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잉 홈
문지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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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작가의 [고잉 홈]을 읽었다. 이미 두 편의 한국어 시리즈로 미국 유학생으로서의 경험담이 녹아들어간 내용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일었던 터라 이번 소설집에 거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이번 소설집에는 "에어 메이드 바이오그래피', '고잉 홈', '핑크 팰리스 러브', '크리스마스 캐러셀', '골드 브라스 세탁소', '뷰잉', '나이트호크스', '뜰 안의 별', '우리들의 파이널 컷' 이렇게 9편의 단편이 실려 잇다. 문지혁 작가님의 소설은 거의 모든 작품들이 단숨에 몰입이 가능하다는 놀라운 가독력을 갖고 있는 듯하다. 특히나 단편 소설의 경우 장편과는 다르게 장황한 묘사나 설명이 축약된 경우가 많아 첫머리에는 어떤 상황인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을 때가 많은데,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들은 유학생이라는 공통된 분모가 있어서 그런지 주인공이 계속 바뀌어도 마치 하나의 커다란 하숙집에 소속된 이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미국은 물리적으로 10시간 이상 비행을 해야 할 정도로 멀리 떨어진 나라이지만, 한국 전쟁에서 큰 덕을 입어서 그런지 가끔은 맹목적인 동경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 이들이 꽤 많은 것처럼 보인다. 사실 전세계를 통틀어서 미국 만큼 학비가 비싼 나라도 없을텐데, 해마다 수많은 학생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학위를 따고 가능하다면 그곳에서 정착하기를 원한다. 하루걸러 총기난사 사건이 보도되는 곳이지만 마치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당장 전쟁이 날 것처럼 위협적인 곳으로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막상 가서 살고 있으면 자신과는 무관한 일처럼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명백한 사실 한 가지는 미국 사회는 분명 이민자로 구성되어 있어서 따지고 보면 원래 미국 사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임에도, 백인 중심의 권력 구조에서 비롯된 오래된 인종 차별이 지속적으로 자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의 백인들은 아시아 사람들을 보면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외모만 아시안 사람일뿐 그 백인과 마찬가지로 미국이라는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공부하고 일하고 있음에도 그런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영어에 대한 거의 신앙적인 추앙심을 갖고 있기에, 미국에서 학위를 따와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 어떤 절대자를 만난 것처럼 우러러 보기 마련이다. 


학력에 대한 그리고 영어와 미국 사회에 대한 이런 맹목적인 동경은 막상 그곳에서 유학과 이민 생활을 하는 이들의 경험담을 듣게 되면 환상에 가깝지 않을까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번 소설집에 나온 유학생들의 이야기만 해도 한국에 머물렀다면 상위 지식층이 삶을 살 수 있는 이들이 유학이라는 선택을 통해 생존의 위협까지 느끼며 자존감이 떨어지는 하루 하루를 견딜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묘사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학을 다녀온 이들을 무조건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자신은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한 선택을 과감히 결정하여 꽤 오랜시간 버티고 버텨 원하던  바를 이루고 온 것에 대한 존중과 질투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소설집에 나온 주인공들은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언어에 대한 고충을 그다지 심도있게 다루고 있지 않아서 더 좋았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오해와 멸시에서 오는 자괴감의 원인이 되어 종국에 가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지만, 몹시 진부한 소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유학생으로서 다양한 인간군상과의 만남에 초점을 맞춘 이번 단편들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을 결국 세상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라는 절대적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그 만남이 때로는 범상치 않은 깨달음을 주기에 나도 모르게 주인공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특히나 ‘골드 브라스 세탁소’, ‘뷰잉’, ‘나이트호크스’의 주인공들은 자국이 아닌 타지에서 마주하게 되는 정당한 거주자로서의 자격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급격히 달라지는 현실의 타격감을 생동감 있게 전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 유학을 간다고 하면 막연히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공부를 하기 위한 모든 제반사항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이라는 망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타지에 발을 딛고 마주하는 현실은 재벌집 자식이 아닌 바에야 헬게이트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 일이었음에도 긴장되고 두려운 마음이 가득한 상태에서는 과도한 해석과 반응이 첨가되어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색깔의 감정에 휩싸여 과연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 고뇌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소설의 주인공들은 비록 낯선 곳이지만 새롭게 정착하려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유학과 이민은 살아온 터전을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기존의 나라는 틀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단숨에 폐부를 찌르는 고통을 심어놓는 것만 같다. 


