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처럼 나남신서 1834
김병일 지음 / 나남출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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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이 휘돌아 흐르는 지형 한가운데에 위치한 만송정 숲을 거닐며 느릿느릿 움직이던 지난가을의 한나절이 그리워진다. 일상에 매달려 마음의 쉼을 주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다 하루를 십대 아들과의 말다툼으로 시작하여 마음이 개운치 않은 날 선현들이 삶의 지표로 삼고 지냈던 구절은 어른스럽게 처신하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고 있는 듯하다. 퇴계 선생의 겸손공경헌신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움직임을 표본으로 지행합일을 구심점으로 삼고 있는 도산서원 선비문화원 수련원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저자는 <<선비처럼>>의 내용이 청소년들의 인성 교육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몸으로 가르치면 따라오고, 말로 가르치면 대든다.’

  조선 영조 때 정승을 지낸 이태좌의 가르침은 밥상머리에서 학업에 충실하기를 바라면서 마음을 바로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하니 화를 버럭 내면서 볼멘소리를 하여 갈등이 증폭되었다. 차 한 잔을 마시고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책 속 구절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부모는 말없이 책을 펴 들고 모범을 보이면 자식은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을 학생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한다고 채근하였다. 경쟁이 불가피한 사회에서 타인 위에 군림하여 우위를 차지하여야 기회를 선점할 수 있다고 내세우기만 할 게 아니라 따뜻한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며 선의의 경쟁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어른이 모범을 보여 아이가 가슴으로 느끼어 자발적으로 실천할 때 의미는 살아나 가정에서부터 스스로를 살피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품성을 길러야 한다.

 

   퇴계 선생의 어머니 춘천 박 씨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7남매를 키우며 불우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어머니의 긍정적인 태도와 신실한 생활력 덕분에 올곧은 선비 정신을 새기며 학문을 닦아온 퇴계는 생활 속에서 인간 존중의 길을 저버리지 않았다. 첫 부인과 사별하고 얻은 둘째 부인이 정신질환을 앓았지만 그녀를 홀대하는 일 없이 살았던 일은 부부의 연을 소중히 여긴 증표로 남는다. 진실함으로 남의 처지를 헤아리고 배려할 줄 아는 충서(忠恕)정신은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함께 하는 공동체 의식을 근간을 이룬다. 학덕을 겸비하여 실천하는 사람으로 모두에게 존경받을 인격체인 선비는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실천을 근본으로 삼아 도덕적 리더십을 발현하여 왔다.

 

   생존을 위한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성장 발전을 주창하며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중요한 정신문화를 도외시한 채 성과를 내느라 분주한 삶을 살았던 폐해는 패륜적인 사건 사고로 이어져 우리 사회를 음울하게 만든다. 문화적 콘텐츠로 나라의 경쟁력을 키워가는 브랜드 구축은 미래가치를 창출하여 가는 토대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선비 정신을 들 수 있다. 조선 시대 선비는 검소한 살림살이에서 인성을 도야하며 선공후사(先公後私)하는 솔선수범으로 백성을 교화해 갔고, 나라가 어려울 때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섰던 의병 활동의 정신적 근간을 이루었다. 이른 봄 동토를 뚫고 나오는 매화를 사랑한 선비 퇴계는 매화 시를 모아 매화 시첩으로 엮을 정도로 매화의 암향(暗香)을 즐겼다. 자신을 낮추며 제자를 생각하는 참된 스승의 표상으로 남은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호남의 선비가 영남의 선비를 찾아 교류하며 지낸 역사 속 배움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제 간의 정을 떠올리게 한다.

