면서 세 명의 여성이 밤마다 시달리는 악몽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미 어그러져 버린 다음 세대와의 연결을 회복하는 길 뿐임을 무주 여행을 통해서 드러난다. 여름철 대삼각형 별자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망원경으로 별을 구경하는 여정을 통해 나이를 잊고 철부지 아이들처럼 시시덕대는 엄마 세대의 모습을 보고 서운한 마음을 소거하는 시오의 모노레일을 탄 산 중턱의 산행과 기꺼이 용기를 내어 그 옛날 신라와 백제의 경게를 넘는 동굴을 통과하는 우주의 새벽 산책은 누구나 반짝이는 별처럼 빛을 내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고요히 인정하게 만든다. 당신이 누군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 사람이 가만히 희붐한 빛을 낼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야만 한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기를...


"잠은 잠깐의 죽음과 다름없는데 꿈이 있어 우리가 그 죽음의 허방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삶 쪽으로 건너오는 거라고. 

악몽이라도? 

악몽이라도.

그럼 악몽은 조약돌이면서 닻이기도 하네?

고통으로 가는 길을 표시하는 조약돌. 삶에 드리운 닻.(120-121)"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삶이란 이토록 예측 불가능하면서 동시에 유한하다는 사실에 가슴 한쪽이 뻐근하게 아파 왔다.(201)"


#이주혜 #여름철대삼각형 #민음사 #오늘의젊은작가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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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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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 작가의 [말뚝들]을 읽었다.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제목도 특이하거니와 표지마저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얼굴에는 파란 얼굴의 눈에서 사람모양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형상화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표지에 담긴 그림의 의미가 눈에 더 들어온다. 소설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주인공의 이름이 딱 한 번 언급되는데, 처음부터 줄기차게 '장'이라는 성으로 불리고 중간에 태이를 통해서 만나게 된 데보라가 프랑스어 발음처럼 '쟝'이라고 불린 것을 제외하고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 줄 알았다. 아마도 그렇게 마지막에 이름 석자를 밝힌 저자의 의도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장은 행정고시를 준비하다가 3번 낙방한 후에 천재의 무리에 들지 않는다는 성급한 판단으로 은행권에 입사한다. 장이 은행의 선후배들과 겪는 인간 관계의 어려움이나 대출 승인을 위해 미비한 서류 확인을 하는 모습은 현실적인 세계를 잘 그려내고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장은 납치를 당한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개연성이 없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장의 납치로 인해 소설의 속도감은 배가되고 도대체 누가 아니 왜 무엇 때문에 장을 납치한 것일까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 된다. 더군다나 '트렁크에 넣어두었습니다'라는 차창에 꽂힌 종이를 봤을 때 누구나 다 트렁크를 열어보지 않을까? 그럴 찰나에 얼굴에 복면이 씌어지고 손발이 케이블타이로 묶여 장시간 옴싹달싹 못하게 트렁크에 갇히게 된다. 트렁크에 갇히 장이 묘사하는 고통의 순간은 마치 내가 그 안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결국 방광의 압박을 참지 못하고 누운 채 소변을 지리는 모습과 납치에 풀려난 후 운전석에 앉을 때 욕지기가 밀려올 만큼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똥까지 싼 모습에 대한 비참함의 표현은 너무나도 리얼해서 '아 누구라도 그렇게 장시간 갑자기 납치되어서 트렁크에 갇히게 된다면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이 무참히 파괴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납치에서 불현듯 풀려난 장은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범인들은 단서를 남기지 않고 별다른 금전적 신체적 피해를 입지 않은 장은 경찰에게 응근히 조롱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보통 사람이 그런 갑작스러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을 겪게 된다면 누구나 한동안은 일상으로 돌아오기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장은 납치에서 풀려난 이후 헬맷을 쓴 배달원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지르게 된다. 사실 장의 납치 사건을 읽을 때만 해도 저자가 의도하는 바와 [말뚝들]이라는 제목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이어지는 내용은 갑자기 또 뜬끔없는 것처럼 말뚝들이 여기 저기에서 갑자기 나타나고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엥 여기서 또 말뚝은 뭐지'라는 생각에 소설의 장르가 갑자기 판타지로 바뀌는 것인가란 의문이 드는데, 장의 납치사건과 말뚝들의 등장은 반드시 어떤 연결점을 갖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의 향방이 말뚝을 마주한 이들이 이유없이 흘리는 눈물을 흘리는 군중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말뚝을 없애버리려는 이들과 말뚝을 감추고 지키려 부단히 애를 쓰는 장의 모습과 대비되며 장이 납치된 이유를 어렴풋이 나마 헤아리게 된다. 


