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뚫기
박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선우 작가의 [어둠 뚫기]를 읽었다. 한 인물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의 유년시절이 말도 못할 정도로 힘겨운 고통의 장애물을 겪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빨리 흘러가기나 할 것처럼 주인공의 어려운 유년시절은 휙휙 지나가고, 그 시간을 바탕으로 단단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이들은 주인공의 고통의 순간에 쉽게 몰입되어 성숙한 어른이 된 주인공에게 마음 속 박수를 보내며 당연한 보상이 주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간과하게 되는 것은 실존의 인물이 거쳐간 시간의 거대함이다. 배가 고파 시장통에서 만두 하나를 훔쳐 먹다가 걸려서 호되게 얻어터지는 일이 수일째 지속된다면, 빚지고 도망간 애비 때문에 사채업자들에게 몇 년간 시달리게 된다면, 갑작스러운 사고로 하루 아침에 가족을 잃고 이리저리 삶의 터전을 옮겨야만 하는 처지가 유년시절의 전부라면 그래도 우리는 단단해지고 성숙해진 인물을 보며 당연한 보상을 받았다고 손쉽게 박수를 보낼 수 있을까? 


돌아보면, 아니 어느 정도 지난 시간보다 안정되어 자리를 잡게 되면 대체 그 지옥같은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낸 것인지 스스로가 놀라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놀람의 이유는 현재의 내가 과거와 동일한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일 지금도 그때처럼 힘들다면, 어쩌면 그 긴 터널을 견디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아예 견뎌내볼까 하는 희망조차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고 싶을 때, 한 걸음만 더 내뎌볼까 하는 작은 용기가 생겨나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바꾸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아닌가 싶다. 

오랜시간 고질병처럼 잘 고쳐지지 않는 습관 중의 하나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동료의 삶의 행태를 험담하는 말투였다. 개는 대체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면서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데, 개는 대체 왜 그렇게 일을 하는건데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사소한 것까지.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사람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나한테 피해가 오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정말 답답하고 걱정이 되면 직접적으로 말하거나 도움을 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뒷담화를 마치고 혼자가 되면 몹쓸 것을 먹은 것처럼 텁텁함이 입안을 가득채웠음에도 마치 중독된 것처럼 다음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험담을 위한 험담과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디선가 나 또한 그 담화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번 소설을 읽고 특히나 말미에 화자인 '나'가 엄마와의 있는 그대로의 관계와 존재를 인정하는 부분에서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혈족인 엄마조차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말과 행동들을 수십년 간 반복해오고 있음에도 한 치의 양보조차 없이 싸움과 갈등이 오고 가지만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해결책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주인공의 커밍아웃에도 엄마는 여전히 아들이 연애를 하고 결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큰아들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의 말을 홧김에 했다는 것조차 부정하며 연락이 없는 큰아들 내외를 욕하면서도 명절이 되면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전을 잔뜩 부치는 모습이 영 탐탁치 않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저명한 예술가 게이들이 엄마에게 집착하는 것처럼 서른 일곱살의 나이에도 독립하지 않고 엄마와 함께 살아간다. 

시대가 아무리 변했다 해도 게이로 살아가며 데이팅앱으로 만난 이들과 성적 욕구를 해소하고 행여나 데이트 폭력을 당하지는 않을까 염려하며, 그 무엇으로도 자신의 성정체성이 바뀌지 않을 것이고 반복된 만남 끝에 들려오는 모멸의 말들이 주인공을 비참하고 슬프게 만든다. 결국은 이렇게 살아갈 바에는 그냥 차라리 이 모든 것을 끝장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란 우울함의 단초는 아마도 주인공이 부단히 편집자로서의 일상을 살아가고, 그 일상의 원천은 40년을 넘게 미싱일을 마치고 나서도 몸을 움직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엄마의 성실함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그 강인한 엄마 또한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던 가슴 아픈 일을 아무렇지도 않고 아들에게 고백하는 말을 통해 주인공은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가 비록 세상에서 이해받지 못하는 어둠 속에 내동댕이쳐진 존재인 것 같지만 그렇게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듯이 자신을 비난하는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나가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그 짙은 어둠 또한 뚫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나 주인공이 글쓰기 아카데미를 열어 수강생들과 꽤 괜찮은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속깊은 이야기를 글로 쓰고 나누는 시간을 갖았음에도 막상 아카데미 일정이 끝나고 나서는 아무도 서로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는 모습을 훈련소에서 퇴소하는 장면과 결부시킨 것이 인상적이었다. 훈련소마다 다르겠지만 퇴소를 앞둔 훈련병들이 갑자기 그동안의 땀과 고통이 한 순간에 밀려와서 일지 수백명의 남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자대에 가서도 휴가 나오면 꼭 연락하자며 연락처를 주고받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대 배치를 받고 휴가를 나가서 연락을 했을까 하면 당연한 대답은 '미쳤냐' 였으니. 그렇다면 아카데미에서 글쓰기 수강자들이 그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과 퇴소식의 훈련병들이 서로를 얼싸안고 울며 연락하자는 약속을 잡은 것은 어떻게 가능했던 일일까? 