 

   지체를 겸비한 선비를 양성하기 위해 일상생활 속 예의범절을 가르친 뒤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학문에 나갈 수 있는 길을 택하였다. 선비들은 자신부터 치열하게 닦아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이웃과 백성을 감화시키는 단계로 나아갔고, 세상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기 위해 폭넓게 공부하였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현대로 오면서 인격을 도야하는 교육은 차치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기능적인 교육에 편중되어 인성교육은 도외시되어 크고 작은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 선진국의 지도자들이 중시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은 선비정신의 실천인 청렴 개결한 생활과 상통한다. 부자 3대 가기 어렵다는 시절에 경주 최부잣집의 성공 비결은 자기 절제와 타인 배려의 선비 정신으로 흉년에는 땅을 사지 않고 과객을 융숭하게 대접하는 등의 타인 배려의 삶을 이었기 때문이다.

 

   혼탁한 시대일수록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며 고민하는 가운데 중심을 바로 세우고 살아갈 때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길을 걸을 수가 있다. 군자와도 통하는 선비는 자신의 영달보다는 국민과 국가를 먼저 생각하며 의를 숭상하여 실천하는 지도자로 나라의 근간을 세웠다. 후대의 지도자들이 지혜를 모아선비 정신을 발현하여 총체적인 난국을 풀어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도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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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하라 사막에 있는 파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보러 가는 길 유적지 주변에는 어린 아이들이 인쇄된 엽서와 돌로 만든 모형을 들고 원 달러를 외친다. 언제 씻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이들 얼굴에 난 자국들은 생계를 위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여실히 드러낸다. 교육의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먼지 자욱한 거리로 나서서 원 달러를 외치는 아이들을 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가방을 열어 스핑크스 모형을 하나 사서는 돌아 나오는 길 먹고 사는 일이 힘겨운 이들이 도처에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카이로의 아이들이 겪는 고통에 가슴 아파하다가도 고국으로 돌아오면 기억조차 묻어두고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한쪽에서는 배가 불러 더 이상 못 먹겠다고 손사래를 치고 어느 한쪽에서는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 더미를 파헤치는 양극화 현상은 사회 구조의 불평등에서 파생한 문제로 보인다.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대다수가 고통 속에서 절망적인 삶을 살다가 파멸로 귀결되는 일에 침묵한다면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는데 동조하는 셈이 될 것이다. 학자로서 도덕적 양심을 견지하고 기아 퇴치 운동에 적극적인 저자는 비정부조직, 다국적 자본과 과두제에 저항하는 노조들의 세계적인 연대를 통해 인권 탄압을 일삼는 부조리한 법제화에 맞설 때 희망이 있다고 단언했다.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전쟁을 일삼고 방만한 국가 정책을 양산하는 정치권력의 부패,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경제 구조 등이 가속화됨으로써 남반구의 기아 희생자들은 쌓여만 간다. 애덤 스미스의 고전적 자본주의에서 기인한 자유주의는 정부의 통제를 최대한 줄이는 대신 자본 활동의 자유를 강조하였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자유주의는 여러 차례 수정 과정을 거쳐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한 시카고학파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가 1970년대 일련의 경제적 공황 이후 각광을 받음으로써 초국적 자본이 최고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거대 자본을 쥐고 있는 강대국들은 국제적 헤게모니를 확대하며 세계화를 빙자하여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삼아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여 이윤을 창출하였다.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분유를 무상으로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뒤 대통령 후보 아옌데가 칠레 대통령에 당선된 뒤 다국적기업인 스위스의 네슬레와 협약을 요청하자 네슬레 본사는 이를 거부하고 말았다. 아옌데 정권의 개혁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면 그동안 강대국이 누렸던 특권들이 침해받을 수 있다고 여겨 CIA는 군부 쿠테타를 도와 칠레 민주정부의 수장을 살해토록 했다. 세계의 주요 농산물이 거래되는 시카고 곡물 거래소에서의 거래는 초대형 금융 자본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 세계 시장에서 거래되는 농산품 가격이 투기의 영향 아래 놓인다니 제 3세계를 위시한 약소국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침략으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한 식민지 권력자들은 지금도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정한 공산품과 농산물을 집중적으로 생산하게 조종하고 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세네갈의 국민들은 부지런하여 식량을 자급자족할 능력이 있는데도 땅콩 농사를 지어 헐값에 넘기고 식량을 수입하는 모순적 상황이 벌어져도 부패한 고위 관료들은 자국의 식량 생산 증진에 관심이 없다니 공동체의식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심각한 정치 부패를 종식하고 식민지 정책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치개혁 운동을 맹렬하게 벌였던 부르키나파소의 상카라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거대하고 비효율적인 행정조직부터 개편하며 인프라를 구축해 나갔다. 이에 부르키나파소는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고,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구조 아래 불평등은 사라졌다. 정치 부패에 시달리는 주변 국가에서는 상카라의 개혁 정치를 달가워하지 않은 이들은 그를 제거하기 위해 나섰다. 외국세력의 조종을 받은 군부 세력에 의해 상카라가 살해된 뒤 부르키나파소는 부정부패가 만연한 극빈 나라로 돌아가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려야 했다. 무기를 가진 자가 식량을 가지는 현상이 벌어지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지뢰가 많이 묻혀 있어 공중에서 살포하는 식량 상자를 보고 달려가던 사람들이 지뢰를 밟아 몸이 찢겨 나가는 경우도 있다니 누구를 위한 구호 활동인지 회의가 든다.

