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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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혼자 머무를 수 있는 방이 없을 때 내 방이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한 방에서 식구들이 함께 기거하여 사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상이 마뜩하지 않아 속상할 때면 헛간 옆에 딸린 작은 방에 혼자 들어가 시간을 보낼 때가 있었다. 겨울철에는 군불을 때지 않아 이내 발이 시려 오래 머무르고 싶어도 머무를 수 없는 골방에서 비밀스런 편지를 쓰고 나와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라는 1음절의 소설책에서 비밀스러운 향취를 느낄 새도 없이 그곳에 갇혀 지낸 여인이 견뎌야 했던 인권 유린은 그곳을 탈주하는데 성공해서도 심인성 장애로 남아 새로운 삶을 사는데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하교하는 길 올드 닉의 술수에 넘어간 열여덟 살 소녀는 그에게 납치되어 7년간 바깥세계와는 단절된 작은 방에 갇혀 지냈다. 정원 오두막을 개조해 난공불락의 공간을 만들어 감금한 소녀를 폭행하고 출산한 아이까지 그곳에 가두고 최소한의 음식물을 공급하여 왔다. 다섯 살인 잭과 함께 지내는 엄마는 비밀번호를 알아내야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찾을 수 있는데 비밀번호를 밝혀낼 재간이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주문한 상품을 배달해주고 그가 머무를 때면 소리를 질러 외부에 그 사실을 알리려 해보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햇볕도 쬘 수 없는 갇힌 공간에서 갑갑하게 지내는 모자는 동화책 속의 주인공을 불러 모아 이야기를 엮어 갔고 체육 시간에 근육을 풀어줌으로써 기초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운동 시간을 확보해갔다. 다섯 살인 잭은 엄마 젖을 빨면서 공포를 견디고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을 찾았다. 빠진 이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을 매만지며 숫자를 세는 일로 두려움을 상쇄해 갔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화를 참지 못하는 올드 닉은 전기를 끊어버렸고 먹을 것을 공급하지 않는 일로 분노를 표출했다. 바깥세상과 절연한 채 아들과 둘망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마는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랐다. 엄마의 뜻을 알아차리면서도 용기 있게 시도하기에는 용의주도한 전략이 필요했다.


   탈주 계획을 세운 뒤 첫 번째 시도는 무위로 돌아가자 두 번째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뒤 여러 번의 훈련을 통해 반복하며 수정할 부분을 보완해 갔다. 영리한 속임수로 올드 닉의 시선을 따돌릴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뒤 수순을 밟아 목숨을 건 탈출에 성공한 모자는 경찰서로 달려가 이 사실을 알리고 반인륜적 범죄자인 올드 닉이 수감됨으로써 7년간의 감금 생활을 종식되었지만 이들 모자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기까지는 치료와 치유를 병행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컴블랜드의 클레이 박사를 만나 상담 치료를 받으며 적절한 약물 복용으로 안정을 찾아가기를 원하였지만 쉽지 않았다. 7년이라는 시간은 생의 소중한 부분을 빼앗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버렸다. 언론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대서특필했지만 모자는 밀실에 갇혀 지냈던 시간의 찌꺼기를 순식간에 덜어내기 힘들었다.