“사실 비겁함은 어느 순간부터 화제의 감정에서 배제되어왔다. 정체도 전체도 알 수 없는 거대한 도시에서 타인에게 결정권이 있는 취약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비겁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누구나 다 비겁하기 때문에 누구도 타인의 비겁함을 문제 삼지 않고, 그러느라 자신의 비겁함마저 무시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비겁함을 사회의 ‘관심 감정’에서 누락한 결과 우리는 내면이 붕괴하기 전에 파괴의 조짐을 예견할 수 있는 중요한 징후를 놓쳐버린 꼴이 됐다. 마음이라는 벽에 금이 가기 전, 우리 일상에는 환멸이라는 징후가 나타난다. 기대와 환상이 있던 자리엔 괴롭고 공허한 심정이 놓인다. 비겁함은 괴롭고 공허한 심정의 길목이다.-박혜진 해설 중(297)”


“이별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은 없다. 그러나 이별의 순간을 무성의하게 취급하는 인생은 많이 봤다. 우선은 나부터도 그 비겁한 이별의 태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으나, 이 소설을 여러 번 읽으며 에밀리의 태도에 반복적으로 놀랐다. 인간은 혼자가 되는 순간보다 ‘다시’ 혼자가 되는 순간을 두려워한다. 에밀리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을 연출하고 기어이 그 무대에 오르는 배우가 된다. 다시 혼자가 되어보겠다는 결심과 그 이행은 이별의 순간에 대한 가장 성실한 반복이자 다가온 만남에 대한 가장 온전한 환대이다. 에밀리가 용기 있게 반복한 이별의 이야기를 듣고 에밀리를 찾아다니던 ‘나’의 마음에도 작고 희미한 볕이 든다.-박혜진 해설 중(312)”


#문지혁 #고잉홈 #문학과지성사 #GOING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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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M 위픽
김유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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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담 작가의 [스페이스 M]을 읽었다. 위즈덤하우스 위픽 시리즈 작품이다. 표지에는 “열심히 벌어 멀쩡한 집이라도 한 채 마련하고 싶은”이라고 쓰여 있어, 거주 불안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주인공인 가사도우미 연순은 걸그룹 출신의 배우 신지유의 집에서 일한다. 우연한 계기로 신지유는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인물로 대중들에게 호감을 주었고,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하지만 실상은 연순이 치우고 정리하여 신지유의 집을 광채나는 깔끔한 집으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연순은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 코웃음이 나지만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그저 열심히 청소를 하고 분리수거 및 신지유의 에코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가담해야만 한다. 하지만 연순에게도 고충이 있었으니, 신지유와 동거하다시피하는 곱상한 얼굴의 백수 남친이 집안을 난장판으로 어질러 놓거나 청소하고 정리해 할 일이 두배로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소설의 말미에 드러나지만 신지유가 만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곱상한 얼굴을 갖고 있지만 게으르고 무능력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연순에게는 남편을 암으로 떠난보낸 후 청소일과 식당일 등으로 악착같이 키워낸 딸 하나가 있다. 하나는 엄마의 바람대로 성실히 공부해서 간호대를 졸업했지만, 딸의 꿈은 가방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하나는 간호사를 그만두고 가죽시장의 공방에서 가방디자인을 배우며, 신지유의 흉을 보는 엄마에게 신지유처럼 살고 싶다며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연순이 딸이 한 달 째 연락이 닿지 않아 전전긍긍 하는 동안에 불쑥 신지유처럼 예쁘게 낳아주지도 못하고, 넉넉한 형편에 하고 싶은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주지 못한 것에 몹시도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신지유가 한량같은 놈팽이를 내치고 방이 3개인 한강변이 보이는 좋은 아파트로 이사한 후에는 한 평생 이렇게 마음에 드는 집 하나 같지 못하고 2시간 가까이 출퇴근 시간이 걸리는 자신의 삶이 처량하게만 느껴진다. 신지유가 일정으로 집을 비운 날이면 어두워진 강변을 바라보며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연순에게는 하나의 사치처럼 느껴지는 일상이 이어진다. 


