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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유령일 뿐
유디트 헤르만 지음, 박양규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진속 작가의 모습에 중성적인 이미지가 있어서 처음에는 유디트 헤르만이라는 작가가 남자인줄로만 알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쏭달쏭한 이름도 그렇고... 그렇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면 곧바로 여류작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남성작가들에 글에서는 좀처럼 볼수 없는 여성작가만의 감수성이 물씬 풍겨오기 때문이다.
유령이 등장할것 같은 제목을 달고 있지만, 유령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들. 단지 유령일뿐은 이 단편들중 한 작품의 제목이고, 여기에 유령사진을 찍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단편조차 유령이야기는 아니다. 이 책은 여행과 사랑등을 주제로 한 7편의 작품이 실린 단편집이다.
낯선곳으로의 여행, 낯선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오는 흥분과 불안이 섞인 감정들. 여행과 사랑이라는 다소 동떨어진 소재를 일곱편에 걸쳐서 집요하게 같은 바구니 안에 담는 이유는, 그것을 마주하는 감정에 공통된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감회와, 낯선 사람들, 특히 이성과 맺는 관계에서 오는 감정은 설레이고, 두렵고, 조심스럽지만 끌린다는 점에서 동일한것 같다. 정착할수 없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희미해져간다는 것도.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에서는 향기가 난다. 그리운 냄새. 부족한 표현력으로는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지만, 예를 들자면 어느날 문밖을 나서는 순간에 봄내음이 물씬 풍겨와서 가슴이 설렌다거나, 창문을 열었더니 코끝을 스치고 가는 겨울냄새에 센티멘탈해져 버린다거나 뭐 그런 기분.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언제 어디선가 한번쯤은 느꼈었던 것 같은 감정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아련하고도 그리운 향기가 난다.
이 책에 등장인물들이 낯선 여행지와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감정들은 비록 장소가 다르고 상대가 다를지언정, 데자뷰처럼 아련한 기억속의 장면들을 더듬게 하는 결코 낯설지 않은 것들이다. 머리로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기억 속 어딘가에 그 향기만은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그리운 느낌을,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일곱편의 이야기 안에서 보물찾기 하듯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