말뚝들이 곳곳에서 나타나 사회에 혼란을 야기한다고 생각한 정부 요원이 첫 번째 말뚝을 조사하다가 말뚝의 입 안에서 장의 계좌번호가 적힌 명함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명함을 갖고 있던 말뚝은 어느 제련소에서 일하던 동료 노동자의 장례를 치루기 위해 대출을 받으러 갔던 외국인이었다. 장은 그 말뚝의 원래 주인이었던 외국인 노동자의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모험을 단행한다. 장은 어찌보면 그 첫 번째 말뚝인 노동자와 정반대에 위치한 대민그룹의 차남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제련소에서 사고당해 다치고 죽은 이들의 보고서가 담긴 파일을 낚아챈다. 이 얼마나 통쾌한 반전이고 복수인가? 말뚝을 지키고 보호하려 달리는 장의 모습에서 납치한 이들이 누구인지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그리고 장이 트렁크에 갇혀 나온 후 PTSD를 겪음으로서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재난으로 상해와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어떻게 마주했는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슬픔을 재단하고 멈추라고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슬픔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고, 애도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곳에 언젠가는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소설 속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말뚝을 보고 사람들이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저자가 바라는 우리 사회의 이상향이 아닐까 싶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이태원에서 젊은이들이 떠나갔을 때 전국민이 그들을 향해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기다려줬다면 유가족들에게 백만분의 일이라도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저자는 말뚝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시간을 통해 그동안 외면했던 사회의 부조리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모른척 외면한다고 있었던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앞으로도 유사한 일이 또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재난에 완전한 대비와 준비를 할 수는 없겠지만,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비참한 일을 마주했을 때 그들을 품을 수 있는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 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건 그냥 사고예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세사의 모든 일이고요. 왜 특별히 쟝에게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184)"


"제련소에서 유독 물질에 중독되어 죽은 외국인 노동자, 나흘째 잠을 못 잔 상태로 인도를 덮친 택배 노동자, 그 택배차에 받혀 숨진 아이, 그들이 모두 말뚝들이 되어 나타난 순간 이 죽음이 사회적 죽음이라는 사실은 명백해진다. 그리고 말뚝들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우는 사람들의 눈물 역시 아마도 사회적 슬픔일 것이다. [말뚝들]은 아 사회적 죽음과 사회적 슬픔을 추적하고 반추하며 기록한다. 사회적 죽음을 은폐하고 그 파급을 차단하려는 시스템에 대한 풍자는 주저 없이 단호하고, 자신의눈물이 사회적 슬픔임을 인지하고 그거승ㄹ 감당하려는 장의 이야기는 조심스럽고 섬세하다.- 서영인 추천의 말 중에서(307)"


"제대로 겪지 못한 슬픔은 모두 어디로 가나. [말뚝들]은 우리 사회가 그간의 무수한 사회적 재난을 충분히 애도하고 통찰하는 대신 은폐하고 소거하기에 급급해왔음을 겨냥한다. 겪어야 할 슬픔은 억누르거나 외면하지 말고 진심으로 애도함으로써 통과해야만 한다. 슬픔은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고 웅크렸다 우리 곁으로 되돌아오게 마련이니까. 어느 날 느닷없이 말뚝으로 시립화된 슬픔이 우리 집 거실로 진군해 들어오거나 광화문 광장을 에워싸는 방식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가없는 슬픔에 빠져들게 하는 '말뚝'은 슬픔은 슬픔의 방식으로 겪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 소설이 가닿은 애도와 연대의 윤리는 근래에 보기 드문 서사적 활력과 함께 찾아와 굳건한 말뚝처럼 독자에게 내리꽂힐 것이다. -편혜영 추천의 말 중에서(310-311)"


