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세상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
고은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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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고 답하는 석학들의 강연 속에 일깨우지 못한 우리들의 미욱함을 뉘우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어떤 방향을 추구하며 살아야할지 고민하게 된다. 불황의 늪 속에서 헤어나기 힘든데다 내우외환의 위기가 깊어지는 때 총체적인 난국을 헤쳐 나갈 지혜를 얻는 일은 쉽지 않을진대 12명의 지성인들의 글을 통해 현안을 해결해 갈 물꼬를 트고 자신의 상황에 부합하는 선택과 결정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 가야할 숙명이 내려졌다

   의견을 드러내다 보면 상충하여 갈등할 때가 있는 우리 사회는 그것을 분열로 몰고 가서는 흑백논리로 치닫고 말아 화합과 상생의 조합과는 요원한 길을 걷는 경우가 허다하다. 원효는 화쟁론에서 모든 경전을 인정함으로써 개별적 다양함을 살려내 나의 경험과 지식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험과 지식도 진리임을 인정해야 함을 밝혔다. 내가 옳음을 입증하는 논쟁에 비해 대화는 상대방의 옮음을 발견하는 과정인 만큼 경청을 통해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일부터 시작할 일이다. 조성택 교수는 세상의 아픈 곳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고 인문학이 세상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작용할 수 있는 시민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임진왜란 당시 전시 총사령관격인 영의정 겸 도체찰사였던 '류성룡'이 임진왜란 7년을 온몸으로 겪은 후 집필한 전란의 기록인 <<징비록>>을 통해 한명기 교수는 임진왜란 당시의 역사적 과오를 응징하여 미래의 위기에 대비하는 지혜와 통찰을 구하려고 하였다. 임진왜란 동안 15회나 물러나겠다고 선수를 쳤다가 철회한 선조를 다독여 종묘사직을 유지하였던 영의정 류성룡의 고달픈 임무를 떠올리며 최고 지도자에게 필요한 능력과 책임감이 막중함을 후세에 전하려는 의도가 컸다. 국정 최고의 요직에 있으면서 전란의 현장에서 조선의 재건을 위해 류성룡은 상업적인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식으로 외교나 교섭의 힘은 한 나라가 갖고 있는 능력과 힘에 비례함을 간파하였다

   자기 안의 언어가 저절로 커서 자연스럽게 폭발하여 표현된 시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잘된 작품이라는 글을 통해 힘을 배는 작업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견고한 성처럼 자리한 주체성이 비껴난 자리 밑에 감춰져 있던 것들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힘을 내게 하는 시를 통해 자신 안에 깃든 타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일흔인 학자는 잘 살기 위해서 시를 읽으며 말귀가 밝아질 수 있도록 힘쓰고, 관용의 정신을 기름으로써 외롭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것도 잘 사는 방법 중 하나라 일컬었다. 격동의 시대를 보낸 고은 시인은 많은 죽음을 목도하면서 생존자로서 애도해야 할 의무를 안고 살아가는 원죄를 말하며 폐허 위에 삶을 노래하며 궁극적으로는 통일된 세상을 바라는 시로 갈무리하였다

   ‘쾌락이야말로 최고선이며 고통과 불행은 최고 악이다.’

   에피쿠로스는 고통으로부터 해방하는 게 행복이라고 보았지만 관능적인 쾌락이 주는 행복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욕구를 끌어 올리다 보면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고 욕구를 낮출 때 행복은 우리 가까이 있게 됨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는 정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철학적인 성찰을 나누면서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질 때 행복했다고 회고하였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죽음의 수용소라 불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존한 빅터 프랭크는 니체의 구절을 가슴에 새기며 죽음의 공포를 견뎌내게 한 희망의 전언이었다. 고통은 홀로 맞서야만 하는 주관적인 체험으로 홀로서기를 통해 극복 가능한 것이지만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는 말에 공감하며 타인의 상처를 섣불리 아는 것처럼 나서서는 안 됨을 절감한다.