   안에만 있으면 탈주를 안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아들 잭을 달래보지만 엄마 스스로는 밀실에서 빠져 나온 뒤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기 버거웠던지 약물을 남용하고 의식을 잃고 말았다. 할머니의 보살핌 아래 회복세를 보이던 잭이지만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현실은 감당하기 힘들어서인지 침대 밑에 감춰 준 이빨을 꺼내 입에 넣고 빨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려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삶의 원기를 회복하는 동안 흩어진 퍼즐 조각을 맞추어 완성품을 만들어 가듯 엄마와 잭은 그들만의 독립 공간을 마련하여 필요할 때면 열고 드나들 수 있는 방에서 우리의 시간을 공유하며 바깥세상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익혀 나갈 것이다. 비록 성폭행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그 역시 소중한 생명체로 사랑받아야 할 유기체임을 엄마는 잘 알고 있다.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갖가지 곤충들과 이이야기를 나누며 책 속의 주인공들을 불러내 노래를 부르는 시간 속에 고단한 감금 생활을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었던 것도 서로를 향한 사랑이 자리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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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16 -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2016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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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미년이 저물어가고 있는 12월 중순, 지금껏 해 놓은 일 없이 세월 가는 대로 별 생각 없이 살아온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든다. 해마다 불안 요소를 높이는 일들로 위험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 불확실한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공포감은 확산되고 있다. 중국 경제의 성장저하로 한국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불황 시대를 견디며 사느라 소진된 일상에 희망의 소리로 현안을 해결하며 현명하게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지금의 시대를 진단하고 현명하게 대처해 경기침체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방향타가 될 <<트렌드 코리아 2016>>이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시대, 위험에 대한 자극적이고 불확실한 정보가 확대 재생산되면서 실체 없는 불안감은 증폭되었다. 정확한 정보에 따라 상황을 파악하여 신속히 대응할 필요가 절실한 때,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감각을 동원해 개성을 표현하며 자기 가치를 실현하는 양상을 띤다. SNS을 활용한 1인 미디어 시대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가치를 찾으려는 이들은 다양한 행태의 글과 사진 영상으로 체험형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 내수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소비자들은 고가의 브랜드를 찾기보다는 가성비 좋은 상품을 선호하는 소비는 샤오미 열풍으로 이어졌다. 고객 입장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상품의 핵심가치를 극대화하여 대체 불가능한 최적의 제품인 PB상품 개발은 지속적인 성장률을 보인다.

 

    결정의 연속인 삶에서 결정 장애 증후군을 보이는 이들에게 큐레이션 커머스 시행은 다양한 콘텐츠로 소비자 취향에 부합하는 결정으로 확대되고 있다. 도서 정가제 시행 이후 도서 콘텐츠를 활용한 ‘goods’숍 운영은 소비자들에게 긍정적 감정을 유발하여 구매율을 높였다. 사은품으로 받은 제품을 미디어에 담는 이들이 늘고, N포세대로 불리는 세대들은 타인의 행복과 고통을 대리 체험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 인스턴트식품의 자극적인 맛과는 달리 집 밥의 힘은 고담한 맛으로 추억을 되살리며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하는 원천으로 작용할 때가 있어서인지 손수 음식을 마련해 한 끼를 나누는 방송이 방송 프로그램으로 고정되는 추세다

 

   2016년 우리나라 예산안은 청년 희망, 경제 혁신, 민생 안정을 골자로 내수 경기 활성화와 문화 창조 융합벨트 조성사업에 주력해 경제 성장률 회복에 목표를 둔다고 공표했다. 소비자는 정해진 수입 아래 소비 규모를 줄이면서도 만족을 극대화하려는 플랜 Z소비로 최후의 전략을 내세울 것이라 전망했다. 100세 시대에 친환경생태중심의 미래형 자급자족 생활은 웰에이징 시대에 품위를 잃지 앓고 아름답게 늙어가기 위해서라도 선택해야 할 생활로 부각된다. 계획 임신으로 출산한 자녀를 부부는 설계도에 따라 건물을 짓듯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양육하려는 아키텍키즈 열풍이 일고 있다. 그에 걸맞은 문화센터 수업을 선택하여 자녀를 최고로 키우려는 경쟁의식의 연장선에서 맘충이라는 말을 들어도 선택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트렌드헌터그룹이 1년 동안 관찰한 다수의 키워드 중, 그 안에 숨어 있는 소비가치를 분류하고 분석하여 재정의해 10대 트렌드 키워드를 도출하였다. 2015년 소비 트렌드를 회고하며 2016년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는 글에서 소비자들의 소비 행태의 변화 과정에 드러나는 트렌드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객관적인 근거 자료로 잠재된 욕망을 표현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음을 입증하였다. 운동할수록 기부금이 쌓이는 마케팅 전략은 착한 소비를 이끌었고 쇼핑으로 기부하는 행위를 드러내며 연극적 개념의 소비가 확산되고 있는 사례를 담았다. 잔재주를 잘 부리는 원숭이 해인 2016년은 멍키바를 타고 내수 침체와 불황의 늪을 헤쳐 나가는 기회로 삼아 국민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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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끼는 제자의 연애 상대가 라인 회사에 근무하는 재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라인 회사가 어떤 곳인지도 잘 몰라 물었을 때 라인은 메신저 형태로 소통하며 스티커와 캐릭터를 팔아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곳이라 해서 그런가보다 여겼을 뿐이다. 라인 창업자의 핵심 경영인 심플을 어떻게 구현하는지 살피며 라인은 회사에서 개발한 모바일 메신저로 라인 가입자들끼리 국가나 이동통신사와 관계없이 무료 메시지는 물론 무료 영상 및 음성 통화 서비스가 가능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변화를 추구하며 정체되는 삶을 배격하며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는 실천적인 생활을 도모해왔다.

