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출 수 없는, 표정의 심리학 -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한다
디르크 아일러트 지음, 손희주 옮김 / 미래의창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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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색이 별로 안 좋다며 어디 아픈 것 아니냐며 안부를 묻는 지인들의 관심에 감사하는 인사를 건넨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아픈 데가 없는지 낯빛을 보고 물어봐 주는 이의 관심은 소소한 애정의 표현이다. 알 수 없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해도 상대에게 한마디 건네지 않고 자기 일만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몸이 만든 전체 언어를 해석하고, 각각의 다양한 신호가 합쳐져 어떤 구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지 분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책을 만났다.

뇌의 감정 중추와 연결되어 있는 안면 근육은 하루에도 여러 번 행복, 슬픔, 분노 또는 놀람과 같은 감정을 경험할 때, 뇌는 얼굴의 특정 근육에 신호를 보낸다. 이로 인해 눈썹의 위치, 입 모양, 눈가의 주름, 목소리의 높낮이 등이 감정에 복합적으로 실려 표정으로 드러난다. 변연계에서 일어나는 얼굴의 표정은 신체 언어로 감정을 표출하는 무대로 다름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신뢰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중요한 신호채널이다.

‘나는 너를 본다. 나는 너를 모든 감정과 희망, 바람을 가진 사람으로 바라본다. 너의 전부를 온전히 받아들인 다.’

아프리카 인사 방식인 사우보나에 담긴 의미를 새기며 감정의 무대라 불리는 표정에서부터 발과 다리의 움직임을 포괄하는 자세까지 관찰의 대상으로 삼아 저자는 심리적 해석을 돕는다. 보편적인 신체 행동 분석뿐 아니라 개별적인 신체 행동 분석을 위하여 면밀히 관찰하여 반복된 행동 패턴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손이나 몸을 반복적으로 만지는 횟수가 는다는 점에서 공감하며 태아가 뱃속에서 흥분을 조절하기 위하여 자신을 만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신체 언어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실험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여 이해를 돕는다. 신체언어는 우리가 어떤 감정 상태인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신체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자신의 감정 상태에도 영향을 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타인에 대한 이해가 부조한 채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느라 답답할 때면 심리학 서적을 들춰 볼 때도 있지만 해결은 쉽지 않았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상대의 표정과 말투에 귀를 기울이며 표정에 공명하려는 실천은 유대감 있은 관계 형성의 전제조건이다.

내적 자원을 활성화하는 코칭 전략인 ‘미소스 미팅’은 자신의 슈퍼 자원을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특정한 기본 욕구의 균형을 맞춰 삶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을 듯하다. 첫째, 나는 오늘 어떤 행동을 통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는가? 둘째, 오늘 언제 안전하거나 편안하다고 여겼는가? 셋째, 오늘 무엇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는가? 넷째, 오늘 어떤 기적을 마주하고, 언제 경외심을 느꼈는가? 다섯째, 오늘 누구를 기쁘게 했는가? 를 반복하며 다섯 가지 슈퍼 자원에 감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람대로 실천하면 긍정적인 감정 회로가 활성화될 듯하다.

사회생활에서 사람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 때면 정형화된 틀로 타자를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표정과 감정이 연계되지 않아 오리무중인 상태라 답답해지기도 한다. 타인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며 발전적인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함께하는 사람의 감정을 제대로 읽을 필요가 있다. 감정이 우리의 경험과 행동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적시하며 비언어적 신호는 우리의 감정과 생각, 개인적 성향의 결과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신체 언어로 드러나는 타인의 감정이 빚는 여러 현상을 관찰하면서 핵심을 파악하기 위하여 반복할 때에 공감능력은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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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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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갈래로 머리를 딴 소녀가 길 위를 걸어 어딘가로 향하는 그림 표지가 눈길을 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걸어가는 소녀의 뒷모습은 낯선 공간으로 발을 내딛는 단란한 가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소녀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어떤 말도 없이 엄마의 먼 친척인 킨셀라 아주머니 집에 맡겨진다. 딸을 데리고 간 아버지는 어린 딸과 헤어지는 아쉬움은커녕 짐짝을 부리듯 부리고 휑하니 집으로 돌아갔다. 어떤 이유에서 남의 집에서 생활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딸은 의아스러웠지만 덤덤히 받아들인다. 잘 지내고 있으면 다시 딸을 데리러 오겠다는 말도 없이 바쁘게 돌아서는 아버지를 봐야 했던 딸은 슬픔을 삼켜야 했다.