박선우 작가는 수상 작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끝을 상정해야만 진심을 다할 수 있다고. '헤어짐'이라는 결말이 정해져 있기에 함께인 지금을 충만하게 보낼 수 있다고.(244)"

그래서 그런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누군가를 험담하는 불필요한 악습을 떨쳐내고 진심을 다해 자신의 어둠을 마주해야 할 이유를 깨닫게 해 준다. 
"언젠가는 정말 혼자서 아침을 맞이하게 되리라. 엄마 없이 살아가게 되리라. 그런 날은 올 것이다. 모든 것은 종료되니까. 마지막에 이르고, 기어이 끝나고야 마니까. 
놀라운 사실은 끝을 가듬하다보면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희미하게나마 어떤 가능성들이 눈에 보일 듯하고 손에 잡힐 듯 아른거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한 걸음, 적어도 한 걸음은 더 옮길 수 있다. 속는 셈 치고 하루만, 오늘 하루만 더 하면서.(220-221)"

"나는 이제부터 변할 거라고,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멀어지게 될 거라고,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둔 채 살아가게 될 거라고, 선배가 울 뻔했던 이유는 그걸 다 알고 있어서라고, 왜냐하면 우리는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지금도 자식이긴 하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를 사랑했던 것과 지금 부모를 사랑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까, 그건 아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르니까, 그런 걸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게 시간이 지닌 또다른 힘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내놓을 수 있는 순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런 건 소설 속에서나 이렇게 쓰일 뿐이니까.(180)"

#박선우 #어둠뚫기 #문학동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원에 빚을 져서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4
예소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소연 작가의 [영원에 빚을 져서]를 읽었다. 근래에 들어 저자의 책을 자주 접하게 된다. 얼마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그 개와 혁명'을 읽고 나서 순식간에 팬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을 두 작품은 아버지를 잃고 나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지독한 상실감에 몰입된 저자의 실제상황을 바탕으로 삼아 이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공통된 죽음이라는 이별의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 준다. 주어진 일의 특성상 또래에 비해 젊은 나이부터 죽음의 과정을 지켜볼 일이 많았다. 그래서 남들보다 폭넓은 공감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나에게 실제로 벌어진 영원한 이별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수없이 머리속으로 상상해온 시물레이션을 통해 그 이별의 슬픔을 낱낱이 기록해두려고 했었다. 시간이 더 많이 흐른 후에 1분 1초의 순간이 그리워질 때를 대비해서 영원히 잊지 않고 되새길 수 있도록 슬픔을 남겨두려 했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순간이 다가오고 폭풍같은 이별의 순차적인 절차를 밟고 나니 그게 얼마나 큰 만용이었는지 절실히 느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문득문득 두렵고 절망적이고 도저히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 마지막 순간들이 불현듯 내 삶을 덮쳐오자 도망가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옅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때의 그 슬픔의 장면들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는 더 이상 예전처럼 지내지 못할 것만 같아 애써 외면하려고만 했다. 그러니 슬픔의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이었는지, 짐짓 그동안 내가 어른스러운척 건냈던 어쭙잖은 위로의 말들은 헤아릴 수 없는 슬픔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던 무력한 나를 감추려던 노력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런데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저자의 소설을 읽으며 참 많은 위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영원한 이별 이후에 다가오는 상실의 아픔에 몰입되어 그 슬픔을 잊지 않으려는 것이 남겨진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임을 알게 되었다. 소설은 화자인 나와 함께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떠났던 친구인 혜란과 석이의 이야기이다. 석이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이 뜸해진 혜란과 함께 석이를 찾아 다시금 캄보디아로 떠나게 된다. 화자인 '나'는 소설 속에서 엄마를 잃은지 얼마되지 않아 다른 사람의 사정에 마음을 준 여유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캄보디아에 가는 것이 석이에게 주었던 상처에 용서를 구하는 유일한 길임을 자각하고 있는 중이 아니었을까 싶다. 셋 중에 가장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석이는 캄보디아의 봉사활동 중에 절실한 믿음을 갖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화자인 동이와 혜란에게 세월호 사고와 같은 참사의 비극을 재생시킨다. 