   특정한 방식과 목적을 갖고, 비판 없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주의를 기울이고 10초 동안 호흡에만 집중할 때 감성지능은 높아지고 마음의 고요는 들어앉아 열락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명상법을 차드 멩 탄은 소개하였다. 바깥으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내면을 살핌으로써 자기 인식 능력을 발전시켜서 번뇌로부터 벗어나 친절과 자비를 베푸는 습관이 자리할 때 세계 평화로까지 확대해 나갈 수가 있다. 돈을 어떻게 써야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 고민할 때 서슴지 않고 여행 경비와 문화생활을 위한 관람료 지불 등을 꼽는다. 재화는 남지 않지만 남는 경험으로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살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해야 무엇이든 이루며 살 수 있는데 지난해에는 건강한 생활을 위해하는 요소들이 불거져 온 가족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내야 했다. 여전히 안고 가야 할 일이지만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며 지금 있는 자리에서 정성을 다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건강한 신체에 의미 있는 내용을 담아 가는 평생 학습을 잇고,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 대안을 모색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이강호 교수는 글로벌 시대의 필수 과제로 보았다.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아 무고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세월호 사건을 통해 안전한 생활을 담보할 수 없는 나라의 우울한 자화상이 떠올라 숙연해지고 만다. 130년 째 건설 중인 이탈리아의 밀라노 대성당에는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제대로 된 성당을 완공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경계의 벽을 허물고 호기심을 품어 변화를 추구하며 무엇인가에 도전하며 살아갈 때 그 생활에 깃든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행복한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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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많습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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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독서의 효과를 말하며 책을 읽고 표현하는 일이 자기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을 달고 사는 교사로 자리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독서는 나의 힘이라는 말을 방증할 만한 이들의 일화를 들려주며 책을 즐겨 읽던 이들이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만족지수가 높다고 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며 책 읽기를 강조하게 되었다. 책장을 넘기며 행간에 따라 읽어 내려갈 때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 곳곳에 숨어 있어 사고하는 과정을 통해 책은 나만의 보석으로 가슴 속에 자리한다. 책이 좀 많은 집의 주인들은 대부분 애서가인 경우가 많다. 헌책방을 운영하는 저자가 책을 매개로 맺은 인연들의 서재를 찾아 서재 풍경을 피사체에 담고 서재의 주인공들과 나눈 대화를 글로 엮어 풀어냈다.

 

 

  여고 시절 보수동에 살았던 친구 집을 오르내리며 들렀던 책방 골목은 예전보다 규모가 줄어들었지만 아련한 향수 속에 자리하던 공간이 관광 명소로 각광받으며 부활하는 듯해 반가웠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절 참고서와 문고판 책을 사러 들렀던 책방 골목은 오래 된 책들이 뿜어내는 냄새는 은은히 묻어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었다. 대형 온라인 서점이 영세한 서점의 문을 닫게 하였고 중고 서점까지 대형 서점이 운영하고 있어 작은 책방들이 문을 닫는 사례가 늘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책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 헌책방을 운영하는 일로까지 확장된 저자가 만난 평범한 애서가들의 책사랑은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집에서 혼자 책을 읽다가 동네를 한 바퀴 돌아야겠다고 집을 나서서 정비된 길을 걷다가 군립 도서관으로 가 가판대 위의 신문을 보고 열람실에 들러 책들을 둘러보고 오는 여정이 즐거움을 준다. 사서 교사 이영주 씨는 독서를 상상력 함양의 수단으로 여기는 학교 독서교육의 편협한 시선을 교정하여 독서를 즐기는 교육으로 치환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상상력을 기르는 일은 우리 사는 세계를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균형 있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토대로 기능할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마감 기한에 쫓기지 않고 차분히 읽어야 하니까 책은 사서 읽는다는 여행 작가의 애장 도서 이야기는 배낭 옆에 놓인 메모지만큼이나 생활의 내밀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타인이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하는 공부는 한계가 있는데 반해 스스로 책을 보면서 깨우친 것을 바탕으로 하는 공부는 재미를 더한다. 책 읽기에 좋은 시간은 애독자마다 다를 테지만 소요로 들끓는 시간보다는 만물이 잠들어 적요함으로 가득한 시간일 것이다.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책을 읽으며 연애 감정을 느낀다는 대학원생의 독서는 허상의 세계가 발현하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에 책을 소유하여 읽는 것일 테다.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역사적 주체로 바로 서기 위해 건강한 역사의식을 길러주기 위해 역사서 관련 책을 읽으며 후학들에게 그 의미를 들려주는 일에서 의미를 찾는 인터뷰이의 글은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들이 새겨야 할 일이다.