#김홍 #말뚝들 #한겨레출판사 #제30회한겨레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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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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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의 [슬픔의 틈새]를 읽었다. '광복 80주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한 조각'이라 수식된 띠지의 문구가 너무나 걸맞는 역사 소설이다. 이상하게도 일제강점기와 연관된 소설에 유독 관심이 더 쏠린다. 특히나 어릴 때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일제강점기 시기에 강제 징용으로 먼 타지에서의 삶을 시작한 이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자꾸 쓰인다.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이야기가 그랬고, 저자의 전작인 하와이의 사진 신부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사할린에도 이렇게 많은 한인들이 살고 있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사실 지명의 이름만 익숙할 뿐 지도화면을 열고 자세히 살펴보니 일본의 최북단인 홋카이도 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꽤나 큰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이야 비행기로 3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이지만, 단옥이 엄마 덕춘과 어린 동생과 함께 징용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했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충청도의 다래울에서 일본 북해도의 최북단 항구에서 배를 타고 화태라는 오래전 이름의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더군다나 기후적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추운 지역이기에 한 여름의 서늘한 몇 달을 제외하고는 기나긴 추위에 적응하는 것이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겨울에 해외여행을 가면 잠자리가 추웠다는 말을 많이 한다. 숙소의 퀄리티를 떠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온이 너무 잘된 곳에서 자기 때문이다. 침대 생활이 보편화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집은 어디든 온돌이 깔려 있다. 방바닥이 따뜻하기 때문에 단열이 잘 안된 집을 제외하고는 우풍도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라디에이터나 온풍기로 보온을 하는 지역의 숙소에서는 당연히 춥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일본의 전통 숙소인 료칸은 다다미가 깔린 방으로 저녁식사인 카이세키를 먹고 나서 온천을 하고 오면 직원들이 두터운 이불을 깔아놓는다. 온천으로 데워진 몸을 질식시킬 것처럼 두터운 이불 속에 쏘옥 넣고 보온을 유지하는 것이다. 숙박비는 꽤나 비싼데 난방은 영 시원치 않다. 


광복 80주년이라 그런지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방송들이 많이 방영되고 있다. 어릴 적 반공교육을 받을 때는 아니 왜 하필 우리나라는 6.25 전쟁이 발발해서 같은 민족끼리 총과 칼을 겨누고 피를 흘리며 남과 북으로 갈라져 이산가족이 발생했는지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만 운이 나빠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주입식 반공교육은 일제강점기에서 비롯된 슬픈 역사의 희생자를 기억하는 것보다 무작정 북한공산당을 비난하고 적대시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한국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이 수없이 많았기에 남과 북의 적대적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 급급한 이들은 빨갱이 멸칭으로 권력을 빼앗길 위기를 모면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국전쟁 이전의 역사는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것 같다. 


소설의 주인공인 단옥의 아버지 만석을 비롯한 많은 한인들이 일제강점기에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을 당하게 된다. 일본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대체 얼마나 많은 조선인들을 징용한 것인지 정확한 수를 알 수 있을까? 일본 본토를 제외하고도 당시에 태평양 전쟁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일본군은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만주와 러시아 북단까지 아마도 섬나라 일본이 대륙을 제패할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착각에 빠져 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시 소련과의 전쟁으로 사할린 섬을 남과 북으로 나눠서 지배하고 있던 일본군은 사할린 남쪽에서 나무와 석탄을 채집할 인력을 강제로 조선에서 끌고 간 것이다. 


단옥의 아버지 만석이 탄광 숙속에서 벗어나 사택에서 가족들과 머물기 위해 다래울에 있을 아내와 자녀를 초청할 때처럼, 아마도 당시 징용된 수많은 이들이 언젠가는 이 지옥같은 시간이 끝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패망해도, 한국 전쟁이 끝나도 사할린에 머물던 한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니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고구마 백개를 먹은 것처럼 답답함이 밀려오지만, 경제 개발에 눈이 먼 독재 정권은 일제강점기에 고향을 떠난 이들의 귀환을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일본과의 외교전에서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제대로 된 보상금도 받지 못했으며 자체적으로도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 못했다.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의 고르바초프가 실각하여 열 여섯 개의 나라로 독립하고 사할린 땅이 러시에 귀속되기 전까지 공산주의를 표방했던 시대에는 오히려 경제적으로 나았던 때이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남한이 정말로 가난할 때 오히려 북한의 경제적 상황이 나은 때가 잠깐 있었다고 하니, 아마도 사할린에 머물던 한인들은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소련과 북한 국적을 두고 갈팡질팡했을 것이다. 무국적자로 온갖 불이익을 감내하는 것보다 차라리 소련 국적을 선택해서 제대로 된 배급을 받는 것이, 북한 국적을 얻어 북한 내의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유혹을 느끼게 된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안타까움을 갖게 되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정보도 부족했고 남과 북이 이렇게 오랜 시간 대치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소설의 말미에 단옥이 할머니가 되고 나서 모인 가족들은 우리말, 일본말, 러시아말이 섞인 채 대화를 나누게 된다. 거기에 단옥의 남편 진수의 제주도 사투리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언어대통합이 아닐까 싶다. 언어가 이렇게 섞인다는 것은 당연히 다른 민족과 인종의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피가 섞여 몇 대가 지나고 나면 이주된 첫 세대의 고유한 전통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단옥도 남편 진수와의 이별을 감내하며 사할린을 떠나지 않은 것은 그곳에 가족과 자신의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렇게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우리말을 전혀 못하는 이들도 자신의 뿌리를 찾고 알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뿌리의 역사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태어나기까지 부모와 조부모가 세대가 얼마나 큰 고통을 이겨낸 것인지 서서히 깨달아가게 되고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띠지에 언급된 것처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한 조각'이라는말은 너무나도 운이 좋게도 고국의 땅을 떠나지 않고 살아온 이들에게 진정 감사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일깨우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슬픔의 틈새에서도 살아갈 힘을 찾아내고 견딘 화태의 조상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우리의 슬픈 역사가 단지 한숨짓고 마는 체념의 장이 아니라 어디서든 한국인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려 노력한 위대한 흔적임을 항상 기억해야겠다. 