유동성이 높은 운동인 축구를 들어 선수들의 정해진 포지션은 있지만 상황에 따라 자리를 바꾸며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가치를 창출하며 세상에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 경영 원칙에 충실한 저자는 보편적인 생각을 뒤집는 일로 선택에 집중하였다. 음악에 몰두하였던 그는 니혼 텔레비전 방송망 주식회사에 입사하였다 퇴사한 뒤 사양길에 접어든 한게임 재팬 주식회사를 4년 만에 업계 1위로 만들어 신화를 이뤄갔다. 자원이 부족해도시행착오를 되풀이하며 백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함으로써 본질적인 노하우를 배워온 그는 안이한 타협을 거부하고 성공을 확신할 때까지 철저히 궁구하여 새로운 길을 열어갔다.

   정해진 길은 없는 자유인임을 자처하는 경영자는 급변하고 다변화된 시대, 현실에 안주하는 대신 긴장하며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선택하여 이직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단순한 논리이지만 실행이 쉽지 않은 심플을 외치며 스마트폰 등장을 기회로 삼아 메신저 라인 회사를 열었다. 연공서열식 인사제도를 폐지하여 정체되는 조직의 삶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함을 주창하는 경영자의 목소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역군이 떠올랐다. 고객들이 기뻐할 수 있는 회사를 위해 현실에 안주하는 사원이어서는 안 되는데 사원들은 한마음으로 일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온정주의로 모호함을 수용하기보다는 함께 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면 단호히 다른 길을 걸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회사에 모인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를 보면 어떤 회사인지 알 수 있는 것처럼 단순함을 추구하면서도 남들과 다른 길을 모색하여 선택한 일에 집중함으로써 스스로 성장하고 싶은 바람을 실현하고 싶은 이들을 채용하여 경영자와 직원이 동반 성장하는 삶을 추구해왔다. 동기를 부여받아야 움직이기보다는 자발적으로 나서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에 적극성을 띨 때 기업은 발전할 수 있다고 여긴 저자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갔다. 비전을 명문화할 필요 없이 기민하게 움직이며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여 갈 때 선순환은 이뤄질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사무직에서 일하며 살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은데 저자는 라인주식회사를 경영할 때 사무직을 따로 두지 않고 각 팀별로 계획을 공유하며 실행하고 직원들이 회의하는 시간을 줄여 각 팀에게 권한을 이양하여 계획을 세우기를 바랐다. 고객들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읽어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일에 집중하여 그에 부합하는 속도를 최적화했다. 저자는 기업을 경영할 때, 고객들의 불만 사항도 기업의 중요한 자산으로 여기면서 새로운 경영방식을 채택해 복잡함을 탈피해 심플함을 추구하며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새로운 일에 착수하여 대박 상품을 터뜨려 성공적인 궤도에 올랐을 때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달리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서는 추진력은 라인을 넘어 또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리게 하였다. 시행착오를 겪는 실패율도 다시 일어서는 자산으로 받아들이며 힘을 모아 도움닫기 발판을 구르는 역동성이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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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을 앞둔 섣달 그믐날이면 온 동네에 조청을 고느라 달착지근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고 연신 혀를 날름거리게 하였다. 머리 수건을 하고 아궁이 앞에 앉은 어머니들은 장작불을 보면서 조청이 눌어붙지 않도록 불 조절을 하면서 정성을 들였다. 봄에 뜯어 말려 둔 쑥을 며칠 전부터 삶아서는 우려 두었다 떡을 만들어 조청에 찍어 먹던 맛이 그리워진다. 바쁘다는 핑계로 기계에 의존하고 화학 처리한 음식을 입에 대면서 건강이 안 좋아진 것을 간과한 채 약물에 의존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볼 때면 안타까움이 더한다. 소박하지만 정성을 담아 장을 담그고 사라진 토하를 불러들여 길러내는 촌로의 관심과 노력은 쉽게 얻으려했던 삶을 반추하며 실패를 경험하여 뜻한 바를 이뤄가는 장인들의 숨은 열정의 결정체를 통해 기다림의 미학을 발견한다.

