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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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폐허의 작가 스콧 스미스의 데뷔작. 데뷔작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한, 정말로 말이 필요없는 최고의 서스펜스다. 만약 단 한권의 스릴러만 읽을수 있다면 생각할 것도 없이 무조건 이 책이다.

폐허를 읽은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겠지만 이 작가는 한계상황, 혹은 예측못한 위기상황에서의 인간의 심리변화를 그려내는데 있어서는 초고수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정신의 소유자가 불과 몇일, 몇달이라는 짧은 기간동안에 조용히 광기에 사로잡혀 가는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초자연적인 사건을 다룬 폐허와 비교하면 본작<심플플랜>은 일상에서 어디선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을것 같은, 현실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어서 인물들의 심리에 더욱 공감이 간다. 등장인물들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실감나서 흡사 논픽션을 읽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심리묘사의 리얼함도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심정을 절실하게 맛볼 수 있었다. 보안관과 대화하면서, 독자인 내가 평상심을 가장하려고 애쓰고 표정까지 관리하고 있디는걸 깨달았을 때는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그 감정이입이나 흡입력으로 말할것 같으면 솔직히 비교대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책을 읽는 내내 초조함과 불안감으로 전전긍긍했다.

미국 오하이오의 어느 벽촌에서 회계사로서 일하고 있는 행크는, 임신한 아내 사라와 함께 평범하고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신년을 앞둔 어느날 행크는 형 제이콥과 형의 친구인 루와 함께 차를 타고 가던중, 눈쌓인 숲속에 추락해 있는 경비행기를 발견한다. 파일럿은 이미 사망한 상태이고 기내에 있던 가방 안에는, 400만 달러가 넘는 큰돈이 들어 있다. 신고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끝에 반년 동안 돈을 감춰두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다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 시점에서 3등분 하자는 행크의 제안으로 셋은 합의를 본다. 그런데 너무나 간단하다고 생각했던 그 계획이 의외로 생각처럼 잘 풀려나가질 않는다.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들로 인해서 행크는 점점 수렁속으로 빠져 든다.

전반부는 루의 방약 무인, 제이콥의 우유부단에서부터 비롯되는 위기들, 그리고 후반부는, 지금까지의 범죄를 덮기 위해서 계속해서 범죄를 덧칠해 나가면서 고군분투 하는 행크의 비참함과 동시에 보여지는 광기가 키포인트. 불안과 악몽이 서서히 증식해가면서 차츰차츰 행크의 일상을 침식해 들어가는 과정의 긴장감이 압권이다.

처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자기 자신에게 허용한 욕심이지만,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어떻게든 그 욕심을 지키기 위해서 자진해서 더욱더 나락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다. 수면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방울이 큰 파문이 되어 퍼져 간다는 식의 스토리 자체는 매우 심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처럼 아무데나 흔히 굴러다니는 평범한 사람에게도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기분. "위험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쩌면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행동을 취할지도 모르겠다"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 연달아서 등장한다. 몇번이나 생각하지만 나만의 타계책이란게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서, 그럴때마다 역시 나라도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건가, 한기를 느낀다. 오히려 행크처럼 자신이 평범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 더욱 필사적이 될지도 모른다.

<심플플랜>이 발표되었을 당시에 대가 스티븐킹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는데 내가 킹이라도 과연 그럴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킹은 극찬을 남발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 듯 하지만 이 작품만큼은 의심에 여지가 없다. 별은 할수만 있다면 몇만개라도 주고 싶지만 5개까지밖에 줄수 없어서 일단은 5개. 쫓아다니면서 추천하고 싶은 궁극의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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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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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작은 오해가 불씨가 되어 오랫동안 반목하고 지내온 상대가 눈앞에 있다. 그는 부모나 자식일수도 있고 형제일수도 있다. 혹은 아주 절친했던 친구일수도 있다. 그 대상이 하나님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오랫동안 쌓여온 오해가 풀리고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삶을 살아왔는지를 깨닫는 순간 하염없이 쏟아져 나오는 눈물. 그 눈물은 참회의 눈물이기도 하고 깨달음의 눈물이기도 하며 동시에 기쁨의 눈물이기도 하다. 짊어지고 살아온 마음의 짐을 모두 내려놓은 평안함의 눈물일지도 모른다. 작은 오두막 안에서 내가 흘린 눈물은 바로 그런 눈물이었다.

어린 시절에도 하나님은 분명히 계신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 누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고 우리를 존재하게 한단 말인가.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에도, 누구 하나 가르쳐 준 사람 없음에도 그것은 본능적으로 아는 사실이었다. 진리라고 믿었다. 뛰어노는 순간, 잠자는 순간, 투정부리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어디선가 보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성탄절 양말을 걸어놓을때가 되면 더욱더 밥투정도 하지 않았고 아무리 화가나도 동생을 때리지도 않았다.