"사할린은 원래 러시아 땅이었다. 1905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사할린의 남쪽을 넘겨받아 통치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선주민인 아이누족이 부르던 이름에서 따와 남사할린을 가라후토라고 명명했고, 조선 사람들은 한자의 음대로 화태라고 불렀다. 자작나무가 많은 섬이라는 뜻이었다.(20)"


"사할린 강제징용 1세대와 그 가족들의 삶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인간의 운명이 그토록 처절하고 기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안타까움이 앞섰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 고통스러운 역사보다 그 틈을 헤치고 살아낸 끈질긴 삶 자체가 더 크게 느껴졌다.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동정이나 시혜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켜낸 삶에 대한 존중과 공감, 그리고 진심 어린 위로임도 깨달았다. 

사할린이라는 공간 역시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을 뛰어넘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곳은 단지 비극의 무대가 아니었다. 사할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정과 이산, 디아스포라의 상처가 뒤섞인 채 켜켜이 쌓인 공간이었다. 한국, 일본, 러시아(구소련), 북한, 고려인, 그리고 선주민들이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채 얽히고설켜 살아온 장소였다. 상처와 기억, 화해와 공존의 가능성을 품은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그 깨달음은 나를 과거의 재현에 머물게 하는 대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443)"


#이금이 #슬픔의틈새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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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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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작가의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을 읽었다. 그동안 어째서 저자의 책을 한 권도 만나지 못했던 것인지 한탄이 느껴질 정도로 이번 소설은 너무나도 좋았다. 페이지가 줄어드는게 아까울 정도로, 아니 작가님 이렇게 재미있게 써도 되는 겁니까? 라는 응수가 절로 나올 정도로 좋았다.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은데 표지에 실제로 저자가 키우고 있는 반려견 이시봉을 형상화한 그림까지 약간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지만 내용은 너무나도 귀여운 비숑 프리제의 모습처럼 개웃기는 등장인물들이 나와 갑작스레 혼자 킥킥거리게 만들었다. 


이름에 봉자가 들어가면 이상하게 재미없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영화 맨발의 기봉이도 그랬고, 지금은 대세 배우가 된 노안의 대명사 현봉식(본명이 보람이라는) 배우님도 그렇고.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 이시봉에 얽힌 이야기는 웃음과 슬픔과 약간의 추리와 스릴러가 버무려져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순삭하는 기분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이야기는 인스타그램 DM으로 강아지 이시봉을 확인하는 앙시앙 하우스와 리다의 대화로 시작된다. 여기서 '리다'라는 이름은 이시봉의 견주 이시습이 짝사랑하는 열 살 많은 동네 누나 권하영의 반려견 이름으로 자그마치 프랑스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는 기상천외한 사연도 뉘늦게 알려준다. 


