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아 푸른도서관 40
안오일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시까지 등교하라는 학교 방침대로 등교 시간을 엄수하기 위해 가방을 둘러메고 아이들은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려 들어온다. 교실에 발을 걸치고는 숨을 할딱거리며 인사를 하는 아이 얼굴은 어느 새 당근 빛깔처럼 발갛게 달아 올랐다. 수행평가가 있는 날이면 쪽지를 내서는 그것을 외우느라 손끝이 바삐 움직인다. 책 속에는 우리들이 가보지 못한 길들이 경험 속에 살아 있다며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시험에 쫓겨 책 읽을 겨를이 없다고 항변한다. 야자 시간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있는 학생의 등짝을 때리며 헛짓거리 한다고 타박하는 감독 선생님의 말은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괜찮아』안오일 청소년 시집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눈에 포착된 시적 소재를 짧은 리듬 속에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예순 네 편의 시를 네 부분으로 나눠 분류된 시를 각기 다른 제목으로 아우르고 있는 시들은 평이해 보이지마는 시 속에 담긴 의미는 자못 깊다. 학교, 집, 학원을 획일적인 순으로 움직이는 청소년들의 동선은 무미건조함을 더한다. 학원에서 이미 배운 내용을 학교에서 건성으로 배우며 교과서 지식과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내용을 왜 말하느냐는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리할 것인지 냉소적인 시선으로 물었다. 잘나가는 어른이 되기 위해 열여섯 살 지금의 나를 잃어버린 시적화자가 빠져 버린 내 소리를 찾아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시에서는 점점 자신의 본질을 망각한 채 지내는 청소년들의 정체성을 찾게 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각박한 생활은 지금 행하는 규칙을 수동적으로 따르며 지내느라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자기표현이 미숙한 아이, 남의 물건을 제 물건처럼 빌려 쓰고는 돌려주지 않는 아이, 돈 잘 쓰는 아이 앞에서 굽실거리는 녀석의 등짝을 한 대 쳐 주고 싶다는 시에서는 한 교실에 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부정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천 냥 하우스에서 팔리는 물건들은 모두 한 자리에 들어있는 모습에 착안하여 각기 다른 취미를 안고 사는 아이들 역시 적성과 취미를 고려하기보다는 모두 수학 심화반에 넣어진 점을 들어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부각하고 있다.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내려다보는데

내 신발코가 불안하게 나를 쳐다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문처럼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내 자신이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다, 괜찮아...........

나는 신발코를 어루만져 주었다.

나를 만지듯

 

  현실의 부정적인 모습에 좌절하면서도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방편을 찾는 청소년들의 모습에 희망을 발견한다. 이 외에도 많은 시에서 청소년들의 각박한 삶을 반영하면서도 그들의 고민과 생각을 어루만져주는 모습에 진정성이 더해진다. 위만 쳐다보고 내달리는 청소년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위로의 말이 절실한 현대에 청소년들의 마음을 헤아릴 만한 시를 통해 그들이 삶 속에 이울 대는 단면을 보며 안쓰러움이 더한다. 청소년들의 현실적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이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희의 방 푸른도서관 41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는 어린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며 지내야 했다. 서른이 채 되기도 전에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어쨌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엄마는 여성이라는 삶의 고리를 끊고서라도 살아가야 했다. 돌배기 아들과 다섯 살 어린 딸을 위해서라도 이를 앙다물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계절마다 행상을 나간 엄마가 오지로 떠돌 때는 교통이 불편하여 사나흘이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말을 잘 안 듣는 손녀에게 엄마가 도망가서 다시는 안 돌아온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행여 할머니 말을 잘 안 듣고 있으면 엄마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할머니 말은 손녀를 점점 순응적인 아이로 만들어버렸다.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생명체의 죽음은 한 가정의 기틀을 무너뜨려 결핍으로 잇게 하여 상처 입은 가슴에 흉을 남기는 사례가 많다. 철이 들기도 전에 맞닥뜨린 부모님의 부재는 어린 소녀가 떠안고 살아가기에는 족쇄를 채우고 걷는 것처럼 힘겨울 것이다. 아들의 돌연한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할머니는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할 며느리에 대한 연민보다는 자식을 앗아간 장본인으로 낙인을 찍고는 며느리 스스로 집을 떠나는 순으로 마무리 짓고 말았다. 영문도 모른 채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소희는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가슴 속 한 마당에서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자리했다. 할머니를 의지하며 살던 소희에게 천수를 누리고 간 할머니의 죽음은 친척 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으면서 지내야 했다. 

