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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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난 지 다섯 달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오빠 네와 함께 살던 친정어머니는 여덟 살 때부터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면서 올케 일을 거들어야 했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며 집안 살림을 잘 배우며 조신하게 지내다 시집을 잘 가는 게 최고라는 말은 동무들과 자유롭게 지낼 기회마저 앗아갔다. 동년배들보다 늦게 들어간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어도 집으로 돌아와 일손을 거들어야 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중학교 진학은 좌절되었고 식구들 밥상을 차리는 일에서부터 조카들 뒤치다꺼리까지 도맡았던 어머니는 스물 하나에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여 시어머님을 봉양하며 집안의 살림을 맡아야 했다.

 

   섬진강 상류에서 지내던 어머니는 결혼 후 섬진강 하류로 내려와 시댁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와 나이 차가 많은 아버지는 과묵한 경상도 사나이로 감정 표현이 서툴렀다. 없는 집안의 둘째 아들에게 시집와 어른을 모시고 살면서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친정어머니의 지난시절 이야기는 김지영의 어머니 오미숙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자 식구-오빠, 남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당대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희생은 어린 시절부터 전수되어 왔지만 감내하였을 뿐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결혼 전에는 친정 식구들을 뒷바라지하다 결혼 후에는 시댁 식구들을 보살피는 일을 밥 먹듯이 해왔지만 어머니의 희생을 당연시하며 당신들의 마음을 살피는 일에는 무심했었다.

 

   양성평등과 민주적 가족법을 구현하기 위한 가족법 개정운동의 결과 호주제 폐지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개정 민법이 공포돼 세상이 많이도 바뀌었지만 사회 규범으로 내정된 규칙이나 습관들은 바뀌지 않았다. 맏딸에게 교사를 권하여 교단에 서게 한 어머니는 성적 차별 없이 대우받으며 보람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둘째 딸 김지영에게는 현실적인 대안보다는 하고 싶은 공부하면서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좋겠다며 그녀의 선택을 지지했다. 서울 소재 대학의 인문 학부를 졸업한 김지영은 어렵게 취직한 홍보대행사에서 역량을 발휘하며 경제활동을 이었다.

 

   못 버틸 직원이 버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데 주력하기보다는 버틸 수 있는 직원을 키우는 게 낫다는 게 낫다고 판단한 회사 대표의 생각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흔한 풍경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근시안적인 효율과 합리만을 내세우는 게 공정한지 회의하면서도 그 굴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여성 직장인들의 비애는 커 보인다. 신경 정신과 전문의 남편보다 더 능력 있는 의사였으나 초등학생인 아이가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증후군 증상을 보이자, 그의 아내는 안과 전문의를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는 어머니들의 헌신적인 모습은 의사의 아내·김지영에게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었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찾기도 힘들 뿐 아니라 베이비시터를 구하더라도 경비를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 자신의 능력을 사장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지는 현실이다.

 

   부모 교육에 대한 이해 없이 선험적인 세계를 현실로 받아들이며 부모가 되어 사는 일은 녹록치 않다. 육아 휴직을 하고 싶어도 제도적 뒷받침이 미비하여 출산 후 양육 부담은 배가 된다. 마치 남의 일에 선심을 쓰듯 바깥 일로 바쁜 남편이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와 설거지를 도와준다고 말할 때 아내의 힘은 빠진다. 제도가 바뀌어도 편향된 가치관은 쉽사리 바뀌지 않아 가정 내에 자리한 성적 차별은 공감과 배려 없는 법제 개정으로 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명절날 시댁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해리 장애를 보인 김지영은 딸을 출산하면서부터 오롯한 자신으로 살기를 유예하고 하고 싶은 일까지 그만두고 세 살배기 딸을 키워왔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그녀가 산후우울증에서 육아우울증으로 이어진 전형적인 사례로 보았으나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닌 듯하다.