 

   ‘너의 길을 걸어라, 누가 뭐라 하든지.’

   유명세를 타는 이들이나 평범한 삶을 사는 이들 모두 유한한 삶을 사는 만큼 자신의 생을 주체적으로 꾸려 의미를 찾을 필요가 있다. 존엄한 개체로 자아 존중감을 잃지 않고 살기 위해서라도 내면의 성장을 도모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야 할 당위성은 곳곳에 자리한다. 책장에 자리하고 있는 책들은 인생의 오욕(五慾)칠정(七情)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양분으로 자리한다. 인생의 고비가 있을 때마다 책 속의 인물들은 체념하지 않고 견디며 현안을 해결하는 열쇠로 작용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애서가는 컨테이너에 책들을 보관하느라 경제적 부담이 큰데도 지적 양분이 축적된 책을 쉽게 처분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책 읽기를 즐기고 표현하는 일을 좋아하는 만큼 나만의 서재를 마련하고 싶은 열망은 점점 커져간다. 책을 좋아하는 헌책방 주인이 서재의 주인들을 만나 대화하는 동안은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시대에 느림의 미학을 발견하며 내장된 가치를 일깨우는 시간이었다. 나 역시 쌓여가는 책들을 한곳에 모아 자기 나름대로 분류한 서재를 갖춘 독립된 공간에서 타인의 훼방 없이 그곳에 박혀 책을 읽고 사유하며 표현하는 일에 몰두하고 싶어진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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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어쩌면 가까이 - 슬픈 날에도 기쁜 날에도, 제주
허지숙 & 허지영 글.사진 / 허밍버드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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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쁘게 움직이며 살던 친구는 에너지 고갈 상태라 재충전이 필요한데 빛의 속도로 움지깅며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고 하였다. 코발트 빛 바다와 달콤 쌉싸름한 추억을 몰고 오는 바람에 가슴 속 이야기를 풀어놓기에 그만인 곳 제주도로 가자는 암묵적인 소통에 우리는 제주 공항에서 만나 사나흘 함께 지내기로 하였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살 수 있다고 여겼던 이들도 하나 둘 곁을 떠나고 남아 있는 친구가 몇 안 되기에 그들과 교감하며 사는 일은 인생의 노년을 풍요롭게 보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가슴 속 이야기를 나누며 살 수 있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음을 잘 알기에 지금 곁에서 정성을 다하는 이들을 소중히 여기며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수다를 늘어놓는 잦은 만남이 주는 공허함보다는 자주 보지는 못하여도 서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 든든한 보호막이 내게도 필요했다.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를 찾아 생전 그가 담았던 제주의 풍광을 보면서 오름 하나하나의 가치가 새롭게 파고들었다.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제주도 곳곳을 피사체에 담아 제주도의 속살들을 보여주었다.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제주도의 내밀함을 찾아 제주도를 찾는 이들에게 이국적인 풍광에 인생의 진솔함을 투사하여 고독을 상쇄하며 지냈던 그가 떠오른다. 또 하나의 사진첩을 발간한 허 자매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 공부를 하러 제주도를 떠났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제주도에 살면서 사계절마다 다른 빛깔로 손짓하는 제주도를 담았다. 일상적인 공간이 색다른 의미로 창조되는 시간은 너와 나가 우리로 연대하여 소통하고 교감하는 순간이었다.

보리밭 사이를 걸어가는 자매의 치맛자락이 나풀거릴 때마다 제주도 생활의 이야기는 도르래에 감긴 실이 풀리듯 간결한 문장에 녹아 흐른다.

   제주에 정착한 이들은 예술적 심미안을 바탕으로 재능을 발휘하는 일에 종사하면서 함께 하는 일상을 피사체에 담아 제주도를 드러냈다. 가만히 있어도 좋을 공간 제주도이지만 외지인들에게는 특별한 공간으로 비춰지는 제주도의 속살들을 들여다보는 순간 그곳으로 가고 싶은 열망을 더한다. 사계절 내내 다채로운 색과 문양으로 신비로움을 더하는 공간 제주도를 다녀온 이들이라면 느긋하게 움직이며 천혜의 자연과 함께 하는 자매의 일상이 부러움으로 차오를 정도다. 올레 길을 걷는 이가 늘어나서인지 구석구석에 들어선 게스트 하우스와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어 이색적인 공간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비축하며 지내기에는 제주도만한 곳이 없어 보인다.