 

   산림파괴로 사막화가 가속화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고 목숨을 건 탈출로 불안한 생활을 견디는 환경 난민들이 늘고 있는 현실은 자연적 질서를 거스르고 살아온 인간의 욕망에 제동을 걸어 줄 재앙으로 비춰진다. 르 아이으 농민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생명수를 공급해 줄 수도꼭지를 지키기 위해 경비를 서는 눈물겨운 실천은 함께 살아남으려는 연대로 작은 희망을 떠올리게 한다. 숙명적인 기아가 지구의 과잉 인구를 조절하는 확실한 수단이라며 적자생존·자연도태의 논리로 무의식적인 인종 차별을 일삼는 부정한 기득권에 맞서려는 공공의식을 실천할 때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무덤은 줄어들 것이다. 겨울이면 사랑의 모자 뜨기 운동에 동참하여 아기들의 생명 온도를 높여 목숨을 지탱할 수 있도록 도왔던 일회성을 벗어나 정기적인 후원과 교육으로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의 실상을 바로 알리는 일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때 기아 퇴치 운동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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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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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에 서서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사유하는 시간은 표피적 삶을 잇는 일상에 본질을 더하는 시간이다.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희로애락의 감정은 한 사람의 삶을 규정하는 색깔로 인생을 물들이며 일상에 매몰되지 않는 각성을 준다. 단음절의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는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의견을 내재하고 있어 명징함을 함축한다. 하루 세 끼를 먹는 집의 휴일은 다른 반찬 한두 가지라도 만들어 따뜻한 밥을 마련해야 하는 힘듦을 토로할 때가 늘어난다.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지지 않은 식구들은 집에서 먹는 밥을 고집할 때가 많아 푸념을 늘어놓을 때도 있지만 밥의 힘으로 산다는 말에 위로받으며 밥 짓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려 애쓴다.

   점심때는 라면에 찬밥 한 덩이를 놓아먹을 때도 있지만 라면에 질려하는 식구들이라 그럴 수도 없어 떡국으로 대신할 때가 종종 있다. 음식은 재료의 조리 과정에서 배인 화학적 실체라기보다 정서적 현상이라 여긴 저자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더라도 옛날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은 추억을 불러낸다. 쌀밥을 배불리 먹고 싶었던 시절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그만이었던 라면을 작가는 자신만의 비법으로 끓여먹는 고난도 기술을 서술하며 서민적 음식으로 인간 가까이 다가서 서로를 달래줄 음식으로 꼽았다.

