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빛 - 검은 그림자의 전설 안개 3부작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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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소설은 환상소설이면서도 어딘가 현실속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현실 어딘가에 환상세계로 통하는 문이 있어서 그 문을 통해서 들락날락하는 것 같은 이야기가 전개된다. 허황된 듯 하면서도 현실감이 있고, 그래서 평소에는 환상소설에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까지도 매료시키는 묘한 흡입력이 있다.

 

사폰의 소설을 읽을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다. 사폰의 소설속 세계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나오는 애니메이션 속 세계는 언뜻 동화같으면서도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우 닮아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사폰이나 미야자키 하야오뿐만은 아니지만, 어느 한 부류의 독자나 관객층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팬층에 폭넓게 어필하는 크리에이터라는 점에서, 둘을 비교하는 것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발상은 아니지 싶다.

 

아무튼 이 소설 <9월의 빛>은 사폰 월드의 원류라고도 할 수 있는 저자의 데뷔작. 데뷔작이라고는 해도 그 때나 지금이나 저자의 미려한 필력이나 기발한 상상력은 여전하다. 꿈과 모험이라는 단어로 정의 내릴수 있는 예의 사폰식 환상스토리라고 보면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야기의 배경은 1936년의 프랑스. 남편이 죽고 나서 엄청난 부채를 떠안고 오갈데 없게 된 미망인 시몬의 가족은 운좋게도 노르망디의 작은 해안 마을에 있는 어느 대저택에 일자리를 얻어 상주하게 된다. 저택의 주인은 유명한 장난감 제조업자이자 발명가로 엄청난 재산을 쌓은 라사루스라는 인물. 사람은 좋지만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괴이한 로봇인형들을 만들며 사는 어딘가 수상한 면도 가지고 있다. 어느날 이 저택의 하녀인 한나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로봇들로 가득찬 미로같은 구조의 대저택, 그 저택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는 귀부인의 비밀. 9월이 되면 아무도 없는 등대에 불빛이 켜지곤 한다는 9월의 빛의 전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의 공포까지, 동화와 전설, 현실이 혼재된 기괴하고 신비한 이야기가 저택의 주인인 라사루스와 시몬의 딸 이레네, 이레네의 남자친구인 이스마엘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스팀펑크 류의 소설이나 비행정이 등장하는 최근의 판타지 소설을 읽다보면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반 서구사회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거리에는 현대화된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자동차가 쉴세없이 경적을 울리고 달려가지만, 이 시대에는 어딘가 아직 과거가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있는 듯한 이미지가 있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말똥을 밟고 서서 공중을 부유하는 비행기를 바라보고 있는 광경, 양을 몰고 가는 목동의 등뒤로 보이는 거대한 공장에서 뿜어대는 검은 연기가 어색하지 않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이런 과도기적인 시대상이 만들어 내는 특유의 판타지가 있다. 만약 현대를 배경으로 기괴한 저택이나 도플갱어가 등장하는 이야기라면 완전한 SF처럼 느껴지겠지만, 이 시대에서는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인양 자연스럽게 느껴지니 신기하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이야기 했지만, 팀 버튼 감독에 의해 영상화 되어도 무척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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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길고 암울한 티타임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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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길다)>의 저자 "더글러스 애덤스"의 사립탐정 "더크 젠틀리" 시리즈 두번째 작품. 전작인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와 비교하면 스토리라인이 보다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전작이 애덤스 자신이 각본을 담당했던 인기 드라마 <닥터 후>의 에피소드 2개를 짬뽕해서 하나의 스토리로 각색했던 것에 비해서, 이 작품은 완전한 오리지날.
플롯의 차이는 여기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둘 다 끊임없이 조크를 남발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 가장 훌륭하게 정신나간 소설까지는 몰라도, 읽으면서 정신없는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더글러스 애덤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점이 좋은거겠지. 아니면 그래서 싫거나.

전작이 영국의 시인인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를 알아야 좀 더 제대로 즐길수 있었던 것처럼, 이 작품도 북유럽 신화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이라면 읽는동안 조금 소외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로 <영혼의 길고 암울한 티타임>을 읽기 위해서 최소한 알아 둡시다 하는 북유럽 신화의 포인트를 요약해 설명하면,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오딘"은 다른 신들을 통괄하는 최고신이며, 아스가르트라 불리는 신의 나라에 군림하고 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 한쪽 눈을 희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때문에 애꾸눈 신이라고도 불리운다. "발할라"란, 오딘이 사는 궁전을 말한다.

