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1월 코로나19가 널리 퍼지기 전 딸과 함께 보라카이로 34일 여행을 다녀왔다. 칼리보 공항에서 입국 신고를 하고 현지 여행사 사장을 만나 환전을 하고 보라카이로 들어가는 뱃길을 찾아 이동하였다. 통통배 같은 배를 타고 보라카이로 가는 뱃길은 그리 멀지 않아 배 멀미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딸이 정한 숙소에 여장을 풀고 화이트 비치를 거닐며 에메랄드 바다 위로 펼쳐진 다채로운 풍경은 설렘과 평온을 주었다. 새하얀 모래 위를 걷다 더위에 지치면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컸다.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면 해변을 따라 늘어선 가게에 들러 소나기를 피하며 망고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에 빠져들었다.

 

   장기화된 코로나19 사태로 국내여행과 해외여행에 나서기 쉽지 않은 때, 사막 위의 오아시스처럼 여행에 대한 갈증은 커졌다. 반복되는 생활인으로 밋밋한 일상에 심드렁해질 때마다 여행을 준비해왔다. 앞뒤 재지 않고 열망하는 공간을 찾아 나서기를 반복하며 지낸 시간들이 그리움으로 밀려드는 지금도 여행비를 모은다. 랜선 여행지를 찾아 여행자들의 블로그를 찾아 코로나19가 종식된 뒤 가봐야 할 곳 순위를 매기며 오늘도 일상의 단조로움을 상쇄한다. 겁 없이 책 속 사원을 찾아 배낭여행을 결정하고 망설임 없이 길 위에 나섰던 추억은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달래준다.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이에게 여행 준비가 취미라고 말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도 의료인의 길을 걷는 대신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열정적인 저자의 여행 준비는 구글 지도에 찍힌 별의 숫자만큼이나 이색적이다. 직접 방문한 장소와 가보고 싶은 장소들이 별이 되어 지도 위에서 빛나는 모습만 봐도 황홀할 듯하다. 여행지를 염두에 두고 봐야 할 것들을 정리하였다면 낯선 곳에서 잘 지내기 위하여 섭취하는 음식은 여행의 본질에 맛을 더하는 재료이다. 식당을 선택하는 데에도 여행자만의 스토리로 담을 수 있는 음식점에서 지출을 좀 과하게 하더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추억할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제라니움은 주 4일만 문을 여는 음식점으로 점심도 최소 한 달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니 명성에 부합하는 인기를 가늠할 수 있겠다

 

   언제나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헤아리기 힘든 때,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날 여행을 준비하며 여행 안내서를 읽는다. 배낭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론리플래닛 시리즈를 포함한 여행 가이드북이 즐비하게 늘어선 책꽂이에는 가고 싶은 나라들의 목록이 자리한다. 여행과 관련 없는 책을 읽다 공간적 배경으로 나오는 나라를 동경하며 그곳을 찾았을 때에는 여행지에서의 감흥을 돋운다. 당장 여행을 가는 것은 어려워도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여행 준비는 언제든지 할 수 있기에 오늘도 한 번은 가고 싶은 곳을 찾아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동이 필수인 여행에서 여행 전에 일정표를 작성하는 일은 여러 번 생각해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다. 면적이 넓은 공간을 이동해야할 때에는 이동 방법을 고려하고 여행지에서 먹고 볼 것들을 메모하며 수정하기를 반복한다. 여행지를 떠올릴 만한 기념품과 생필품을 구매하여 즐거운 기억을 돕는 일은 여행을 마음대로 못 떠나는 시대에 효용성이 크다. 여행을 준비하며 그 나라 말을 공부하며 여행을 즐기는 자신과 만날 준비에 들어간다. 몸짓언어로 소통하며 원하는 바를 이룰 수도 있으나 그 나라 언어로 표현하면 여행지에서 겪을 시행착오를 조금 줄이며 자신감이 붙을 수도 있다. 여행 일정표 아래 이동 경로를 표시하고 특정 장소에서 본 것과 맛본 것들을 기록하며 여행을 추억하는 일은 휘발되는 기억을 다잡는 방법이다.