하지만 딸 하나가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이 되는 마음에 찾아간 자취방 앞에서 하나를 찾는 경찰을 만나게 되고, 엄마 연순은 딸이 가짜 명품 가방을 만드는 공방에서 일한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전해듣게 된다.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는, 혹시나 어디서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닐까 걱정만 커져가는 차에 연순은 신지유의 새로운 남친인 이선호의 방을 정리하다가 하나의 이력서를 발견하게 된다. 연순은 공유 공간 스타트업을 하는 이선호가 대체 자신의 딸과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추궁하다, 이선호가 만든 놀라운 공간을 방문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재의 가능성이 담긴 이야기이지만, 연순이 미니어처 랜드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펼쳐지게 된다. 연순은 홍채 인식과 지문 인식까지 거쳐 강남 한폭판에 있는 비밀스러운 건물에 들어간 후 안내 직원의 인도로 캡슐 안에 들어가 이상한 약을 먹고 10분의 1로 몸이 작아진다. 몸이 작아진 연순은 작아진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새로운 오피스텔과도 같은 주거지에 들어갈 수 있게 되고, 그곳은 연순을 비롯한 많은 도시인들이 꿈꾸던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깨끗한 거리를 산책할 수 있는 아파트 단지 같은 곳이었다. 연순은 그곳에서 연락이 닿지 않던 딸 하나를 만나게 되고, 하나는 우연한 계기로 그곳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며 미니어처 랜드의 30평 가량의 집에서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었다. 하나는 그곳에서 공방이 묻을 닫기 전에 가져온 좋은 가죽 재료로 자신만의 가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기에, 연순은 하나의 꿈을 이제라도 뒷받침 하겠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함께 머물며 신지유의 가사도우미를 지속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약을 먹고 본래의 몸으로 돌아왔다가 다시금 작아지는 과정이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인지 걱정되기 시작하고, 더군다나 비밀유지가 필수적인 이러한 특수한 공간에 들어온 입주과정이 너무나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는 사실 또한 의심스러워진다. 신지유의 거짓된 에코프로젝트의 일환인 한정판 에코백이 당근 마트에서 10만원이 넘게 거래된다는 사실을 알게된 연순은 딸에게 그 에코백을 팔아 용돈이라도 쓰라고 건네고, 하나는 에코백을 조금더 비싸게 팔기 위해 미니어처로 만든 명품백을 함께 팔려고 올렸다가 하나가 만든 미니어처 명품백이 주목을 받게 된다. 어떤 사람이 그 미니어처 명품가방을 키우는 강아지가 매도록 올린 사진이 화제가 되었고, 하나에게 또 다른 가방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하나는 미니어처 랜드의 삶을 마감하고 현실로 돌아가려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자신이 그곳에 입주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다 이선호 대표를 의심하게 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너무나도 현실적인 주거 문제로 시작된 연순과 딸 하나의 이야기에 순식간에 몰입되었다가, 미니어처 랜드가 나오는 장면부터는 진짜 이런 곳이 생긴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이 지속되었다. 비싼 소고기를 한근만 사도 몸이 작아지면 한 가족이 며칠 동안 먹을 수도 있고, 거의 대부분의 식재료를 조금만 소비해도 되기에 엄청 효율적일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라는 소설에서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6분의 1크기로 작아지는 것이었고, 아주 오래전에는 현재 인간 보다 6배가 큰 인류가 존재했었다는 증거를 빙하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가정을 토대로 현재의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6배 작은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에마슈라는 소형인간을 만들어낸다. 이후에는 에마슈를 동일한 인간 존재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사건들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이선호 대표가 만들어낸 서울 시내 가장 번화한 곳에 있는 공유 스페이스는 원래의 면적으로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살 수 있겠지만, 10분의 1로 축소된 사람들은 거의 모든 제반비용 역시 10분의 1 수준으로 감당하기만 하면 되기에 그동안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곳에서 편안히 출퇴근을 하며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다. 저자가 소설 속에서 만들어낸 미니어처 랜드인 스페이스 M이라는 특별한 공간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계의 단면이 아닐까 싶어 현실로 돌아온 연순과 하나의 마음처럼 허름한 연립주택과 자취방이 더욱 씁쓸하게만 느껴진다.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아파트 단지의 조경을 많이 참고했어요. 이곳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었거든요. 코딱지만 한 방에서 겨우 웅크리고 자다가 깨서 출근하는 삶이 아니라 거실과 방, 화장실이 분리돼 있고 집 앞에 산책로와 조깅 코스도 마련돼 있는 그런 주거 환경이요. 그러게 꼭 대단한 부자들만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니길 바랐고요. 어떠세요?(99)”