   시간 속에 슬픔의 깊이도 엷어져 살아남은 자는 살아가게 된다. 울분과 절망의 하중을 견뎌내지 못한 채 광기어린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해 안타까운 그리움의 결정체인 저자의 아버지를 회고하는 대목에서는 목울대가 시큰해진다. 망한 조국을 안고 이역만리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무협소설로 갈증을 풀어내던 아버지의 말없는 광야를 떠올리며 밖으로만 떠돈 아버지를 원망하는 대신 연민의 눈으로 보는 저자의 시선이 울림을 준다. 밥벌이를 위해 거센 파도를 감내하며 그물질하며 생선을 잡고 물고기를 털어낸 그물을 손질해 다시 바다로 나가 조업하는 어부들의 삶은 생존을 위한 의식주 해결을 위한 개별적인 선택이면서 보편적인 의식을 치르는 일이었다. 진부하지만 일상성이 유지되는 밥벌이의 경건함이 새삼 떠올라 삶의 당위성을 부여한다.

   ‘난 여기서 죽지 않을 거야.’

   딸과 함께 본 마션의 주인공이 불확실한 화성에서 생존의지를 불태우는 대사 중 하나다. 화성에서 540여 일을 보낸 주인공이 지구로 돌아와 우주 비행사 교관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호 사건이 떠올랐다. 평형을 잃고 뒤집히는 배안에서 아이들은 삶의 의지를 품었으나 결국 구조되지 못하였다. 돈을 아끼기 위해 안전 점검을 소홀히 하고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쳐 어린 아이들을 수장한 세월호 사건은 지금도 미증유의 사건으로 시간 속에 무덤덤해지길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구조구난의 지휘체계를 바로 잡는 일로 개조해 가야할 텐데 여전히 책임을 전가하고 몇 사람 옷을 벗는 일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실물을 지배하는 돈은 인간의 판단과 정치적 이해까지 장악하고 있는 물신주의에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자는 많지 않을진대 정당히 벌어 값지게 쓸 필요가 있다.

   사랑은 물가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다.’

   감성적 영역을 관장하는 사랑은 이성적인 사람의 마음까지 뒤흔들어 균형을 잃기 십상인 채로 몰고 갈 때가 있다.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이를 확인하고 싶어 하고 목소리로 상대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품으며 여자는 화장으로 자신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평생 연필로만 습작한 작가는 애부에 자리한 결핍이 상상력으로 드러남으로써 내면의 소리를 내는 창작으로 이어짐을 놓치지 않았다. 연장을 써서 물건을 만들거나 수리하기를 좋아하는 저자는 손으로 도구를 제작하고 페달을 밟아 가고 싶은 곳으로 나가는 삶을 지속해왔다. 군 생활하는 아들이 평발이었음에도 현역으로 입대해 복무에 힘쓰는 동안 나라의 쪽박을 깨지 않는 일이 애국이라며 그를 다독거리는 아버지의 소리는 진중함을 더한다.

   고풍스러운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높게 쌓은 돌담 안쪽에 있을 본질을 찾아 모퉁이를 도는 화자의 고독과 본질을 탐구하는 이의 실천적 노력이 떠오른다. 퇴색한 빛깔의 낡은 우체통 속에 깃든 사연을 궁금해 하며 걷던 시절의 낡은 지붕이 그리워지는 것은 나이 듦의 증거이리라. 화려한 것들을 실컷 누리고 나서야 밋밋함이 주는 담박함을 깨닫게 되는 것은 오랜 경험의 산물이리라. 칠장사를 배경으로 시작되는 벽초 홍명희 소설 속 두령들이 길 위에서 나누는 정의와 사랑 등이 서사처럼 펼쳐진다. 연어의 생로병사에 대한 관찰과 명상을 담은 글을 소개하며 모천 회귀성의 숙명을 끌어안고 사는 생물이 갖는 숭고한 사랑은 새 생명을 살리고 장렬히 죽어가는 의로움을 닮았다. 책을 읽고 사유하며 표현하는 생활을 즐기며 사는 독자에게 작가는 자발스러움 대신 진중함을 겸하는 이로 깨어있으라 일침을 가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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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의 바다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 놀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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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생업 터전으로 삼고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은 지역 특성상 경제적 능력을 축적하는 대가로 가장의 목숨을 제물처럼 바다에 바치게 된 경우가 있어 집어삼킬 듯 맹렬한 기세로 덤비는 파도를 볼 때면 섬뜩할 때가 있다. 지난봄 지인의 아버지는 이른 새벽 조업에 나섰다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남은 식구들은 흐르는 시간 속에 산 사람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들어 상실의 아픔으로 비탄에 젖어 지냈던 시간을 상쇄해 갔다. 열다섯 살 헤티는 부모를 바다에 수장한 채 모라 섬이라는 작은 섬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바다를 응시하며 바다가 내는 속삭임을 듣는 시간으로 일상을 채워갔다.