아무튼 주인공은 말못하는 강아지 이시봉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화자는 이시봉의 견주인 이시습이다. 시습은 스물 살의 백수 청년으로 새벽녘에 시봉이를 데리고 아파트 뒷산을 산책하며 산중턱에서 술을 마시고 내려오는 일상을 제외하고는 참으로 무력하게 지내는 대책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시습은 학교도 중퇴하고 왜 이렇게 지내는 것일까? 시습의 여동생 시현은 정반대로 너무나도 야물딱지게 나오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시습의 엄마는 아들이 이렇게 지내는 것에 왜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은 시습의 아버지가 잘 다니던 타이어 공장을 갑자기 그만두고 피자집을 차려 열심히 일을 하다가 너무나도 어이없게도 무단횡단을 하다 트럭에 치여 죽게 된 연유가 나오면서 조금씩 이해된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렇게 갑자기 피자집의 문을 열고 나와 무단횡단을 하게 된 이유가 시봉이가 갑자기 뛰쳐나갔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시습은 엄마에게서 시봉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자기 방에만 머물게 한다. 


앙시앙 하우스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찾아헤맨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가 바로 시봉이인 것 같다고 리다에게 연락한 것이고, 리다는 그 사실을 시습에게 알려 앙시앙 하우스의 브리더들이 시봉이를 만나러 광주로 내려온다. 이후 시습은 시봉의 혈통이 프랑스의 왕실에서 키우던 후에스카르라는 고귀한 피를 받은 귀한 품종이라는 사실을 전해듣고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시습은 시봉과 함께 서울과 용인의 앙시앙 하우스를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시봉이를 애타게 찾던 앙시앙 하우스의 주인 정채민을 만나게 된다. 정채민은 시습에게 그가 시봉을 찾게 된 연유를 설명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그가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시절 만났던 박유정과 김상우라는 부부와의 인연을 전해주는데 소설의 말미에서 드러나는 박유정의 유언과는 상반되는 진술이 있었고 그것이 어찌보면 결말에 이르는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겠다.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주는 기발한 구성은 시습과 그의 친구들 헬스 중독자 정용과 개빡치네를 연발하는 편의점 알바생 수아와의 친밀한 우정이 따스함을 유지하면서 자본주의의 극도의 이기주의자인 정채민의 부와 권력이 가짜로 만들어낸 시봉의 혈통에 대한 역사가 얽혀 뒤로 갈수록 긴장감을 드높이게 된다. 특히나 정채민이 들려주는 시봉과 스페인 왕가에 대한 이야기는 실제의 역사적 인물인 고도이 총리와 고야의 알바 공작부인 그림에 나온 비숑 프리제에 가공할 사연이 덧붙여져 진짜로 그런 일이 있지 않았을까란 상상을 거듭하게 만든다. 마치 액자식 구성처럼 피에르 피졸의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의 빛과 그림자]라는 가상의 책에 나온 이야기는 스페인 왕가의 사냥 밖에 모르는 무능력한 국왕 카를로스 4세와 수려한 외모의 왕실 근위대 마누엘 고도이에 빠져버린 왕비 마리아 루이사가 등장한다. 왕비는 고도이에게 빠져 그가 총리가 되기까지 뒷배가 되어주지만 고도이는 유럽 전역에 엄청난 미모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알바 공작부인을 흠모하게 된다. 당대의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구애가 불가능했던 고도이는 알바 공작부인에게 베로와 누녜스라는 비숑 프리제 한 쌍을 선물로 보낸다. 고도이가 마지막까지 베로의 집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훗날까지 이어질 후에스카르 혈통을 지켜낸 것이 스페인 왕가의 몰락과 나폴레옹의 점령사까지 이어지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렇듯 앙시앙 하우스의 주인 정채민 대표는 시습에게 시봉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피력하며 박유정과 김상우에게 속아 시봉의 어미에 해당되는 카이와 루시를 빼앗긴 거짓된 사연을 들려준다. 정채민이 들려준 안타까운 사연의 진위여부를 떠나 시습은 시봉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점점 밀려오게 되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시봉이를 데리고 왔다는 전북 무안의 개농장을 찾아내게 된다. 그리고 시봉이의 근원을 찾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피자집을 시작하기 전까지 몸담았던 타이어 공장의 동료직원이었던 이시봉 아저씨의 연락처를 발견하고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듣게 된다. 시습의 아버지가 근무했던 타이어 공장은 회사 운영에 관심없던 오너 2세가 함께 유학했던 홍콩의 사모펀드 운영자와 손을 잡고 이익을 취하는 수순에서 애먼 노동자들만 거리에 나앉게 되는 억울한 상황이 펼쳐진다. 당연히 타이어 공장의 노조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경영진의 계약을 저지하기 위해 파업과 산업통상자원부에 불의함을 호소하지만 돌아오는 건 손해배상 청구와 더불어 노조지도부의 구속과도 같은 엄벌이었다. 