#김유담 #스페이스M #위즈덤하우스 #위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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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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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작가의 [로기완을 만났다]를 읽었다.  한 때 e-book으로만 책을 구매했던 때가 있었다. 종이로 된 책보다 휴대가 용이하고 어두운 공간에서도 가독이 가능해 지금 스마트폰의 반 만한 화면으로도 책을 읽은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전자책을 구매하지 않게 되었고, 여전히 종이로 된 책의 물성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어쩌다 가끔은 미리 읽을 책을 구비하지 못했을 때 급하게 전자책을 구매하기도 한다. 그렇게 짬을 내어 구입한 전자책들은 대부분 읽다가 그만둔 후 종이로 된 책처럼 눈에 띄지 않아서 그런지 읽던 페이지에 그대로 멈춰 있는 경우가 많았다. [로기완을 만났다]가 그랬다. 벌써 몇 년 전에 절반 정도를 읽다가 그만둔 채로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할 텐데 생각만 할 뿐 구입해놓은 다른 책들을 읽다보니 또 다시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대대적인 홍보에 이어 개정판이 나왔다는 소식에 차라리 종이책을 구입해서 읽자고 결심했고, 왜 알리딘 배너 창에 ‘숨이 멎을 것 같은 완벽한 작품’이라고 칭송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과대광고가 아니라 정말로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주체할 수 없는 감동과 슬픔이 태풍처럼 밀려왔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한 사람이 타인의 마음을 이 정도로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대체 얼마나 오랜시간을 고뇌하고 이해하려고 기다려왔기에 자기 자신조차 잘 알지 못하는 죄책감의 근원을 이토록 적절히 해체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할 수 있는 것인지 놀람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김작가는 방송국에서 나중에 연인이 된 재이 피디와 함께 형편이 안 좋은 사람들의 사연을 25분짜리 미니 다큐로 만들어서 전화 ARS로 후원을 받는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로 일한다. 김작가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얼굴에 큰 혹이 생긴 윤주를 만나게 되었고 윤주가 더 많은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수술을 미루다가 조직 검사를 통해 악성 종양임을 전해 듣게 된다. 윤주를 살리고자 애썼던 마음이 송두리째 무너지며 엄청난 죄책감에 휩싸인 김작가는 차마 윤주에게 그 비극적인 소식을 알릴 용기가 나지 않아서 재이에게 이별을 고하며 윤주를 외면하게 된다. 방송국을 그만두고 김작가는 우연히 시사주간지에서 탈북 청년 로기완에 대한 사연을 읽게 되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무작정 벨기에의 브뤼셀로 향한다. 


김작가가 로가 머물렀던 과거의 시간을 뛰따라가며 방송을 위해 글이 아니라 자기만의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표면적으로 드러냈지만, 사실은 로가 남긴 일기의 한 구절이 김자가를 떠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김작가는 브뤼셀에 도착하여 로가 난민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준 박을 만나게 되고 로가 남긴 노트를 통해 탈북 이후의 발자취를 그대로 재현해보기로 한다. 2007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로는 159센티의 외소한 몸을 가진 20살의 청년으로 유로 버스를 타고 낯선 곳에 도착하게 된다. 거인국의 후손인 것처럼 보이는 그 나라의 사람들 속에서 소년으로 보이는 로는 남루한 옷차림 속에 어머니의 목숨값에 달하는 650유로를 방수포에 칭칭 감고 남한 대사관에 갈 날을 하루하루 미루게 된다. 김작가는 로가 걸어가며 마주했을 처음보는 낯선 세계에 대한 묘사와 숙박비를 지불하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어떤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었는지 로를 외면하고 무시했던 이들에게 뜬금없은 분노를 드러내며 윤주를 마주하지 못하고 떠나온 자신을 경멸한다. 


3년 전 로가 거리에서 쓰려져 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하고 길 잃은 청소년이라 여겨져 고아원에 보내진 것을 계기로 박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뜻밖의 연속된 은인을 통해 정식 난민 지위를 얻게 된 과정 속에서 안도와 감사의 마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김작가가 로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뒤를 따라간 시기가 2010년 12월이라 그런지 비록 소설 속의 설정이지만 동시간대에 유럽에 머물렀던 시간이 떠오르며 축축하고 칙칙한 하늘이 반복되는 그때의 마음이 아주 조금이나마 로가 지녔던 애달픔에 닿았으리라 생각하니 더더욱 가슴이 아려왔다. 생면부지의 알수도 이 다음에도 만날 길이 없는 익명의 누군가임에도 불구하고 김작가가 윤주를 생각하며 자신의 가식적인 진심을 단죄하며 보낸 시간들은 박이라는 또 다른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갑작스럽게 치유받게 된다. 


