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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ㅣ 위픽
최진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평점 :
최진영 작가의 [오로라]를 읽었다. 위즈덤하우스 위픽 시리즈 49번째 작품이다. 표지에는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사랑을 감출 수 없어요"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최유진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제주도에서 한달살이를 위해 떠난다. 바쁘고 정신없이 보낸 직장생활 중에 주어진 잠깐 동안의 유예이거나 새로운 곳에서의 출발을 위해 맛보기로서의 정착도 아닌 오로지 타인에 대한 선의로 인해 조금은 어이없게 위탁받은 친구 오세정의 예약금을 날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지방의 한적한 곳에서 한달살이가 유행하고 있다. 특히나 제주도의 이국적인 자연경관은 도시의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확실한 기분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기에 여유가 있는 이들은 기꺼이 비용을 감내해가며 제주도의 원룸과도 같은 공간을 대여한다. 소설에서 나온 것처럼 주인공이 머문 숙소도 맨 윗층을 제외한 나머지 집들은 여느 집들처럼 오랜 시간 머무는 사람들이 사는 집이고, 유진이 머문 곳의 몇 개의 방만이 일시적인 대여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실제로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나 렌털하우스를 지어놓고 수도권에 살면서 관리자를 고용하여 운영하고 있는 주인들이 꽤나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인공이 머문 숙소도 일상생활을 위한 웬만한 도구들이 다 비치가 되어있는 짧은 기간 혼자 머무는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 상태로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달살이를 위한 공간의 상태보다 그곳에 머물고자 하는 이의 마음일 것이다. 유진은 친구 오세정의 어이없고 심지어 적반하장의 태도로 돌변한 팔렴치하다고까지 치부할 수 있는 대응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에서의 시간을 받아들인다. 유진에게는 세정과의 소모적인 감정싸움보다 사랑하는 연인의 거짓말에 속아 보낸 시간에 대한 위로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유진은 제주도의 숙소에서 만난 관리인과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의 호의를 계기로 조금씩 이미 어긋나버린 사랑을 추억하며 또 다른 이름을 자신에게 붙인다. 안녕하세요. 오로라입니다.
오로라라는 이름으로 제주도에서의 새로운 자신을 마주하게 된 유진은 상처만 남긴 상대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자신을 만나왔음을 드러낸다. 오로라라는 또 다른 이름의 제목은 작가가 선택한 주인공을 너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독특한 화법이 아니었다면 사기 연애에 이어 결혼까지 이르는 진부한 사연의 주인공이 될 법한 유진의 여행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아무리 유부남이 자신을 속이고 사랑을 속삭였다고 해도 배신감에 치를 떨며 복수의 칼을 간다 하더라도 그와 만나며 미래를 기약했을 유진의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그의 폐부에 쌓여 숨을 쉴 때마다 그와 함께 시간의 감상을 토해내는 고통을 감내하게 만든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성가의 가사말처럼 사랑없는 믿음은 존재할 수 없지만, 믿음없는 사랑은 가능한 것이니, 유진이 보낸 사랑의 시간은 믿음은 처음부터 전제되지 않았음에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넘쳐나 누군가에게 들키게 된다면 여전히 그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음을 숨길 수 없기에 유진은 오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택하여 믿음과 사랑에 대해서 관조하는 시간을 갖는다.
"네가 잊은 것들을 모조리 되살려 이어 붙인다면, 망각을 복원한다면, 그렇다면 타인을 사랑하듯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너는 네가 망각한 것들을 그리워한다. 망각은 돌에 가까운가 돌과 돌 사이 바람 통로에 가까운가. 망각과 기억 중 무엇에 기대어 아직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일까. 아니, 이미 어느 정도 허물어졌을지도 모른다. 완전히 와르르 무너지지 않았을 뿐 어쩌면 귀퉁이부터 조금씩...(31)"
"숙소로 돌아가는 길, 거센 바람에 취기를 식히면서 너는 중얼거린다.
내가 나로 살지 않아도 되는 두 달.
바람에 목소리가 묻히는 것만 같아서 너는 조금 더 큰소리로 말한다.
내가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두 달.
숙소의 공동 현관을 열며 다짐하듯 말한다.
내가 나를 선택할 수 있는 두 달.(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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