시습의 아버지는 이러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퇴직금과 위로금을 받은 돈으로 집을 마련하고 피자집을 개업하게 된다. 시습의 아버지를 대신해 노조의 홍보부장을 맡게 된 이시봉 아저씨는 회사 본사에서 이루어지는 계약 순간을 급습하게 되고 수많은 이들의 생계가 걸린 상황에서 폴로 경기를 흉내내는 오너 2세와 홍콩 사업자의 모습을 보고 그만 꼭지가 돌아 폭력을 휘둘러 구속되게 된다. 이시봉 아저씨는 감옥에서 우연히 강아지 시봉의 어미와 가족들을 키웠던 박유정의 아들 김태형을 만나게 되고, 태형의 부탁으로 개농장에 판 시봉의 어미로부터 갓 태어난 시봉을 데려갈 것을 시습의 아버지에게 부탁한 사실을 시습에게 알려준다. 


후반부에 이르러 암에 걸린 외할머니를 돌보고 위해 가평에서 머물던 엄마에게서 급한 연락을 받고 시습은 두려운 마음으로 한 달음에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엄마를 도와 할머니를 간병하는 사이 시봉이를 맡겼던 리다가 앙시앙 하우스에 연락해 그들이 제시한 돈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비용을 제시하여 시봉이를 건네고 만다. 집으로 돌아온 시습은 리다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시봉을 찾기 위해 수아와 정용과 태형과 함께 앙시앙 하우스로 처들어간다. 시습과 일행을 저지하던 브리더들은 태형 자신이 박유정의 아들이라는 외침으로 인해 용인의 또 다른 앙시앙 하우스에서 있는 정채민 대표에게 데려간다. 소설 속에서는 명확히 나오지 않지만 태형이 박유정과 김상우 부부의 아들이 아니라 어쩌면 아마도 정채민과 박유정의 불장난 같은 사랑의 소실이 아닐까란 확신은 정채민이 진짜로 찾는 것은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인 시봉이가 아니라 시봉이와 같은 혈통의 강아지를 키우던 박유정이었음을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라며 시습이 언급했기 때문이다. 


시봉을 돌려주려 하지 않는 정채민과 그의 직원들의 태도에 화가 난 시습과 그의 친구들과 태형은 시습이 들었던 정채민의 사연과는 정반대의 내용이 담긴 박유정의 여동생이 들은 유언을 밝힌다. 태형은 애초에 후에스카르라는 왕가 혈통을 가진 비숑 프리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정채민의 실체를 밝히려 한다. 자신의 어머니가 이미 다 확인한 바라는 말로 반박하지만 정채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습의 무리를 내쫓는다. 쫓겨난 시습과 친구들은 돌아가려다 말고 다시금 시봉이를 돌려달라고 따지려는 찰나 아마도 정채민과 상속 관련하여 갈등을 빚던 호텔을 운영하던 불같이 화가 난 사촌 동생의 등장을 마주하게 된다. 앙시앙 하우스와 시습 무리의 대결로 치닿던 긴장감은 갑작스레 등장한 호텔 오너와 쉐프들이 조장한 시한 폭탄과도 같은 상황으로 절정에 달하고 도망가던 정채민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된다. 


어이없게도 정채민 대표의 사고로 시습은 시봉을 데려갈 수 있게 되고 사고가 나기 전에 시봉을 내던지 일로 인해 시봉은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해야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시봉이 시습을 긴급하게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를 받고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는 과정에서 수의사가 하는 말에 소리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물 병원에서 입원해야 한다는 말에서 말이 입원이지 보관이랑 뭐가 다르냐는 수의사의 표현에서는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건이 일단락 되고 경찰 조사를 마친 시습은 다시 시봉과 산책할 수 있는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짝사랑하던 리다 누나의 잠적을 걱정하게 된다. 수아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그 나이에도 아버지에게 맞고 지낸다는 리다 누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염려하던 차에 시봉이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던 형집행인에게 고문을 받아 죽어가던 길고양이를 살린 릴스의 후속편이 올라오게 된다. 과연 변태같은 고양이 학대자 형집행은 누구인가 따라가던 화면은 정말 어이없게도 집에서 샤워중인 리다의 아버지의 허물처럼 벗어진 옷차림에 집중된다. 시습은 딸이 자신을 떠날까봐 두려워 고양이를 학대하며 집을 나가면 남겨진 반려견 리다를 고양이처럼 학대할 것이라 겁을 준 아버지에 대한 사연을 DM으로 받게 된다. 떠나버린 짝사랑 리나 누나를 응원하며 시습은 다시 시봉과의 재활 산책을 준비하고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술을 마시며 방황하던 시기를 마감하고 검정 고시를 볼 것을 다짐한다. 시습은 아버지가 남긴 시봉과 더불어 성장하고 슬픔을 이겨낸다. 