이런 우연한 타인의 만남들이 마치 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는 꿈같은 일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사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놓치고 그리워하다가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우연한 만남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치유된 현재의 나는 무상으로 주어진 그 타인의 애정어린 선물에 보답하는 길로 또 다른 타인에게 무상의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이 세상의 또 다른 로가 구원될 수 있기를, 또 다른 김작가가 용기를 내어 윤주에게 전화를 걸 수 있기를, 또 다른 박이 아내가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하도록 한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염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디에 있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꺼번에 유인하던, 그애의 오른쪽 뺨과 턱을 감싸는 얼굴만큼 커다란 혹이 그애에게서 아름답고 당당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고는 타인의 외로움을 위로할 줄 아는 목소리를 부여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면 그 비참한 선물이 가혹해서 출처와 분량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그 혹은 근육과 핏줄, 신경으로 이루어진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라 타인의 무분별한 시선 한줌과 그 시선에 놀란 여린 마음 한줌,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흘려야 했던 눈물 한줌으로 이루어진 이상하고도 잔인한 윤주의 또다른 얼굴이면서 사람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는 그애의 진짜 인생이었다.(24-25)”


“연민이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진보하다가 어떤 방식으로 소멸하는 것인가. 태생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그 감정이 거짓 없이 진심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포기되어야 하는 것일까.(58-59)”


“진심이란 것에 병적으로 엄격했던 우리가 언어가 책임질 수 있는 영역 역시 가변적이고 생각보다 훨씬 협소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감정적 차원의 진실이란 한순간에 급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추억을 헌납하며 조금씩 만들어가는 공유된 약속일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그 시간이 조심스럽게 준비해놓은 구체적인 사건들도 있어야 한다. 사랑이란 언어가 그 모든 것을 보듬어준다고는 믿지도 않았고, 이제부터 연인이 되자는 식의 선언은 유치하게 느껴졌다.(72)”


“나는 배고프의 끝을 모른다. 가난은 늘 상대적이었고 더 가진 사람들의 시선으로 상상하여 바라본 대상화된 박탈감이었을 뿐이다. 대학 시절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언제나 과외 아르바이트를 두세개씩 해야 했기 때문에 엠티니 농활이니 하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고 말했을 때, 재이는 진정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주었다. 그때는 내게도 아무런 거부감이나 감상 없이 상대의 연민을 이끌어낼 만한 단서 하나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기까지했다. 그러니까 내게 배고픔은 가상의 영역일 뿐 현실의 차원은 아닌 것이다. 나는 배가 고파서 헛것을 보거나 구걸을 한 적이 없고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비참하게 쓰러지는 경험도 해본 적이 없으며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은 없다.(161)”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222)”

언제나 거창한 족적을 남기는 것만이 성공한 삶으로 여겨지는 세상의 논리 한 가운데에서 얼마나 위로가 되는 한 마디인가. 미안한 마음, 진심을 다하는 것인지 고뇌하는 마음, 가슴 저미는 아픔에 머무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삶이 완성되기를…