    제주의 자연을 사랑하고 시간이 깃든 오래 된 물건을 각별히 아끼고 소중히 여기던 엄마의 감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딸들은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며 풍광 속에 주인공으로 자리하여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여행 중에 만난 벨기에 청년과 함께 일몰이 아름다운 수월봉을 찾았고 미래의 이상형을 만나 바닷가에서 그들만의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연출하며 상상 속 아이디어를 재현한 일은 통념을 부수는 행동 중 하나로 신선함을 더했다. 화산 폭발 때 날아온 화산재가 겹겹이 쌓인 화산쇄설층은 폭발의 격렬함을 가늠하기에 충분한 줄무늬로 새겨져 있었다. 동백 언덕으로 불리는 카멜리아 힐의 수국 동산은 남다른 매력을 주는 청초함으로 가득했다.

    여름에 제주도를 여행했을 때 대지의 열기와 인파에서 묻어나는 열기로 몸살을 앓았던 기억이 떠올라 여름 여행은 꺼리기 일쑤인데 사려니 숲길, 삼다수 목장, 마방목지 등을 구경하기에 좋은 516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라면 마음이 달라질 것 같다.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장마는 제주의 고독과 처연함이 공존하는 때로 호젓한 묘미를 즐길 수 있다니 이 무렵 제주를 찾았을 때 장마를 만나더라도 불평은 잠재워 둘 일이다. 가을에는 오름을 오르며 오름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곁들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겨울이면 온 세상을 순백으로 뒤덮어 이색적인 절경을 선사하는 제주도의 산은 경이로움 속에 태곳적 비밀을 간직한 듯한 신비로움이 깃들어 있다.

   새해 벽두 돈내코에서 영실로 내려오는 한라산을 오르며 헛디뎌 실족할까 봐 조심스레 한 걸음씩 내디디며 걸었던 눈길 산행은 지금도 선연하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하였던 특별한 산행은 정신을 한군데 모아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뚜렷한 성취감을 주었고 어던 일이든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귤 수확이 한창인 때는 농가를 찾아 귤 따는 일을 도우며 제주도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따뜻한 방에서 모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도 따사롭게 전해진다. 숫자 49가 들어가는 날이면 제주 오일장은 갖가지 명물들로 전을 벌이니 장날 제주도 전통 장 구경에 나서서 색다른 즐거움에 빠져들고 싶다. 미처 가보지 못하였던 곳을 향해 하늘을 가르고 비행하는 물체에 동경하는 마음을 담는 길에 자매의 사진 속 일상이 융해되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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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아버지 산소 다녀오는 길 매화 봉오리가 맺혔다.

몽글몽글 피어나는 물안개처럼 금세라도 꽃망울을 터뜰릴 기세더니

어느 새 꽃이 피었단다.

연일 황사와 미세 먼지로 마음까지 답답해져 외출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지내다 새학기 맞이 목욕(?)을 다녀와 제자 결혼식에 다녀왔다.

배구로 맺은 인연이라 이색적인 이벤트로 배구공 스파이크로 맞혀서 나온

뽀뽀를 하객들 앞에서 능청스럽게 해내는 부부를 보면서 한바탕 웃어젖혔다.

3월 1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던 선열들의 흉내를 내며 만세를 삼창하는

모습에 또 한 번 웃어야 했다.

 

바빠질 3월 미리 읽고 싶은 에세이를 선정해 본다.

한비야의 열정에 매료되어 그녀의 책을 찾아 읽었고

못할 것이 없어 보이는 그녀의 뚝심에 나도 모르게

끌려들고 말았다.

여고 시절 만난 사서 선생님과의 인연을 통해 한 해에

책 100권 읽기 운동을 지속한다는 인터뷰를 보면서

나역시 제자들에게 감화를 줄 수 있는 스승으로 자리해야겠다는

의지를 굳혔다.