 

   아동은 부모의 보호 아래 지내야 하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남의 집에 의탁한 채 지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주거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어 친척 집에 맡겨져 눈칫밥을 먹었던 시절이 떠올라 소녀에게 마음이 쓰인다. 의견을 내세우면서 살아갈 힘도 없는 소녀는 어려서부터 침묵하는 법을 배우고 이 상황을 감내하며 지내는 생존법을 터득해갔다. 낯선 환경에 놓인 소녀는 이전의 생활과는 다른 여유로운 시간에 마음을 놓지 못한 채 현재의 시간에 자신을 맡겼다. 소녀는 킨셀라 아주머니가 이끄는 대로 움직이며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헛되이 돌아갈 수도 있는 실수를 했다. 자고 일어난 매트리스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지만, 아줌마는 무안해하는 소녀를 위하여 방안이 습하다며 에둘러 말했다.

 

  기존의 규범에서 이탈한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은 가정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맡겨진 소녀에게 자꾸만 애가 쓰인다. 자신에게 침묵을 강요하며 인내하던 시절의 슬픔은 누구도 작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은 데서 왔다. 맏이로 집안 살림을 맡아 할머니 봉양을 해야 했고, 세 살 아래 남동생을 돌보는 일이 의무처럼 지워져 빨리 어른이 되어 집을 벗어나고 싶은 갈망이 컸는지도 모른다. 행여 닫힌 공간을 벗어나고 싶은 속내를 들키면 어떡하나 싶어 마음을 숨기고 지내야 했다. 욕구를 억누르며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어 다행이었던 시절이 떠올라 소녀가 자꾸만 신경 쓰인다.


   킨셀라 아주머니 집에서 머무는 동안 소녀는 부부가 자신에게 건네는 다정한 한마디 부드러운 손길에 적응하며 화목한 가정의 따스함을 누린다. 아이가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살뜰히 살피며 필요한 생필품을 챙기는 다정함은 소녀에게는 생경하다. 가족 구성원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시간을 채워 오느라 에너지를 소진한 부모에게 기대할 수 없는 소중한 정서를 느끼며 소녀는 부부의 아픈 과거까지 알게 되었다. 죽은 아들의 옷을 버리지 못하고 보관 중인 부부는 소녀에게 그 옷을 입혀 이 세상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피붙이의 흔적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배가 불렀던, 소녀의 엄마는 때가 되어 아들을 출산하였다. 소녀는 동생의 출생 소식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동안 소녀를 맡아 기른 부부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소녀가 본가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동행하였다. 소녀의 아버지는 몇 달을 떨어져 지낸 딸을 보고도 반색은커녕 잘 지냈는지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소녀는 반전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부모의 시큰둥한 반응에 서운할 법도 한데 내색하지 않았다. 맡겨둔 물건을 돌려받듯 딸을 마주한 아버지는 킨셀라 부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다.’

    는 아저씨의 말을 새기며 할 말은 하지만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는 소녀는 소설 말미에서 아빠를 부른다. 소녀를 집으로 바래다주고 걸음을 떼는 아저씨를 붙잡고 다시 아저씨를 따라 가고 싶은 바람이 소녀에게는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금껏 따스한 보살핌을 받아본 적이 없는 소녀가 사랑의 의미를 일깨우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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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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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여섯 살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펄롱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늘 쫓기듯 살아왔다. 어머니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오갈 데 없는 그는 미시즈 윌슨 집에 기거하며 일을 거들었다. 모든 것을 잃는 일이 쉽게 일어나 옹색한 삶을 지탱하며 사느라 고단했던 펄롱은 아이린을 만나 결혼하여 슬하의 다섯 딸과 함께 살고 있지만 안락함이 오래 가지 않을 수도 있음을 염려하였다.

 

   펄롱 가정은 부유한 편은 아니지만 다섯 딸은 저마다 소질을 계발하고 역량을 발휘하며 꿈을 품고 실현하려 애쓰는 노력가인 점에 고마워하며 지냈다. 그는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에 쓰이는 재목처럼 딸들이 잘 자라 소용 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지냈다. 석탄 배달 일을 하는 그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유지하기 힘든 사람들을 보며 혹독한 시기를 견디는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실질적인 가장으로 그는 조용히 지내며 굳건히 버티어 딸들이 세인트머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는 생활인을 자처하였다.

 

강 건너에 자리한 수녀원은 위세를 느낄 만한 시설로 타락한 여자들을 교화하는 공간,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더러운 세탁물을 씻어내면서 속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인권은 종교 시설인 수녀원의 이익을 창출하는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수녀원으로 배달을 나간 날, 펄롱은 사람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헝클어진 채 바닥을 문지르고 있는 여자들을 보았다.