  달밭마을을 떠나던 날 소희는 그곳에서 두터운 정을 나누며 친하게 지낸 바우와 미르를 먼저 버리고 소중히 여겼던 일기장을 함께 버렸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사실 중 하나가 눈치를 보면서 지내게 된다는 점이다. 소희는 사촌들과 함께 생활하며 학업성적이 뛰어나도 기뻐하기는커녕 식구들 눈치를 봐야 했고, 숙모가 운영 중인 미용실 바닥의 머리카락을 쓸며 애어른이 되어 갔다. 삼촌 집을 나와 엄마가 사는 곳으로 거처를 옮길 때 아기 때 헤어진 엄마를 만나 살아갈 수 있다는 기대도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십 수 년이 지난 세월의 간극이 빚은 틈새를 메워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자리해 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냉랭한 어조로 우진이와 우혁이를 우리 애들로 명명하며 자신과는 선을 긋는 엄마를 볼 때 소희는 가슴 속 큰 짐을 안고 지내야 했다. 
 

   아저씨 딸 리나가 머무르다 미국을 가버린 곳에 가방을 푼 소희는 자신만의 자율성이 확보되는 공간에서 정소희, 윤소희를 떠나 오롯이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 소희는 이전의 무상 급식 대상자라는 연민의 시선과 함께 감내해야 했던 모멸감, 수치심에서 벗어나 엄친아의 가면을 쓰고 살아갔다. 소희는 영화감상 반에서 활동하며 진솔한 모습으로 적극적인 생활을 잇는 채경,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힘겹게 생활하면서도 영화감독을 꿈꾸는 지훈과 정을 나누며 그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빚는 외로움을 상쇄해 나갔다. 소희는 차갑게 대하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가 바라는 모범생에서 점점 비껴나 자기감정에 충실한 열다섯 살 소녀로 존재해 나갔다. 엄마가 사다 준 비싼 옷보다는 아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골라 입고는 그동안 가슴 속에 재워 둔 말을 하나씩 꺼내며 자신에게 냉담했던 엄마와 마음의 문을 열어 대화하며 소통해 갔다. 

   자신의 본질을 숨기고 과거의 윤소희와는 단절한 채 살아가던 정소희는 디졸브로 활동하는 재서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며 위로받고 적절한 조언으로 생활의 변화를 이끌어 갔다. 처음부터 소희가 어떤 아이였는지 알고 있던 재서에게 자신의 치부를 다 틀어넣고 만 듯해 그를 대하기 힘들기도 했지만 서서히 둘의 관계는 회복해 간다. 아저씨의 달 리나가 스물이 되어 다시 집을 찾았을 때의 서먹서먹함이 애틋한 동질감으로 화해 갔듯이 소희는 찬란함 뒤에 숨겨진 초라함을 끌어안으며 하늘을 쳐다보며 꿋꿋이 살아가는 하늘말나리라처럼 성장해 갈 것이다. 소희가 가슴에 묻어두고 사는 달밭마을의 느티나무가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굳건히 살아나 무성한 잎을 달고 한여름 시원한 그늘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주듯 사랑을 베풀며 자신의 본질을 깨우쳐 가리라 믿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말하는
오츠 슈이치 지음, 황소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항해하는 배를 타고 살아가는 인생인지도 모른다.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에 자주 맞닥뜨리게 되는 지인들의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한 생각을 곱씹게 할 때가 많다.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일에만 미쳐 하루하루를 지내던 이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지 넉 달째 세상을 하직하고 만 현실은 남은 가족들에게도 회한으로 가득했을 듯하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 존재 가치를 발견하고 살아가지만 때로는 누군가와 갈등하며 현실에 부딪치며 사느라 부침하는 가운데 후회할 일들이 늘어만 가는 삶이다. 병마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연명해 가느라 쇠약해진 육신으로 생명의 끈을 잇는 이들을 돌보는 일에 종사하는 이의 이야기는 지나 온 삶을 반추하고 오늘을 새롭게 살아갈 의미를 찾게 한다.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는 호스피스 전문의인 저자가 돌보던 말기 환자들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고통을 완화해주는 일련의 일들이 냇물이 흘러 강으로 가는 것처럼 잔잔한 리듬을 타고 내면으로 스며든다. 나이 들어 갈수록 육신은 늙고 병들어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나기에 건강할 때 오롯한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 후회를 줄여 나가는 길밖에 없을 듯하다. 타인의 부음(訃音)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을 반추하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게 한다. 지금껏 자신의 확고한 선택 의지보다는 타인이 정한 규정을 따르며 수동적으로 살았던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대로 세상을 살아가려는 마음을 더한다. 

