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사람이 활짝 꽃 핀다 - 고정욱이 청소년에게 전하는 대안 메세지
고정욱 지음 / 율도국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국문학을 전공한 작가이며, 강연자이며, 교수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보면, 소아마비로 인한 1급 지체 장애인이며, 세 자녀의 아버지이며, 건실한 가장이다.

이 분은 모 일간지의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데뷔하였고, 자신의 처지를 최대한 활용한 장애인을 소재로 한 동화를 짓기도 하여 지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였고, 엠비씨 방송국에서 선정도서가 되기도 하였다.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주는 에세이다.

저자의 장애와 불굴의 의지, 나름의 사회적인 성공 등으로도 청소년들에게 본보기와 모델이 될 수 있는 필요한 요건을 갖추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누구나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 일러 준다.

자신은 못 나고, 능력도 없고, 장애를 가졌을지라도 다 나름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는, ‘이 세상에는 잡초는 없다. 단지 잡초 같은 생각만 있을 뿐이다’고 말한다.

잡초라고 부르는 풀은 용도를 찾아 내지 못한 풀일 뿐이라는 것이니, 그것은 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용도를 찾아 내지 못한 인간들의 탓인 것이다.

오히려, 잡초라고 분류된 풀들은 우리의 삶에 유용한 성분이 있거나 질병에 탁원한 효능을 갖고 있음이 많은 경우 발견되었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또, 북극의 나방 유충은 14년 간 얼었다 해동했다 반복하여 결국 아주 잠깐 동안 한 마리의

나방이 되고, 그 나방은 짝짓기를 해서 새로운 알을 낳아 놓고 죽어서 후손을 남긴다고 한다. 아무리 우리의 형편이 힘들고 어둡고 어렵더라도 이 나방 한 마리의 형편보다는 나을 것이다.

저자는 신체적인 불구를 가지고 있고, 국문과를 전공했으니, 그 당시에는 장애만 아니면 교사로 취직을 할 수 있었지만, 본인은 장애 때문에 교사로도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을 그려서 모 학보사에 만화를 그려서 용돈을 벌기도 하고, 지금은 유명한 작가로써 여러 곳에 글도 쓰고, 교단에 서서 후학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인생 선배로써 상담도 해 주기도 하며 보람된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교과서 같은 사람은 되지 마라는 조언이다. 이 말을 읽으며, 그 의미를 알기 전에는 가벼운 오해를 하기도 하였다.

‘교과서 같은 사람’이라면, 매사에 모범적이고 반듯한 언행으로 다른 사람의 본이 될 만한 자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칭찬이 아니란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식들은 가변적이기 때문에 새로운 학설이 증명되면, 교과서의 내용은 수정이 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교과서를 바꾸는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로 항상 살아 가다보면, 자신만의 빛을 발하는 독보적인 인생을 살아 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마르크스, 서울에 오다 ㅣ 탐 철학 소설 10
박홍순 지음 / 탐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딱딱한 철학 책을 말랑말랑한 소설로 풀어 쓴 책이다.

실제 인물은 아니지만, 마치 중세의 마르크스와 흡사한 사람이 서울에 와서 예슬이에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된 것이다.

예슬이의 아버지는 굴지의 S회사의 과장이고, 어머니는 평범한 가정주부인 중 상류쯤의 가정이다. 예슬이는 직접 그 철학자를 닮은 사람을 안내하면서 나누는 대화체로 이 책은 꾸며져 있다.

책에 나오는 예슬이 본인은 역사가 재미있고, 흥미가 있고, 대학에 가면 역사를 전공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반면, 그 아버지는 경영학을 전공하라고 고집하므로 항상 예술이와는 대화단절 상태다.

예슬이는 학원을 빼 먹어야 하지만, 그것보다는 학원에 가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하며, 이 손님에게 시내 구경을 시켜드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의 이론가 정도로 알고 있는 관계로 의외로 오해를 받고 있는 철학자다. 그의 책은 금서 정도로 된 적도 있었고, 마르크스를 입에 올리는 것도 조심스럽게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예슬이가 역사를 좋아 하는 것으로 설정해 놓은 것도 저자가 광범위한 역사의 스펙트럼을 통해 서구의 정치 제도의 발전단계와 환경, 자본주의 제도의 문제점 등을 마음 좋은 선배님이 후배에게, 인자하신 선생님이 사랑하는 제자에게 가르쳐 주듯이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예슬이는 아빠가 근무하는 회사에 마르크스 아저씨와 함께 견학을 갈 기회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로 구분 짓고, 이들의 관계는 공생의 관계가 아니라 착취의 관계라고 하며, 임금을 줄여서 이윤을 늘리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유럽에 비해 노동 시간이 많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유럽의 경우에는 근부시간을 오전 9시에 출근하여 오후 5시에 퇴근하는 것으로 보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의 점심시간의 한 시간을 근무시간에서 제외 시키고 있기 때문에 오후 6시까지 근무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나라는 8시간 근무제가 아니라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한다.