    ‘우리가 먹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이 된다.’

   섭취한 대로 병이 온다는 말을 믿으며 살고 있어서인지 안전한 음식으로 건강을 돕는 식습관 형성은 밥상머리 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여긴다. 식구들이 먹을 음식인 만큼 화학약품을 쓰지 않고 자연 상태의 재료를 엄선하여 전통적인 방법으로 음식을 빚는 손길은 묵묵히 한길을 파왔던 장인들의 작품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들은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는 가운데 생명적 유기체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기다림과 정성으로 우리의 맛을 되살려 전통적인 음식 문화를 복원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참나무 숯으로 고아낸 왕비천 하늘조청의 이원복 명인은 음식이 나니까 다른 게 들어가면 안 된다며 첨가물을 일절 넣지 않고 원재료만으로 조청을 만들었다. 입소문을 타고 주문양이 늘어도 공급량을 늘리지 않는 가운데 남을 속이지 않는 재료로 깊고 그윽한 단맛의 조청을 만들고 있다. 예로부터 강진 옴천의 토하는 임금님 진상품으로 명성이 있었지만 고향에서 토하가 사라져 명맥을 잇기 힘든 점을 안타까이 여긴 김동신 명인은 토하가 자연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친환경 요법으로 옴천 토하를 되살려 전통식품을 잇는 사명을 다하고 있다. 산란기에 잡으면 토하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그 기간을 피할 정도로 토하를 한 생명체로 받아들여 존중하는 태도에 숙연해진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최상의 품질을 자닌 명품 소금을 만들어 그들의 문화까지 판매하는 프랑스 게랑드 소금을 보면서 토판 천일염으로 염전을 운영해 날개 달린 바람꽃이라는 1등급 토판 천일염 생산에 몰입하는 박성춘 명인의 염전은 아픔을 치유하는 공간이었다. 좋은 소금이 만들어지려면 바람과 햇빛, 온도와 사람의 노력이 어우러져야 하는데 소금이 오기 시작하는 시간에는 사람이 가지 않는 게 좋다는 표현에서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살려 소금을 채취에 나서는 이들의 정성이 드러났다. 하루에 서너 번을 취했다 깰 수 있는 술인 하향주를 빚는 박환희 명인은 미국 영주권까지 반납하고 가양주를 고급주로 잇는데 일조하였다. 술 자체의 효모가 만들어낸 향과 맛을 살리기 위해 감각으로 누룩을 빚는 경험에서 우러나는 비법은 부단한 노력의 산물로 보인다. 누룩의 전문가로 밑술에 덧술을 더하는 과정을 거쳐 빚는 하향주를 음미하고 싶어진다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해요. 그래야 탈이 없어요. 자연의 순리를 자꾸 거스르게 되면 우리 모두 힘들어질 겁니다.’

   깨 박사로 통하는 윤원상 명인은 건강한 먹을거리를 최상의 재료로 삼아 침전물 없는 들기름과 참기름을 짜고 있다. 직접 설계해서 개발한 장비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생기지 않도록 깨를 볶는 과정에서부터 연소 과정까지 꼼꼼히 챙겨 3단계 정제과정을 거쳐 사람을 살리는 진유(眞油)로 기름을 생산하고 있다. 나이 마흔에 유방암 확진 판정을 받은 뒤 그동안 자신의 몸을 혹사하며 살아온 대가라 여긴 뒤 자신의 몸과 화해하기를 시도하며 식초를 만드는 명인김순양 씨는 자연과 마주 서서 생명이 생명을 낳는 발효음식에 집중하였다. 피로감이 몰려올 때는 식초를 마시며 자신의 몸이 내는 신호에 적절히 반응하며 주어진 시간을 자연 속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는 명인의 모습에 필요 이상의 욕심을 내려놓고 사는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한다

   자연이 주는 대로, 벌들이 마음에 드는 꽃물을 먹은 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토종꿀 명인 이진수 씨는 벌의 섭생에서부터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까지 버무려 지혜의 샘물처럼 슬기를 전한다. 과일 나무에 열매가 열리려면 수분을 도와주는 충매화에 토종벌은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프로폴리스 성분의 살균 효과는 면역력을 높여주고 꿀벌의 타액 성분인 파로틴은 사람 몸에 유익함을 준다. 살충제로 벌을 줄이기보다는 살충제 살포 대신 거리에 꽃을 심고 나무를 심으로써 물을 마셔서 꿀을 만드는 꿀벌의 지혜를 배울 일이다.