그런 막연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건, 아니 일종의 의구심을 가지게 된건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에 다니면서부터였다. 어린 아이가 뛰어들면 환하게 웃으며 품에 안아줄 그런 자상한  파파의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착한 일을 하면 천국에 보내시고 죄를 지으면 지옥으로 보내 불구덩이에서 살게하시는 그런 엄격하고 권위적인 분이었던가. 언제나 교회는 따뜻함보다는 교리를 강조하고 엄숙함으로 무장한 곳이었다. 그런 분위기 자체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게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믿어 의심치 않던 그 자상한 하나님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애초에 아름다운 것만 보게 하시고 사랑으로 충만한 곳에서 아무조건없이 누구나 행복하게 살게 하시면 될것을 왜 힘든 유혹에 빠지게 하고 그에 댓가를 치루게 하시는가. 정말로 그렇게 심술궂은 분이었단 말인가. 이런 의문들.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이 얼마나 혹독한 곳인지를 알아가면서 이런 의문들은 더욱 더 커져갔다. 그리고 자연스레 처음의 순수한 믿음과도 등지게 된 것 같다.

이제는 의식하는 것 조차 잊고 있던 그런 오래된 의문들이 이 오두막안에서 한순간에 모두 풀렸다.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로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 <오두막>은 하나님과의 대담이라는 하나의 놀라운 체험이다.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그 동안의 모든 의문이 눈녹듯 사라진다. 가슴안에 주체할수 없는 평안함이 들어찬다.

어째서 신은 나에게 이렇게 가혹한가. 소설의 형식을 빌어 딸을 잃은 한 아버지의 고뇌를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은 그의 고뇌는 우리가 안고 있을 고뇌의 모습이기도 하다. 맥은 사랑하는 막내딸을 너무나도 잔인한 방법으로 잃고 만다. 온가족이 놀러간 야영지에서 사고가 일어난 혼잡한 틈을 타 막내딸 미시가 연쇄살인범에게 납치된 것이다. 그리고 한 오두막 안에서 미시가 생각하기 싫은 가장 끔찍한 결말을 맞이했음을 짐작케해주는 흔적이 발견된다. 이때부터 미시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삶이, 정신이 망가져간다. 당시에 사고를 일으켰던 미시의 언니 케이트는 죄책감으로 성격장애마저 보인다. 그런 맥에게 어느날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통의 쪽지가 날아든다. 예의 그 오두막으로 오라는 것이다.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 찾아간 그 오두막에서 그는 정말로 하나님을 만난다.

읽는동안 나 스스로가 맥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빠져나올수가 없었다. 오두막 안에서 나는 내내 맥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예수님과 성령과 함께 있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공명하는 느낌을 몇번이나 받았는지 모른다. 다른 것에서는 느낄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감동이었다. 이 감동은 비단 기독교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만 그렇다고 특정 종교를 믿는 신도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읽고 그 누구 못지 않은 께달음과 평안함을 얻을수 있었던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특정종교의 교리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일부이며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함께 계신다는 모든 종교인들의 보편적인 믿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은 어떻게 존재하고 계시는가, 어떻게 사랑을 행하고 계시는가하는 인류의 오랜 의문을 너무나도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아이가 구하려는 사람을 믿지 못하면 못할수록 도움을 주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구조의 손길을 믿고 가만히 몸을 내맡길때 아이는 구원받을수 있는 것이다. 믿음을 잃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아이는 더욱 깊은곳으로 빨려들어가고 만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자리에 계신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하나님 그대로이다. 의심하는 마음이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고통을 키워나간다.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자기 자신이 만들낸 고통이다.

수많은 양서가 있지만 이 책만큼 실제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게 한 책은 만난적이 없다. 책한권이 이런 큰 마음의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머리로 이해하고 눈이 번쩍 뜨이는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단단하게 묶여있던 비밀의 자물쇠를 풀어주기 때문이다. 오랜 증오심과 오해, 반목의 대상이 사라지고 평안함을 되찾을수 있게 해주는 것, 세상에 충만한 사랑을 일깨워주고 긍정적으로 삶의 변화를 일으키게 해주는 것. 진정한 치유의 힘이란것이 바로 이런것 아닐가. 그 어느때보다도 힘든 시대, 믿음을 잃고 살아가기 쉬운 요즈음 이 책의 메세지는 더욱 절실히 와닿는다.