  저자는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들의 고단한 삶 속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스물다섯 사례를 들어 일상에 매몰되어 사는 현대인들에게 성찰의 시간을 준다. 일상에서 도외시하고 넘어가던 일들을 끌어내 변화를 줘 새로운 세상과 부딪치며 사는 일을 즐기고 있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로 떠난 인도 여행은 아직껏 맛보지 못했던 시큼하고 짭짤하며 쓰디 쓴 일상의 연속이었지만 그때만큼 진솔한 나를 만나보지 못했던 듯하다. 그래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공간으로 다가가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갈 무렵 일상으로 돌아오는 여행을 떠나지 못한 게 후회스러운 점이라는 부분에서는 더욱 공감되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의 ‘행복’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을 때 온 세상이 발그레한 모습으로 타올라 더욱 아름답게 보였던 때가 청춘시절에 있었다. 그 무엇보다 생생한 삶을 그리며 현재를 열심히 살았던 추억은 지금 생각해도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기도 하다.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그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의 발자취 속에 생생한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다. 즐기던 음식까지 기피하며 살빼기에 골몰하는 이들을 적잖이 만나면서 먹는 즐거움이 배제된 식사는 무미함이 더할 듯하다. 보고 싶은 이를 만나 서로 대화하며 즐거운 음식을 함께 먹지 못한 게 또 다른 한으로 남아서는 안 될 일이다. 이외에도 책에서는 일상 속 의미 있는 활동을 프레임 속에 담아 후회를 최소화하며 살아가야 할 삶의 의미를 담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의 문턱에 서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며 회한에 젖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 현재 건강한 삶을 자신하면서 죽음을 멀게만 여긴 나머지 미처 생각지 못한 일들을 자각하게 만든다. 예고도 없이 찾아드는 죽음은 기존의 질서를 뒤엎고 상실의 아픔을 넘어 통한의 슬픔에 잠기는 일을 줄일 수 있는 길은 살아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언젠가는 죽게 될 운명을 앞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죽음을 맞아들여야 하는지를 생생한 인터뷰에 담았다. 사랑과 신뢰로 맺어진 가족들에게 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는 일로 하루를 열어가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 감정에 휘둘리며 시간을 허비하는 일을 줄여 오늘 하루가 현세의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하는 길은 회한으로 얼룩진 마음을 펴나갈 수 있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 - 10대와 어른, 섹슈얼리티로 소통하다
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유섹인) 기획, 변혜정 엮음 / 동녘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2008년 겨울 송년회를 앞두고 온 가족이 함께 봤던 영화 과속 스캔들이 떠오른다. 10대들의 전폭적인인 관심 속에 인기를 모으던 서른 중반의 라디오 DJ 남현수가 진행하는 프로에 하루도 빠짐없이 사연을 보내오던 황정남이 느닷없이 찾아와 숨겨진 사실을 폭로하고 말았다. 정남 자신은 현수가 과속해서 낳은 딸이라며 바득바득 우겨댔고,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애까지 달고 나타나 황당무계함을 더했지만 가족의 끈 아래 함께 연대하여 살아가는 희망적인 삶을 담았다. 10대 여성이 임신을 하고 출산 후 미혼모의 삶을 택해 아이를 키워나가는 과정을 표면화한 영화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를 통해 그동안 묻어두고 입에 담기 불편하게 여겨 왔던 10대의 성에 대해 다양한 측면으로 살폈다. 간간이 경험자의 인터뷰를 함께 실어 우려했던 일들이 흔하게 벌어져 충격적인 10대의 성문화만큼이나 기성세대들이 간과시해 왔던 점을 반성케 했다.


 

  어른과 아이의 중간지대에 놓인 열여덟, 열아홉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며 소통이 잘 안 되어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줄 때가 종종 있다. 도발적인 말로 반항을 일삼는 아이, 과잉 행동으로 조절 능력을 잃고 생활하는 아이들을 골치 아픈 존재로 여기며 이 학년도만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던 적도 있다. 막강한 소비자본주의와 대중매체의 영향력으로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청소년들은 하나같이 성형을 할 것이라고 말하며 지금부터 알바라도 해서 돈을 모으겠다는 소리까지 서슴지 않아 충격적일 때도 있다.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10대 성매매와 성 상품화 관련 뉴스가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 아래 10대들이 떠안고 살아가는 고민 중 성(性)에 대한 생생한 고민과 분석을 객관화하여 보여준다. 사건을 일으키는 십대에게 지금은 인생을 책임질 나이가 아니니 모든 일은 어른이 된 뒤로 유예하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로 현안을 마무리 짓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듯하다.