#조해진 #로기완을만났다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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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황석희 - 번역가의 영화적 일상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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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희 번역가의 [번역: 황석희]를 읽었다. 부제는 “번역가의 영화적 일상 에세이”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 더군다나 아무리 본인의 책이라 하더라도 제목에 자신의 이름을 걸 수 있다는 것은 웬만큼 업계에서 인정받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저자도 언급했듯이 책 제목에 떡하니 이름이 드어가는 걸 몹시도 민망해 했을 것 같은데, 번역 콜론 황석희라는 제목을 주장했을 편집자 측은 이보다도 더 이 책이 가진 매력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게 없다는 지론에서 결국 쾅쾅 낙점되지 않았을까 싶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자막을 읽기 귀찮아서 그런지 외화보다 우리나라 영화를 즐겨보게 되었다. 집에서 TV로 볼때는 외화도 상관없지만 극장에서 거대한 스크린으로 자막을 쫓다보면 화려한 장면이 주는 효과를 제대로 만끽하지 못할 때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자막을 읽기 불편한 자리에 앉게 되면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멀미도 나고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입장이 되고 나니 이태리에 머물 때 거의 모든 외국 영화를 더빙하는 그 나라의 영화 문화를 도통 이해하지 못하고 투덜거렸던 모습이 떠오른다. 가뜩이나 외국어를 듣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 차라리 자막을 보면 영화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이태리의 거의 모든 극장에서 더빙을 한다는 것을 알고 실소를 금치 못했었다. 아니 대체 왜? 아마 지금처럼 우리나라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상을 받아도 이태리에서는 우리나라 배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문맹률과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이태리 사람들은 자막 읽는 것조차 귀찮은 게으름뱅이가 틀림없다고 나만의 결론을 내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와 다시 생각해보면 더빙으로 인해 조금 어색한 감이 있어도 자막을 읽지 않고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은 더 많은 이들에게 편안함을 주었을 것이다. 아무튼 워낙에 오페라와 연극 등 영화 말고도 극적 문화가 발달한 나라라 그런지 전세계 배우들의 목소리가 몇 명으로 압축된다는 웃픈 결론에.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영상 번역가라는 특이한 직업의 특성을 자세히 엿볼 수 있었다. 번역이라는 작업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섣불리 덤빌 일도 아니지만,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수많은 관객들의 피드백을 순식간에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조금은 무서운 일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저자가 언급했듯이 아무리 숙련된 프로 번역가라 하더라도 영화마다 5개 이내의 오역이 생길 수 밖에 없다니, 오역을 낱낱이 지적하며 힐난하는 메시지를 받게 되었을 때에는 꽤나 큰 심리적 충격을 받지 않을까 싶다. 사실 그 몇 개 안되는 영화를 이해하는 데 별 무리가 없는 오역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닐텐데도 익명의 그림자에 숨어 오역을 찾아냈다는 우월감을 비하의 언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저자처럼 유명해진 번역가도 이런 DM을 수없이 받는다고 하니 대중 매체에 얼굴과 이름이 알려지는 대중문화와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내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진실을 호도하고 의도된 곡해와 자의적 해석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정말로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번역가가 있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혼란스럽지 않을텐데, 영화와 같은 우리 삶에서 극적 반전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런 무용담이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엉뚱한 환상을 심어준다는 데 있다. 그 직업을 하기 위해선, 정확히 말하면 그 직업에서 성취를 이루기 위해선 영웅적이고 운명적인 서사가 필연적이라는 인상을 남기는 거다. 성공한 사람의 부풀려진 사연이 미디어에서 한번 더 가공되어 환상을 심고 그걸 본 사람들의 기를 죽인다. 너무 꼰대 같고 재미없는 소리지만 일정한 성취에 기본이 되는 건 따분하고 지루하고 고된 반복을 묵묵히 견디는 무던함, 그리고 제 살길을 어떻게든 찾아내 지속할 줄 아는 현실감이다. 대개는 그런 것들이 쌓여 성취가 된다.(88-89)”


“원복을 훼손한 번역자를 비판하거나, 반대로 번역을 상찬하며 원작을 절하하는 과정에서, 때로 문학적인 담론의 지점을 넘어 이 책의 ‘영광’이 과연 누구의 것인가를 질문하며 어느 한쪽을 선택해 공격하거나 배제하는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는데요. 실은 모두가 알다시피 문학은 성공과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문학은 사업이 아니고, 문학 작품은 사업적 결과물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덧없는 것이고, 그 덧없음의 힘으로 진실과 직면하는 것이고, 세계와 싸우며 동시에 말을 거는 것입니다. -연합뉴스 <한강, 채식주의자 오역 60여 개 수정… 결정적 장애물 아냐> 2018.01.29 (148-149)”


