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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나이, 32년째 직장인으로 생활하며 겪은 일들은 복합적인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게 하였다. 설익은 사과처럼 풋풋한 십대들과 함께하며 쌓인 크고 작은 경험은 애증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여럿을 키워냈다.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인간관계로 힘들어질 때마다 사람들의 심리를 살피는 책들을 가까이 하며 쉽게 곁을 주지 않던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 때는 어느 누구의 말도 통하지 않았던 고집이 독선과 독단으로 치달아 소통의 물꼬가 쉽사리 트이지 않았지만 세월 따라 수용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면서 이해의 깊이가 더해졌다. 상충하는 의견으로 맞설 때에도 상대의 의견을 설득하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다름을 받아들이고 또 다른 인간 세계를 확인하며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에 대한 사랑보다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중시하며 이윤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 구조 속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고 싶어도 일할 직장이 없다는 구직자들의 푸념을 들을 때마다 경제적 자립을 돕는 직장에서 자생력을 키우고 비전을 실현하는 현실적 삶이 고마울 때가 늘어난다. 직장인으로 서로 다른 뜻을 품고 살더라도 화합할 때에는 함께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조율하며 살아가는 일이 평범한 삶이기도 하다. 무탈한 나날 속에 꿈을 꾸고 살아가는 직장인의 삶을 잇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현실을 달가워하지 않는 청년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다큐멘터리 PD를 꿈꾸는 대학생이 취직을 준비하며 여름방학 3개월 동안 더블린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려 한다.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에 취업 준비까지 자기 힘으로 이뤄내야 하는 취업 준비생들의 시간은 여유가 없다. 어학연수 대신 워킹홀리데이라도 다녀와야 피디 지망생으로 면이 선다고 여겼기에 나는 아일랜드로 가기로 했다. 경유지 「탐페레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핀란드 노인과의 짧은 산책은 힘을 불어넣는 시간이었다. 시력을 잃어가는 사진작가 노인은 항상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동창회에 참석한다며 훗날 추운 겨울 오로라를 찍으러 오라는 말을 남겼다.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졸업 후 방송국 신입 피디 공채에 낙방한 끝에 다른 일자리를 찾아 일하며 지냈다. 이후 6년이 흘러 신입 피디 공채를 보고 지원하려다 마음을 접은 날, 핀란드에서 만난 노인이 보낸 사진과 편지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노인이 전한 따스한 한마디는 또 다른 꿈을 꾸면서 살아갈 이유를 찾게 한다.
대학 졸업 후 수많은 소개서와 이력서를 써서 인턴과 계약직으로 일하며 겪은 직장인의 비애는 클 것이다. 「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의 주인공은 제목처럼 정규직 직장인으로 출근하는 첫날의 설렘과 두려움은 긴장으로 가득할 것이다. 일한 대가로 받을 돈을 미리 계산하며 새로운 욕망과 소비의 주체로 서기 위한 준비운동에 들어갔다. 출근 첫날 주인공은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확연히 알기는 어렵지만 현실적인 감각을 유지하며 새로운 욕망을 추구하는 직장인의 면모를 갖추어갈 것이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일의 기쁨과 슬픔」은 직장인의 비애를 담고 있다. 회장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카드 포인트로 월급을 받은 카드회사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은 상사의 독선과 아집에 혀를 내두른다. 스타트업 회사답게 수평적인 업무 체계 환경을 조성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부조리한 자본주의적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는 셈이었다.
지상에 자기 한 몸 눕힐 공간도 확보하지 못한 채 사람답게 사는 일은 꿈도 꾸기 힘든 상황에서 결혼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20·30 세대들이 늘고 있지만 청첩장은 꾸준히 날아든다. 부부의 연을 맺고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의 글은 SNS를 타고 계좌번호까지 찍혀 온다. 코로나19 상황에 참석이 어려운 경우라고는 하지만 금전적인 거래를 위한 계고장 같아 기분이 썩 내키지는 않는다. 세상 물정 모르는 빛나와 회사 동료인 민희의 청첩장 전달기를 담은 「잘 살겠습니다」는 씁쓸함이 더한다. 빛나 언니가 건넨 청첩장을 받고 마뜩찮은 주인공은 교환 거래를 떠올리며 되갚아준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속담처럼 밥값과 찻값을 환산해 되갚는 상황은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느라 고단한 직장인의 일면을 드러낸다.