  “아저씨, 우리 좀 도아주시겠어요?, 강까지만 데려가 주세요. 그거면 돼요.”

  라고 간청하는 아이를 외면하고 나오는 길에 펄롱은 불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사실을 공유하였지만 공감을 얻지 못하였다.

 

   힘든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빌 펄롱은 다시 수녀원을 찾았을 때, 석탄광에 갇힌 아이를 보고는 처참한 광경에 이를 외면하기 힘들었다. 수용소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움을 요청하는 소녀의 간절한 외침을 두고 펄롱은 갈등하였다. 아이의 간절한 외침을 듣지 않고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가는 걸음이 천근만근이었을 듯하다. 펄롱은 사랑의 화신인 성탄의 기쁨과는 달리 묵직한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강 건너 언덕을 오르며 수녀원 바깥을 돌며 수녀원을 둘러보았다. 수녀원 진입로를 따라 올라간 뒤 석탄광을 찾은 펄롱은 광에 갇힌 아이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나랑 같이 집으로 가자, 세라.”

 

   아일랜드의 모자 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고통 받았던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바친다는 말로 시작하는 소설은 사소한 것으로 여겼던 일이 결코 사소하지 않은 것으로 모아진다. 반복된 일상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감내할 수밖에 없던 펄롱은 내일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야 했던 지난날과는 거리를 두고 용기 있게 나섰다. 가족의 안위에 중점을 두는 아내의 말을 들어 딸들과 가정을 위하여 침묵해야 할지, 용기를 내어 소녀에게 손을 내밀지 망설인 끝에 종국에는 소녀를 데리고 집으로 향하였다. 가족의 냉대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인권 유린의 수용소에서 고통 받는 타인을 위하여 구원의 손길을 내민 펄롱의 이타적인 사랑에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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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잘해줘도 당신 곁에 남지 않는다 - 가짜 관계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행복한 진짜 관계를 맺는 법
전미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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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순이 가까운 나이 지난시간을 돌아보며 인간관계를 선택하는 시간이 늘었다. 선택에 집중하기 위하여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하나씩 정리해 간다. 앞으로 전화할 일이 없는데다 만날 이유가 없는 이들을 추려내는 일이 잦아졌다. 고향 친구들 모임에서 만나 뜻 없는 인사를 나누고 행사 끝나고 나면 전혀 생각나지 않는 이름부터 삭제하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워 전화해 궁금함을 해결하기 위해 집요하게 전화해 괴롭히는 동기가 있어 관계를 정리한 적이 있다. 굳이 이 사람을 만나 소통하며 살 필요가 있냐는 회의가 들어 전화번호부에서 이름을 지웠다. 가짜 관계인 사람부터 정리한 뒤 진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바람이 바람 넣은 풍선처럼 커졌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 고독을 즐기면서도 늙어 감을 수용하고 서로의 불편함을 채우며 두터운 정을 쌓아갈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대면하는 시간 속에 서로를 비추며 의미 지향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하는 것은 그동안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피로다가 커졌기 때문이리라........진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자리에 없는 제삼자에 대한 이야깃거리보다는 우리에 관한 실질적인 대화를 나눈다. 남 이야기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실질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 느끼고 있는 정서를 공유하며 어떤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지 의견을 나누며 공감을 확장한다. 상대가 말하지 않은 부분을 가늠하고는 지금 마음 상태가 안 좋다면 어떤 상황에서 연유한 것인지 물으며 공감을 키우는 대화로 서로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상대를 배려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도 잘 지내려 애쓰다 보니 자신의 마음 한 구석은 너덜너덜해졌고, 적을 만들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싫어도 내색하지 않고 지내느라 고단한 시간이었다. 지금 여기를 살지 못한 채 지난 일에 발목이 잡혀 이 시간에 충실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경험에 학습의 힘이 더해지면서 자신을 관리하며 살아갈 에너지를 비축하기에 이르렀다. 뭔가 잘못되었을 때 이를 진단하여 바로 잡을 역량이 늘어나 자신 관련 콘텐츠를 가꾸며 살기 위하여 자기 비하의 늪에서 헤어 나올 배짱이 필요하다. 인간관계의 외상을 경험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외상을 겪고 이를 치유하며 살아갈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사회생활을 끝내는 날까지 인간관계의 갈등은 도처에 복병처럼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빚을 갚느라 지친 연예인의 빚투 사연이 공개될 때마다 부모 봉양이라는 명목으로 자식을 볼모로 삼는 가정의 엇갈린 자식 사랑의 단면을 읽게 된다. 부모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식을 돌보는 일은 당연하지만 성인인 자식의 경제적 능력에 기대어 부모의 욕망을 실현하는 일은 잘못된 관념에 기인한다. 마음에는 없어도 측은한 마음에 부모의 빚을 갚다보면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않을 때 서운함을 크게 토로하게 되므로 잘못된 방법의 봉양은 거둬들여야 한다. 기브 앤 테이크가 존재하지 않는 인간관계는 주기만 하는 이를 지치게 만든다. 아무리 친한 사이더라도 타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 조정은 절실하다.