석이를 찾으러 캄보디아에 도착한 동이와 혜란은 봉사활동 시절 석이와 가까웠던 학생인 삐썻을 다시 만나게 되고, 오래 전 삐썻과 함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캄보디아에서도 비슷한 사고에 대해 언급했던 석이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프놈펜에서 큰 물축제가 열리는 날 사람들이 먼저 입장하려고 마꾸 뛰다가 다리 위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되었고 3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끼어서 질식사를 하게 되었다는 얘기에 석이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뭐 그런 죽음이 다 있어.(58)"

동이와 혜란은 삐썻과 함께 석이가 왔을 것이라 짐작되는 꺼삑섬의 다리에 도착하여 당시 참사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듣게 된다. 정부가 책임을 지우려는듯 원래 있던 다리의 일부를 무너뜨리고 새 다리를 지었음을.


"나와 혜란은 사고의 흔적이 너무도 명백하게 지워진 그 다리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왜 산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흔적을 필사적으로 지우려고 할까. 또 어떤 죽음은 거룩하게 포장되고 어떤 죽음은 조용히 잊힌다. 그것이 과연 단순한 우연에 불과한 걸까? 나는 다시 한 번 내가 경험했던 그 거대한 상실을 떠올렸다. 엄마의 죽음. 나는 엄마의 죽음을 통해 갈라지고 쪼개지고 으깨지고 녹아내렸다. 

상실은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수많은 상실을 겪은 채 슬퍼하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거고 그것은 나와 관계 맺은 이들에게까지 이어질 것이다. 엄마를 잃음으로써 내가 상실을 겪었듯, 누군가도 나를 잃음으로써 상실을 겪을 것이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 상실의 늪 속에서 깊은 슬픔과 처절한 슬픔, 가벼운 슬픔과 어찌할 수 없는 슬픔들에 둘러싸여 종국에는 축축한 비애에 목을 축이며 살아가게 되겠지. 

'나는 슬픔을 믿을 거야.'

처량하고 처절하고 절실한 것들을 믿을 거야.(112-113)"


상실의 아픔과 슬픔에 절여져 일상이 무너지는 꼴을 무심하게 방관하는 것 또한 나에게 벌어진 불가항력적인 일을 받아들이는 절차 중의 하나임을 깨달아 간다. 그렇게 점점 희미해지다가도 이러다가는 완전히 다 잊어버릴 것만 같아 뒤늦게나마 조금씩 용기를 내어 하나씩 조심스레 슬픔의 장면들을 톺아보는 것은 작가의 말에 나온 것처럼 아마도 나를 강건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싶다. 


"나와 나 아닌 이들의 삶은 아주 복잡하고 교묘하게 얽혀 있고 그 얽힌 모양을 면면히 바라볼 수 있으려면 우리는 다름 아닌 서로의 슬픔에 의연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틈틈이 슬퍼하고 그 슬픔을 평생 간직하겠다는 태도야말로 나 그리고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저는 지금 슬퍼하고 추억하며 비로소 온전함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빈자리를 곱씹으며 비로서 시절을 떠올리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슬픔 앞에 무력하지만 그만큼 단단해진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껏 슬퍼하고 그것을 내보이기로 했습니다. 