"사랑은 예측 불가능한 일을 겪는 거야.

아빠는 그러면서 자신이 다시 강아지를 키우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어떤 예측 불가능한 일이 자신을 찾아왔고, 그렇게 이시봉을 만나게 되었다고.(123)"


"박유정이 생각하는 인색이란, 마음이나 생각이 오직 하나뿐인 것이었다. 종교인이 종교만 생각하고, 아이 엄마가 자기 아이만 생각하고, 고리대금업자가 이자만 생각하는 것. 그 외는 아무것도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것.(338-339)"


시습은 시봉이를 키우면서 시봉이의 순진무구함이 무섭다고 말한다. 새끼부터 키워온 시습과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왔으면서도 좀 더 좋은 간식을 주는 앙시앙 하우스의 사람들에 품에 폭 안긴 시봉은 처절한 배신감을 주기에 충분한 처신을 행하지만, 그건 그냥 동물의 순수한 본능일 뿐이다. 인간과 동물이 유사한 생물학적 기능을 유지하며 살아가지만 시습은 시봉이의 맹목적인 순수함과 열정이 때로는 인간의 인색함과 닮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 같다. 어린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된 사람이 시봉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함으로 모든 것을 추구하다보면 오로지 자기 마음이 결정한 것만 생각하고 염려하는 아주 인색함 사람이 될테니까 말이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정채민 대표처럼...


#이기호 #명랑한이시봉의짧고투쟁없는삶 #우리집막내이시봉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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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hak 2025-08-24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독자님.
문학동네 마케팅팀입니다.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멋진 서평을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독자님이 작성하신 서평을 마케팅용으로 활용해도 괜찮을지 검토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동의하신다면 문학동네 채널을 통해 업로드하는 카드뉴스에 아이디를 일부 가려 출처를 기재할 예정입니다.

편히 확인해주신 뒤 말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제코루 2025-08-24 19:52   좋아요 0 | URL
네 활용하셔도 괜찮습니다.
 
어쩌다 마트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 일하는 나와 글 쓰는 나 사이 꼭꼭 숨은 내 자리 찾기
하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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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 작가의 [어쩌다 마트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를 읽었다. 부제는 "일하는 나와 글쓰는 나 사이 꼭꼭 숨은 내 자리 찾기"이다. 몇년 전 띵 시리즈 중에 아이스크림을 주제로 한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를 읽고 나서 당시 레어템이었던 아이스팜 자두바를 찾아 맛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저자가 어떻게 이렇게 아이스크림에 대해 잘 아는 것일까 신기했었는데, 당시에는 몰랐던 오랜 시간 일해온 마트에서의 경력이 아마도 좋아하는 것을 더 잘 알게 된 배경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무려 14년 동안 마트에서 일하며 7권의 책을 출간하기까지의 개인적 역사를 우리 사회에 팽배한 노동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솔직담백하게 전하며, 저자가 함께 일했던 언니의 말처럼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전통시장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시키려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도시의 대부분 지역은 현대화된 대형마트에 점점 잠식되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대형마트에 주차를 하고 카트를 끌고 거대한 책장같은 진열대에서 하나씩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마쳐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와 수납함에 생필품을 정리하는 것이 어느덧 현대인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거의 모든 식료품의 당일배송이 가능해져서 장을 보러 갈 시간조차 없는 이들은 마트에도 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의 캐셔분들은 워낙에 손이 빨라 긴 결제대기줄이 생겨도 금방금방 일을 마무리 하지만(아마도 이건 본성이라기 보다는 빨리빨리 문화와 컴플레인으로 인해 지적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 않을까 싶지만), 유럽에서 지낼 때 마트를 가면 참을 인자를 이마에 새기며 심호흡을 해야만 할 때가 비일비재였다. 개네들은 대체 왜 그렇게 여유롭고 설렁설렁 일을 하는 것일까? 내돈내산인데도 행여나 캐셔가 갑자기 결제창구를 닫고 길게 늘어선 옆 줄로 가라고 할까봐 노심초사할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루는 20유로도 안되는 양의 장을 보고 나서 잔돈이 없어서 아무 생각없이 500유로 짜리 지폐를 낸 적이 있었다. 다른 곳에서 작은 단위로 바꾸기가 용이하지 않아 마트라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안이한 생각이 불러온 파장은 결제를 위해 길게 늘어선 현지 주민들의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았다. 캐셔는 무려 480유로의 거스름돈을 한 장 한 장 보란듯이 소리를 내며 계산대 위에서 세며 '숫자가 맞는지 잘 보라고' 라는 뜻이 담긴 시선을 보냈다. 순식간에 얼굴이 시뻘개진 나는 불현듯 내 뒤에 서 있는 현지인들의 신기한 눈빛의 부담과 두려움을 느끼며 후다닥 봉지를 들고 숙소로 내달렸었다. 지금이야 그런 어리버리한 시절을 그리워하며 우스개소리의 하나가 되어버렸지만 마트에서 장을 볼때마져 긴장했었던 때가 아련하게 떠오르며 우리나라 마트의 친절과 편리함에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된다. 