   한 집안의 음식 맛을 좌우하는 장맛은 집안의 가풍과 혼을 담아 민족의 고유한 정서인 기다림의 미학까지 품고 전승되고 있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가능한 대량 생산방식을 통한 이윤 추구와는 거리를 두고 전통의 장맛의 가치와 장 담그는 이들의 철학을 담은 정연수 · 김종희 명인의 장 담그기는 숭고한 가치를 실현하는 일처럼 보인다. 국산 콩만을 재료로 자연적 조건을 고려해 누구나 쉽게 따를 수 없는 그들만의 방식을 고수하여 최저의 염도로 가장 좋은 맛을 낼 수 있는 발효식품을 위해 온 정성을 쏟는 모습과는 대비되는 현대인들의 모습에 우울해진다. 가공 식품과 화학 식품의 입맛에 길들여져 즉석 식품의 자극적인 맛에 현혹되어 전통음식이 빚는 참맛을 잃어가는 시대에 <<명인 명촌>>의 장인들은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은 자연 상태에서 얻는 진미(珍味)임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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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하동과 인접한 남해이지만 한 번도 남해를 찾은 적이 없던 이가 첫발을 디딘 남해에서의 생활은 낯설기만 하였다. 섬사람 특유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한 연대는 타향 사람이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이질감을 주어 고독한 생활이 이어졌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별다른 경험도 없이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장난기 넘치는 학생들의 돌발적인 질문에 당황해하던 빛이 역력했던 시절 학생들은 처녀 선생님을 놀리는 재미로 눈에 빛을 내던 때라 수업은 계획한 대로 잘 이뤄지지 않았고 선배 교사들의 조언을 들으며 강약을 조절하여 갔다. 결손 가정의 자녀로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조부모 슬하의 결핍 속에서도 굳건히 성장하는 아이들과 소통하며 지냈던 시절은 감정 다툼으로 힘들었던 때도 있었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정으로 모아졌던 시대였다

 

   반농반어(半農半漁) 생활에 익숙한 남해 사람들은 1년 내내 손발을 부지런히 놀려 의식주를 해결한다. 마늘을 거두어 낸 자리에 모내기를 하고 수확인 끝난 자리에는 마늘을 갈아 한파에 마늘이 얼어 죽지 않도록 비닐을 덮어 구멍을 내는 농법으로 마늘 농사를 짓는다. 마늘을 심고 남은 땅에는 시금치 씨를 뿌려 해풍을 먹고 자란 시금치를 캐 선별하여 수입을 올린다. 이른 새벽부터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밥벌이의 일상을 위해 거센 파도를 감내하며 그물질하여 생선을 잡고 물고기를 털어낸 그물을 손질해 다시 바다로 나가 조업하는 어부들의 삶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면서 보편적인 일의 연장선이었다. <<라면을 끓이며>>에 담긴 저자의 고백은 진부하지만 일상성이 유지되는 밥벌이의 경건함에 공감하며 일상적 삶에 균열이 가지 않는 생활을 바라는 자신은 지난한 생활이 비껴가기를 바라는 소시민으로 살아갈 뿐이다.


   ‘000친구의 친정어머님께서 금일 숙환으로 별세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빈소와 발인 일을 명시한 부고는 고향 친구들 소식란에서 흔한 일 중 하나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나 풍족하지 않은 벽촌으로 시집와서 자식들을 건사하며 살아내느라 여유 있게 놀이 한번 떠나지 못한 채 요양병원에서 임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젊어서 몸을 사리지 않고 아등바등 거리며 살아온 대가로 골병을 얻어 말년을 고통 속에 살던 이들도 유택(幽宅)에 갇힘으로써 육신의 껍데기를 벗는다. 어머님 부재의 헛헛함으로 연민에 젖어 목 놓아 오열하던 유족들도 시간 속에 슬픔의 깊이도 엷어져 살아남은 자는 살아가게 된다. 망한 조국을 가슴에 품고 이역만리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무협소설로 갈증을 풀어내던 아버지의 말없는 광야를 떠올리며 밖으로만 떠돈 아버지를 원망하는 대신 연민의 눈으로 보는 저자 김훈의 시선은 울림을 준다