 

   전례 없는 코로나19 시대에 책장 귀퉁이에 자리한 동유럽 여행 앨범을 들추며 체코 플젠 양조장 투어를 떠올린다. 맥주의 도시 체코 플젠(Pilsen)에서 세계 최초의 라거(Larger) 맥주가 탄생한 필스너 우르켈 맥주 저장고 공장 방문은 입장료를 지불해도 아깝지 않았다. 동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내에서 다음 여행지로는 북유럽 한두 나라를 정해 여유 있게 그곳을 돌아보자며 적금을 붓고 있는데 언제나 그곳으로 갈는지는 모르나 여행 준비의 기술을 읽으며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명소를 적고 그 이유를 적는다. 헤밍웨이의 도시 스페인 '론다' 거대한 협곡 사이를 잇는 절벽 위에 세워진 곳에서 비현실적 공간이 뿜는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픔은 치료했지만 흉터는 남았습니다 - 당신의 몸과 마음이 아플 때,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것들
김준혁 지음 / 계단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료 기술의 급진적인 발달은 마법을 부리는 요술지팡이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뇌졸중을 앓는 지인이 혈전용해제를 오랫동안 복용하며 지내다보니 뇌일혈을 일으켜 특정 부위에 관을 삽입하여 고인 피를 뽑아내는 수술을 받았다. 80대 중반에 수술을 받고 90대 초반까지 별 탈 없이 지내는 것을 보면서 현대의의학의 발전을 가늠할 수 있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인 의학은 한 생명이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데 정교한 과학적 기술을 필요로 한다. 난이도가 높은 수술의 경우 첨단 수술 기구인 로봇을 환자에게 장착하고 수술자가 원격으로 조종하여 시행하는 수술로 환자의 질병 치료에 정밀함을 더해 성공률을 높인다.

 

   지방 환자들은 새벽 첫차를 타고 명의의 진료를 받기 위해 5시간에 가까운 장거리 이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타고 병원으로 가는 길은 고단한 여정이다. 진료실 앞에 붙은 예약 환자들의 진료가 끝나기까지 차례를 기다리다 보면 몸과 마음은 지쳐만 간다. 의사와 대면하는 시간은 불과 3, 흰 가운을 입은 의사는 모니터에 눈을 박은 채 환자의 상태를 묻고 기계적인 진료를 끝낸다. 허탈감에 싸인 채 처방전을 출력해 인근 병원에서 약을 사서 왔던 길을 되짚어 가는 길은 두꺼운 잿빛으로 드리워진다. 쉽게 낫지 않는 질병으로 365일 약을 복용하며 지내야 하는 불안감은 불운한 삶을 지배한다.

 

   의료인문학자로 밝히고 싶지 않은 현대의학의 발달 이면에 자리한 사건과 정보를 담은 저자는 의료 개혁과 혁신을 위해 노력한 이들의 삶을 통해 공생적 삶의 가치를 전한다. 제멜바이스는 산욕열로 죽어가는 산부인과 병실에서 세균 감염 이론과 소독 방법을 발견하였지만 이 생각을 환자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많은 산모들이 출산하다 목숨을 잃었다. 이는 의사와 환자의 소통이 중요함을 드러내는 실례로 소통 능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반증한다. 환자의 말에 집중하는 의료인과 의료인의 말에 반응하는 환자가 소통하는 최적의 대화법은 의료교육을 통해 길러질 것이다. 근엄한 의료인과 존엄한 환자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의료인과 환자가 화합으로 만날 수 있도록 말이다.

 

   한정적인 의약품 분배를 두고 어느 질병에 우선순위를 둘지 생각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의료계의 정의를 살피는 일로 모아진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의학은 치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환자가 하고 싶은 일까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안 된다. 광기를 감금하여 치료하던 미첼의 휴식 치료는 가부장적 권위를 여성에게 이식하는 사회문화적 불평등을 낳았다.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만들었다 해지한 정신의학은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일로 변화했다. 남자로 태어나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여자가 되었다 다시 남자 몸이 되자 또 다른 고통에 시달린 데이비드의 비극적인 삶은 의학이나 과학 이론을 현실로 이식해 양육하려는 태도에 제동을 건다.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다.’