 

  성교육을 행하는 강의실에서는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성년이 될 때까지는 성행위를 해서는 인생을 망치게 된다는 우려를 담아 낙태했을 때의 피해 양상을 보여주는 교육이 많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자기 규제적이고 검열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주체로 살아가는 10대의 성적 욕망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명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듯하다. 무엇보다 성 경험을 뒷공론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친구들과 성에 대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공간에서 삶의 상황과 정체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음을 밝히는 글에서 10대의 성경험에 따른 임신을 표적 삼아 조용히 일을 끝내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요구되는 요즘이다. 고착적인 위치성이 깨지고 운동성이 발휘되면서 진동의 일탈을 꼬집은 김예란 글쓴이는 유비쿼터스 같은 모바일 환경 아래 10대는 쉽게 욕망에 노출됨을 주시했다. 경제적 결핍과 성적 욕망의 불행한 결합이 진정성과는 거리가 먼 일탈을 부추기는 점이 큰 것으로 봤다.

 

  여성의 외모는 경쟁력으로 치부되어 성형을 해서라도 경쟁력을 높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잠재된 가능성과 실력보다는 여성의 외모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남성 중심의 가치관이 여성의 외모 관리에 열을 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불편함을 더했다. 그 파장은 10대에까지 미쳐 저렴한 수술로 외모의 불균형과 변형을 야기하였다. 출산 장려 정책으로 미혼모들을 위한 사회복지 시설 확충으로 10대의 임신을 장려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기도 하지만 10대 미혼모는 증가 추세를 보인다. 10대 임신에 대한 사회적 낙인 속에서도 엄마가 되려는 10대의 선택을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 가족, 환경, 노동 시장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쉽게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 비춰졌다. 10대의 임신과 출산을 백안시하기보다는 그녀들이 처한 삶의 환경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역동적인 집단으로서의 10대로 볼 필요가 있음을 주창했다.

 

  티켓 다방으로 시작해 성 매매업에 발을 딛고 사는 이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 그들이 생각하는 일은 본능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소모하며 사느라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듯해 안타까움이 더했다. 쉽게 돈을 벌고 쓰는 법을 배워 힘든 일은 기피하며 빚까지 떠안는 10대들의 모습은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며 꿈을 향해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과 동떨어져 간극이 너무나 커보였다. 10대의 동성애자들의 고민 속에는 다수가 지향하는 가치를 선으로 여기며 소수자들의 동성애는 볼썽사납게 여기는 사회 풍토를 꼬집었고, 북한 이주 1.5세대 여성들이 남한 사회에서 여전히 겉돌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야기까지 폭넓게 담아 베일에 가려진 10대들의 성 담론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열여덟 살 딸을 키우는 엄마로 이 글을 읽어가는 시간이 제목처럼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가정과 학교에서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 대부분이 일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자신의 선택 의지보다는 환경의 영향으로 또 다른 길을 걷는 이들이 많음을 인지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일이 급선무일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8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부터 널브러져 있는 아이를 흔들어 깨우며 꿈이 뭐냐고 묻자 녀석은 벼락부자라고 서슴지 않고 말했다. 옆에 앉은 친구들도 하나같이 돈 많이 벌어서 폼 나게 살고 싶다는 말로 오전을 열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으로 하고 싶은 일을 말하기보다는 억대 부자로 살고 싶다는 10대들을 보면서 화폐 지상주의는 어느 새 우리 내부 깊숙이 들어와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냥 돈 걱정 없이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지내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이들뿐 아니라 소유욕에 찌들어 사는 이들은 지금 자신이 지니고 있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오로지 돈을 많이 벌어서 지금보다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고, 더 큰 차를 타고 다니며, 체면 유지가 되는 가방을 들기 위해 돈을 모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목적만 있을 뿐 그 재화를 어떻게 소비하며 살아갈 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빠진 채 더 큰 욕망을 탐하느라 버거운 삶을 잇고 있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내 집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살던 중산층은 돈을 벌수록 늘어나는 빚에 짓눌려 사는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고 마는 시대에 돈을 버는 일 못지않게 어떻게 쓰고 살아야 할 지 성찰하게 만든다.

