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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혼자 머무를 수 있는 방이 없을 때 내 방이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한 방에서 식구들이 함께 기거하여 사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상이 마뜩하지 않아 속상할 때면 헛간 옆에 딸린 작은 방에 혼자 들어가 시간을 보낼 때가 있었다. 겨울철에는 군불을 때지 않아 이내 발이 시려 오래 머무르고 싶어도 머무를 수 없는 골방에서 비밀스런 편지를 쓰고 나와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룸’이라는 1음절의 소설책에서 비밀스러운 향취를 느낄 새도 없이 그곳에 갇혀 지낸 여인이 견뎌야 했던 인권 유린은 그곳을 탈주하는데 성공해서도 심인성 장애로 남아 새로운 삶을 사는데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하교하는 길 올드 닉의 술수에 넘어간 열여덟 살 소녀는 그에게 납치되어 7년간 바깥세계와는 단절된 작은 방에 갇혀 지냈다. 정원 오두막을 개조해 난공불락의 공간을 만들어 감금한 소녀를 폭행하고 출산한 아이까지 그곳에 가두고 최소한의 음식물을 공급하여 왔다. 다섯 살인 잭과 함께 지내는 엄마는 비밀번호를 알아내야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찾을 수 있는데 비밀번호를 밝혀낼 재간이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주문한 상품을 배달해주고 그가 머무를 때면 소리를 질러 외부에 그 사실을 알리려 해보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햇볕도 쬘 수 없는 갇힌 공간에서 갑갑하게 지내는 모자는 동화책 속의 주인공을 불러 모아 이야기를 엮어 갔고 체육 시간에 근육을 풀어줌으로써 기초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운동 시간을 확보해갔다. 다섯 살인 잭은 엄마 젖을 빨면서 공포를 견디고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을 찾았다. 빠진 이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을 매만지며 숫자를 세는 일로 두려움을 상쇄해 갔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화를 참지 못하는 올드 닉은 전기를 끊어버렸고 먹을 것을 공급하지 않는 일로 분노를 표출했다. 바깥세상과 절연한 채 아들과 둘망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마는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랐다. 엄마의 뜻을 알아차리면서도 용기 있게 시도하기에는 용의주도한 전략이 필요했다.
탈주 계획을 세운 뒤 첫 번째 시도는 무위로 돌아가자 두 번째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뒤 여러 번의 훈련을 통해 반복하며 수정할 부분을 보완해 갔다. 영리한 속임수로 올드 닉의 시선을 따돌릴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뒤 수순을 밟아 목숨을 건 탈출에 성공한 모자는 경찰서로 달려가 이 사실을 알리고 반인륜적 범죄자인 올드 닉이 수감됨으로써 7년간의 감금 생활을 종식되었지만 이들 모자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기까지는 치료와 치유를 병행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컴블랜드의 클레이 박사를 만나 상담 치료를 받으며 적절한 약물 복용으로 안정을 찾아가기를 원하였지만 쉽지 않았다. 7년이라는 시간은 생의 소중한 부분을 빼앗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버렸다. 언론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대서특필했지만 모자는 밀실에 갇혀 지냈던 시간의 찌꺼기를 순식간에 덜어내기 힘들었다.
안에만 있으면 탈주를 안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아들 잭을 달래보지만 엄마 스스로는 밀실에서 빠져 나온 뒤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기 버거웠던지 약물을 남용하고 의식을 잃고 말았다. 할머니의 보살핌 아래 회복세를 보이던 잭이지만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현실은 감당하기 힘들어서인지 침대 밑에 감춰 준 이빨을 꺼내 입에 넣고 빨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려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삶의 원기를 회복하는 동안 흩어진 퍼즐 조각을 맞추어 완성품을 만들어 가듯 엄마와 잭은 그들만의 독립 공간을 마련하여 필요할 때면 열고 드나들 수 있는 방에서 우리의 시간을 공유하며 바깥세상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익혀 나갈 것이다. 비록 성폭행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그 역시 소중한 생명체로 사랑받아야 할 유기체임을 엄마는 잘 알고 있다.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갖가지 곤충들과 이이야기를 나누며 책 속의 주인공들을 불러내 노래를 부르는 시간 속에 고단한 감금 생활을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었던 것도 서로를 향한 사랑이 자리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