이 글은 지금의 한비야를 존재케 한 원칙을 모아 놓은 글로

긴급 구호 활동을 펼칠 때에도 글쓰기를 놓치지 않은 그녀의

원칙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좋아하는 단어 둘이 모여 있다.

술과 책방이라니 묘한 조합이 어색하면서도 관심을 끈다.

치맥 대신 책맥을 떠올리게 하는 상암동 술 먹는 책방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며 책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이

연상된다.

술에 먹히거나 삼키면 자신을 잃을 수도 있으니

가볍게 한 잔 하면서 책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한겨레 신문 기자로 그녀가 쓴 글을 종종 읽었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논리적으로 풀어내 설득력 있는

글을 쓰는 일이 쉽지 않을진대 그녀의 필력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 표현으로 독자를 이끌었다.

오후 4시는 해가 지기 전 하루를 마감할 준비를 슬슬 하는 시간이다.

조금은 느긋하면서도 오늘 하루를 반추하는 시간 서촌 오후 4시는

어떤 시간의 씨줄과 날줄로 엮어져 있을지 궁금해진다.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간 송광사

관도 없이 승복 그대로 덮어 다비장으로 향하던

스님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무 아미타불을 독송하며 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하였다.

생전 무소유를 철저히 지키며 자신에게는 너무나 혹독하였던

스님의 청정한 삶이 그리워지는 요즘

최인호 작가와 법정 스님의 한담이 궁금해진다.

올 봄에는 선암사 넘어 송광사로 내려와 스님이 계셨던

불임암에 들러 참배하고 와야겠다.

법정 스님 같은 선지식을 만나 청정한 도량에서 불법을 만난

인연에 늘 감사하다.

 

결혼은 늘 안고 풀어야 할 과제를 내게 많이 주었다.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었는데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늘 힘들어하는 결혼 생활 23년차 직장여성이다.

집에서는 소소한 갈등이 서로를 갉아먹고 이제는 서로에게 심드렁해져

지내는 게 편하다는 생각에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여 주는 생활로

타협점을 찾았다.

결혼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45년차 아내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앞으로 살아온 세월만큼 더 지내봐야 부부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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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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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을 때나 떠난 이들이 그리울 때든 배고플 때든 햇볕은 따사롭게 내리 쬐어 궁핍을 달래주었다. 서자로 태어난 이덕무는 가난을 대물림하여 굶주림을 다반사로 여기며 지냈던 시절에도 책을 내리 읽어갔다. 추울 때나 괴로울 때, 아플 때와 배고플 때도 책을 읽으며 견뎌냈던 이덕무를 보면서 독서의 이로움은 어디에서 연유하였는지 그토록 책에 빠져 지낸 것인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굶주리는 식솔들을 위해 사색의 오랜 결과물을 내다 팔아야 했던 씁쓸함을 알아차린 유득공은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책을 팔아 술을 사오게 해 함께 나누는 자리는 상상만 해도 흐뭇해진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나누고 술을 마시며 책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것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백탑 아래서 학문을 나누며 즐거움을 함께 했던 벗들과의 교류는 지치고 힘든 생활에 정신적 양분을 공급해 주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서자(庶子) 신분으로 운명이 결정되어버린 부조리한 시대적 상황에 에 대한 울분과 고독으로 점철된 힘든 상황에서도 내밀한 생각을 주고받으며 책을 함께 읽고 소통하였던 같은 처지의 벗들이 있었기에 사람으로서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백탑 그림자는 벗들에게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고, 불온한 세상에 자신을 곧추 세우고 살아갈 힘을 주었다. 백탑으로 불리는 원각사 십층 석탑은 막막한 삶에서 오는 고단함을 풀어주었고, 백탑 아래로 온 이덕무는 나이를 뛰어넘는 벗들과 사귀었다. 그의 처남으로 무예를 뜻을 둔 백동수, 백성들의 삶이 나아질 방법을 찾는 일에 골몰한 박제가, 사대부 집안의 자제로 신분의 사슬을 넘어 사람됨을 중시하는 연암,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는 유득공, 명문가의 자제로 나이와 신분에 거리낌 없이 어울린 이서구와 같은 벗이 있어 막막한 세월을 서로 의지하며 견뎌낼 수 있었다.

