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괴 랩소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다테 히데요시는 어느 쓸쓸한 공원에 차를 세워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제 죽을 수 밖에 없다. 목을 매달 로프는 가지고 왔다. 하지만 목을 매달면 벗꽃나무의 가지가 부러질 것 같기 때문에 이 방법은 관두자, 투신자살은 거리를 잘 맞추어서 뛰어내리지 않으면 도중에 벽에 부딪혀 버리므로 이것도 포기, 그렇다, 배기가스를 차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등등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히데요시가 죽으려 하고 있는데는 이유가 있다. 전과 3범에 오갈데 없던 그를 받아들여 준 데다가, 경마라든가 경정등에 돈을 털어 넣는 그에게 급료를 가불해 주거나 여러가지로 편의를 봐 주었던 지금의 사장을 때리고, 게다가 차까지 훔쳐서 도망쳐 버렸다. 사채업자로부터 빌린 돈도 이제는 이미 되갚을 수 없는 액수가 되어 있다. 갈 곳을 잃어 버렸다.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이러쿵 저러쿵 이유를 붙여서 죽지 못하고 있는 그의 앞에, 한 아이가 나타났다. 한눈에도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짊어진 초등학교 1학년정도의 아이다. 사정을 듣고보니 아무래도 부잣집 아들인 듯 한데, 뜻밖에도 아이는 현재 가출을 한 상태라고 한다.
히데요시는 이것을 천재일우의 기회로 생각하고 덴스케를 유괴하기로 한다. 인생 대역전을 노리고 야심차게 저지른 범행. 그런데 운나쁘게도 덴스케는 야쿠자 보스의 아들이었다. 거꾸로 목숨을 위협받는 입장이 된 히데요시. 게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야쿠자 뿐만 아니라 차이니즈 마피아와 경찰들에게도 쫓기는 처지에 놓여 버린다. 과연 히데요시는 추격자들을 뿌리치고 몸값을 차지할 수가 있을까... 라는 이야기입니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설은 지금까지 번역되어 나온 것은 모두 읽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모든 작품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네요. 웃음이 있고, 눈물이 있고, 인생의 씁쓸한 맛을 보여주지만 희망도 공존한다는 점. 항상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어서 혹시 매너리즘에 빠진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지만, 재미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것이 오기와라 히로시 소설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 책 유괴 랩소디도 그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실컷 웃다보면 마음 따뜻해지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린이 유괴라고 하는 흉악한 범죄를 그리고 있지만 그 그리는 방법에 있어서는 흉악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물론, 히데요시로서는 진심으로 몸값을 노린 유괴를 획책하고 있는 것이고, 덴스케의 가족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하지만, 그래도 유괴로 인한 긴장감은 전혀 없습니다. 긴장감은 커녕 시종일관 얼빠진 듯한 등장인물들의 개그 퍼레이드에 웃기 바쁩니다. 웃음뒤에 오는 감동. 역시 평소의 오기와라 히로시의 작품이라는 느낌입니다.
다테 히데요시는 비록 전과자이기는 하나, 흉악한 범죄자의 이미지와는 정반대라고도 할 수있는 어설픈 인물로, 그동안 살아온 인생도 실격 수준이지만, 유괴범으로서도 실격입니다. 무섭지도 않은데다가 으름장도 제대로 먹히지 않고, 오히려 어린 덴스케에게 좌지우지되는 느낌으로, 도무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습니다. 마치 덴스케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하는김에 겸사겸사 유괴도 하고 있다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덴스케의 캐릭터가 마음에 듭니다. 오기와라 히로시는,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매력 흘러넘치는 아이를 창조해 내는데 굉장히 능숙한 작가라는 생각을 전부터 해왔는데 유괴 랩소디에서도 덴스케라는 아이는 단연 눈에 띄는 존재입니다. 긴장감 없고, 아무때나 잠이 들고, 한자나 영어는 모르면서 스페인어는 알고 있고,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뻔한 거짓말에도 속아넘어가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천진난만을 넘어서, 어쩌면 조금 바보 같을지도...
가끔, 부잣집 외동아들(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로 태어난 외로움 같은 것을 발산해서 조금은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들어버리는가 하면, 어느새 다시 엉뚱한 짓. 그러면서도 핀치에 몰린 장면에서는 어떻게든 무사히 위기탈출을 해버립니다. 어쨌든, 어느 장면에 나와도 질리지 않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유괴된 덴스케의 순진무구한 동심은 적당한 타이밍을 보아 덴스케를 살해하려 하고 있던 히데요시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둘 사이에는 우정이라 해도 좋을 감정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나름대로 유괴를 소재로 한 소설을 꽤 읽어보았다고 생각하지만, 야쿠자에게 쫓기는 유괴범 이야기는 처음 읽는 것 같습니다. 일단 잡히면 처절하게 복수를 당하게 된다는 점에서, 쫓기는 입장에서는 한층 더 위기에 몰린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경찰에 쫓기던 그들이, 입장이 역전되어 벌이는 추적극은 여기저기에서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을 연출합니다. 우왕좌왕하다 번번히 당해 버리고 마는 덴스케의 아버지와 조직원들을 보고 있으면 그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실소가 세어나오고 맙니다.
상냥하고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시선을 달리해 보면, 인생이란 그렇게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훈훈한 마음으로 기분 좋게 책을 덮을 수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