 

   거주민이 100명도 안 되는 모라 섬의 몽상가라 불리는 열다섯 살 소녀 헤티는 바다 유리 속 흐릿한 형상을 볼 때마다 형상의 정체성을 찾고 싶은 갈망이 컸다.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는 단절된 채 그들만의 소우주인 모라 섬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들의 자랑인 배는 섬사람들 모두 힘을 합쳐 건조한 작품이었다. 헤티에게 들려온 속삭임은 적막 속을 헤집고 다가오던 고요를 넘어 거친 소리로 변하더니 이내 거센 비를 뿌리며 폭풍을 몰고 왔다. 비교적 평온한 바다 유리 속과는 달리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 예상하던 소녀는 위험이 가까워졌음을 알아차렸다. 악의의 파도에 속수무책으로 부서지고 만 모라의 자랑인 배가 난파되는 것을 보고 주민들은 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허사였다. 바다 유리를 만지면 평온함에 젖던 소녀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배를 발견하였지만 퍼 노인은 배 안의 정체는 악이라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거센 폭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 안에서 살아남은 노파의 기진맥진한 모습에 놀란 헤티는 할머니에게 노파를 돌봐주자고 간청하지만 모라 섬 주민들은 노파를 사악한 무리로 간주하고 섬에 머무르게 하는 것을 거역하였다. 섬사람들의 미움을 사면서도 바다유리에서 보았던 얼굴과 닮은 노파를 본 소녀는 온갖 어려움을 뚫고 자신을 찾아 온 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노파의 건강 회복을 도우려는 소녀에게 섬사람들은 모라 섬에 악을 가져 온 이를 돌봐줄 필요가 없다고 여기며 죽게 내버려두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 생활해 온 이방인을 배척하고 동질성을 지닌 부류들끼리만 살아가려는 닫힌 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다름을 수용하여 다원적인 삶을 형성하여 갈 열린사회로의 지향은 요원하여 보인다.

