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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엮음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기괴한 방법으로 아내를 사라지게 만드는 '입체기하학'을 시작으로, 10살인 여동생을 유혹하는 14살 오빠의 모습을 그린 출세작 '가정처방'등, 근친상간이나 유아살해같은 이상성애를 테마로 한 8편의 단편을 수록. '서머싯 몸'상을 수상한 '이언 매큐언'의 독자적인 세계를 만끽할수 있는, 1975년의 발표한 데뷔 작품집이다.
이 작품집에 그려지는 구도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사춘기의 성에 대한 자각, 동거, 근친상간, 도착성애... 퇴폐로 물들여진 반도덕적인 이야기 속 세계에는, 담담하게 무료함이 채워져 있거나, 소멸해가는 엷은 그림자가 소리없이 다가와 있는듯한 기분이 느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여름의 마지막날'과 '첫사랑, 마지막 의식'이 좋았다. 이언 매큐언의 다른 작품인 '시멘트 가든' 에서 누이와 동생들이 엄마의 시체를, 단어 그대로 은폐하고, 언젠가 드러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잊어버린 척 하고 있었던 것 처럼, 이 두편의 단편에서도 퇴폐적이고 제멋대로인 생활의 그림자로 인해, 가사나 출산이나 육아라고 하는 현실적인 일상이,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척 은폐되고 있다.
이언 매큐언의 문장은 꽤 독특하고 재미있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결핍' 에서 오는 재미인 듯한 기분이 든다. 과도하게 무엇인가를 끌어 안는 것이 아니라, 고의로 문장에 무엇인가를 결핍 시키고 있기 때문에, 묘한 흥미를 가지게 되는 듯한. 예를 들어, 수록작의 하나인 '나비'의 서두는 이런 식으로 되어 있다
- 목요일에 나는 난생 처음 시체를 보았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할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날은 무더웠다. p. 96
여기에서는 문장과 문장의 사이의 연결에 있어서, 분명하게 여러가지 것이 누락되어 있다. 논리성이라든지, 인과관계라든지, 시간의 흐름이라든지. 자신도 모르게 뭐냐 이건! 하고 내뱉게 되어 버릴것만 같은 기묘함이, 담담한 서술방법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끌리는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이언 매큐언이 일인칭의 서술을 즐겨 이용하는 것은, 거기에 우선 객관성이 '결핍' 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거의 전편에 걸쳐서 성적인 충동을 그리면서도, 그것이 결코 성취감 있는 성공적인 체험으로 연결되지않는 것도 주시 해야할 점. 마구잡이로 추악함을 드러내 보이는, 비도덕 비윤리적인 성격의 것이 절대로 아니며, 이 작품집은 그러한 분방함의 끝에 있는 허무감이나 비참함 같은 것을 냉소적인 태도로 응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