 

   세 살배기 딸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시간 타임 일자리를 알아보려 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은 일과는 거리가 있었다.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찾으라고 조언하는 남편 말은 현실성 떨어지는 이론에 가까웠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 발휘의 기회를 접고 가정 살림과 자녀 양육까지 떠안는 상황이 지속되는 현실에서 여성이 하고 싶은 일을 행하며 자아 정체성을 찾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가정에서부터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에서 벗어나 남녀가 수평적인 관계로 소통하여 갈 때 불균형은 조금씩 균형을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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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하게 쓸모있는 경제학 강의 -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지금 여기 시민을 위한 경제학
유효상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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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도를 웃도는 8월 첫 주 금융감독원 주최의 교사 금융연수를 들으며 금융 관련 지식을 습득하여 돈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건강한 노후로 질적으로 향상된 삶을 살고 싶은 바람은 더해졌다. 변화의 속도가 가속화되는 21세기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읽고 유연하게 대처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 숙박시설이 하나도 없는 에어비앤비(Airbnb)’의 투숙 고객이 3,000만 명을 넘어서고, 자동차를 보유하지 않은 우버(Uber)’가 스마트폰으로 이용 고객 300만 명을 태우는 시대에 창업 아이디어의 가치는 커진다.

 

   아이를 위한 기저귀는 어니스트 컴퍼니로 받아보는 시대에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움직임은 소비문화 트렌드를 형성하며 생활방식을 바꾸어간다. 차량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남는 차량을 연결시키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묶어 움직임으로써 이용액을 낮추는 차량 공유 서비스는 기업 가치가 100억 달러가 넘는 데카콘으로 불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저런 규제로 공유 플랫폼을 성장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시대적 흐름을 읽고 한국 사정에 맞게 현지화 할 필요가 대두된다

 

   맞춤형 운동화를 제작하는 스마트 팩토리를 운영하면서 원가를 절감한 아디다스는 부가가치를 높이면서 생산 원가를 줄여 이윤을 극대화하고 있다. 고객들이 원하는 다양한 상품, 고객맞춤형 상품 생산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시대에 창의적 모방으로 현지에 접목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을 살아갈 때 생산 체제의 혁신은 가능할 것이다. 소유하고 있는 것이 없어도 디지털 플랫폼으로 개인이나 조직의 자산을 활용하여 거래하는 서비스로 거래 비용과 마찰 비용을 감소시켜 가고 있다.

 

   기존 업체의 존립 근간을 뒤흔드는 '아직 어리고 작지만 귀찮고 위협적인 존재'라는 의미인 앵클 바이터(Ankle Biter)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얻은 정보를 공유하여 대적하기 힘든 시대를 사는 지혜를 일깨우는 글에서 힘을 얻는다. 기존의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기보다는 새롭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아이디어가 스타트업의 기반을 형성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커다란 맥락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불확실성 시대에 고착화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앵커링 효과에서 벗어나 표준경제학에 인간의 심리를 더한 행동경제학 이론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시대적 ·경제적 흐름을 이해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며 지내야 할 당위성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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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지키는 카메라 소설의 첫 만남 3
김중미 지음, 이지희 그림 / 창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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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발머리 소녀가 렌즈에 세상의 풍경을 담는 모습이 그려진 표지가 눈길을 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프레임에 세상의 살아있는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하는 이는 오늘도 현장을 누비며 공감할 내용을 피사체에 담아낸다.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해 촬영한 사진 한 장은 새로운 관심을 일으키는 기폭제로 작용할 때가 있다. 기억하고 싶은 인상적인 풍경을 피사체에 담은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아람은 지금껏 살아왔던 터전의 소식을 카메라에 담는 일에 열중한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성적이 나오면 석차 순으로 서열화하여 보충 수업 반 편성을 새롭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습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성적에 따라 분반하여 수업을 진행하는데 초점을 맞추지만 학생들을 우열반으로 나눠 차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방학을 앞두고 보충수업 수요 조사를 벌이지만 형식으로 흐르기 십상이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보충수업에 동참하기를 권유받는다. 하반에서 수업해야 할 아람은 담임에게 보충수업 불참 의사를 분명히 하였지만 관리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담임은 보충수업 동참인원을 늘리기 위해 반 학생들과 면담하는 등 갖은 애를 써야 했다.
 
   ‘공부 못하는 애들은 자존심도 없는 줄 알아?’
   성적순으로 우열반을 편성해 시행할 보충수업을 둘러싸고 명품반에서 수업하게 될 단짝 연서와 불편한 마음을 주고받으면서도 아람은 의연하게 자신의 길을 지켜갔다. 명품 도시·뉴타운 건설이라는 명목 아래 명성 시장 상인들을 몰아내는 당국의 일방적인 조처에 항거하던 아버지가 수감된 뒤 낡은 카메라로 시장 상인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아 블로그에 올리며 아버지 빈자리를 채워갔다. 아람은 50년 전통 시장이 굴착기에 무너지는 광경과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철거 용역에 맞선 시장 상인들의 현장의 소리를 담아 블로그에 올려 신문에 나오지 않는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렸다.
 
