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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길 위에 서서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사유하는 시간은 표피적 삶을 잇는 일상에 본질을 더하는 시간이다.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희로애락의 감정은 한 사람의 삶을 규정하는 색깔로 인생을 물들이며 일상에 매몰되지 않는 각성을 준다. 단음절의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는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의견을 내재하고 있어 명징함을 함축한다. 하루 세 끼를 먹는 집의
휴일은 다른 반찬 한두 가지라도 만들어 따뜻한 밥을 마련해야 하는 힘듦을 토로할 때가 늘어난다.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지지
않은 식구들은 집에서 먹는 밥을 고집할 때가 많아 푸념을 늘어놓을 때도 있지만 밥의 힘으로 산다는 말에 위로받으며 밥 짓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려
애쓴다.
점심때는 라면에 찬밥 한 덩이를 놓아먹을 때도 있지만 라면에 질려하는
식구들이라 그럴 수도 없어 떡국으로 대신할 때가 종종 있다. 음식은 재료의 조리 과정에서
배인 화학적 실체라기보다 정서적 현상이라 여긴 저자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더라도 옛날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은 추억을
불러낸다. 쌀밥을 배불리 먹고 싶었던
시절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그만이었던 라면을 작가는 자신만의 비법으로 끓여먹는 고난도 기술을 서술하며 서민적 음식으로 인간 가까이 다가서 서로를
달래줄 음식으로 꼽았다.
시간 속에 슬픔의 깊이도 엷어져 살아남은 자는 살아가게
된다. 울분과 절망의 하중을
견뎌내지 못한 채 광기어린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해 안타까운 그리움의 결정체인 저자의 아버지를 회고하는 대목에서는 목울대가
시큰해진다. 망한 조국을 안고
이역만리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무협소설로 갈증을 풀어내던 아버지의 말없는 광야를 떠올리며 밖으로만 떠돈 아버지를 원망하는 대신 연민의 눈으로
보는 저자의 시선이 울림을 준다. 밥벌이를 위해 거센 파도를
감내하며 그물질하며 생선을 잡고 물고기를 털어낸 그물을 손질해 다시 바다로 나가 조업하는 어부들의 삶은 생존을 위한 의식주 해결을 위한 개별적인
선택이면서 보편적인 의식을 치르는 일이었다. 진부하지만 일상성이 유지되는
밥벌이의 경건함이 새삼 떠올라 삶의 당위성을 부여한다.
‘난 여기서 죽지 않을
거야.’
딸과 함께 본 마션의 주인공이 불확실한 화성에서 생존의지를 불태우는
대사 중 하나다. 화성에서
540여 일을 보낸 주인공이
지구로 돌아와 우주 비행사 교관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호 사건이 떠올랐다. 평형을 잃고 뒤집히는
배안에서 아이들은 삶의 의지를 품었으나 결국 구조되지 못하였다. 돈을 아끼기 위해 안전
점검을 소홀히 하고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쳐 어린 아이들을 수장한 세월호 사건은 지금도 미증유의 사건으로 시간 속에 무덤덤해지길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구조구난의 지휘체계를 바로 잡는 일로 개조해 가야할 텐데 여전히 책임을 전가하고 몇 사람 옷을 벗는 일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실물을 지배하는 돈은 인간의
판단과 정치적 이해까지 장악하고 있는 물신주의에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자는 많지 않을진대 정당히 벌어 값지게 쓸 필요가
있다.
‘사랑은 물가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다.’
감성적 영역을 관장하는 사랑은 이성적인 사람의 마음까지 뒤흔들어
균형을 잃기 십상인 채로 몰고 갈 때가 있다.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이를 확인하고 싶어 하고 목소리로 상대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품으며 여자는 화장으로 자신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평생 연필로만 습작한
작가는 애부에 자리한 결핍이 상상력으로 드러남으로써 내면의 소리를 내는 창작으로 이어짐을 놓치지 않았다. 연장을 써서 물건을 만들거나
수리하기를 좋아하는 저자는 손으로 도구를 제작하고 페달을 밟아 가고 싶은 곳으로 나가는 삶을 지속해왔다. 군 생활하는 아들이
평발이었음에도 현역으로 입대해 복무에 힘쓰는 동안 나라의 쪽박을 깨지 않는 일이 애국이라며 그를 다독거리는 아버지의 소리는 진중함을
더한다.
고풍스러운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높게 쌓은 돌담 안쪽에 있을 본질을
찾아 모퉁이를 도는 화자의 고독과 본질을 탐구하는 이의 실천적 노력이 떠오른다. 퇴색한 빛깔의 낡은 우체통
속에 깃든 사연을 궁금해 하며 걷던 시절의 낡은 지붕이 그리워지는 것은 나이 듦의 증거이리라. 화려한 것들을 실컷 누리고
나서야 밋밋함이 주는 담박함을 깨닫게 되는 것은 오랜 경험의 산물이리라. 칠장사를 배경으로 시작되는
벽초 홍명희 소설 속 두령들이 길 위에서 나누는 정의와 사랑 등이 서사처럼 펼쳐진다. 연어의 생로병사에 대한
관찰과 명상을 담은 글을 소개하며 모천 회귀성의 숙명을 끌어안고 사는 생물이 갖는 숭고한 사랑은 새 생명을 살리고 장렬히 죽어가는 의로움을
닮았다. 책을 읽고 사유하며 표현하는
생활을 즐기며 사는 독자에게 작가는 자발스러움 대신 진중함을 겸하는 이로 깨어있으라 일침을 가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