 

   의미 있는 타인은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라는 글귀가 눈길을 끈다. 사랑을 할 때에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같으면 좋으련만 사람 사이의 관계는 엇갈린 철길을 평행하게 달리게 될 때가 더 많다. 갖은 시행착오를 겪고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면서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임을 서서히 알아차린다. 작위적으로 엮을 수 있는 인간관계는 어떤 일이 끝나고 나면 뿔뿔이 흩어져 헛헛함을 주는 가짜 관계에 속한다. 오롯한 정신으로 진짜 관계에 정성을 쏟으며 두터운 정을 회복하며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기에도 인생은 짧다. 나에게 편안함과 안식을 주는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과 교류하며 살기에도 인생은 그리 길지 않음을 적시한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신 지적인 사유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과정에 인생은 풍성해질 수 있음을 기억하며 오늘도 진짜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너와 내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우리 관계는 성장하고 발전하게 될 것이다. 서로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개인의 감정적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상식이 통하는 공정한 관계를 지향하며 살아갈 때 진짜 관계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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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adult 2024-05-03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성지님의 인사이트에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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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수를 거듭할수록 물리적 공간 이동에 따른 만남의 유형은 다양해진다. 스쳐 지나는 일회성 만남에서부터 만남의 서사를 이루는 특별함이 시공간의 궤를 함께하는 인연이 있다. 와타나베는 독일 함부르크 공항에 막 착륙한 비행기 안에서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고 자신을 꼭 기억해 달라고 갈구한 여인,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는 운명 속 여인을 불러낸다. 죽음으로 현세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나오코에 대한 기억을 가슴속에 쟁여 빗장을 채우고 살아갈 뿐이라고 스스로 달래며 지냈지만, 선율을 타고 넘나드는 사랑의 추억을 사장한 채 지낼 수는 없었다.

와타나베는 고등학교 시절 나오코를 만났다. 길 위를 나란히 함께 걷던 나오코는 들판의 우물 이야기를 와타나베에게 전하며 초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시원의 힘을 믿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갑자기 없어질 정도로 몹시 깊은 우물 이야기로 나오코는 죽음과 동행하는 시간 선택을 예비한 것처럼 언제까지고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고 와타나베에게 당부하였다. 생사 필멸의 이치를 채 깨닫기 전에 가까이 지내던 이를 예고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이별은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슬픔의 심연으로 이끈다. 죽음은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 중 하나이지만 준비 없는 이별은 걸음을 잘못 떼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헤어나기 힘든 상황에 육신을 가둔다. 삶 속에 동행하며 잠겨 있는 죽음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슬픔의 골을 깊게 한다. 잊히지 않을 기억을 끌어안고 사는 일은 필연적으로 감내해야 할 몫을 해결하며 생존케 한다.

와타나베는 고등학교 시절, 막역한 친구 기즈키, 그의 여자 친구 나오코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기즈키는 와타나베와의 당구 경기에서 승리한 후 아무런 신호 없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죽은 자는 삶이 멈춘 때로 남지만, 소통하며 우정을 쌓던 기즈키를 잃어버린 와타나베는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열아홉 살 와타나베는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이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슬픈 기억이 불에 탄 잔상으로 얼룩얼룩한 고향을 떠나 도쿄의 한 사립 대학에 진학했다. 나오코 역시 도쿄로 올라와 둘은 기즈키를 잃은 슬픔을 공유하며 일상의 희로애락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다.

