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당신의 재떨이에 오줌을 싸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우리의 소변기에 담배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현대 최고의 우화 작가가 그리는 블랙유머 가득한 감동스토리

1965년에 발표된 소설이니까, 이제 슬슬 50주년이 되어간다.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소설이지만 막상 읽어보면 그렇게 오래된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담고 있는 주제가 보편적라는 점. 이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던지는 질문이, 당시의 독자들에게나 50년의 세월을 넘어선 지금의 독자들에게나 공통된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는 현대 미국을 무대로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를 풍자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억만장자이자 부랑자, 재단 총재이자 유토피아 몽상가, 자선사업가이자 알콜 중독자이면서, 자신의 양심에 호소해 오는 소리를 무시하지 못하는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엘리엇 로즈 워터」. 이 엘리엇이 일으키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해결되는 미국 사회를 비판하면서 그야말로 문학작품의 교과서적인 테마라 할 수 있는 「이웃애(네 이웃을 사랑하라!)」를 그리고 있다.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엘리엇 로즈 워터가 전하는, 씁쓰레하면서도 따뜻한 사랑의 메세지라고나 할까.

아무리 써도 줄어들 턱이 없는 엄청난 재산을 밑천으로 엘리엇은 궁핍한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돈을 나누어 준다. 한술 더 떠서 의용소방대를 인솔해 거리의 소화 활동에 매진 한다. 왠지 보네거트 작품에는 소방서가 자주 나오는 감이 있는데, 이 소설에서도 소방 대원들은 자기중심주의 사회인 미국과 상반되는, 헌신적이고 성자와 같은 사람들로서 그려져 있다. 아무튼 이런 엘리엇이 이곳저곳에서 박애나 이웃사랑을 실천해 나가고 있는 동안, 유산상속을 두고 이해관계에 있는 주위 사람들은 그를 정신이상자로 몰아 이런저런 간섭을 해온다.

엘리엇의 이런 정신나간듯한(?) 행동들을 보면서 웃기 쉽지만, 그러다 보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올바른 일이라, 혹은 나쁜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진리가 아니라, 단지 지극히 개인적이고 합리적인 견해일뿐인 것은 아닐까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무엇이든, 혹은 어떤 일에 있어서든 타인을 넘어서고 남보다 우월해지는 것이 바로 우리의 행복이고, 추구해야 할 올바른 행동이다. 그것을 무의식중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 가치관이 실은 비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은근히 보네거트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뭐 그건 다소 과장된 해석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이미 출발선 부터가 공평하지 못한 사회다. 남의것을 가져오지 않으면 내것을 빼앗기고 마는 무한 경쟁시대에서 엘리엇과 같이 이웃사랑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상당한 의지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정말로 어울리는 사람에게 진주목걸이가 가는 시스템이 아니라, 돼지 목이든 뭐든 거는 사람이 임자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이상, 엘리엇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현실에서는 계속해서 몽상으로 남아 있을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의 엘리엇의 행동은, 미래가 불확실한 현실을 앞에 두고 우리가 이렇게까지 잘 적응해서 영리하고 효율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 실은 「이기적이고 자기 보신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음을 가르쳐 준다고 말해도 좋을 듯 하다. 이것은 엘리엇 로즈 워터가 새로 태어난 아기를 위해 준비한 세례사에 잘 나타나 있다.

안녕, 아가들아. 지구에 온 걸 환영한다. 여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단다. 그리고 둥글고 축축하고 붐비는 곳이지. 여기선 고작해야 백년밖에 못 산단다. 아가들아, 내가 아는 단 하나의 규칙을 말해줄까?  제기랄, 착하게 살아야 한다.』

다 읽고 난 다음에는 왠지 나도 이 말이 하고 싶어진다.
『부디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콰이어트 걸
페터 회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영문인지 그 이름을 들으면 두근거리게 되는 작가가 종종 있다. 나에게 있어서는 「페터 회」가 바로 그런 작가인데, 오랫동안 이 작가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 대한 인상적인 평들을 접해오다 보니까 이제는 나도 모르게 이미 이 소설을 읽고 푹 빠져 버린 적이 있었던 것 같은 착각마저 들기도 한다. 실은 전혀 책을 구경해 본 적도 없는데. 이 스밀라는 조만간 꼭 읽어보겠다고 벼르고는 있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그 원작도,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영화도 접해보지 못한 채 또다른 페터회의 소설을 먼저 만나 버렸다. 바로 모든 감각을 소리로 들을 수 있는 절대청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콰이어트 걸>이다.