잠시 잠깐이라도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일을 계속해서 해나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차창 너머 말간 하늘을 바라볼 때, 새가 아주 높이 날고 있을 때, 앞으로는 강건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다짐을 할 때.... 저는 마음속으로 죽은 사람을 호명합니다. 그래야 산 사람도 살고 죽음 사람도 산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점점 더 희미해지겠죠. 그래도 끝끝내 붙잡고 있어보려고 합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작가의 말 중에서(144-146)"


#예소연 #영원에빚을져서 #현대문학 #핀시리즈0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장류진 지음 / 오리지널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류진 작가의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을 읽었다. 꽤 오래 전에 헬싱키를 경유하는 핀에어를 이용한 적이 있었다. 경유 시간이 짧아 공항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기에 그저 깔끔하고 모던한 헬싱키 공항을 둘러보다 가판대에 적힌 콜라값을 보고 기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북유럽의 물가가 상상 이상이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의 거의 두배값에 달하는 가격 표시를 보고 이곳이 경유지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잊고 있었던 헬싱키 공항의 기억을 불러일으킨 이번 에세이는 핀란드에 대한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고, "여름에 서유럽을 왜 가? 무조건 핀란드지"라는 저자의 단호한 외침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핀에어 항공 사이트를 뒤적거리게 된다. 


핀란드의 쿠오피오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지역에 교환학생으로 당첨된 저자의 회상과 더불어 에필로그에서 가명을 쓴 친구 예진과의 리유니언 여행을 다녀온 후기를 따라가다보니, 나도 모르게 2008년이라는 평행이론에 마음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2008년 1월부터 교환학생으로 쿠오피오에 머물렀다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2008년 2월부터 해외살이를 시작했었다. 아 우리는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같은 시기에 비슷한 낯섬과 새로움을 느끼며 긴장감 넘치는 하루하루를 보냈겠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때는 그곳이 그렇게 지긋지긋할 정도로 벗어나고 싶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때가 어쩌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함께 교환학생으로 절친이 된 저자와 예진이라는 친구는 15년 만에 다시금 쿠오피오를 방문하게 된다.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졸업과 취업, 결혼과 출산이라는 인생의 커다란 획을 그을만한 사건들이 훅훅 지나가고 21살 때의 발자취를 뒤따라 가보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그때의 자신을 커다란 나무 뒤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평행이론에 끼어맞춰보자면 2년 전에 가장 친한 동기와 내가 처음 유학생활을 시작했던 곳을 방문했었다. 사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일부러 기차를 타고 서너 시간을 가야했기에 구태여 바쁜 여행 일정에 넣을 필요가 없었지만, 내가 머물렀던 곳을 동기 또한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말해줬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 한 번도 재방문하지 않았기에 내심 그곳을 가보고 싶었던 나로서는 더할나위 없이 설레이는 순간이었다. 성탄절을 앞두고 있기에 단테의 동상이 서 있는 광장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 있었고 온통 붉은색과 녹색이 앞다투어 꾸며진 아치를 지나 아기자기한 장식물을 파는 가판대를 휘휘 둘러보고 나니 먹거리 장터가 눈에 들어왔다. 출출한 배를 채워줄 티롤 지방의 소세지와 더불어 차가워진 몸을 데워줄 글루바인을 먹고 마시니 내가 진짜 여기에 다시 왔구나 라는 새삼스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컨디션이 떨어진 동기가 잠시 쉬겠다는 찰나에 나는 혼자 2008년에 부단히도 많이 걸었던 아주 오래된 다리를 가보았다. 서재의 메인 화면에 걸린 사진 속 오래된 다리의 강변길이 마치 마음의 고향처럼 아련히 새겨져 있었기에 옷긴을 여미고 아직 남겨진 낙엽을 밟으며 지나온 15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어릴 때에는 나이가 많은 분들을 보면서 '도대체 저 분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라는 단순한 생각을 했었다. 이미 인생의 황혼기를 지나 체력도 떨어지고 어딘가 몸이 아픈 곳이 있어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하고 병원을 다녀야 하는 뭔가 서글프게만 보이는 시기에 이른 분들을 보고 나 혼자 지레짐작으로 그분들을 동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흔히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실제로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떨어져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세세히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십대에는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나노 단위로도 세밀하게 떠올릴 수 있다. 오늘 뭘 먹었는지가 아니라 지난 주에 친구 누구랑 몇 시에 만나서 어디로 걸어가 무엇을 먹으며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낱낱이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심지어 오늘 아침에 뭘 먹었는지도 떠올리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마치 내 삶의 어느 부분이 뭉텅이로 잘려나간 것처럼 안개 속에 가려져 돌아보면 하루, 한달, 한해가 지나버린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세밀하기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인생의 축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아무리 지난다 해도 우리 삶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너무나도 생생하다면 남겨진 시간이 두려기만 할테니 말이다. 


