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가능성 - 삶은 슬프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지는 않는다
김병규 지음 / 북스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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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지 못한 일에 발목 잡혀 병원 진료를 받으며 지냈던 시간을 돌이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이 감사한 날임을 알아차린다. 아침에 출근한다며 나간 사람이 사고로 영안실에 누워 있다거나, 점심을 잘 먹고 일어서던 이가 쓰러져 휠체어 신세를 지는 등불 불안 요소는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듯하다. 나 역시 병마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다 하늘의 별이 된 소중한 사람을 그리워하며 지낸 지 오래라 지금 이 순간에 정성을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고 여긴다.


  평온하던 일상이 무너져 내린 날 이후로 한 사람의 시간은 초 단위로 쪼개어 써도 모자랄 정도로 역할 분담이 주어진다. 24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대학에 그림을 전공하던 저자의 형은 운전대를 잡은 채 경직이 와 사고 후 뇌출혈이 왔다. 응급상황에 따른 조치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아 중증장애인으로 지내고 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막역하게 지낸 형을 잘 따랐고, 전역 후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으로 진로를 바꾼 형을 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새롭게 도전하는 모습에 감화를 받았다. 서로의 꿈을 말하며 우애 있게 지낸 형제에게 운명은 얄궂게 헤어나기 힘든 지경에 놓였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라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맞닥뜨린 사고 이후 저자의 어머니는 약사에서 아들 간병인으로 전환하였다. 돌연한 사고로 장애를 겪는 형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살얼음 딛는 것처럼 지내던 저자는 더 늦기 전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시간을 쪼개어 학업에 몰두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교수로 재직하며 사회인으로서의 위상을 높였다. 그는 빛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긴 터널 속에 갇혀 가족 모두 경제 활동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생각이 앞섰을 것이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연구에 몰두하여 경영학계의 입지전적인 인물로 서기까지의 노력은 강한 신념으로부터 발아하였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만나 배움의 장을 펼치고 학생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나답게 살기 위하여 거추장스런 관계는 절연하고 오롯이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교수는 논문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지도 교수의 가르침에 감응하며 저자는 형과 아버지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는 일상에서도 가능성을 열어둔다. 언제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찾을지 모르는 식구의 호출에 응하며 고단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의연하게 학자로서의 삶과 간병인으로서의 삶을 교차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시한부 삶을 사는 인생임을 알면서도 무탈한 일상이 오래 지속될 것처럼 착각하며 사는 게 삶이다. 급작스런 사고로 장애를 입거나 면역력이 떨어져 병원에 갔다 암 선고를 받고 투병하는 이가 흔한 세상에 무탈한 일상의 시간을 허투루 쓸 수는 없다. 사회적 관계에 시간을 쏟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소중한 시간을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 쓴다.


   오늘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처럼 여기며 학자로서 연구에 몰두하고, 하고 싶은 강의를 위한 연구에 집중하는 저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신의 가능성을 위해 사용한다. 저자의 어머니는 형이 사고로 중증장애인이 되어 24년간 투병하는 동안 무너지지 않으려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어머니는 강의실과 병실을 오가며 형과 아버지를 돌보는 둘째 아들을 의지하며 가늠조차 힘든 시간을 버텨왔다. 저자 역시 헌신적인 어머니를 보며 어느 누구도 무너지지 않을 용기와 사랑으로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며 감내하였다. 희망을 떠올리기 힘든 상황에서 불안이 엄습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하루의 가능성을 신념으로 쌓으며 환자의 가족으로 자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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