고대하던 작가와의 만남이라 기대가 컸지만 스밀라가 아닌 콰이어트 걸로 먼저 만나게 된 페터 회는 과연 어떨까? 일단, 캐릭터의 매력이 대단하다는 스밀라처럼 이 작품의 주인공도 그에 못지 않게 매력적인 인물이다. 카스퍼는 절대 청각의 소유자이자 일류 서커스 광대다. 절대 청각의 소유자라고는 하지만 소머즈와 같은 수퍼내추럴이 등장하는 SF물의 식상한 설정과는 조금 다르다. 카스퍼는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을 고유의 음으로 들을 수 있다. 평범한 사람이 듣지 못하는 세계 이면의 소리와 사람들의 감정까지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아무리 포커페이스라고 해도 주인공 앞에서는 그 심경의 변화를 감출수 없다. 수퍼 히어로라기 보다는, 순수하고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카스퍼가 듣는 모든 종류의 소리를 시종일관 바흐의 음악을 비롯한 클래식 선율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읽는 내내 바흐의 음악이 BGM으로 들려오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나도 카스퍼처럼 절대청각의 소유자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마저 느껴진다. 일류 광대인만큼 사람들 앞에서의 카리스마와 위트, 그리고 재치마저 갖추고 있는 이 카스퍼의 매력이 상당하다. 문학사상 가장 임팩트 있는 여주인공이라는 스밀라를 모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하지만, 이 카스퍼라는 인물도 보통은 아니다. 임펙트까지 들먹이긴 뭐하고 상당히 독창적이면서도 친근함까지 갖추고 있는 인물.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소리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카스퍼에게 한순간 정적이 찾아온다. 그 정적의 주인공은 바로 한 소녀. 소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에게 유괴되고 카스퍼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유괴된 소녀를 찾아나선다. 그러는 동안 평범한 현실세계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근미래를 그리고 있는 듯한 독특한 소설속 세계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덴마크에서 일어난 의문의 대지진, 지진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특별한 어린 아이들을 둘러싼 놀라운 음모의 전모가 서서히 밝혀진다. 그렇게 베일이 하나씩 벗겨져 나가는 이야기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에만 그치지 않고 신과 사랑등의 철학적인 물음을 쉴세없이 던져내고 있는 것이 또한 인상적이다.

처음 접해본 페터 회의 소설은 매우 만족스럽다. 그렇지만 조금은 난해하달까 길이 막힌다고 할까. 술술 넘어가지 않는 면이 있는데 아마도 덴마크 작가의 소설의 생소한 분위기와, 생각나는 대로 마구 써갈긴 것 같은 지명이나 이름들이 읽기 어려워서 그랬던 것은 아닌가 싶다. 스토리 전개와 결말이 전부가 아닌 소설이므로 한번 더 읽어보려고 생각한다. 미처 욹어내지 못한 깊은 맛을 재탕으로 마지막 한방울까지 느껴보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사실은 활자를 소리로 듣는다는(이것은 오디오 북인가!) 신선한 경험 자체만으로도 이 소설을 다시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론 투게더 Alone Together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수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의사는 실력도 명예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모두로부터 신뢰받는 그였다.
그런 그가 아무런 통보없이 환자의 생명줄인 인공호흡기를 꺼버렸다.
이 센세이셔널한 사건 앞에서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그.

 나는 그런 그로부터 어떤 여자를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오래전 대학에서 강의를 들었던 적은 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나에게 왜?
여자라고는 해도 그 아이는 아직 14살. 그가 죽인 여자의 딸이다.
나는 그 부탁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사람과 파장을 맞추는 것이 가능한 능력.
그 저주받은 능력 때문에 나에게는 친구라고는 한명도 없다.