이전에 출간된 저자의 소설을 전부 읽었기에 당연히 소설가의 삶을 꿈꾼지 알았다. 그런데 저자가 교환학생으로 머물 당시만 해도 소설가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니 정말 앞으로의 15년 후는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겠지만 부디 애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계속 쓰고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책에 나와 있듯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소설은 읽은 이에게 분명히 무엇인가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남겨주는 삶이 아마도 가장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설이 내 마음속에 남긴 무언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절대 잊히지 않는다. 그건 정말이지 '무언가'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하나의 소설을 읽고 났을 때 각자의 마음속에 서로 다른 형태로 남는 고유한 자국이다. 소설마다 다르고 또 그 소설을 읽는 사람 각각이 다른, 두 지문의 결합같이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지닌 자국.(122)"


두 친구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배려하고 지나온 시간 덕분인지 사우나 안에서 너무나도 간절히 사진을 찍고 싶었던 욕심을 내려놓도록 만든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절친의 몰입에 방해가 될까 싶어 후회할 선택을 똑같이 품은 마음이 아마도 15년 후에 다시금 리유니언하는 원천적인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인생이 여행이라고 치면, 일기는 마치 여행 중에 찍은 사진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의 그 여행지에서만 찍을 수 있는 그 순간의 내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는 사진. 나는 인생이란 여행을 하면서 일기를 쓰지는 못했다. 한 마디로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신, 소설을 썼다.(391)"


아 자작나무 키친웨어 '코이비코'를 사는 부분을 읽고 아무리 검색을 해도 그런 브랜드가 나오지 않기에 정말 우리나라에는 소개가 되지 않은 레어템인가보다 생각했었는데, 에필로그에 나온 가상의 브랜드라는 말에 실소가 터졌다. 아 작가님 진짜 진심이구나, 나중에 코이비코가 대박을 터트리길 기대해본다. 


#장류진 #우리가반짝이는계절 #오리지널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헬로 뷰티풀
앤 나폴리타노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앤 나폴리타노의 [헬로 뷰티풀]을 읽었다. 친하지는 않아도 살다보면 가까워지고 근황을 나도 모르게 전해듣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냥 간단힌 신상정보만 아는 정도에 그쳐서 그런지 평소에는 전혀 생각도 해보지 않은 사람인데, 갑작스럽게 그 사람에게 닥친 불행한 소식이 전해져 올때면 유난히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나 대신 그 사람이 대신 이 극심한 고통의 순간을 맞이한 것은 아닐까란 기우에서부터 시간이 지나 극심한 고통을 겪던 그 사람이 견디다 못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면 한동안은 나 또한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별로 가깝지 않은 나 또한 이럴텐데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사이라면 그 무너진 사람을 바라보는 시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대낮에 지하철을 타면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많다. 이제는 가장 구석에 있는 노약자석만으로는 연세가 많은 분들을 감당할 수 없기에, 그분들도 예전처럼 젊은이들의 양보를 무턱대고 바라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머리가 희긋한 분이 힘겹게 손잡이를 잡고 있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앉아 있는 게 마음 편할 수는 없다. 설상가상으로 분주한 역이 지나고 조금은 한산해진 지하철 안에서 편하게 다리를 꼬을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찰나에 한쪽 발이 약간 기울어진 채 슬리퍼를 끌며 앉아 있는 이들에게 작은 종이를 내려놓는 분이 나타난다. 때로는 그 종이가 아주 너덜너덜해져 별로 손에 대고 싶지 않을 때도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무릎 위에 놓여진 그 종이가 아주 예의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은 비까지 많이 내려 눅눅해진 옷가지와 이미 비에 젖어 축축한 양말에 자꾸 쓰러지려는 우산을 고정하며 슬슬 짜증이 나려는 찰나 내 무릎에 놓여진 종이의 내용을 살펴보게 되었다. 아직 어린 아이가 있는데 일을 할 수가 없는 형편이라 작은 도움을 청한다는 내용이었다. 종이에 담긴 내용을 읽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두루 살펴보았다. 혹시 누군가가 지갑을 꺼내지 않을까? 아 그런데 오늘따라 현찰을 넣고 다니는 지갑을 가져오지 않고 핸드폰에 부착하는 카드지갑만 가지고 나왔으니 천원짜리 한 장도 없는데. 결국 내가 탄 칸에서는 한 푼도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종이를 회수하고 다른 칸으로 넘어갔다. 사람들이 내린 자리에 덩그러니 종이 한 장이 남겨져 있었다. 