 

   무한경쟁 시대에 자식들을 기를 죽이지 않고 살아남게 하기 위한 전략으로 많은 부모들은 사교육비를 들여서라도 든든한 연줄이 닿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고학력 실업자가 천정부지로 늘어나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 채 고학력자의 능력이 사장(死藏)되고 있는 현실이다. 진리와 자유를 탐구하고 대학 문화를 창달하던 대학은 취업에 필요한 갖가지 전문적인 기술을 전수하며 취업 준비를 도맡아 행하는 학원으로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정규직으로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 기울이고 사회에 나가서는 애써 번 돈을 허무하게 써버리는 이들이 많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88만 원 세대로 전락하고 만 대졸자들을 연민하며 뭔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자탄해 왔을 뿐 어떤 대안을 내세우지 못했다. 머리로만 그들을 걱정해왔을 뿐이지 가슴으로 고민을 받아들여 어떤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기존에 나왔던 돈 버는 방법과는 달리 놀이처럼 돈을 재미있게 벌고 잘 쓰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자신이 아는 부자들 대부분은 쾌락지수를 높일 때는 흔쾌히 돈을 소비하지만, 일상적인 현장에서는 인색하기 이를 데 없는 이들이 많다며 개탄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바람직한 돈의 기술을 익히지 못하여 돈을 제대로 쓸 줄 모르고 있다며 소비할수록 삶이 풍요로워지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화폐 사용을 강조했다. 부자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 줄 것은 재산이 아니라 자립심임을 강조하고, 스스로 몸을 움직이며 실무 능력을 쌓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총재 무하마드 유누스는 누구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음을 역살하며 스스로 노동하며 수확하는 기쁨을 찾을 수 있게 하는 일이 소중하다고 했다. 불필요한 소비를 위한 빚을 얻고, 빚을 지려는 마음까지 청산했을 때 돈은 절로 모이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돈하고 잘 노는 일은 돈의 달인이 되는 길이라는 저자의 생각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 가치와 효용성을 끌어내는 지식 공동체 수유 너머에서 잘 나타난다. 이곳은 여러 강좌를 통해 강사와 학생들이 함께 소통하며 새로운 지식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실무 경험을 쌓아 자력갱생의 활로를 열어주기 위한 공간으로 자리한다. 최고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려는 이들에게 북드라망 접속을 강조하며 스스로 책을 통해 치유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음을 공동체 식구들의 글은 밝히고 있다. 수유 너머 식구들은 책을 통한 공부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과 어울리며 소통하는 가운데 돈을 벌고 그 돈을 적절히 나누고 있어 고무적이다.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즐겁게 공부하며 글을 써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본성과 경제가 일치하는 삶에 기초하는 돈벌이이기에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돈을 잘 벌고 잘 쓸 수 있다는 점은 그만큼 자유의 공간이 확보되었다는 사실과 그에 걸맞은 증여의 달인이 바로 돈의 달인이라고 말했다.

 

   연말이면 그동안 기부했던 시민 단체에 전화를 걸어 세액 공제를 위해 기부금 영수증을 요구하여 왔다. 조건 없이 시민 단체에 기부해 오지 못했던 점 때문에 화폐에 대항하는 공동체인 코뮤니타스와는 괴리되는 자신의 모습에 다소 위축되었다. 버리고 행복하라는 비노바 바베의 슬로건은 무소유의 삶으로 일관하고 가사 장삼을 걸친 채로 다비장으로 향했던 법정 스님의 순수 증여의 실천적 삶이 떠올랐다. 맑은 물처럼 돈을 투명하게 쓰고, 당당하게 돈을 써서 내면에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증여, 이를 통한 적절한 순환이 이뤄져야 함을 밝혔다. 통통한 몸매에 해학적인 웃음으로 보는 이를 웃게 하는 걸승 포대화상이 포대를 들고 탁발하다 포대가 다 차면 그것을 비우고, 보시를 받을 때마다 길흉을 하나씩 알려 줘 지혜를 나눠줬던 것처럼 돈의 달인은 존재와 선물이 분리되지 않는 순수 증여를 실천해야 한다. 12대에 걸쳐 만석꾼으로 금욕적 원칙을 철저히 엄수하며 나눔을 실천한 경주 최 부잣집은 돈을 버는 것만큼 돈을 잘 쓰는 일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7:12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