예전에 염정아 배우가 주연한 영화 '카트'에서 마트 직원들이 처한 부당한 대우를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실제로 대형 마트에서 물건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분들은 대부분 중년 여성이다. 판촉을 위한 행사 인력으로 나온 경우는 제외하고는 젊은 여성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듯이 망하면 남자는 공사장, 여자는 마트라는 공식이 생겨난 이유는 노동 시장에서 공사장과 마트는 별다른 자격 없이도 생계를 위해 뛰어들 수 있는 문턱이 낮은 일자리라는 생각이 팽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막상 해보면 세상 어떤 일도 처음부터 쉬운 일은 없어서 나름의 노하우를 체득하기까지 몸과 마음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것은 결국 경험해봐야 아는 것일까? 


어쩌면 저자와 엄마가 공통적으로 마트에서 일하며 삼게 된 가장 큰 화두인 드라마의 단골 대사 중의 하나인 "당신이 왜 여기서 이런 일을 해?" 라는 말은 우리 사회가 마트 노동자들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갖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근무한 중년 여성보다 신입에 불과한 저자의 수당이 더 높다는 것 또한 마트에서 노동력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기이한 구조로 편성되었는지 또한 단편적으로 엿 볼 수 있다. 이런 저런 부당함이나 미래에 대한 특별한 비전이 없음에도 저자가 오랜 시간 마트에서의 일을 놓치 못한 것은 오로지 글을 쓸 수 있는 생활 반경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직장을 구해 영혼을 갈아넣을 정도로 주어진 일에 전력을 다하다 보면 어느샌가 책을 읽고 글을 쓸 여력이 1도 남아 있지 않는 일상이 반복된다. 저자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은 바람과 현실에 안주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되었을 때 대부분은 그나마 안정된 길을 선택하게 된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고 나면 지금 안정적인 것으로 보이는 길도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수도 있지만, 너무나도 많은 주위의 사람들이 헛물켜지 말고 어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성화에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결국은 하고 싶은 일을 놔버리게 된다. 저자 또한 마트에서 일하는 동료 언니들이 여기 있지 말고 나가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으라는 조언과 엄마 또한 언제까지 마트에서 일 할 것이냐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기 위한 용감한 결단은 지속되고 이렇게 마트에서 일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들 수 있는 에세이가 완성되었음에 박수를 보내며, 마트를 그만 두 저자가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 지 기대가 된다.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부터가 가짜일까. 일하는 내내 그게 궁금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마트 밖의 내가 진짜라고, 마트에서의 나는 연기를 통해 만들어낸 가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매일의 거짓말이 모여 내가 되고 있었다. 그 속도는 아주 느리지만 동시에 아주 빠르기도 해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트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182)"


"은행과 식당의 차이는 무엇일까. 학교와 주유소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이제 그 질문에 확실히 대답할 수 있다. 많은 차이점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크고 중요한 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와 시선이라고. 은행에도 학교에도 진상은 존재하지만 그곳의 무례함이 이곳의 무례함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마주치는 무례함의 기저에는 상대를 무시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이런 일이나 하는 주제에 감히 네가?' 아무리 꼭꼭 숨겨도 예상치 못한 순간 아주 작은 틈을 통해 툭 삐져나오는 그 마음을 나는 귀신같이 포착하곤 했다.(207)"


#하현 #어쩌다마트일을시작하게됐어요?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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