아마도 내일이면 그 사람을 금방 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른다. 또 다른 사연이 담긴 종이를 건네는 사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럼 또 마음이 불편해지고 잠시 동안 안쓰러워지고 그날따라 현찰을 갖고 있다면 쭈삣거리며 천원짜리 한 장을 건넬지도 모르겠다. 요즘 같은 때에 천원갖고 뭘 하지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만원짜리를 줄 만큼 배포가 크지도 못한다. 이렇게 시시때때로 편협하게 갖는 연민과 동정의 마음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려 했다니, 알고 지내온 이가 망가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왔던 무력함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만하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네 자매의 삶을 관통하는 남자인 윌리암 워터스는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누나 캐롤라인이 죽게 된다. 윌리암의 탄생과는 별개로 딸의 죽음을 맞이한 윌리암의 부모는 둘 다 상실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윌리암을 방치하게 된다.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오로지 농구공이 튀어오르는 움직임에 위로를 받게 된 윌리암은 자기 자신을 안에 가두어 둔 채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틈도 없이 줄리아를 만나게 된다. 찰리와 로즈의 장녀인 줄리아는 주도적인 성격으로 윌리암의 바른 성정을 한 눈에 알아보고 그와의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게 된다. 윌리암을 역사학도로 만들어 안정된 수입을 유지하고 자녀를 낳는 그럴듯한 계획을 세운다. 윌리암은 부상으로 농구선수의 삶을 지속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정말로 교수의 삶을 바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줄리아의 제안에 이끌려 결혼까지 하게 된다. 아직 명확한 자녀 계획이 없었던 줄리아는 쌍둥이 동생 중의 하나인 세실리아가 갑자기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게 되어, 화가 난 엄마 로즈가 세실리아를 내쫓으며 분열된 가족을 다시금 하나로 모으기 위해 아이 갖기를 결심한다. 세실리아의 아이가 태어나던 날, 아빠 찰리는 딸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갓 태어난 아기를 축복하고 나오다 병원 복도에서 심장마비로 죽고 만다. 


줄리아의 집안이 그려질 때에 찰리는 경제력은 꽝이지만 시를 암송하는 로맨시스트로 나오고 아내 로즈는 찰리의 그런 면을 아주 불만스럽게 여기며 오로지 텃밭에만 집중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줄리아는 찰리의 장례식에서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조문을 바라보며 자신이 아빠를 잘 몰랐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찰리의 친절을 기억하며 찾아온 이들은 하나같이 찰리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며 위로하지만 로즈는 찰리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미혼모가 된 세실리아의 상황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로즈는 파다바노의 화목한 가족이 살던 집을 처분하고 갑자기 플로리다고 떠나게 된다. 곧이어 줄리아의 딸 엘리스가 태어나지만 윌리암은 더 이상 줄리아의 계획에 편승하지 못하고 이미 구멍날만큼 커져버린 공허함을 견디지 못해 호수에 빠져 죽으려 한다. 