"토르"는 오딘의 아들로 천둥의 신이다. 성격은 단순하지만 용감한 전사이며 신들의 적으로 여겨지는 거인족이나 괴물과 싸운다. 멀리 던져도 부메랑처럼 자신의 손으로 돌아오는 쇠망치(철퇴)와 허리에 감으면 힘이 두배가 되는 역대(띠), 그리고 쇠망치를 휘두르기 위한 쇠장갑까지 포함해서 보물 삼종세트를 소유하고 있다.
위의 내용이 이 작품에서 주로 차용하고 있는 신화속 설정이며, 물론 이것은 장대한 북유럽 신화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히드로 공항의 2번 터미널 탑승 수속장에서 대폭발이 일어난다. 과격파에 의한 테러가 의심되지만, 젊은 여성 케이트와 수수께끼를 쫓는 동안 더크 젠틀리는, 실은 이것이 신의 소행이었음을 알게 된다. 신이 불로불사라면 지금도 이 지구 상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발상으로 북유럽 신화의 신들을 현대 런던에 되살려낸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이 언제나 그렇듯이 농담따먹기, 등장인물들의 몸개그의 대향연.
간단한 설명 하나도 얌전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고 문장에 장난을 쳐대면서 혼자 콧김을 뿜어내고 있었을 작가의 얼굴이 책위에 홀로그램으로 떠오르는 것 같다. 너무 그러니까 가끔은 몰입좀 하게 조금 진지해져 봅시다 하고 짜증내고 싶을 정도.

덧붙이면, <영혼의 길고 암울한 티타임>이라는 조금 엉뚱해 보이는 제목은, 16 세기 스페인의 가톨릭 사제, 십자가의 성 요한(1542-1591)이 쓴 신학 논문 <Dark Night of the Soul>, (스페인어로는<La noche oscura del alma>)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다만, 'dark night of the soul'이 자주 쓰이는 영어의 관용 표현의 하나인 만큼, 애덤스가 실제로 성 요한이라는 사람의 원전을 의식하고 있었는지 어떤지는 확인불가.
대단한 정보인줄 알았는데, 써놓고 보니까 이건 뭐 어떻게 되도 상관없는 얘기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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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는 나는?
기욤 뮈소 지음, 허지은 옮김 / 밝은세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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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6연속 1위라는 기염을 토한 기염"기욤뮈소"의 신작이라 큰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데에 작가의 이름값이 크게 한몫 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항상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정형화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의 소설을 언제나 질리지 않고 기대이상으로 재미있게 읽을수 있었던 것은, 감성적인 로맨스 속에 스릴이 공존하는 독특한 이야기의 매력과, 속도감 있게 술술 읽히면서도 사건들간의 인과관계가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장점들은 어디로 다 없어지고 그냥 정형화된 모습만 남았다. 저자가 추구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는듯 하지만, 단조로운 구성, 뻔한 대사를 주고받는 등장인물들... 국제적인 대도를 형사가 단독으로 쫓아다니는 다는 것도 비현실적인데, 기껏 마주보고 총으로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도 전혀 프로답지 않은 이유로 몇번이나 놓치기 일쑤고, 중요한 진실이 밝혀지는 터닝포인트에서는 우연의 연속. 긴장감이 실종됐다. 어떻게든 반전까지 끌고 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안이한 전개는 매너리즘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처럼도 보인다. 어쩌면 저자는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내가 그의 작품에 너무 익숙해져서 싫증을 느끼고 있는 것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기욤뮈소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이 작품을 통해 내가 예전 처음 기욤뮈소에게서 느낀 그 재미를 맛볼 수 있을까? 정말로 궁금하다.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운명적인 재회

이야기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수학중인 대학생 가브리엘과 마르탱의 달콤한 사랑으로 시작한다. 프랑스로 돌아가기 직전 마르탱은 가브리엘에게 편지로 사랑을 고백하고 가브리엘은 그런 마르탱을 붙잡는다. 귀국을 늦춘 마르탱. 두 연인은 길지않은 시간동안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그 후 프랑스로 돌아간 마르탱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가브리엘로 인해 가슴에 큰 상처를 안는다.

