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하동과 인접한 남해이지만 한 번도 남해를 찾은 적이 없던 이가 첫발을 디딘 남해에서의 생활은 낯설기만 하였다. 섬사람 특유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한 연대는 타향 사람이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이질감을 주어 고독한 생활이 이어졌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별다른 경험도 없이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장난기 넘치는 학생들의 돌발적인 질문에 당황해하던 빛이 역력했던 시절 학생들은 처녀 선생님을 놀리는 재미로 눈에 빛을 내던 때라 수업은 계획한 대로 잘 이뤄지지 않았고 선배 교사들의 조언을 들으며 강약을 조절하여 갔다. 결손 가정의 자녀로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조부모 슬하의 결핍 속에서도 굳건히 성장하는 아이들과 소통하며 지냈던 시절은 감정 다툼으로 힘들었던 때도 있었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정으로 모아졌던 시대였다

 

   반농반어(半農半漁) 생활에 익숙한 남해 사람들은 1년 내내 손발을 부지런히 놀려 의식주를 해결한다. 마늘을 거두어 낸 자리에 모내기를 하고 수확인 끝난 자리에는 마늘을 갈아 한파에 마늘이 얼어 죽지 않도록 비닐을 덮어 구멍을 내는 농법으로 마늘 농사를 짓는다. 마늘을 심고 남은 땅에는 시금치 씨를 뿌려 해풍을 먹고 자란 시금치를 캐 선별하여 수입을 올린다. 이른 새벽부터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밥벌이의 일상을 위해 거센 파도를 감내하며 그물질하여 생선을 잡고 물고기를 털어낸 그물을 손질해 다시 바다로 나가 조업하는 어부들의 삶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면서 보편적인 일의 연장선이었다. <<라면을 끓이며>>에 담긴 저자의 고백은 진부하지만 일상성이 유지되는 밥벌이의 경건함에 공감하며 일상적 삶에 균열이 가지 않는 생활을 바라는 자신은 지난한 생활이 비껴가기를 바라는 소시민으로 살아갈 뿐이다.


   ‘000친구의 친정어머님께서 금일 숙환으로 별세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빈소와 발인 일을 명시한 부고는 고향 친구들 소식란에서 흔한 일 중 하나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나 풍족하지 않은 벽촌으로 시집와서 자식들을 건사하며 살아내느라 여유 있게 놀이 한번 떠나지 못한 채 요양병원에서 임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젊어서 몸을 사리지 않고 아등바등 거리며 살아온 대가로 골병을 얻어 말년을 고통 속에 살던 이들도 유택(幽宅)에 갇힘으로써 육신의 껍데기를 벗는다. 어머님 부재의 헛헛함으로 연민에 젖어 목 놓아 오열하던 유족들도 시간 속에 슬픔의 깊이도 엷어져 살아남은 자는 살아가게 된다. 망한 조국을 가슴에 품고 이역만리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무협소설로 갈증을 풀어내던 아버지의 말없는 광야를 떠올리며 밖으로만 떠돈 아버지를 원망하는 대신 연민의 눈으로 보는 저자 김훈의 시선은 울림을 준다

 

   20151112일 대학수학능력시험 전형일 감독관으로 남해읍에 위치한 고등학교인 남해제일고등학교로 오전 8시까지는 입실해 감독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하는 날이다. 여학생들만 응시하는 고사장이라 미묘한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여 불만을 토로한 사례가 있었던 터라 발자국을 떼는 것도 유의해야한다는 지침이 있었다. 1교시 국어 영역 시간 긴장을 많이 해서인지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고 소리 없이 땀을 훔치며 매뉴얼대로 감독을 행하였다. 시험 시간은 80분이지만 예비시간까지 합쳐 100분을 정중앙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더니 다리가 뻑적지근했다. 교사 대기실에서 숨을 고르며 노란 리본을 단 감독관을 보니 세월호 참사로 진도 앞바다에 수장된 아이들이 생각났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 한마디를 믿고 구조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차가운 바다 속 선실에 갇혀 두 발로 걸어 나오지 못했다. 구조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놓치고 숱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서야 구조하는 척했을 분이다. <<눈 먼 자들의 국가>>를 읽으며 세월호 유가족들과 아픔을 함께 하려는 움직임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진상 규명을 위한 실천에 힘을 더할 때 또 다른 참사는 일어나지 않을진대 그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기우일까?

 

   1980년 이른 봄 학교에 입학한 후로 줄곧 학교를 오가며 이제는 자신만을 위한 공부에서 벗어나 교육자와 피교육자가 동반 성장하는 길을 모색하는 교사로 생활한 지 26년째에 접어들었다. 돌이켜보면 회한으로 얼룩진 날들이 많았지만 독서로 생각의 깊이를 더하면서 자기 성장을 도모하는 생활을 잇는 제자들을 보면서 희망을 읽는 날이 늘어났다.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읽기로 지평을 넓혀가는 공부의 본질에 가까운 독서는 내실 있는 인생의 고갱이로 자리하여 예기치 않은 문제들에 직면할 때마다 크고 작은 지혜를 주었다. <<책벌레와 메모광>>을 읽으며 서자로 태어났지만 읽는 이가 주인인 물건으로 대변되는 책이 있어 이덕무는 신분의 벽을 넘어서는 혜안으로 닫힌 문을 열 수 있었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인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등의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리면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살아가려고 실천한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지내서인지 매너리즘에 젖어 일상이 주는 달콤한 안락에 젖어 관성대로 살아가는 자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답답해질 때면 살던 곳을 떠나 색다른 공간을 찾아 나서기를 즐겼다. 가보지 않은 길을 동경하며 낯선 곳을 밟고 싶어 하는 마음은 단조로움에 변화를 시도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아들의 건강상 이유로 잠시 유예해두고 지낸다.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 여기면서도 왜 나에게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생겨 불행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푸념하면서도 감당할 수 있는 몫만큼만 고통도 오는 것이라 여기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새벽 5시 어둠에 잠겨 있던 물상들이 기지개를 켜고 빛을 향해 가고 있는 시각에 깨어나 빈방의 적막을 깨드리는 낭독으로 나만의 시간을 연다. 배우며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며 만난 숱한 인연들 중 몇몇은 교사의 보람을 일깨우며 지금 맡고 있는 일에 충실하라고 내면을 담금질한다. 피상적으로는 행복해 보여도 실상은 각기 다른 이유에서 파생된 다른 크기의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배우며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며 타자의 삶을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내적인 풍요로움을 구가할 수 있는 생업의 터전에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어 행복하고, 책벌레들의 진짜 공부의 의미를 발견하며 독서로 필사하는 초서까지 겸하여 질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인생이라 감사하다. 나만 유독 힘들다고 여길 때면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기초적인 생활 질서까지 잃고 평형을 유지하며 살 수 없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떠올리며 감정의 허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며 이 자리에서 행할 수 있는 일에 착수하는 자신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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