   명시된 인권 선언의 한 문장은 이것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는다면 우리 삶은 계속 차별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포함한다. 뛰어난 남녀의 결혼을 장려해 이들이 더 많은 자손을 남겨 좋은 유전자가 널리 퍼지도록 하자는 우생학적인 생각은 사회 전반에 자리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 최저를 기록하는 때,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국가나 사회가 출산에 개입하고 있지만 그 길은 멀어 보인다. 무엇보다 고려되어야 할 것은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부모와 자녀가 행복한 삶을 꾸릴 수 있는 지이다.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정신질환은 이들이 속한 사회문화에 따라 여러 형식으로 바꿔 표현된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2018년 말 담당의를 살해한 정신질환자, 2019년 진주시 아파트 방화 살인 사건 등이 늘어나면서 사회적 불안은 더 커졌다. 따라서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라는 인식 아래 이를 억제하고 통제하여 정신질환자의 범죄를 예방하려는 움직임은 이들을 억제 대상으로 여기는 추세가 강하다. 경중을 헤아리는 구조적인 환경 조성으로 정신질환자들을 무조건 문제시 삼는 태도는 수정되어야 한다. 완벽한 치료법이 없는 상태에서 정신질환자들을 지속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은 정신병원 강제 입원을 벗어나려는 실천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반정신의학계에서는 주장한다.

 

   20201월부터 감염 병을 차단하기 위해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확보하는 실천이 언제나 끝이 날는지 가늠하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감염 경로나 병의 원인, 치료법 등이 명확하지 않은 감염 병에 대한 적절한 격리는 예나 지금이나 감염 병 예방을 위한 우선 책이다. ‘장티푸스 메리는 장티푸스 보균자로 병원에 감금되었지만 남자 보균자, 귀부인 보균자는 감호 처분에 그쳤던 점을 들어 이들에 대한 차별적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묻는다. 비용을 이유로 필요한 절차를 밟지 않을 때 보건의료 영역에서 벌어질 수 있는 끔찍한 결과를 입증한 간염 전문가 왕슈핑의 용기 있는 고발은 생명을 다루는 이들의 생명 윤리의식을 드높인 사례이다. 수많은 상처를 기우며 지내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아픔을 치료한 자리에 남은 흉터까지 치유되기를 바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2021-07-03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 많네요~ 친추하고 갑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자성지 2021-07-03 12:50   좋아요 1 | URL
초딩 님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웃 온라인 서점과 이곳에서 활동하는데 글을 올리고 좋은 내용인 글에 추천을 누르고 가는 정도인데 이렇게 찾아주시니 고맙습니다.
 
묻다 - 전염병에 의한 동물 살처분 매몰지에 대한 기록
문선희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쥐가 들끓던 시절 집에서 키우던 개 메리가 집 밖을 나갔다 어스름 저녁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온 가족은 메리를 목청껏 부르며 찾아 나섰다. 아랫마을 진동 댁이 메리가 자기 집 뒤란에 사지를 뻗고 누워 있는데 이미 묵은 것 같다고 했다. 식량을 축내는 쥐를 잡기 위해 놓은 쥐약을 먹고 목숨을 잃은 메리를 뒷산 양지바른 곳에 묻고 집으로 내려오면서 통곡하는 소리는 사립문에 이르러서야 그쳤다. 식구처럼 지내던 개를 땅에 묻고 온 뒤 며칠은 상실감으로 밥도 뜨는 둥 마는 둥하며 아픈 마음을 달래야 했다.

 

   말 못하는 짐승도 사지로 끌려 갈 때는 죽지 않으려 버둥거리며 울부짖는 광경은 어디에서든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구제역이 발생한 한우농가 반경 500m 내에 있는 농가 12곳은 혈청검사 결과 모두 구제역 감염항체(NSP)가 음성으로 나온 것이 맞지만, 농가 세 곳에서 백신을 맞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돼 500m 이내 농가에 대해 살처분 결정이 됐다,’

   안성시 관계자는 NSP 음성 판정이 나왔지만,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이 마을 농가 9곳의 우제류 740여두를 예방적 차원에서 살처분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경기 신문 2019.01.31.>

엊저녁까지도 여물을 잘 먹은 소를 사지로 몰아넣는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거워진 주인은 허탈감을 드러냈다. 국가는 규칙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국민들은 기르던 가축들을 산 채로 땅 속에 묻어야 했다. 깊게 파 놓은 구덩이 속으로 돼지들을 굴삭기로 밀어 넣을 때, 돼지들은 죽고 싶지 않겠다고 울부짖으며 절규하는 듯했다.

 

   ‘동물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나라의 도덕성을 알 수 있다.’

비폭력 평화주의자인 간디의 말은 명분을 앞세워 생명체의 존엄성을 짓밟아서는 안 됨을 일깨운다. 저자는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짐승들을 매몰한 지 3년 후 그곳을 찾아 사진을 찍고 전시했다. 사진 옆에 살처분된 닭과 오리, 돼지 등의 숫자를 실어 통렬한 아픔과 강한 죄책감은 비정한 인간들의 이기심과 맞닥뜨리는 순간 증폭된다.