그로부터 13년 후, 마르탱은 경찰이 되어 아키볼드라는 유명한 예술품 절도범을 쫓고 있다. 아키볼드는 수많은 예술품을 훔쳐왔지만, 단 한번도 실수한 적이 없는 그야말로 신출귀몰하는 괴도. 마르탱은 단독으로 아키볼드를 잡기위해 동분서주 하지만 번번히 눈앞에서 놓치고 만다. 그런 그의 앞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가브리엘이 나타난다. 그녀의 옆에는 놀랍게도 아키볼드가 있었다.

미스터리 요소가 가미된 저자 특유의 러브 스토리는 여전하고, 게다가 환상소설적인 수법까지 더해서 운명적인 사랑을 그려낸다. 다만, 밥상은 푸짐하게 차려냈지만, 그것들 하나하나의 맛은 글쎄올시다... 소설속 사랑이 아름답게 비치는 이유는 그 과정이 있어서 아름다운 것. 그런 과정없이 13년의 공백기간 동안 완전히 사라져 있다가 드디어 나타난 가브리엘은 다된 밥상에 젓가락 하나만 올려놓는 상황인데 저자가 필살기로 마지막에서야 밝히는 그 헤어져야만 했던 이유라는 것도 어쩐지 궁상맞다. 듣고 있어도 그럴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필연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경찰이나 FBI는 무능하기 짝이 없고, 그런 와중에 타국에서 활약하는 한국여성 오문진만이 유일하게 반가워.

아무리 좋은 작가라도 항상 만족할수는 없는 일이고, 한작품 실망스러웠다고 두번 다시 돌아보지 않을 생각은 없지만,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기대감과는 다를수밖에 없을 듯 하다. 이번에는 내용이야 어찌됐든 기욤뮈소를 만난다는 즐거움으로 읽어냈다면, 다음에는 얄짤없다. 다음에도 재미없으면 우리 이제 그만 좋은 추억으로 남자라는 마음으로, 기욤뮈소와의 짧은 인연도 그걸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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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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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 아빠가 피임을 안 해서 생긴 애였다. 그러니 엄마는 멍청했고 나는 운이 나빴던 거다. 하지만 그 말은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어찌 보면, 나는 멍청한지 아닌지 말할 처지도 아니었다. 어쩌면 멍청한 놈이 맞을거다. 콘돔 포장 위에 빠진게 하나 있었다. 경고! 이것을 제대로 씌우려면 아이큐 10억은 되어야 함!"(p188)


주인공은 런던에 사는 15살의 소년 샘. 32살의 젊은 엄마가 있다는 것 이외에는 평범한 소년이었던 샘이지만, 어느 파티에서 알게 된 앨리시아라는 소녀와 친해진 것을 계기로 운명이 바뀝니다. 앨리시아가 임신해 버려면서 이 두 명의 장래는 암흑. 그런 때에 샘의 엄마마저 아이를 가지게 되고(물론 아기의 아버지는 샘의 친아버지가 아님), 샘과 앨리시아의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보다 나이어린 삼촌이나 고모가 생기는 웃을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이 소설의 재미있는 점은,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샘이 마음을 바로잡고 모범적인 아이가 되거나 성장한다거나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샘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철없는 채로, 폭소를 유발하는 무개념의 대사들을 연발합니다. 예를 들자면 처음에 인용한 애꿎은 콘돔에 대한 화풀이. 그 밖에도 자신의 장래를 가로막은 갓난아기를 알카이다의 테러리스트에 비유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스스로의 처지를 다른 탓으로 떠넘기고 있습니다.
 




 

읽는동안 실컷 웃게 되는 그런 소설입니다. 10대의 임신이라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을 두고 웃기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다소 조심스럽지 못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한없이 심각하게 늘어지는 대신에 씁쓸한 유머로 부드럽게 감싸안음으로써 인간의 진실함에 다가가고 있는 점이야말로, 이 소설의 장점이자 저자 "닉 혼비"의 진가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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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미궁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4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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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깜박 잊고 있었다. 사쿠라노미야 병원에서는 환자에게도 자원봉사를 시킨다는 사실을!

의사 출신 작가인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시리즈 네 번째 작품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바티스타 시리즈 본편에서 살짝 갈라져 나온 스핀오프와 같은 이야기. 앞선 작품들이 도조 대학 의학부 부속 병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였다면, <나전미궁>은 도조대학 병원의 라이벌이자 그동안 등장인물들에 의해 종종 이름이 들먹여지던 사쿠라노미야 병원이라는 곳이 무대입니다.