줄리아와 막역한 사이인 둘째 실비는 이미 윌리암의 공허함을 눈치채고 있었고 딸들 중에 유일하게 아빠 찰리의 시 암송을 좋아했기에 윌리암과 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윌리암의 자살 시도 이후 줄리아는 큰 충격을 받지만 자신을 거부하는 윌리암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일자리를 핑계로 뉴욕으로 떠나게 된다. 윌리암과 줄리아의 이별과 더불어 윌리암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져가던 실비는 용기를 내어 윌리암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되고 윌리암을 살리기 위해 줄리아와의 이별을 선택하게 된다. 


형부를 사랑한 처제라는 통속적인 얘기가 될 수 있는 소재이지만, 윌리암이 어린시절 부터 겪은 커다란 상처의 구멍을 메워가는 실비의 헌신적인 사랑과 용감한 선택은 줄리아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도저히 윤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납득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담겨져 있다. 실비의 용감한 결정이 비록 줄리아와 엘리스의 삶을 고독하게 만들고 파다바노의 자매들이 다시 모여 살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게 되지만, 종국에는 실비의 뇌종양이 다시금 자매들을 모이게 만들고 행여나 윌리암이 자신으로 인해 딸 엘리스의 삶을 망가뜨릴까 두려워 혈연 관계를 포기했던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준다. 윌리암은 실비의 죽음으로 엘리스를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되고, 엘리스는 죽은 줄만 알았던 아빠 윌리암의 어처구니없던 과거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을 얻게 된다. 


윌리암의 부모는 어린 딸의 죽음 이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함께 견뎌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에 어린 윌리암의 마음마저 구멍나게 만들 만큼 망가진 삶을 살다 떠났다. 어쩌면 윌리암이 실비를 만나지 못했다면 평생 우울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또 다시 비극적인 선택을 감행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다바노 자매는 각자의 부족함을 잘 알았고 서로를 채워주고 위해 부단히 노력했기에, 배신의 상처에 가슴 아파하며 의절한 상태로 아주 오랜 시간 지내왔음에도 단숨에 원래의 상태를 넘어설 수 있는 구원과 화해의 장을 마련하게 된다. 


언제든 누구나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되는 삶의 커다란 생채기가 만들어내는 구멍을 방치해서 허우적 거리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곁에 머물며 정감어린 눈으로 바라봐주는 것, 당신에 대한 침묵의 지지가 한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자명한 진리를 윌리암과 네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넌 뭘 원하니?

예전의 실비라면 대답이 두려워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겠지만, 이제 그녀는 진실하고 강렬하게 자신이 되고 싶고 가장 진실하고 강렬하게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을 여러 구획으로 나누어왔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더욱 확실히 그랬다. 줄리아와 함께일 때는 다른 사람이었고, 쌍둥이와 함께일 때는 조금 더 솔직한 사람이었다. 실비는 자기 생각과 가정을 통제하고 자신과 싸우면서 자신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길로 스스로를 끌고 가려고 애썼다. 함께일 때 온전한 자신이 된 기분이 드는 사람은 딱 한 명, 윌리엄 밖에 없었다. 실비는 그와 함께일 때면 온전한 자신이었고 심지어 그 이상이 될 여유마저 느꼈다. 윌리엄은 어떤 판단이나 기대도 없이 그녀를 보았고, 실비는 그 여유 안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씩씩함과 명석함과 다정함과 즐거움의 가능성을 느꼈다. 이 모든 돛이 그녀라는 배의 갑판에 있었다. 그녀의 것이었지만 실비는 처음 보았다. 윌리엄의 병실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내기 전에는 그것을 인식하지도 못했다.(279)"