 

   농식품부는 대학교수 및 전문가 등이 참석한 중앙가축방역협의회를 개최하여, 발생농장을 중심으로 반경 500m 내의 우제류를 살처분키로 결정한 뒤 이를 시행하였다. 산 채로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 살처분 용역의 굴삭기 끝으로 터져 나오는 돼지들의 비명은 참혹한 죽음을 예견하는 절규로 비정한 인간성을 향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평생 오리를 키워 온 인터뷰이의 아버지는 정부의 명령대로 오이를 살처분한 충격으로 치매에 걸려 얼마 못 가 이승을 뜨고 말았다는 자식의 목소리는 떨렸다. 전시장을 찾은 군인은 군대에 있을 때 살처분 현장에 투입돼 살아있는 돼지들을 구덩이 속으로 몰아넣은 뒤 지금껏 악몽에 시달리는 형벌이 지속되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동물들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을 담당해야 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죄책감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구제역, 조류독감 등의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 법규에 따라 수많은 동물들이 강제적으로 대량 살처분되었다. 수천만의 동물들이 고통 속에 죽어 갔고, 수백만의 사람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침출수 유출로 지하수와 토양 오염 등의 추가적인 문제도 발생했다. 극단적인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는지 물음을 던져 본다. 살처분이란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공장식 사육 방식을 지양해야 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내기 위한 현대의 공장형 가축 사육 방식이 사람과 동물의 공통 전염병이 나타난 근본 원인'이라며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지적한다. 거의 움직일 수 없는 비좁은 공간 안에서 혹사당하는 가축들을 줄여가는 길에 소비자들도 함께 해 거대 담론을 형성하여 갈 수 있길 바란다. 풀밭이나 야외의 넓은 땅을 밟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동물 복지를 향한 길에 작은 뜻을 모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땅에 태어나서 - 나의 살아온 이야기
정주영 지음 / 솔출판사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느냐에 따라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달라집니다. 어떤 이는 가난하고 학벌이 없어도 큰 사업을 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서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할 큰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랐을 것입니다. 한국의 산업화와 국제화를 이루며 한국 경제발전을 선도해 온 정주영 회장입니다. 그는 남이 보기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우공을 떠오르게 합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서, 능력이 안 되어 등 어떤 일을 못할 이유는 곳곳에 자리하여 도전하려는 마음까지 갉아 먹곤 합니다. 한눈 팔지 않고 죽자 일하여 쌀가게 주인이 되었고, 열심히 일하여 자동차 정비소를 차리게 되었고, 정신없이 일해 건설 회사를 만들어 오늘의 현대 기업의 틀을 마련했습니다. 몇 차례의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자신이 마음먹었던 일을 이뤄내는 근간에는 긍정적인 다독거림이 함께했습니다.

 

   숱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특별한 인연을 맺고 서로에게 깊이 침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인의 신용도 없는 사업가가 만든 계획서만을 믿고 정부가 지불 보증하는 용단을 내린 아산과 박정희 대통령의 인연은 자본과 경험이 없는 사업가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처럼 악조건 속에서도 계획한 일을 새롭게 시작할 물꼬를 틔워준 인연은 경제 개발이라는 정책과도 부합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중동의 미개척 지역에 나가 안간힘을 다해 외화를 벌어들여 나라의 어려운 외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현대건설을 설립하여 중동 주베일 산업항공사, 서산 방조제 건설 등 국내외 많은 역사적 사업을 주도하며 세계 시장에서 외화를 획득하는 일에 주류를 형성하며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아산은 물적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인적 자산은 한 민족의 생명력에 진취적인 정기를 불어넣는 일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는 황무지 같은 폐허에서 뚜렷한 성과물을 내놓기까지의 수고는 불굴의 의지가 담보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생각하는 불도저로 남보다 열심히 생각하고 남보다 치밀하게 계산하여 계획을 수립한 뒤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힘은 용기와 신념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경험도 없이 미지의 공사를 강행하면서 겪는 정신적 고초를 감내하며 대형공사를 수주하며 시공 능력을 드러낸 가시적인 성과는 믿고 맡길 만한 기업 이미지를 굳혀갔습니다. 인간의 창의와 노력으로 성취하는 발전은 무한한 가능성의 보고로 자리함을 여러 공사를 수행하며 얻은 아산만의 결론이었습니다.