포털 사이트 관계사에 근무하면서 댓글 모니터링 업무를 맡은 20대 여직원은 노골적인 음란 홍보물을 지우는 일을 주로 한다. 돈으로 욕구를 충족하려는 수요자들은 꾸준히 댓글을 달고 그 댓글을 기계적으로 지우는 일 사이에 접점은 없다. 오피스텔을 개조한 곳에서 혼자 사는 여자의 집에 남자들이 찾아와 초인종 누르는 이야기 「새벽의 방문자들」은 평범한 남자들의 기이한 행동에 공포를 느끼다 자구책을 찾기 위해 시도한다. 오피스텔 성매매 장소를 잘못 찾아 온 남성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그 중에는 안정적인 삶이 보장된 것처럼 보이는 대기업 직원인 전 남자친구도 있었다는 사실에 여자는 회의를 품는다.
맞벌이를 하면서 1주일에 두세 번 가사도우미를 고용하여 집안일 도움을 받는 가정이 늘고 있다. 직장에서 돌아와 고단한 몸으로 집안일까지 하면서 부부가 부딪치는 것보다는 돈이 나가더라도 「도움의 손길」을 받는 것이 낫다고 여긴 부부는 가사 도우미를 부르기로 했다. 남의 집 살림을 제대로 살기는커녕 가정의 리듬을 깨뜨릴 수도 있는 부분이 있어 신중하게 사람을 쓰게 된 뒤 겪는 일들은 자본의 위력에 휘둘리는 사람의 마음을 가늠케 한다. 창틀 청소를 해달라고 부탁한 뒤 아줌마에게 건넨 웃돈은 다음번에도 창틀 청소를 하고 싶다는 도우미의 반응은 자본의 힘을 떠올리게 한다. 고마움을 표현할 때에도 돈은 기쁨을 낳고 감사 영역을 확장한다. 자본의 위력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유쾌하지는 않지만 돈으로 해결하려는 부분을 용인하는 분위기는 위험천만한 일을 부르기도 한다.
지훈은 여자에게 자신의 매력이 먹힐 때 자신감을 회복하며 지낸다. 직장에서 만나 호감을 갖고 있던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지유와의 연락이 닿아 그 나름의 계략으로 후쿠오카로 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번듯한 직장에 여자 경험도 많은 지훈이 여자로부터 자신의 매력과 애정을 확인 받는 방식으로 자족해왔던 근간이 흔들리게 되자 상대를 욕하며 분노한다. 임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부분은 자아도취형의 남성에게 발견되는 일면이기도 하다.
걷잡을 수 없는 코로나 19사태로 무대 공연이 열리지 않자 SNS 상의 개인 방송으로 감각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일을 잇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다소 낮음」 속 장우는 아버지가 선물한 효율성이 낮은 4등급 냉장고를 보며 장난스럽게 쓴 가사가 유튜브 조회 수가 50만에서 100만으로 늘어나자 계약 제의가 들어왔다. 현실감각이 떨어진 장우는 여러 곡의 음원을 제공하는 CD형태의 음반 제작을 바라며 호재를 잡지 않았고 함께했던 유미마저 그의 곁을 떠나 극빈 예술가로 전락하였다. 가파르게 오른 임대료를 충당하지 못해 가난한 예술가들은 중심 거리인 홍대에서 점점 밀려나 변두리로 작업실을 옮겨야 했다. 에너지 효율성이 떨어지는 냉장고의 소음이 텅 빈 공간의 정적을 깨는 자리에서 평안함을 느끼는 예술가의 삶이 안타까움으로 밀려든다.
치열하게 살아도 될까 말까한 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들의 기쁨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단편들을 만났다. 어렵게 들어간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사원으로 1년 남짓 일하며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 발령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꺾은 코로나 19는 지금껏 지속되고 있다. 일하고 싶어도 고용을 줄이는 현 상황에서 비정규직으로라도 일할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20대 후반 딸의 푸념에 슬픔은 배어 있다. 대외 활동에 어학연수까지 다녀온 스펙을 갖췄지만 이력서를 넣을 곳마저 줄어든 지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20·30 세대를 보면서 이들이 경제인으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이 실리기를 바라는 마음만 커진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직장인의 삶이 이내 펼쳐지리라 믿으며 일과 생활의 균형을 회복할 날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