 

   20151112일 대학수학능력시험 전형일 감독관으로 남해읍에 위치한 고등학교인 남해제일고등학교로 오전 8시까지는 입실해 감독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하는 날이다. 여학생들만 응시하는 고사장이라 미묘한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여 불만을 토로한 사례가 있었던 터라 발자국을 떼는 것도 유의해야한다는 지침이 있었다. 1교시 국어 영역 시간 긴장을 많이 해서인지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고 소리 없이 땀을 훔치며 매뉴얼대로 감독을 행하였다. 시험 시간은 80분이지만 예비시간까지 합쳐 100분을 정중앙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더니 다리가 뻑적지근했다. 교사 대기실에서 숨을 고르며 노란 리본을 단 감독관을 보니 세월호 참사로 진도 앞바다에 수장된 아이들이 생각났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 한마디를 믿고 구조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차가운 바다 속 선실에 갇혀 두 발로 걸어 나오지 못했다. 구조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놓치고 숱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서야 구조하는 척했을 분이다. <<눈 먼 자들의 국가>>를 읽으며 세월호 유가족들과 아픔을 함께 하려는 움직임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진상 규명을 위한 실천에 힘을 더할 때 또 다른 참사는 일어나지 않을진대 그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기우일까?

 

   1980년 이른 봄 학교에 입학한 후로 줄곧 학교를 오가며 이제는 자신만을 위한 공부에서 벗어나 교육자와 피교육자가 동반 성장하는 길을 모색하는 교사로 생활한 지 26년째에 접어들었다. 돌이켜보면 회한으로 얼룩진 날들이 많았지만 독서로 생각의 깊이를 더하면서 자기 성장을 도모하는 생활을 잇는 제자들을 보면서 희망을 읽는 날이 늘어났다.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읽기로 지평을 넓혀가는 공부의 본질에 가까운 독서는 내실 있는 인생의 고갱이로 자리하여 예기치 않은 문제들에 직면할 때마다 크고 작은 지혜를 주었다. <<책벌레와 메모광>>을 읽으며 서자로 태어났지만 읽는 이가 주인인 물건으로 대변되는 책이 있어 이덕무는 신분의 벽을 넘어서는 혜안으로 닫힌 문을 열 수 있었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인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등의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리면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살아가려고 실천한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지내서인지 매너리즘에 젖어 일상이 주는 달콤한 안락에 젖어 관성대로 살아가는 자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답답해질 때면 살던 곳을 떠나 색다른 공간을 찾아 나서기를 즐겼다. 가보지 않은 길을 동경하며 낯선 곳을 밟고 싶어 하는 마음은 단조로움에 변화를 시도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아들의 건강상 이유로 잠시 유예해두고 지낸다.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 여기면서도 왜 나에게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생겨 불행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푸념하면서도 감당할 수 있는 몫만큼만 고통도 오는 것이라 여기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새벽 5시 어둠에 잠겨 있던 물상들이 기지개를 켜고 빛을 향해 가고 있는 시각에 깨어나 빈방의 적막을 깨드리는 낭독으로 나만의 시간을 연다. 배우며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며 만난 숱한 인연들 중 몇몇은 교사의 보람을 일깨우며 지금 맡고 있는 일에 충실하라고 내면을 담금질한다. 피상적으로는 행복해 보여도 실상은 각기 다른 이유에서 파생된 다른 크기의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배우며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며 타자의 삶을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내적인 풍요로움을 구가할 수 있는 생업의 터전에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어 행복하고, 책벌레들의 진짜 공부의 의미를 발견하며 독서로 필사하는 초서까지 겸하여 질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인생이라 감사하다. 나만 유독 힘들다고 여길 때면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기초적인 생활 질서까지 잃고 평형을 유지하며 살 수 없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떠올리며 감정의 허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며 이 자리에서 행할 수 있는 일에 착수하는 자신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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