원래 8시간 근무제는 하루에 8시간 이상의 노동은 금지하여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별다른 의식 없이 잔업이니 야근이 당연시 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하면, 왠지 머리가 아프고, 고리타분하리라는 선입견을 갖는다.

그러나, 이 책과 같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에서 쉬운 예를 통해 설명을 하니 전혀 철학스럽지 않게 철학을 알게 되었다.

책 뒤에는 마르크스에 대한 부록이 실려 있고, 문제 풀이도 붙어 있어서 평가할 수도 있도록 되어 있어서 실력을 점검해 볼 수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인생의 정오에서 세상을 바라보다
서태옥 글.사진 / 초록비책공방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살아 있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숨을 쉬고 있는 것이요, 살아 숨 쉬고 있는 자신을 알 뿐 아니라 타인의 살아 있음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세상은 온통 경기도 모 고등학교의 선박사고로 인해 발생한 희생자들 때문에 슬픔에 잠겨 있다. 산다는 것의 허망함, 사랑할 기회를 영원히 놓쳐 버린 절망감, 함께 그들의 고통과 슬픔에 동참해 주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 등으로 가슴을 치는 유가족들을 보면서 함께 아파하고 신음하고 있다.

 

인생의 정오, 이 말은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중년에서 차용해 온 말이란다.

아마 우리 인생을 하루의 시간으로 환산하여 인생 중반전을 의미한 시간개념일 것이다. 백세 시대라고 하면 오십이 정오가 될 것이다. 최근에 내가 본 책 중에는 인생의 중반전을 나이 사십으로 보았던 적이 있다.

 

그 책의 저자는 삼십대까지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 온 시기라면, 사십의 나이는 자기 뿐 만이 아니라 주변까지를 챙기며 살아가는 시기이고, 또, 삼십대까지는 주로 육체 노동을 하지만 사십대부터는 머리를 써서 살아가는 시기라고 정의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는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한 지면을 넘지 않는 짧은 단문들로 채워져 있다.

좋은 책이란 내용이 많은 책이 아니라 감동을 주는 책이라고 말하였는데 바로 이 책을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이승에서 통화가 가능할 때 전화 드리자], 이는 자녀가 부모님에게 안부 전화를 드려야 함을 함유하는 말인데, 진도 앞 바다에서 자녀들을 잃고 애타하시는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이 보다 더 절절한 말이 없을 정도다.

 

또, 옥상에 말리는 빨래처럼 살자는 대목도 있다.

살다보면 물 먹은 빨래처럼 축축하게 힘이 부칠 때가 있는데, 그 때는 바람이 잘 드는 옥상 에 올라가서 잠시 쉬다 보면, 빨래처럼 보송보송하게 마른다는 것이다.

참 좋은 비유의 말이다. 가끔 슬픔을 당할 때도 있겠고, 습기가 온 몸으로 배어 나는 어려움을 만날 경우가 있겠지만, 잠시의 삶의 휴지를 통해 기분을 전환하고, 새 힘을 공급받고, 힐링을 경험하자는 위로의 메시지로 이 보다 더 적당한 비유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마음의 체를 가지고 살자는 비유는 또 얼마나 산뜻한가?

[너무 촘촘하게 세상을 살지 말자. 힘들다. 그저 남들처럼 숭숭 뚫린 마음의 체로 설렁설렁 살자] 저자는 인생의 정오를 살고 있지만, 이미 황혼에 당도한 사람처럼 인생을 달관한 사람이 분명하다.

 

세상의 팍팍한 이해를 떠나서 여유를 가지고, 손해도 감수하고, 일부러 저 주고 물러나 주기도 하면서 넉넉하게 베풀며 살자는 여유가 배어난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고 통쾌하다.

 

바쁘고 쫒긴 일상에 이 책의 글들을 언뜻언뜻 보면서 마음의 휴식을 취하면 딱 좋을 형식이며, 내용이다.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떨쳐 버리고, 넘겨지는 대로, 시간이 되는대로 가볍게 읽어도 충분한 마음의 양약이 되는 글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 - 아이와 함께 가는 옛건축 기행
최경숙 지음 / 맛있는책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학여행!

학창시절 때, 수학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슴을 설레던 추억이 새롭다.

지지난 주에 발생한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제주도 선박을 이용한 제주도 수학 중 발생한 침몰 사고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다.

비행기 요금보다는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선박을 이용하다가 참변을 당한 사고다.

아직도 100명이 넘는 인원이 실종상태에 있어 수색 작업이 밤낮 구분 없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그 슬픈 소식을 접한 온 국민들도 집단 우울증을 걱정할 정도로 큰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있다. 수학여행은 엄연한 수업의 연장으로서 교실 밖에서 진행되는 또 다른 수업인 것이다.