 

   빈농의 맏이로 태어나 권속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장남의 무게는 어려서부터 근검절약해 온 생활습관을 길러줘 호사스런 생활과는 거리를 두게 하였습니다. 도회지로 나가 노동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 밥이나 실컷 먹고 살자는 현실적인 바람은 품팔이로 어렵게 번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근검절약을 이으며 스스로를 담금질하였습니다. 정직과 성실로 주인의 신뢰를 얻어 쌀가게를 물려받았고, 믿을 만한 청년이라는 신용 하나로 자금을 얻어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은 세계적인 기업인 현대의 아성을 이뤄내었습니다. 낙동강 고령교 복구공사를 시작하여 완공까지 막대한 적자를 보면서도 끝까지 완수한 신용으로 육이오 동란 후 복구사업을 위한 정부공사를 수주하며 건설업의 위상을 바로 세워 갔습니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였어도 열심히 생각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은 새로운 생각으로 실천하며 원하는 바를 이뤄가며 성취를 보였습니다.

 

   어려운 이들이 느끼는 차별의식은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남길 수 있음을 강조하며 윗사람들이 먼저 모범을 보이는 생활 속 자세를 언행에 담았습니다. 날품팔이로 노동하며 생활해온 이력은 사치를 부려 치장하는 일은 부패를 낳을 수 있는 만큼 검박한 생활을 잇는 대신 사회적 취약 계층의 안위를 생각하는 복지 사업까지 확장하였습니다. 아산은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신념으로 '우리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설립 취지를 밝히며 1977년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였습니다. 재단은 의료사업, 사회복지 사업, 학술연구 사업, 장학 사업을 수행해 도움이 절실한 이들과 동행하였습니다. 1998년에는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거쳐 방북하여 평화통일로 가는 남북교류의 물꼬를 틔웠고, 88 서울 올림픽 유치의 주역으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등불로 남았습니다.

 

   형제들 중 유난히 공부 욕심이 많았던 다섯째 남동생은 서울법대에 들어간 뒤 고시 공부하느라 무리했던지 건강을 해쳐 잠시 요양하고 대학원 진학으로 진로를 수정했습니다. 신영은 대학원을 다니다가 동아일보에서 정치부 기자 생활 13개월 후에 경제학 공부를 위해 독일로 유학을 떠났지만 불의의 사고로 이승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아산은 능력이 되는 한 아우들을 유학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공부를 시키고 싶은 바람이 컸습니다. 공부가 싫어서가 아니라 장남이 가족들을 건사해야 한다는 강한 책무를 지고 소학교 졸업이 전부인 상황에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하여 유능한 인재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으로 큰 위안과 자랑이었던 아우인 동생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아산은 큰 충격을 받고 상심한 나머지 생애 처음으로 열흘 휴무를 했을 정도였습니다. 나라의 유능한 인재로 제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세상을 뜬 아우를 가슴에 품고 지낸 맏형은 정신영 기금을 내놓았습니다. 이 기금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촌철살인(寸鐵殺人)하는 언론인들의 연구와 저술, 출판, 해외연수와 대학 강의 등을 지원하였습니다. 정신영 기금이 국내 언론인들의 역량 증가와 한국 언론의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기를 기원한 아산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사회적 책임과 나눔의 철학을 중심에 두고 기업을 경영해 온 아산이 한국의 경제 발전에 남긴 커다란 발자취를 경험 속에 녹인 자서전을 읽으며 적당주의로 흐르는 자신을 경책합니다. 내세울 만한 경험도 없이 조선 산업에 뛰어들어 숱한 노력만으로 업무를 완수하는 뚝심은 직접 부딪혀 체험으로 얻는 참다운 지식으로 더 큰 에너지로 향상심을 돋우었습니다. 머릿속 생각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커다란 일거리로 확대하는 특유의 감각은 무모한 도전을 낳았고, 무모한 도전은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성과를 내는 금강석으로 자리할 수 있었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동경하면서도 선뜻 걸음을 내디딜 수 없는 까닭은 시행착오를 겪는데 따른 수험료를 지불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껏 안 해 본 일이기에 한정된 시간을 아끼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미답(未踏)의 길을 걸어온 아산의 삶을 추모하며 현실과 타협하며 적당주의로 흘러온 자신을 곧추 세웁니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짧은 중년의 고개에서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을 귀중하게 여기며 이웃과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확장하는 어른으로 자리하고 싶어집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달 2022-06-07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가상현실·3D프린터·사물인터넷·5G·인공지능 등으로 집약되는 기술 혁신의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은 교육 형태는 이전의 시대와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응용력과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다른 분야 사람들과의 협업을 우선시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 현실은 학력 위주의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름 있는 대학 진학을 위해 골몰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치닫고 있다.