#앤나폴리타노 #헬로뷰티풀 #허진역 #복복서가 #AnnNapolitano #HelloBeautifu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티 뷰 -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우신영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신영 작가의 [시티 뷰]를 읽었다.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다. 10여 년 전에 송도국제도시를 갔을 때만 해도 해가 지고 나면 넓은 도로에 차가 거의 없어서 도로주행 연습 하기에 딱이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한산했다. 여기 저기서 아파트 공사가 한창 중이었고 다리를 건넌 바로 근처에만 주거지가 형성된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한 해가 지날 때마다 눈에 보일 정도로 차와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느껴졌다. 아직도 대단지의 주거지가 공사 중인 곳이 남아 있지만 몇 년 후에는 간척지로 만들어진 새로운 땅에 3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거주하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어마어마한 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늘어서 이렇게 단 기간에 완전히 탈바꿈된 도시가 만들어질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거품은 수십년간 지속되어 온 심각한 문제지만, 그 누구도 안정된 주거지를 약속할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아니 방법을 아는 이들은 오히려 안정되는 것을 거부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시골이 아닌 수도권에서 자기집을 마련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지 오래이고, 영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회를 포착해 엄청난 대출금을 감당해 가며 하우스 푸어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게 지혜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그런 무모한 도전이 두려워 정도를 걸으려던 이들이 바보 취급되며 지나간 기회를 아쉬워하지만 불과 1-2년 사이에 집값은 폭등해서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내집 마련이라는 꿈은 너무나도 요원한 일이 되어버렸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송도 신도시의 이야기는 그동안 겉으로만 봐왔던 휘황찬란한 외관과는 다르게 혹독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실상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송도 신도시에 편의점보다 많이 개업하고, 카페보다 많이 폐업한다는 필라테스 센터(14)"라는 표현은 다른 운동보다 비용이 이 더 많이 들어가는 운동 센터조차 너무 많아서 극심한 경쟁 상황에 이르렇다는 믿기 힘든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평생을 부유하게 살아온 수미가 남편 석진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가 허름한 횟집에서 식사를 마치지 못하고 호텔로 돌아와 투덜대는 대사는 그야말로 경제적 부로 계급을 나누려는 이들의 사고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호텔 숙박비랑 오마카세 가격 올렸으면 좋겠어. 거품 좀 빠지게.(220)"


보통은 가격이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가격을 올렸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소수의 돈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들은 오히려 최고의 서비스를 자기들만 누리고 싶은 욕심에 일반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의 가격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비상식적인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그에 반해 석진은 덕적도의 칼국수집을 하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한 평생 얻어 맞고 희생하며 살다 병에 걸려 돌아가신 어머니를 둔 시쳇말로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이다. 의사라는 최고의 스펙을 가진 석진은 이미 한 번 아주 짧게 결혼 생활을 했던 수미를 만나 혼인하게 된다. 수미의 집 안에서 의사라는 배경 말고는 딱히 별 볼일 없는 석진과의 혼인을 반대하지 않은 이유가 이미 이혼한 경력이 있다는 것 때문이라는 내용이 둘 사이의 대단한 로맨스가 아님에도 함께 사는 이유를 짐작케 했다.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수미와 석진의 결혼 생활은 어쩌면 너무나도 풍요롭고 완벽해서 서로의 내면을 보살필 수 있는 기회조차 없어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경제적 문제로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제로이기에 그들 사이에는 보통 부부 싸움에 단골로 등장하는 돈문제는 서로를 미워하는 계기가 될 수 없었다. 수미는 석진에게 민낯을 보인적이 없었지만 피트니스 트레이너 주니와의 만남에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맨 얼굴을 보였으며, 석진 또한 면도칼을 반복적으로 삼키고 병원을 찾은 조선족이라 칭하는 중국 동포 유화에게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이들 부부는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서로가 부정한 만남을 갖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세상 쿨함의 정점에라도 이른 것처럼 현재의 부부 생활을 문제 없이 유지할 수 만 있다면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다는 호혜와 같은 아량인 것일까. 


언젠가 썩어 없어질 몸이라서 젊고 건강할 때 제 마음대로 하겠다는 생각이 만연되어 가고 있다. 마치 돈만 있으면 언제든 부수고 하늘에 닿을 것 같은 마천루를 세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듯이 반복되는 바벨탑 쌓기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마천루의 한 귀퉁이라도 제것을 만드는 것이 인생의 최종목적이 되어버린 현대의 삶이 씁쓸하기만 하다. 


#우신영 #시티뷰 #다산책방 #제14회혼불문학상수상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