그러나, 수학여행의 의미와 목적이 그 사명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의 의견이 나올 수 있겠다 싶다.

원체 가난했던 시절, 현장 학습의 기회가 전혀 없었던 때에는 수학여행의 의미가 중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생활이 나아지고,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현장 학습의 기회가 많은 지금의 형편에서는 옛날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초등학교 때 1회, 중학교 때 1회, 고등학교 때 1회에 시행되는 수학여행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이 책의 저자는 대학교 때, 전공이 건축이다. 그리고, 건축 사무소에서 설계 일에 10년 이상 종사하기도 하였다.

그는 건축가로서 개인적인 열망과 건축이라는 업무를 통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역할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늘 고민해 왔다고 한다.

건축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필요한 작업으로서, 자연을 운명적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두 딸의 어머니로서, 개인적인 수학여행을 이미 실행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조기 교육과 사교육에 휩쓸려 자기 사색에서 멀어지는 두 딸에게 이 느림 여행을 통해 생각의 지평을 넓혀 주고, 위로를 해 주고 싶어서 이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이 책에는 열네 번 동안의 기록을 정리했다.

지금까지 다녔던 지역을 나열해 보면, 담양과 나주, 해남과 강진, 순천과 보성, 진안과 전주, 군산과 익산, 안동, 영주와 봉화, 영천과 안강, 청송과 영양, 청도와 창녕, 아산과 예산, 부여와 보령, 공주와 논산, 보은과 충주지역이다.

이곳에 있는 전통가옥들과 풍수지리, 사찰과 다리 등에 얽힌 속 깊은 철학과 역사를 건축을 전공한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설명하고, 가르쳤으니, 그 가치는 갇힌 공간인 교실 안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전공한 건축은 땅과 자연과 인간과 건조물이 어우러지는 종합 예술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자가 설명한 해박한 역사와 풍물을 읽으며, 나의 부족함을 부끄럽게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 있다.

지난 4월 16일 날 발생한 안산 단원 고등학교 2학년이 타고 간 세월호의 침몰 사고 때문이다. 지금 진도 팽목항에는 실종자 학부모들과 수색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실종자 가족을 돕는 자원 봉사자들, 해운사 관련자와 정부 유관 부처 사람들이 깊은 슬픔 가운데서도 사고 수습과 실종자 발굴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늘로 사고 10여일이 넘도록 최신 장비와 수색 대원들의 사투와 같은 수색 작업을 했음에도 아직도 실종자가 114명을 남겨 놓은 상태다.

이 사고에 그 어느 때보다 온 국민들은 집단 우울증을 걱정할 만큼 공감과 슬픔에 동참해 주고 있다.

전국 각지에 분향소가 설치되 있고, 밤마다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기도 한다.

이런 국가적인 재난시기에 개인적으로 접하게 되는 ‘이방인’은 퍽이나 낯설고 각별하다.

1인칭으로 묘사된 주인공 뫼르소의 부조화된 심리와 태도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킨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인 까뮈의 역작과 근본적으로 상이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까뮈는 3년 동안 양로원에 있는 어머니를 한 번도 찾아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장례식장에서도 죽은 어머니의 얼굴조차도 보지 않았으며, 장례를 치른 다음 날 이성과 코메디 물의 영화를 감상하며 잠을 자는 등의 행위를 담담한 필치로 써 놓은 것은 뫼르소의 부적당한 행위들을 일부러 돋보이게 고발하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까뮈의 이 같은 현실 고발이 지금도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보게 하는 요인이 라고 생각된다. 점점 개인화되어가는 현실을 벌써 1940년대에 예측한 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적인 예지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 동안 번역으로 출판된 수많은 책, 특히 민음사에서 출간된 김화영이라는 분의 번역본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까뮈의 원문에 더 충실한 번역을 기치로 시도된 기획적인 책이다.

이 책에는 원문의 노트가 따로 실려 있다. 그 노트에서는 세세한 번역이 수록되어 있다.

솔직히 꼼꼼히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기만큼 이 책의 번역자인 이정서님의 진정성과 의욕이 확인되기도 한다.

사실, 내 경우는 이 역자의 노트를 세세히 읽어 보지는 않았기에 그 내용을 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전에 읽었던 이방인보다는 더 연결성과 기승전결적인 측면에서 짜임새가 있고, 자연스럽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이정석님의 말처럼 이 전의 번역본에 나타난 모호하고도 두리뭉실한 부분이 많이 해소된 것이다. 어떤 사건의 연결에는 정교하게 인과의 사건과 말이 잘 짜여 져 있음도 느낄 수 있다.

번역도 창조의 한 형태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특히 이정석님은 이 책의 원작자인 까뮈와 함께 이 작품을 번역했다는 고백은 그만큼 원작자의 혼에 충실한 번역을 했음에 대한 증거라고 이해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