   ‘본인이 애타게 원한다면 몰라도 부모 마음대로 진로를 정해버리는 것이 과연 애들에게 좋은 일일까요?’

   아이들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부모들은 세속적 잣대가 정해놓은 규정을 따르면서 자녀들을 명문 대학에 보내려는 부모들의 노력은 적정 수위를 넘어선다. ‘호숫가 살인사건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집단의 파행적 악행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식의 명문대학 진학에 초점을 맞춘 가족은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비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뛰어들었다.

   명문 사립 중학교 입학을 위해 의기투합한 부부와 학원 강사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사적인 모임을 유지해 왔다. 네 부부는 아이들 공부를 책임질 학원 강사와 함께하는 캠프를 위해 호숫가 별장에 모였다. 명성이 자자한 학교에 입학하여 엘리트 코스를 걸으며 이름을 드날리기를 바라는 부모는 어떤 조건도 마다하지 않는다. 슌스케는 명문대 입시를 위한 합숙 과외의 연장인 모임이 탐탁지 않았지만 아들을 위해 참석하길 바라는 아내 미나코의 뜻에 따랐다. 슌스케 눈에는 서로에게 다정다감한 모습은 아니지만 결속력을 보이며 함께하는 부부의 모습이 생경해 보였다.

 

   슌스케가 부탁한 자료를 가져왔다는 그의 비서이자 내연녀인 에리코가 호숫가 별장에 도착하고 일은 벌어진다. 특별한 증거물을 가져왔다는 에리코와 만나기 위해 간 자리에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슌스케 부부가 지낼 방에서 주검으로 나타났다. 방 안의 시체 주변의 핏자국을 보며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 슌스케에게 미나코는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별장에 모인 부부는 사체 유기로 이를 은폐하는데 힘을 모았다. 인적이 드문 호숫가 밤 시간을 이용해 이들은 보트에 시신을 옮긴 뒤 호수 한복판에 유기하였다. 부력으로 시신이 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시신을 담은 포대에 돌을 함께 담는 치밀함을 보였다.

 

   자식들의 명문 중학교 입학을 위해 모인 부부는 서로를 깊이 있게 이해하며 소통하는 관계로까지 진전한 유대는 없었다. 남편의 내연녀를 죽인 아내의 죄를 덮어주려는 이들의 행동에 의심을 품은 슌스케는 진실을 밝히려 한다. 아내가 내연녀를 죽인 것이라면 이들이 한마음으로 살인을 은폐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추정하고 이면에 똬리를 틀고 앉은 진실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명문 중학교 입학을 위해 시험지 유출, 성 상납까지 서슴지 않는 부모의 입시 부정과 왜곡된 가치관은 자식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불법적인 일을 저질러 죗값을 치르더라도 명문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법망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라 말하지 않았느냐는 아들 쇼타의 말에는 엄마가 심어준 왜곡된 가치관이 한몫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책임을 배워가야 할 시기에 아이들은 부모가 정해준 길을 걸어야 했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법을 잃어갔다. 학원 강사가 알선한 중학교 관계자와 얽힌 입시 비리의 물증이 담긴 사진을 들고 별장을 찾은 에리코가 양아버지의 내연녀임을 알았던 쇼타는 그녀를 돌로 쳐 죽게 했다. 아이들이 에리코의 죽음에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 부모들은 한마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살인 사건을 파헤치면서 입시 비리의 주범으로 사체를 유기한 반인륜적 범죄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만으로 가득했을 뿐이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슌스케는 망연자실한 채 침묵하며 가정이 깨질까 두려웠던 쇼타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였던 부분을 되짚어봤을 것이다. 명문 중학교를 졸업하고 명문 고등학교를 거쳐 명문대학교를 졸업해야 성공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파행적 입시 부정을 낳고 말았다. 조금은 다른 방법을 찾게 되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생각하며 경험할 기회를 열어주는 부모의 역할을 생각하며 참담함을 달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