   학창 시절 맛보았던 만두 맛을 추억하는 동창 모임이 열리던 때, 40년 전통의 만두 가게에서 일손을 거들며 특별한 맛을 이어 가업으로 삼고 싶은 꿈은 뉴타운 건설로 무너져 버렸다. 가진 게 없는 이들은 공부라도 잘해야 자신의 꿈을 지켜갈 수 있다고 여긴 아람의 언니는 공부의 신으로 자존심을 지키는 게 학생으로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여기며 동생을 질책하지만 아람은 언니의 생각과는 달랐다. 생업의 터전으로 삼았던 시장의 상권을 지키기 위해 공권력에 맞서 임시 상가 마련을 위해 옥상 위로 오른 대책위원회의 활동을 아람은 눈물로 얼룩진 카메라 렌즈에 담아 기록하였다.
 
   거대 자본에 밀린 영세 상인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모습에 구두점을 운영하던 아저씨를 찾아 그를 인터뷰하고 가게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남겨 아람은 블로그에 글을 올려 이 사실을 널리 알렸다. 그동안의 행적에 담긴 아람의 생각을 읽으며 선생님 역시 그녀의 꿈을 지지하며 비디오 저널리스트로 자리할 수 있기를 바랐다. 작가·촬영 감독·기자 등의 멀티 방송인으로 VJ 아람이 주변에 일어난 일들을 블로그에 올려 사진 한 장이 주는 메시지가 갖는 강한 울림을 떠올리며 작은 움직임이 큰 변화로 이끄는 일로 모아질 수 있기를 바라며 그녀의 꿈을 응원한다.
 
 
 
창비 출판사 <소설의 첫 만남> 서평단에 선정되어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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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유고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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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초록 잎이 갈맷빛으로 물들어가는 5월 초부터 시작된 연휴를 즐기려는 차량 행렬은 열병식 하듯 이어진다. 고희를 넘은 어머니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 금요일 버스를 타고 고향 집을 찾았다. 유년시절부터 자라온 집은 세월 따라 퇴락하여 거미줄을 뒤집어쓰고 집 나간 이의 발길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녹차를 따야 하는 때면 잊지 않고 찾아온 방문객을 맞으며 사십 년 전의 기억 속 추억 한 방울 마음에 떨어뜨려 파란을 일으킨다. 저녁 설거지를 끝낸 밤 9, 서둘러 잠자리에 드는 것은 이튿날 일을 오롯이 행하려는 이유다.

 

   “일어나라. 동네 사람들 모두 밭으로 간다. 잠자러 왔나?”

    라는 어머니의 소리에 놀라 일어나면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지난밤 어슴푸레한 꿈 속 기억을 되뇌며 눈을 비비고 양치질한 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주먹밥과 간식·포대를 챙겨 일터로 향한다. 이슬 머금고 있는 찻잎을 따며 어머니와 그동안 품고 지냈던 일들을 주고받는다. 무한 재생되는 동네 어른들 이야기에 흥미는 가신 지 오래지만 홀로 일하는 어머니의 고독한 마음을 헤아리며 맞장구를 친다.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호응하는 일은 한 생명이 존재할 이유를 실어준다. 하나의 생명이 두 개의 생명을 위해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이 사랑임을 일깨운다는 대목은 왠지 모를 공감 능력을 발현하며 사는 일에 인색한 것은 아닌지 반추한다.

 