   벗들이 백탑 아래 마련해 준 청장서옥에서 백로처럼 욕심 없이 책 속에 빠져들어 지낼 수 있었다. 책 속에 담긴 다양한 소리를 들으며 책 속 누군가의 마음과 내 마음이 마주치는 설렘에 전율하던 책 읽기는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 가운데 하나다. 이들과 함께 스승으로 받들던 담헌 홍대용선생과 연암 박지원 선생과의 학문적 교류는 세간의 벽을 허물고 깊이 있는 삶의 본질을 통찰하는 인생의 길동무로 자리하여 잠재적인 능력을 발휘할 때를 기다리며 현실의 무게를 견뎌냈다. 서자로 태어났다는 이유가 삶의 족쇄로 걸림돌이 될 때에도 우리를 동여 맨 쇠사슬을 끊어내고야 말겠다는 박제가 같은 벗이 있어 이덕무는 찰나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잘못을 저지른 아들을 감싸 주며 다독거리던 유득공의 어머니의 말을 전해들을 때마다 서늘한 가슴에 흘러들었던 따스한 피는 불합리한 세상에서 정을 나누며 살게 했다.

   이덕무의 처남이자 오랜 벗인 백동수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무예를 익히고 사람을 낫게 하는 의술도 함께 익히며 평화를 유지하며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일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생활 형편이 더 어려워져 백동수가 식솔들과 함께 기린협으로 들어갈 때도 벗들은 가난할 때의 사귐이 우정의 핵심이었다고 말하며 힘듦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전하였다. 명문가의 자제로 환한 처지에 놓인 이서구는 좋은 책들을 그와 함께 읽으며 책 속의 담론을 나누었고, 책 속의 내용을 읊조리며 지냈던 시절은 고달픔을 상쇄하는 즐거운 추억의 장면이었다.

   ‘조선 사람의 눈으로, 조선 사람에게 이로운 것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야.’

   스승 연암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발로 알아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였다. 스승 담헌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과학적인 시선으로 보게 하는 열린 사고를 열어주었고, 지금껏 어쩔 수 없다고 여겼던 굴레를 벗어나 새 희망을 품게 하였다.

   자신만의 비좁은 틀인 선입견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오류에 빠져서 그것이 편협한 시선임을 일깨우지 못한 채 지낼 때가 있다. 변화를 시도하여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생활을 끌어당기는 생활에 책은 껍질을 깨고 부화하는 병아리처럼 자신을 둘러싼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준다. 서자로 태어나 신분의 벽에 갇혀 지내던 시절 다양한 책들을 읽고 소통하며 지낸 벗들과 함께 드넓은 땅을 밟고 관직에 나가 교류하며 살게 될 때는 그의 나이 마흔 살 때이었다. 박제가는 중국에서 보고 들으며 배운 내용을 토대로 북학의를 써서 변화를 두려워하여 안일한 생활을 지속하는 사대부들을 풍자하는 말로 끝맺어 굳어진 체제에 변화를 시도하였다. ()과 무()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조화를 이뤄야 함을 간파한 정조의 부름으로 백동수까지 대궐로 들어와 백탑 아래 모였던 벗들이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겨야 한다는 말을 되새기며 지방의 고을 현감으로 일할 때, 고을 백성들의 생활을 면밀히 살펴 시정해야 할 부분을 찾아 갔다. 그리하여 힘없는 백성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고을 백성들의 살림을 살찌우며 권세를 부려 갖은 횡포를 일삼는 양반들을 엄격히 다스려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서로의 사간을 나누어 전한 이야기가 후손들의 마음에 따스한 바람을 일으키듯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간서치는 세월 속으로 사라져갔다. 백탑 아래에 모여 책이야기를 나누며 고달픈 삶을 달래며 집중하여 책을 읽으며 세상 보는 눈을 길러 혜안을 갖추었다. 조선 시대 지성인들이라 불릴 수 있는 백탑파의 움직임은 소박하면서도 담박한 성정에 묻어나 가시적인 성과에 매몰되어 살아온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책을 읽고 사유하는 가운데 우리는 균형감 있게 성장할 수 있는 질료(質料)를 축적할 수 있음을 새기며 오늘도 책을 읽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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