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람과 그림자의 책 ㅣ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그루버 지음, 박미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세계적 문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미발표 희곡을 둘러싼 미스테리!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인 제이크 미쉬킨은 고명한 중세 문학 연구자로부터 상담을 받는다.
상담의 내용은 17세기 영국에 실제로 존재했던 어느 병사의 편지를 맡아달라는 것. 암호에 의해서 400년간 지켜져 온 이 편지에는 문호 셰익스피어에 관한 엄청난 비밀이 담겨져 있다.
햄릿, 로미오와줄리엣등 수많은 걸작을 남긴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절대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동시대의 인물인 레오나르도다빈치와는 달리, 편지는 물론이고 공문서 같은 문호의 생애를 짐작할수 있을만한 자료가 오늘날 거의 남아있지 않다.
미국 미스테리 소설계의 거장인 마이클 그루버가 풍부한 자료와 상상력을 발휘하여 수수께끼에 둘러쌓인 세계적 문호 셰익스피어의 진짜 모습을 찾아내는데 도전!
언뜻 보기에도 두권 분량은 되어 보이는 두툼한 책입니다만, 속을 펼쳐보면 게다가 26줄 편집입니다. 상당히 많은 분량이에요. 아마 보통 책이라면 세권 정도의 분량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돈을 주고 책을 사보는 독자 입장에서 이정도 분량의 최신 스릴러를 한권 가격으로 볼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책의 가격이니 표지 디자인이니 하는 건 모두 두번째 문제.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것은 책의 내용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그런면에서 바람과 그림자의 책을 손에 넣은 사람들은 횡제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 재미가 또 보통이 아니거든요.
바람과 그림자의 책이 번역되어 나오기 전부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이 있어서 상당히 기대는 하고 있었는데 막상 읽고 보니 이정도까지 재미있을줄은 몰랐어요. 정말이지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작품이였습니다. 베일에 쌓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모습을 밝혀낸다는 흥미만점의 소재도 그렇지만 (사실 이책을 읽기전까지는 셰익스피라는 인물이 이렇게까지 베일에 쌓인 인물인줄은 몰랐습니다.) 그 소재가 전혀 아깝지 않을만큼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두툼한 책의 볼륨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빨라요. 상당히 빠른전개를 보여주는데 그렇다고 이 책이 속사포처럼 몰아붙이고 숨돌릴틈 없는 긴장감을 유발하는 류의 작품은 아닙니다. 오히려 호흡을 길게 잡고 느긋하게 여기저기 산재한 다양한 극적 요소들을 둘러보는 즐거움을 주는 작품인것 같습니다. 세익스피어에 대한 정보나 비화들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개인사, 가족사를 포함한, 줄기에서 뻗어나온 잔가지 같은 스토리들에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합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나중에 하나로 모이게 되지만 이런 부분이 개성있는 인물들과 부합하여 등장인물들에 애착을 가지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게 또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구석구석 세세한 부분까지 잘 묘사된 이야기는 환상소설이나 공상과학소설에서처럼 '바람과그림자의 책'만의 독자적인 세계관 안에 들어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읽다보니 셰익스피어나 미발표 희곡은 뒷전이고 심부름 갔다가 오락기에 정신을 빼앗긴 아이처럼 자꾸 여기저기 다른 쪽으로 한눈을 팔게 되네요.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다는 증거겠죠. 덕분에 영화보다는 티비시리즈에 더 어울릴법한 깊이있는 이야기를 즐길수 있었습니다.
최고수준의 지적 미스테리가 주는 즐거움
17세기 당시의 암호문풀이와 같은 박식함이 보여주듯, 움베르토에코의 '장미의 이름' 등에서와 같은 지적유희는 물론이고, 쿄고쿠나츠히코의 '쿄고쿠도 시리즈'의 장광설등에서 느낄수 있었던 활자를 읽고 있는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도 흠뻑 느께게 해주는 작가의 입담이 일품입니다. 군데군데 넘치는 유머러스함도 좋았고, 전체적으로 미국식 스릴러의 긴박감과 영국식 추리소설의 고전적인 분위기가 믹스된 느낌입니다.
이야기와는 별개로 중간중간 사건의 핵심이라고 할수 있는 중요한 문서의 내용을 보여줍니다. 이 문서란 17세기 당시에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대한, 일종의 스파이라고 할수 있는 브레이스거들이라는 자에 의해 쓰여진 자필 편지입니다. <바람과 그림자의 책>은 이 편지의 내용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 번갈아 보여지는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있는데 마치 서로 연관성이 있는 두개의 소설을 같이 읽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이중으로 즐길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또 제법 재미있습니다. 이 편지 부분은 원래 원문에서는 상당히 난해한 17세기 당시의 고문으로 쓰여져있는 모양인데 번역판에서는 적당히 분위기를 낼수 있을정도로 잘 손질이 되어 있어서 읽는동안 전혀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이런 역사의 한귀퉁이를 다룬 소설들이 많이 번역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게 시류이기도 하고 이 장르의 소설이 많은 팬층을 거느리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이 들중에는 걸작도 있는 반면에 그렇고 그런 작품들도 상당수 됩니다. 설사 꽤 괜찮았던 작품이라 할지라도 장르의 특성상 비슷한 구성의 작품이 많아서 나중에 생각해보면 인상에 깊이 남는 작품은 얼마 안되는것 같아요. <바람과그림자의 책>은 이런 수많은 역사스릴러물들 중에서 단연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수 있는 작품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독특하기도 할 뿐더러 엔터테인먼트적으로도 첫손가락에 꼽을만한 재미를 보장해 주거든요.
쓰고보니 개인적인 감정이 너무 많이 담긴 감상이 되었지만 장르소설에 편중된 편식독서를 하는 저에게는 어쩌면 2008년에 읽은 최고의 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구 칭찬하고 싶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연초부터 이런 책을 만났으니 올한해 다른책들이 재미없게 느껴지게 되는건 아닌지 조금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