   범죄자를 구금하는 물리적 공간인 교도소 생활은 바깥에 사는 이들에게는 착각을 일으키는 정치적 공간으로 속박 없이 살아갈 자유를 함의한다. 통혁당 사건으로 스무 해를 수감자로 살아온 저자는 그곳에서 만난 재소자들의 삶을 통해 견고한 관념의 틀을 깨고 교도소를 새로운 배움의 연장에 놓인 대학 생활로 여겼다. 사회의 모순 구조가 첨예하게 밀집된 교도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쉽지 않았던 이유를 찾아 스스로 그들과 함께 지내려 저자는 결단을 내렸다. 일류대 최고의 학과에서 공부한 그의 이력은 재소자들과 함께 하는 작업장 일에서도 벽으로 작용했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힘겹게 살았던 이들과 먹물 옷을 입은 지성인으로 대별된 그는 언어를 버리고 자신의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검증받으려는 각오로 버림을 실천했다. 책을 통해 습득한 관념적 논리를 허물고 상대의 처지에 입각하여 인식을 정확히 하는 일에서부터 관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교과서적 범주를 벗어난 다양한 경험 속에 사회구조적 특성을 통찰하는 안목을 키우며 더불어 성장하는 길을 탐색하는 시기로 삼았던 대학 생활은 소외 계층과 연대하는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지향하였다. 1986년도에 대학에 입학하였을 당시 대학가는 군사독재 정권 퇴진을 위한 시위가 이어졌고, 대자보에는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회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등을 모색하는 일로 촉발된 관심은 연대를 통한 시위 대열에 동참케 하였다. 평화적인 촛불행진의 원류로 삼을 1987년 유월 항쟁의 민심은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열기를 더하였다. 수레를 끌며 과일 행상하는 이는 서면 광장을 걷는 시위대를 응원하기 위해 과일을 나눠줬고, 인근의 병원 근무자들은 마스크를 나눠주었던 감동적인 장면은 30년이 다 되어가도지만 명징하게 떠오른다. 퇴근 후 넥타이부대까지 가세하여 민주화를 향해 결집된 열망은 직선제 개헌과 제반 민주화 조치 시행을 끌어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는 흐려져 부정, 부패는 만연해졌다.

 

   거대 자본의 바퀴에 물린 작은 바퀴를 열심히 돌려야 생존할 수 있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 경제적 자생력을 기르는 일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화폐 중심으로 치닫는 자본주의는 물질적 낭비와 인간적 낭비를 가속화하여 관계를 파탄할 수도 있음을 지적하였다. 타인에게 물건을 팔아 이윤을 챙기기보다는 물건의 쓰임이 여럿에게 도움을 주고 환경에도 이로운지 살피는 노력은 관계를 살피어 정성을 다하는 모습으로 투영된다. 화폐를 통한 교환에만 비중을 두기보다는 가슴을 울리는 교감으로 남을 재화의 재구성으로 시장은 자리해야 한다. 피를 팔아 가족을 먹여 살리려던 젊은 청년은 식량을 마련하지 못할 때 가게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공생 관계를 떠올리는 구절에서는 타인을 고려하는 선량한 마음을 읽는다.

 

   질곡의 공간인 수감생활에서 만난 이들의 출소를 앞두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벌이는 송별식에서 유일하게 아는 노래인 시냇물을 불러 숙연한 분위기를 만든 일화는 목울대를 적신다. 거리 곳곳에 울려 퍼지는 노래를 들을 수도 없는 곳에서 20년을 보내고 출소하여 들은 노래를 들었을 때의 충격은 갇혀 지낸 시간의 강직이 순식간에 풀려 정신을 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무명의 껍데기를 벗고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과 맞닥뜨린 대학 생활은 나를 둘러싼 세계를 통찰하며 살아가야 할 당위성을 일깨워주었다. 학회 일을 함께 하며 크고 작은 일을 풀어가는 자리의 뒤풀이에서 즐겨 부르던 노래는 양성우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이라는 곡목이었다. 애절하면서도 처연한 소리로 선창하면 하나둘 노래를 같이 불러 정의로운 세상을 구현하려는 의연한 가치를 추구하는 연대의 움직임은 커졌다. 누군가의 우산을 들어주는 것보다 그와 함께 비를 맞는 것이 진정한 도움임을 새기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 아픔의 치유를 위한 실천은 작은 관심에서부터 촉발된다. 때 묻지 않은 눈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여럿이 더불어 살아갈 세상을 바라며 생명체를 품고 살아갈 공생의 숲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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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는 경주야 - 어린이 경주 가이드북, 동화로 읽는 경주 여행 정보 이야기 안녕, 나는 가이드북 시리즈
이나영 지음 / 상상력놀이터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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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년 고도의 경주로 떠나는 여행은 문화 유산에 깃든 선현들의 지혜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백문이 불여 일견이라는 말처럼 경주로 떠나기 전 경주의 볼거리와 먹거리 등에 대해 알고 간다면 그 효용은 배가 될 겁니다. 오리고 붙이며 추상적인 지식과 역사적 사건을 체험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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