「혼다 다카요시」의 물 흐르는 듯한 아름다운 문장에 반해버린 것은 전작인「MISSING」에 한창 빠져들어 있었을 때였다.
서정적이고, 간결한, 그러면서도 임펙트가 있는 문체.
마음에 드는 문장은 몇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뻔뻔스럽게「이런 문장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가슴에 와닿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저자의 첫 장편인 <ALONE TOGETHER>.
예의 아름다운 문장도 건재하고, 마음에 조용히 스며들어오는 그 필치가, 또다시 나를 흔들어 놓는다.
이야기의 전개, 특히 남녀의 연애 관계에 대한 표현에 있어서의 초현실, 혹은「이상」이라 해도 좋을 애매한 감각. 남자와 여자의 욕망으로부터 시작되는 애정, 성의 탐욕등이 아주 솔직하게 받아들여지는 만큼, 이런 너그러운 나 자신에게 놀란다.

 그렇게 애매한 남녀 관계나, 여러가지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면서 안도하는 또다른 내가 존재하는 것일까?
소설 안에서 그려지는 인물들의 고독감이나 거기서 비롯한 각각의 에고이즘에 접하다 보면,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면서도,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세계관이 역시 좋다.

 
다른 작품보다 유머는 약간 희미해졌지만, 신비스러운 전개는 변함 없다.
무엇보다「나」로서 그려지는 감성은 소중할만큼 날카롭다.
이 작가의 소설은 격렬하게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크 라이프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공원에는 매일같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리고 스쳐 지나간다. 이렇게 스쳐지나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우리는 일일이 관심 갖지 않는다. 그저 공원 풍경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지나치면 그 뿐인, 그런 정도의 대수롭지 않은 만남이나 사건들.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르는,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역시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은 그런 일상들.

「127회 아쿠타가와상」수상작인 표제작 <파크 라이프>는 도쿄의 히비야 공원을 자주 찾는 남자가 주인공인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보내온 인생이나 하루하루의 일상이 상세하지만 담담하게 묘사된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인생을 살아오면서나 일상속에서 맞닥뜨려온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공원에서 스쳐 지나는 그런 정도에 불과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저마다 혼자이고, 언제 찾아와도 그모습 그대로인 공원처럼 고독하고 무덤덤하고 단조로운 인생, 저자가 말하는 <파크 라이프>란 그런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나 자신의 일상을 돌아 본다. 무위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는가 자문한다. 나 이외의 사람들과의「관계」에 무심하지는 않았는가 되돌아본다. 그리고 주인공처럼 보내 온 지금까지의 나의 생활을 반성하고 새로운 인생에의 변화를 다짐한다.

 전철에서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알게 되는「그녀」. 그녀는 이야기의 말미에『좋아, 나 결정했어』하고 중얼거린다. 사람이 무엇을 결심하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그녀의 그 중얼거림을 계기로 주인공도 마지막에『지금 막 뭔가를 결정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느낀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만,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런가하면, <파크 라이프>외에 <플라워스>라고 하는 단편도 수록되어 있다. 두 작품의 주인공은 모두 어딘지 모르게 흐릿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고, 그리고 사물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는 남자라는 공통된 분위기가 있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인물상이지만, 그들이 등장하는 각각의 이야기는 사뭇 그 느낌이 다르다.

 <플라워스>는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전개에 불안불안하다가, 이런 결말이라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게 하는 그런 감동이 있다. 조금은 우유부단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청년인 것 같던 주인공이, 마지막 순간에 기어코 제대로 된 남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만다. 이 장면은 추악한 인간 관계가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초조함마저 느끼게 되는 이야기 끝에 그야말로 한줄기 서광이 비쳐오는 순간이다. 인저리 타임에 터진 역전골 같은 안도감이랄까.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아직 세상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되뇌이게 한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을 걷다 - 2010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 Nobless Club 21
김이환 외 지음 / 로크미디어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작년에 나왔던 국산 장르 소설 단편집은 거의 다 읽어보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바로 <꿈을 걷다 2009>였다. 작가층이 얇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한 장르에만 치중하는 것 보다는 판타지, SF, 무협까지 다양한 장르를 맛볼 수 있는 이와 같은 모듬 요리 형태의 단편집이 더 형편에 맞지 않나 싶다. 2009년도 판은 엔터테인먼트라는 측면만 놓고 보면 동급 최강이었다는 인상이 있었기 때문에, 2010년판이 나오자마자 냉큼 집어드는 것은 당연지사. 이번 <꿈을 걷다 2010>년판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11편. 무협의 비중이 꽤 높은 것이 <꿈을 걷다> 시리즈의 특징이다.

