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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뚫기
박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평점 :
박선우 작가의 [어둠 뚫기]를 읽었다. 한 인물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의 유년시절이 말도 못할 정도로 힘겨운 고통의 장애물을 겪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빨리 흘러가기나 할 것처럼 주인공의 어려운 유년시절은 휙휙 지나가고, 그 시간을 바탕으로 단단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이들은 주인공의 고통의 순간에 쉽게 몰입되어 성숙한 어른이 된 주인공에게 마음 속 박수를 보내며 당연한 보상이 주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간과하게 되는 것은 실존의 인물이 거쳐간 시간의 거대함이다. 배가 고파 시장통에서 만두 하나를 훔쳐 먹다가 걸려서 호되게 얻어터지는 일이 수일째 지속된다면, 빚지고 도망간 애비 때문에 사채업자들에게 몇 년간 시달리게 된다면, 갑작스러운 사고로 하루 아침에 가족을 잃고 이리저리 삶의 터전을 옮겨야만 하는 처지가 유년시절의 전부라면 그래도 우리는 단단해지고 성숙해진 인물을 보며 당연한 보상을 받았다고 손쉽게 박수를 보낼 수 있을까?
돌아보면, 아니 어느 정도 지난 시간보다 안정되어 자리를 잡게 되면 대체 그 지옥같은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낸 것인지 스스로가 놀라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놀람의 이유는 현재의 내가 과거와 동일한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일 지금도 그때처럼 힘들다면, 어쩌면 그 긴 터널을 견디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아예 견뎌내볼까 하는 희망조차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고 싶을 때, 한 걸음만 더 내뎌볼까 하는 작은 용기가 생겨나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바꾸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아닌가 싶다.
오랜시간 고질병처럼 잘 고쳐지지 않는 습관 중의 하나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동료의 삶의 행태를 험담하는 말투였다. 개는 대체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면서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데, 개는 대체 왜 그렇게 일을 하는건데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사소한 것까지.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사람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나한테 피해가 오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정말 답답하고 걱정이 되면 직접적으로 말하거나 도움을 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뒷담화를 마치고 혼자가 되면 몹쓸 것을 먹은 것처럼 텁텁함이 입안을 가득채웠음에도 마치 중독된 것처럼 다음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험담을 위한 험담과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디선가 나 또한 그 담화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번 소설을 읽고 특히나 말미에 화자인 '나'가 엄마와의 있는 그대로의 관계와 존재를 인정하는 부분에서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혈족인 엄마조차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말과 행동들을 수십년 간 반복해오고 있음에도 한 치의 양보조차 없이 싸움과 갈등이 오고 가지만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해결책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주인공의 커밍아웃에도 엄마는 여전히 아들이 연애를 하고 결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큰아들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의 말을 홧김에 했다는 것조차 부정하며 연락이 없는 큰아들 내외를 욕하면서도 명절이 되면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전을 잔뜩 부치는 모습이 영 탐탁치 않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저명한 예술가 게이들이 엄마에게 집착하는 것처럼 서른 일곱살의 나이에도 독립하지 않고 엄마와 함께 살아간다.
시대가 아무리 변했다 해도 게이로 살아가며 데이팅앱으로 만난 이들과 성적 욕구를 해소하고 행여나 데이트 폭력을 당하지는 않을까 염려하며, 그 무엇으로도 자신의 성정체성이 바뀌지 않을 것이고 반복된 만남 끝에 들려오는 모멸의 말들이 주인공을 비참하고 슬프게 만든다. 결국은 이렇게 살아갈 바에는 그냥 차라리 이 모든 것을 끝장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란 우울함의 단초는 아마도 주인공이 부단히 편집자로서의 일상을 살아가고, 그 일상의 원천은 40년을 넘게 미싱일을 마치고 나서도 몸을 움직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엄마의 성실함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그 강인한 엄마 또한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던 가슴 아픈 일을 아무렇지도 않고 아들에게 고백하는 말을 통해 주인공은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가 비록 세상에서 이해받지 못하는 어둠 속에 내동댕이쳐진 존재인 것 같지만 그렇게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듯이 자신을 비난하는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나가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그 짙은 어둠 또한 뚫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나 주인공이 글쓰기 아카데미를 열어 수강생들과 꽤 괜찮은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속깊은 이야기를 글로 쓰고 나누는 시간을 갖았음에도 막상 아카데미 일정이 끝나고 나서는 아무도 서로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는 모습을 훈련소에서 퇴소하는 장면과 결부시킨 것이 인상적이었다. 훈련소마다 다르겠지만 퇴소를 앞둔 훈련병들이 갑자기 그동안의 땀과 고통이 한 순간에 밀려와서 일지 수백명의 남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자대에 가서도 휴가 나오면 꼭 연락하자며 연락처를 주고받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대 배치를 받고 휴가를 나가서 연락을 했을까 하면 당연한 대답은 '미쳤냐' 였으니. 그렇다면 아카데미에서 글쓰기 수강자들이 그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과 퇴소식의 훈련병들이 서로를 얼싸안고 울며 연락하자는 약속을 잡은 것은 어떻게 가능했던 일일까?
박선우 작가는 수상 작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끝을 상정해야만 진심을 다할 수 있다고. '헤어짐'이라는 결말이 정해져 있기에 함께인 지금을 충만하게 보낼 수 있다고.(244)"
그래서 그런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누군가를 험담하는 불필요한 악습을 떨쳐내고 진심을 다해 자신의 어둠을 마주해야 할 이유를 깨닫게 해 준다.
"언젠가는 정말 혼자서 아침을 맞이하게 되리라. 엄마 없이 살아가게 되리라. 그런 날은 올 것이다. 모든 것은 종료되니까. 마지막에 이르고, 기어이 끝나고야 마니까.
놀라운 사실은 끝을 가듬하다보면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희미하게나마 어떤 가능성들이 눈에 보일 듯하고 손에 잡힐 듯 아른거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한 걸음, 적어도 한 걸음은 더 옮길 수 있다. 속는 셈 치고 하루만, 오늘 하루만 더 하면서.(220-221)"
"나는 이제부터 변할 거라고,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멀어지게 될 거라고,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둔 채 살아가게 될 거라고, 선배가 울 뻔했던 이유는 그걸 다 알고 있어서라고, 왜냐하면 우리는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지금도 자식이긴 하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를 사랑했던 것과 지금 부모를 사랑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까, 그건 아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르니까, 그런 걸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게 시간이 지닌 또다른 힘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내놓을 수 있는 순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런 건 소설 속에서나 이렇게 쓰일 뿐이니까.(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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