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
봉현 지음 / 미디어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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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현 작가의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를 읽었다. 9년차 프리랜서로서 5번째 책을 내기까지 그리고 비정기적인 의뢰를 받아 마감을 하며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시간들에 루틴을 부여하기까지의 내적 고뇌의 시간을 담담히 고백하고 있다. 이전의 전형적인 목표를 이루는 삶의 행태들 그러니까 시대가 변했다 하더라도 보수가 지속적인 안정적인 직장이나 일터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고 살아가며 행여나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과 노후를 위해 최선을 다해 자금을 준비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을 놓는다. 왜냐하면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면 불행한 이들의 사연이 쉴세 없이 달려들고 언제든 나 또한 그 불행한 이들의 부류에 들어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살고 싶은 삶에 대한 욕구와 희망을 잠재운다. 그런 면에서 봉현 작가는 참 용기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삶을 포장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가까운 사람들이 이미 안정된 삶의 영역에 들어섰음에도 초초해하며 그들을 질시하거나 따라가려 하지 않고 올곳이 마음이 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비겁해진다. 겁이 많아지기 때문일까. 새로운 것을 시도함을 귀찮아 하고 어차피 그것도 별다르지 않을거라 미리 단정짓는다. 그래서 삶이 점점 지루해진다. 어릴 때 동네 친구들을 만나러 가려면 내가 갖고 있는 놀이의 도구를 대부분 다 갖고 나갔다. 오늘은 어떤 놀이를 할지 모른다. 다시 집에 들어갔다 나오기에는 시간이 아깝고 못 나올지도 모르니 일단 어떤 놀이를 하던지 낄 수 있기 위해서 준비를 철저히 하고 나간다. 때로는 구슬치기를, 망치로 때려 평평하게 만든 병뚜껑을, 야구배트와 글러브를, 축구공을, 농구공을, 짬뽕공을 가지고 나가곤 했다. 모든 잘하고 싶었고, 놀이에서 지더라도 다음엔 내가 이길 수 있도록 더 많이 연습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 열정과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잠이 안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의 움직임이 그립다. 정기적으로 하는 운동이 있냐는 질문을 거의 10년 째 듣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청개구리가 된 것처럼 몸을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쏙 들어가버린다. 더 많이 책상에 앉아 있고 싶고, 더 많은 책을 읽고 싶고, 더 많은 독후감을 쓰고 싶어진다. 그러다가 별안간 대체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란 허무함에 빠지기도 한다. 저녁을 먹고 잠깐의 산책을 할 때마다 만나는 노인이 있다. 한 손에는 조그마한 스피커를 틀고 뽕짝거리는 음악을 들으며 휘적휘적 나보다 두 배는 빠르게 걷는다. 걸음걸이가 하도 신기해 따라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고, 지나칠 때 들리는 질나쁜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랫소리가 꽤나 귀에 거슬린다. 내가 한 바퀴 돌때 벌써 왕복하는 그분을 볼 때마다 참 건강해보이시는데, 저렇게 열심히 운동하는 이유가 있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베로나의 카스텔베끼오 다리를 산책할 때 매일 만나는 모녀가 있었다. 부서지고 무너지려는 마음을 애써 잡으며 하루하루 견디던 때라 노을이 지던 산책길에서 만나는 모녀가 반갑곤 했었다. 몇 번이나 마주쳤을까? 분명 외국인인 내가 동일한 코스를 산책하는 게 신기했을텐데 한번도 말을 걸지 않고 그냥 스쳐지나가곤 했다. 딸이 아픈걸까? 이미 성인이 되어 보이는 딸이 매일 저녁 엄마와 함께 산책하는 게 조금은 낯설게 보였다. 언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모녀와 친구가 되는 건 어떨까? 자연스럽게 이 근처에 사냐고 물으면 그들도 나의 신상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비슷한 상상을 하며 그들을 지나쳤다. 언젠가 한 번 엄마가 다른 곳을 보며 딸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걸을 때가 있었는데, 딸이 나에게 싱긋 미소지으며 지나친 적이 있었다. 아 그들도 나를 알아보는구나 라는 반가움과 더불어 엄마 몰래 나에게 인사하는 딸은 혹시나 엄마에게 감시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란 엉뚱한 상상도 해보았다. 먼 타지의 그곳을 떠올리면 이름도 모르는 그 모녀가 왜 떠오르는 것인지 의아하다. 그곳에 만나고 함께 생활하던 이들도 있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그때의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려 오늘을 맞이하게 한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알 필요도, 모두와 잘 지낼 필요도, 내 모든 것을 다 내보일 필요도 없다. 한 사람의 삶 전체를 SNS에 담아낼 수 없다. SNS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삶이 사라지지 않고, SNS를 한다고 해서 삶이 불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겠다는 결심, 듣고 싶지 않은 말에 귀를 막을 자유,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침묵할 권리, 궁금해서 직접 찾아보며 배우는 기쁨, 때로는 모르는 것이 나은 좁고 작은 평화 같은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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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 2022-11-13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코루 님!
귀한 글, 높은 얼이 잔잔히 흔들리는 님의 모습이 영상 지어졌습니다.
매우 감동이었습니다.
맨 아랫 단의 글을 베껴 갑니다.
어디 다른 데다 옮겨 쓰지는 결코 않습니다.
그냥 글을 가지고 있고 싶을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