이 소설은 내과나 외과가 아니라 호스피스와 같은 말기의료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도조 대학 소속의 낙제 의학생인 "덴마 다이키치"는 소꿉친구인 신문기자 "요코"로부터 스파이가 되어 달라는 의뢰를 받습니다. 검은 소문이 끊이지 않는 노인 개호 센터, 호스피스 시설등을 일체화한 복합형 병원인 사쿠라노미야 병원에 원장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아간 직원이 그 후로 소식이 끊겨버렸다는 것입니다. 약점을 잡힌 덴마는 울며 겨자먹기로 자원봉사를 가장해 병원에 잠입합니다.

말기 환자만을 다루는 병원. 마치 직원처럼 여러가지 일들을 담당하면서, 죽음이 눈앞에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생생하게 일하는 환자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양호해 보이던 환자가 한사람씩 갑작스럽게 상태가 악화되고, 나전으로 장식된 특별한 방으로 옮겨진 다음날에는 예외없이 사망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나이팅게일의 침묵> <제너럴 루주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시리즈 기존의 작품들이 병원을 무대로 한 메디컬 드라마의 느낌이 강했다고 한다면, 이 작품은 쿄고쿠 나츠히코나 아야츠지 유키토와 같은 본격미스터리 소설에서의 폐쇄감 비슷한 냄새마저 느껴집니다.

평소의 다구치-시라토리 콤비중 다구치 선생님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만, 시라토리 조사관은 변함없이 대활약을 합니다. 이번에는  환자와 같이 의료서적을 뒤적거리며 병명을 협의하는 엉터리 피부과 의사의 모습을 하고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얼음공주 "히메미야"가 여기에서 드디어 등장합니다. 이것만으로도 바티스타 시리즈를 줄곧 읽어온 사람에게는 <나전미궁>을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시라토리를 보좌하는 간호사 역할입니다. 덴마를 스파이에서 졸지에 환자로 만들어 버리는 인물이 바로 이 히메미야. 히메이야가 담당한 환자는 일주일 후에 죽는다는 소문이 있는데 과연 어떨런지요. 생각해 오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습니다. 다만, 미인인 것만은 확실히 상상하던 그대로입니다.

히메미야 이외에도 팜므파탈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스미레 사유리 쌍둥이 자매의 매력도 상당하네요. 이번편은 덴마의 소꿉친구인 요코를 포함해서 주로 팜므파탈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가이도 다케루라는 작가를 대단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은 의사 출신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의 훌륭한 스토리텔러로서의 역량 때문인데(의사가 소설도 잘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그동안 이 <나전미궁>을 위해서 수없는 복선을 쳐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장면이 연달아 등장합니다. 그동안 슬쩍슬쩍 이 사쿠라노미야 병원에 대한 언급이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 실체는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히메미야도 마찬가지), 책을 읽고 나면 뭔가 잔변감 같은 위화감이 있었습니다만, 그것들을 모두 이 <나전 미궁>에서 단번에 수습합니다.

최근에는 시리즈물이 한두편 번역되다 말아서 신경질 나는경우가 많은데 바티스타 시리즈는 어느덧 네번째작까지 왔네요. 늘어놓으면 표지도 아름답습니다. 한번에 날 잡아서 논스톱으로 읽고 싶어지는 기분.

   
   

결말을 보면, 본편이든 스핀 오프든 시라토리 조사관이 등장하는 작품을 아직은 계속해서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뻐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람좀 그렇게 펑펑 죽이지 말라는 생각은 합니다만.)

전직 의사라는 저자의 프로필을 보면 왠지 한없이 진지한 소설일 것 같아 주눅이 들 수 있지만, 의외로 바티스타 시리즈는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있는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개그와 추리적인 요소가 듬뿍 탑재되어 있는 엔터테인먼트 소설. 그러면서도 작금의 의료 현장의 현실을 개탄하는 메세지를 잊지 않고있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방만한 의사들에 태도에 치를 떨어본 사람들이라면 박수를 치고 싶어질만한 대사가 작중 사쿠라노미야 병원의 원장인 이와오 박사의 입을 통해 수시로 말해집니다.

"의학이란 시체를 먹고 살아온 빌어먹을 학문이야. 원래 출신 성분이 형편없는 존재인데도 지금은 귀부인 행세하고 있지. 자신의 모태를 경시하는 현대의료는 언제 어디서건 파탄에 이를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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