 개학 날
 이건 뭐가 어떻게 되었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개학 날 아침에 못 일어나고 있는 주인공을 배게가 막 내려쳐서 깨우고, 신문이 저혼자 터벅터벅 걸어와서는 주인공 앞에 풀썩 쓰러지고, 그러더니 갑자기 환상세계가 어떻다는 둥, 이사람 저사람과 만나고 다니면서 썪은 사과가 어떻다는 둥 알 수 없는 대사를 연발하는 시츄에이션 끝에, 급기야는『지금까지 이 많은 일도 다 해냈는데 앞으로 못할 건 또 뭐람』이라는 수수께끼같은 대사를 뇌깔리면서 급하게 다시 잠을 청하는 걸로 마무리....
 뭘 했다고! 뭐냐 이거 컬트 소설인가.

 페르마의 부탁
 라면을 끓이다가 느닷없이 악마가 좋아져서 쓰게 됐다는 소설. 악마의, 일종의 저승사자로서의 일면을 조명한다. 악마가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악마의 대리인격인 페르마의 설명에 의하면, 만약 사람이 사자에게 잡혀먹혀서 배설물이 되어 나왔는데도 악마가 인간을 벌하지 않으면 영혼은 그대로 남아있어 영구히 배설물인채로 살아가야 한다. 그 배설물은 또다시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되고 이렇게 분해되고 또 분해되고 세균이 득실득실한 상태가 되어서도 어떻게든 그냥 살아가야 한다. 그것보다도 먹히고 있는 도중에도 의식이 여전히 살아있을 것을 생각하면... 아 무섭다. 악마님 고맙습니다. 라면끓이는 것만으로 떠올린 발상이 이정도라면 이 작가님이 스테이크를 굽다가 영감을 얻는 작품은 과연 어느 정도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 짧고 코믹한 작품.

 아내를 위하여
 타임머신을 발명했으나 사채빚에 허덕이게 된 가련한 남자의 이야기. 어째서 이 남자는 타임머신을 발명했으면서도 암흑가의 일원이 될 수 밖에 없었는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 미래의 아들은 어떻게 알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가? 참 사람의 앞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당장의 좋은 결과가 성공으로 이어지리란 보장없고, 안좋은 결과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인생의 실패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미래를 보고 와도 그 결말은 변함없다면 타임머신같은 것은 의미없는게 아닐까. 어차피 그럴거라면 타임머신 따위를 발명하는 것보다는 사채를 끌어다 쓰지 않는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일검쟁위 一劍爭位
 『사랑으로 삶을 사랑온 허풍검사의 꿈, 대붕검.
이 검은 일찍이 영웅이었던 한 검사가 영웅이 되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성취해낸 위대한 검이었다.』
 강호의 절정 고수와, 허풍쟁이 소리를 들으면서도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한 무도가의 세기의 맞짱,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허풍쟁이 사부의 제자. 고수들의 무공이 장난 아니다. 그리고「검의」란 무엇인가, 진정한 검사는 어떤 마음가짐을 해야 하는가 등등을 두고 거창한 철학들을 몇차례 주고 받는데, 무슨 말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직 내가 깨달음이 부족한 탓인가 보다. 역시 꿈을 걷다 시리즈는 무협이 중량감이 있다. 이번에도 역시 재미있었다.

 2010년 한해동안 아껴가면서 읽어야 할 책을,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11편중 4편을 읽어버렸다. 나중에 이 시리즈가 좀 더 유명해지고 잘 나가면 분기별로 나와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일년에 한번 읽으려니 이거야 원 감질나서. 2010년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런식으로. 그리고 수록된 작가들의 반가운 이름들을 장편으로도 모두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한다. 그날이 올 때까지 음지에서 묵묵히 응원.

 마지막으로 <일검쟁위>의 마지막에 나오는, 협객을 자처하는 피끓는 남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명언 하나,『죽음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면, 그대의 죽음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번 죽음으로써 영원히살 수 있다는 뜻이지』
 선천적으로 가늘고 길게 사는 체질인 나에게 고수의 길은 요원한 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