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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ㅣ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8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부터 널브러져 있는 아이를 흔들어 깨우며 꿈이 뭐냐고 묻자 녀석은 벼락부자라고 서슴지 않고 말했다. 옆에 앉은 친구들도 하나같이 돈 많이 벌어서 폼 나게 살고 싶다는 말로 오전을 열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으로 하고 싶은 일을 말하기보다는 억대 부자로 살고 싶다는 10대들을 보면서 화폐 지상주의는 어느 새 우리 내부 깊숙이 들어와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냥 돈 걱정 없이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지내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이들뿐 아니라 소유욕에 찌들어 사는 이들은 지금 자신이 지니고 있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오로지 돈을 많이 벌어서 지금보다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고, 더 큰 차를 타고 다니며, 체면 유지가 되는 가방을 들기 위해 돈을 모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목적만 있을 뿐 그 재화를 어떻게 소비하며 살아갈 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빠진 채 더 큰 욕망을 탐하느라 버거운 삶을 잇고 있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내 집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살던 중산층은 돈을 벌수록 늘어나는 빚에 짓눌려 사는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고 마는 시대에 돈을 버는 일 못지않게 어떻게 쓰고 살아야 할 지 성찰하게 만든다.
무한경쟁 시대에 자식들을 기를 죽이지 않고 살아남게 하기 위한 전략으로 많은 부모들은 사교육비를 들여서라도 든든한 연줄이 닿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고학력 실업자가 천정부지로 늘어나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 채 고학력자의 능력이 사장(死藏)되고 있는 현실이다. 진리와 자유를 탐구하고 대학 문화를 창달하던 대학은 취업에 필요한 갖가지 전문적인 기술을 전수하며 취업 준비를 도맡아 행하는 학원으로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정규직으로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 기울이고 사회에 나가서는 애써 번 돈을 허무하게 써버리는 이들이 많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88만 원 세대로 전락하고 만 대졸자들을 연민하며 뭔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자탄해 왔을 뿐 어떤 대안을 내세우지 못했다. 머리로만 그들을 걱정해왔을 뿐이지 가슴으로 고민을 받아들여 어떤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기존에 나왔던 돈 버는 방법과는 달리 놀이처럼 돈을 재미있게 벌고 잘 쓰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자신이 아는 부자들 대부분은 쾌락지수를 높일 때는 흔쾌히 돈을 소비하지만, 일상적인 현장에서는 인색하기 이를 데 없는 이들이 많다며 개탄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바람직한 돈의 기술을 익히지 못하여 돈을 제대로 쓸 줄 모르고 있다며 소비할수록 삶이 풍요로워지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화폐 사용을 강조했다. 부자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 줄 것은 재산이 아니라 자립심임을 강조하고, 스스로 몸을 움직이며 실무 능력을 쌓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총재 무하마드 유누스는 누구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음을 역살하며 스스로 노동하며 수확하는 기쁨을 찾을 수 있게 하는 일이 소중하다고 했다. 불필요한 소비를 위한 빚을 얻고, 빚을 지려는 마음까지 청산했을 때 돈은 절로 모이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돈하고 잘 노는 일은 돈의 달인이 되는 길이라는 저자의 생각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 가치와 효용성을 끌어내는 지식 공동체 수유 너머에서 잘 나타난다. 이곳은 여러 강좌를 통해 강사와 학생들이 함께 소통하며 새로운 지식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실무 경험을 쌓아 자력갱생의 활로를 열어주기 위한 공간으로 자리한다. 최고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려는 이들에게 북드라망 접속을 강조하며 스스로 책을 통해 치유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음을 공동체 식구들의 글은 밝히고 있다. 수유 너머 식구들은 책을 통한 공부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과 어울리며 소통하는 가운데 돈을 벌고 그 돈을 적절히 나누고 있어 고무적이다.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즐겁게 공부하며 글을 써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본성과 경제가 일치하는 삶에 기초하는 돈벌이이기에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돈을 잘 벌고 잘 쓸 수 있다는 점은 그만큼 자유의 공간이 확보되었다는 사실과 그에 걸맞은 증여의 달인이 바로 돈의 달인이라고 말했다.
연말이면 그동안 기부했던 시민 단체에 전화를 걸어 세액 공제를 위해 기부금 영수증을 요구하여 왔다. 조건 없이 시민 단체에 기부해 오지 못했던 점 때문에 화폐에 대항하는 공동체인 코뮤니타스와는 괴리되는 자신의 모습에 다소 위축되었다. 버리고 행복하라는 비노바 바베의 슬로건은 무소유의 삶으로 일관하고 가사 장삼을 걸친 채로 다비장으로 향했던 법정 스님의 순수 증여의 실천적 삶이 떠올랐다. 맑은 물처럼 돈을 투명하게 쓰고, 당당하게 돈을 써서 내면에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증여, 이를 통한 적절한 순환이 이뤄져야 함을 밝혔다. 통통한 몸매에 해학적인 웃음으로 보는 이를 웃게 하는 걸승 포대화상이 포대를 들고 탁발하다 포대가 다 차면 그것을 비우고, 보시를 받을 때마다 길흉을 하나씩 알려 줘 지혜를 나눠줬던 것처럼 돈의 달인은 존재와 선물이 분리되지 않는 순수 증여를 실천해야 한다. 12대에 걸쳐 만석꾼으로 금욕적 원칙을 철저히 엄수하며 나눔을 실천한 경주 최 부잣집은 돈을 버는 것만큼 돈을 잘 쓰는 일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