   퍼 노인은 바닷물과 함께 죽어갔고 바닷물을 거쳐 온 노파는 생존하여 사악한 이를 돌보아 준 헤티를 향한 증오의 눈길은 강하였고 소녀와 거리를 두려는 이들이 늘어났다. 자기 신념이 강한 헤티는 주변인들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가운데 노파를 돌보며 바다유리 속 변화를 살폈다. 형상은 두 개로 나뉘어져 서로 다른 모습으로 분리되어 각기 다른 영역을 드러냈다. 회복될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 노파를 향해 소녀는 모라 섬에 온 목적을 상기시키며 노파의 건강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노파의 얼굴에서 바다유리 속 얼굴을 떠올린 소녀는 노파 곁을 지키며 일상을 함께 하였다. 말문을 닫은 노파의 마음을 열리게 해 그녀가 온 곳을 찾아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밝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답을 쉽사리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헤티는 노파를 죽게 방치할 수는 없다며 심원 속 본질을 찾아 바다로 향하였다. 작은 돌고래를 타고 창해를 항해하던 중 거센 파도와 맞서며 배가 부서질 것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미지의 섬을 향하였다. 익사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했던 헤티는 노파와 함께 하가 섬 가까이 닿을 수 있었고 그곳의 주민들에 의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새 배를 완성한 기념으로 항해하던 중 사랑하는 딸 로사를 바다에 묻어야 했던 지난날의 아픔을 목도하며 노파가 헤티를 찾아 모라 섬을 향해 노를 저은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열다섯 살 소녀 헤티에게서 노파는 자신의 딸의 형상을 발견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딸을 잃고 정상적인 생활까지 잃어버린 마리타 할머니는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며 사는 일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면의 아픔을 투영하여 바다유리 속 형상으로 떠올린 얼굴이 환영이었든 상념이었든 그리운 사람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던 이들의 아픔을 치유하며 사는 일은 또 다른 우주를 향하는 길목에 갖은 시련을 배태하여 한 사람을 지난한 역사에 가두는 숙명의 고리로 비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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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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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을 넘어서면 미혹됨 없이 소신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주변인들의 말에 휘둘리며 작은 오해의 불씨가 도화선 되어 상처를 주고받는 일로 괴로워하며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할 때가 많다.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으며 살 수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말을 들으면 미운 살이 박힌 이유 를 찾아 고민한다. 타인의 한마디에 신경쓰며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자책할 때 아들러의 가르침은 중심을 바로 잡고 살아갈 당위성을 일깨운다. 비록 타인의 기준에 반하는 행위이더라도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대로 살아갈 용기를 돋우며 실천하는 일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완전 연소하는 삶을 잇는 일이기도 하다. 대중이 이끄는 관성대로 움직이지 않고 통념을 따르지 않는다며 주변인들이 뒷공론을 늘어놓더라도 그것을 감내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 걸어갈 때 자유로운 삶의 지도를 그려갈 수 있을 것이다.

   선택권 없이 세상에 태어난 후부터 겪는 일련의 일들은 개인의 크고 작은 역사로 기억되어 성장해서도 현재적 삶을 지배하는 과거의 트라우마는 존재한다. 이를 프로이트는 한 개인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으로 보았지만 아들러는 목적론으로 갈등 상황을 해결하며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안을 풀어갈 수 있다고 보았다. 무늬만 인과법칙인 채로 불만스럽고 부자유스럽지만 지금 이 상태로 지내는 게 편하므로 생활양식을 바꿀 용기가 없는 만큼 열등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이상적인 자아를 발현하는 일에 능동적으로 살아갈 당위성을 드러냈다. 세 살 많은 형과 비교당하며 억압받아 온 청년은 사서로 일하는 동안에도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며 스스로의 가치를 폄하하여 왔다.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활용해 갈 것인지 사유하며 고민하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갈 때 진정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남들의 시선에 묶여 기존의 관계가 깨질까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는 부자유스러운 삶은 눈앞의 작은 공동체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마음이 너그럽다는 칭찬을 들으며 상대에게 조종당하는 수직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개체의 차이를 수용하며 대등한 수평적 관계를 유지할 때 존재성을 회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가치를 일깨우며 용기를 내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낼 때 주어진 것을 수용하며 살아가는 삶의 묘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의견이 상충하여 합의를 끌어내지 못할 때면 서로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마음에 상처를 내기 일쑤였다. 바꿀 수 없는 것을 수용함으로써 타자의 성정까지 신뢰하여 갈등의 골을 메워가는 일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물질적인 재화를 쌓는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일에 매달려 정신없이 지낸 시간을 회의하는 노년의 이웃을 볼 때마다 행복한 삶을 위한 요건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주인처럼 살지 못하고 타인이 의도한 대로 사느라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놓치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추한다.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고생하느라 학습에 매진하지 못하였다며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비겁함에 위축되고 만다. 바꿀 수 없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발목 잡힌 채 허우적거리며 살기보다는 지금 잘할 수 있는 부문을 찾아 매진하는 일은 찰나를 진지하게 사는 지혜로 비춰진다. 불편한 인간관계를 지속하느라 소진하며 살기보다는 기존의 관계망에 얽힌 이들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드넓은 공동체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가질 때 인간관계의 축도 변화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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