기즈키의 죽음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한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육체적 관계를 맺었고, 말도 없이 연락을 끊고 자취를 감춘 나오코는 요양원에서 와타나베에게 편지를 부쳤다. 나오코가 있는 곳을 알게 된 뒤 와타나베는 그녀와의 만남을 재개한다.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기거하는 요양원으로 그녀를 찾아 일상을 나누고 생각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감정이 사랑임을 확신하고 그녀가 일상을 회복하기를 바랐다. 그녀는 어떤 징후를 보이지 않고 유언도 없이 자살한 열일곱 언니의 마지막을 덤덤히 말하고 있지만 서늘한 죽음의 이면에 자리한 불안은 그녀를 감싸고 휘돌아 마음의 병을 돋우었다. 나오코와 함께 생활 중인 레이코는 성숙한 어른으로 유약한 이들과 함께하는 요양원 생활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레이코는 클래식 음악을 기타로 연주하며 자기 삶을 치유하며 나오코의 동행인으로 요양원 생활의 만족도가 컸다. 셋이 요양원 뒷산을 오르며 함께 나눈 이야기는 각자 지닌 삶의 무게를 감내하며 외부 생활과는 단절되었지만, 요양원에서 생활인으로 안착하며 지내는 삶에 공감했다.

20대의 초입에 선 와타나베는 여성의 신체가 내뿜는 아름다움에 끌리기도 하면서 본능대로 움직이며 욕망을 충족하는 생활과는 거리를 두려 애쓰는 편이었다. 그는 군중 심리에 휩쓸려 술자리에서 만난 여자와 잠을 잘 때도 있었지만, 이내 중심을 잡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려고 애썼다. 와타나베의 도쿄 생활에 변화를 일으킨 미도리는 나오코와는 달리 생기발랄한 20대로 역동적이다. 둘은 같이 듣는 수업으로 자연스레 어울리며 소소한 일상을 함께 나누며 설익은 스무 살을 살아간다. 말하기보다는 쓰기를 좋아하는 와타나베는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나오코에게 편지를 쓰며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문장으로 공유한다. 자신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편지에 썼고, 나오코의 편지 답신을 기다리며 평범하지 않은 세계를 접하며 사람 사는 어느 곳이든 개인의 역사를 새롭게 써간 사실을 확인하였다.

개학하여 학교로 돌아온 와타나베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나오코를 향한 마음은 커갔다. 그는 들어가서 요양하는 것보다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길이 쉽지 않은 공간에 떨어져 있는 그녀에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하였다. 학교에서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가끔은 야한 영화를 함께 보던 미도리가 학교 수업에 빠지는 날이 잦아졌다. 연유를 몰라 답답해하던 찰나 뇌종양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학교에 나오지 못한 사정을 알고, 간병하는 그녀를 잠깐 쉬게 하려고 와타나베는 간병인을 자처하였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녀의 아버지는 점점 죽음으로 향하더니 종국에는 한 줌의 재로 화하였다.

아버지를 여읜 자매는 가족이 함께 살던 공간을 정리하고 자매가 함께 살 거처를 마련하여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미도리는 조금씩 평정을 찾았고, 함께하는 시간이 축적될수록 와타나베가 그녀의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으나 그는 여전히 나오코를 사랑하였다. 하지만 사랑의 화살은 과녁을 빗나가 나오코의 병세를 악화시켜 전문의의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절망적인 현실에 위축된 그는 방황하며 미도리에게 심경을 토로하였다. 한편, 와타나베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미도리는 외모에 변화를 주었지만 그마저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에게 실망하여 소통을 단절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 저녁 나오코가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을 하였다는 비보를 듣고 와타나베는 길 위에서 방황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길 위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낸 한 달 여행은 와타나베의 마음을 잡아주지 못하였고, 나오코의 죽음에서 촉발된 충격을 덜어 주지도 못했다. 길 위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살던 집과 학교로 돌아왔지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좋아하던 남자친구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허무의식은 더했을 테고, 어린 시절 영민한 언니의 자살을 목도한 나오코 곁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던 듯하다. 죽음과 동행하는 삶이 현세적 시간이라면 생을 마감하는 날이 살아가는 날과 함께하게 될 터이다. 절박함으로 자신의 능력을 연마하는 노력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피력하며 성취를 보인 나와사키는 반듯하면서도 모범적인 하쓰미와 교제를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겠다며 여러 여자를 전전한다. 몸을 헤프게 쓰는 나와사키인 줄 알면서도 그의 곁을 쉽게 떠나지 않던 하쓰미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였지만 결혼 생활을 잇지 않고 목숨을 끊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는 와타나베는 만나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다. 동성애자인 영특한 소녀와의 만남에서 금단의 영역이 새롭게 눈을 뜨고 성적 에로티시즘을 맛본 레이코의 고백은 생경하면서도 여러 유형의 성적 사랑을 보여준다. 기괴한 장소에서의 성적 유희, 금기시하던 사랑의 일면을 여러 차례 보이며 삶과 죽음의 길 위에서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발아할 환경이 조성됨을 확인한다. 한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던 사랑이 돌고 돌아 마침내 함께하게 되는 교점에서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건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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