#황석희 #번역황석희 #달 #번역가의영화적일상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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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 - 나를 살리러 떠난 곳에서 환자를 살리며 깨달은 것들
김준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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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일 님의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를 읽었다. 응급이라는 말만 들어도 갑자기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며 손에 응근한 땀에 베어드는 느낌이 든다. 요란한 비상벨소리를 울리며 황급히 움직이는 구급차를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위급한 상황을 맞이했구나 라는 찰나의 연민의 마음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멀쩡히 하루를 보내고 있음을 감사하는 이기적인 안도의 한숨 또한 뱉어낸다. 예전에는 그렇게 엠블런스를 탈 정도로 위급한 일은 마치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딴 나라의 얘기처럼 생각하고 지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지금까지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굉장한 기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는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여러번 느꼈다. 저자가 응급구조사로서 맞이했던 상황의 묘사가 너무나도 상세해서 마치 눈앞에 그 끔찍한 장면들이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더이상 이어지는 장면을 따라갈 용기가 나지 않고, 그냥 예전의 어리숙한 생각처럼 그런 일은 나와는 무관하다고 외면하고만 싶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힘든 상황을 자신의 온 몸으로 체험한 저자와 그의 동료들은 어떻게 하루 하루를 견디며 자신만의 삶을 일구어 갈 수 있는지 궁금했고, 그들의 삶에 존경을 표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저자가 들려주는 내용에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의무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곧 트라우마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높아졌다. 그러다보니 응급구조사들이 현장에서 겪게 되는 심리적 충격과 스트레스는 아마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사고로 처참하게 일그러진 사람의 형체와 피로 범벅된 현장에서 느꼈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아마도 시시때때로 불현듯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재생될 것이다. 아마도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자주 심각한 충격에 자주 노출되는 상황을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응급구조사를 선택하고 자신의 온 삶을 타인의 위급한 상황을 위해서 헌신하는 이들에게는 아마도 아주 특별한 은총이 주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글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 믿음의 유무를 떠나서 신의 손길이 머물다 간 것이라 생각되는 장면이 묘사가 있다. 도저히 어떤 절대적 힘의 개입이 없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사람들은 억세가 운이 좋았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혹자는 강철멘탈을 소유한 이들에게만 가능한 일이라는 부연 설명이 붙을지 모르겠지만 한 인간의 마지막 순간에 절대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에게는 분명 특별한 힘을 하느님께서 주셨을 것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캐나다라는 복지 국가에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 분명 우리보다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그곳 또한 삶의 터전을 일구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던 과거의 인물들이 있었고 여전히 생계를 꾸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이들이 있음을. 특히나 저자가 가족들과 이민을 떠나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해 가슴 졸인 시간들에 대한 회상은 그가 얼마나 큰 두려움을 갖은 채 차 안에서 혼자 눈물을 삼켰을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결국은 수많은 응급 호출에 익숙해지며 능숙한 파라메딕이 되어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은 우리가 삶의 마지막을 잘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마주했던 수많은 노년의 병을 앓고 있던 이들의 집에는 그들의 과거를 떠올 수 있는 지난날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액자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시절을 누렸던 그 누구도 언젠가는 내 몸 하나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며,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배설물을 뒤짚어 쓴 채 전혀 모르는 응급구조사의 손길에 자신의 몸을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삶의 마지막이 너무나도 비참하고 쓸쓸하게 느껴지지만 결국 먼지에 불과한 존재로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함을 하루 빨리 인정하고 받아들여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살아간다면 죽음 또한 잘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돈이 없을 때는 돈이 많아지면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픈 환자를 자주 접하다 보니 건강하게 살면 잘 사는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돈이 많아도, 몸이 건강해도 결국 삶의 종착점이 그런 모습이어야 한다면 잘 사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했다. 나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이 제일 중요한 생활인인지라 그런 일로 마냥 우울해할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그 생각이 문득문득 치밀어 올라올 때면 답도 안 나오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고, 다시 잠깐 잊었다가 묻기를 되풀이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질문 하나. '내 삶의 끝을 알게 되면 지금이, 그리고 앞으로의 삶이 더 행복해질까?'(229)"


"우리는 저마다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을 갖기 위해, 혹은 더 갖거나 뺏기지 않기 위해 애쓰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분명 그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인정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저 열심히 살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짜 중요한 것들을 챙기며 사는 법은 잊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지만 결국 우리는 다 똑같이 죽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까닭에 쉽게 느끼지 못할 뿐 죽음은 삶과 외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오히려 우리 인생길 바로 옆에서 함께 조용히 걷고 있을 뿐이지요. 따라서 죽음은 삶의 일부분이며, 잘 죽는 것은 우리 삶의 마침표를 잘 찍는 것과 같습니다. 환자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돌아보면서,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것들을 잘 가꾸어 살다 보면 언젠가 다가올 죽음 또한 잘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도 애쓰며 사는 우리들의 수고를 더 가치 있게, 그리고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을 더 풍성하게 해줄 것이며, 그런 것들이 모여 결국 죽음까지 포함한 우리의 삶을 더 의미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251-252)"


#김준일 #나는캐나다의한국인응급구조사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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