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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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여섯 살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펄롱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늘 쫓기듯 살아왔다. 어머니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오갈 데 없는 그는 미시즈 윌슨 집에 기거하며 일을 거들었다. 모든 것을 잃는 일이 쉽게 일어나 옹색한 삶을 지탱하며 사느라 고단했던 펄롱은 아이린을 만나 결혼하여 슬하의 다섯 딸과 함께 살고 있지만 안락함이 오래 가지 않을 수도 있음을 염려하였다.

 

   펄롱 가정은 부유한 편은 아니지만 다섯 딸은 저마다 소질을 계발하고 역량을 발휘하며 꿈을 품고 실현하려 애쓰는 노력가인 점에 고마워하며 지냈다. 그는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에 쓰이는 재목처럼 딸들이 잘 자라 소용 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지냈다. 석탄 배달 일을 하는 그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유지하기 힘든 사람들을 보며 혹독한 시기를 견디는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실질적인 가장으로 그는 조용히 지내며 굳건히 버티어 딸들이 세인트머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는 생활인을 자처하였다.

 

강 건너에 자리한 수녀원은 위세를 느낄 만한 시설로 타락한 여자들을 교화하는 공간,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더러운 세탁물을 씻어내면서 속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인권은 종교 시설인 수녀원의 이익을 창출하는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수녀원으로 배달을 나간 날, 펄롱은 사람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헝클어진 채 바닥을 문지르고 있는 여자들을 보았다.

  “아저씨, 우리 좀 도아주시겠어요?, 강까지만 데려가 주세요. 그거면 돼요.”

  라고 간청하는 아이를 외면하고 나오는 길에 펄롱은 불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사실을 공유하였지만 공감을 얻지 못하였다.

 

   힘든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빌 펄롱은 다시 수녀원을 찾았을 때, 석탄광에 갇힌 아이를 보고는 처참한 광경에 이를 외면하기 힘들었다. 수용소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움을 요청하는 소녀의 간절한 외침을 두고 펄롱은 갈등하였다. 아이의 간절한 외침을 듣지 않고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가는 걸음이 천근만근이었을 듯하다. 펄롱은 사랑의 화신인 성탄의 기쁨과는 달리 묵직한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강 건너 언덕을 오르며 수녀원 바깥을 돌며 수녀원을 둘러보았다. 수녀원 진입로를 따라 올라간 뒤 석탄광을 찾은 펄롱은 광에 갇힌 아이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나랑 같이 집으로 가자, 세라.”

 

   아일랜드의 모자 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고통 받았던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바친다는 말로 시작하는 소설은 사소한 것으로 여겼던 일이 결코 사소하지 않은 것으로 모아진다. 반복된 일상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감내할 수밖에 없던 펄롱은 내일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야 했던 지난날과는 거리를 두고 용기 있게 나섰다. 가족의 안위에 중점을 두는 아내의 말을 들어 딸들과 가정을 위하여 침묵해야 할지, 용기를 내어 소녀에게 손을 내밀지 망설인 끝에 종국에는 소녀를 데리고 집으로 향하였다. 가족의 냉대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인권 유린의 수용소에서 고통 받는 타인을 위하여 구원의 손길을 내민 펄롱의 이타적인 사랑에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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