출판할 의도가 전혀 없이 그저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려 쓴 책이 입소문만으로 아마존 베스트셀러까지 될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말이다. 저자는 성직자도 아니고 종교 연구가도 아닌 그저 평범한 아버지에 불과하지만 그 어떤 교리도, 그 어떤 성직자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 의문을 너무나도 쉽게 설명해준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랑이 지위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평등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이 그런 아버지의 마음과 일맥상통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 역시 하나님에게 속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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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의 불행학 특강 - 세 번의 죽음과 서른 여섯 권의 책
마리샤 페슬 지음, 이미선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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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의 뇌는 하루에도 수만개의 단어를 떠올린다고 합니다. 생각하고, 상상하고, 묘사하고, 심지어는 자신과 대화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실제로 혼잣말이 되어 입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온갖 문장이 만들어졌다 사라집니다. 그렇게 쉴세없이 떠벌이고 있는 다른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볼수 있으면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것을 소설로 써낸다면 아마도 본서<블루의 불행학 특강>과 비슷한 느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블루의 불행학 특강>이라는 수상한 제목도 그렇고, 표지도 그렇고, 첫인상만으로는 무슨 내용인지 도통 그 방향을 짐작하기가 힘들더군요. 게다가 홍보문구가 무려, "문학의 새로운 혁명인가, 아니면 난해한 문제작인가? 칠백여권의 주석과 이백여권의 참고도서가 거미줄처럼 얽힌다!" 입니다. 이래서는 정말로 난해하고 까다로운 책으로 오해하기 쉽상입니다. 800여 페이지나 되는 두께의 압박을 감안하면 더욱 그럴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막상 읽어보면, "아니 이런 소설이 있었단 말인가!!!" 할 정도로 너무너무 재미있고 개성있는 책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교수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풍부한 문학적 소양과 지식을 갖추고 있는 천재소녀 "블루" 가 주인공입니다. 나비전문가였던 블루의 어머니는 오래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고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각지를 떠돌아 다니며 유랑생활을 해오던 블루는 스톡턴이라는 곳에 정착합니다. 이곳에 있는 세인트 골웨이 고등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곳에서 블루는 미모의 여교사를 중심으로 한 귀족학생들의 정예모임에 초대받아 끼게 됩니다. 한동안 이들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들을 그려나가는 것 같던 이야기가 멤버중 한명의 죽음을 발단으로 해서 본격적으로 미스터리로 변해 갑니다.

죽음뒤에 감추어진 진실을 블루가 파헤쳐갑니다. 가상의 단체, 사건들이 자연스레 뒤섞여 만들어내는 결말이 흥미롭습니다. 여기까지 도달하는 동안 제임스 조이스의 난해하기로 유명한 고전 율리시스를 위시해서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언급됩니다. 우선은 각 장의 제목부터가 오셀로에서부터 실낙원, 레이먼드 챈들러의 하드보일드 소설인 빅슬립에 이르기까지 36권의 문학 작품의 제목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제목뿐만 아니라 그 작품들은 각 장의 모티브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대충 분위기는 상상이 갈런지요. 문학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소녀탐정 이야기? 그것도 틀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것만으로는 그리 난해하다고까지 할만한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애매모호한 문구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느냐. 참 설명하기 쉽지 않은 특이함이 있는 책입니다. 일단 주인공은 아이큐 175의 천재라는 설정입니다. 이런 설정일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서 쉴세없이 박식함을 쏟아냅니다. 문학작품을 필두로 해서 수학, 과학, 역사, 사회문제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학들이 꽉꽉 채워져 있습니다. 베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잠이 솔솔 들것 같은 두께의 책안에서 지식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그런 해박한 지식이 묘사나 비유, 설명하는 도중에, 혹은 재기발랄한 유머속에 섞여서 시시때때로 묻어나옵니다. 다만 그런 지식들이 이야기 진행에 있어서 필수가 되거나 깊숙히 파고드는 것은 아닙니다. 주석이라고는 하지만 따로 지면을 할애해 흐름을 끊는다거나 하는 식도 아니구요. 박학다식한 주인공의 이야기하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자면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사소한 것까지도 만화 주인공이나 에피소드들과 비교해서 이야기 하듯이, 조금은 장황할 정도로 다른 지식(특히 문학작품)과 연관지어 사물을 묘사하고 상황을 설명한다면 맞을까요. 소설의 스타일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가 난해한 면은 있지만 결코 스토리 자체가 난해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게 이 소설의 매력입니다.  

그런면에서는 인터넷 블로거들의 글쓰는 방식과도 비슷합니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사소한 것 하나에도 자신에 생각에 대한 부연설명이 붙죠. 그러고나면 또 거기에 대한 설명이 하고 싶어집니다. 아는 것이 있다면 남김없이 다 쏟아내고 싶어하죠. 잡설이라든가 다양한 생각들을 집어넣고 나면 분량은 늘어나지만 본래의 주제를 떠나서 읽는것 자체가 즐거운 글이 됩니다. 애초에 작가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즐기면서 썼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분위기에다, 사색이 많은 조금은 내성적인 주인공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작가의 쾌활함이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활짝 웃고 있는 미녀작가의 사진을 미리 본 탓에 선입관이 자리잡고 있는 탓지도 모르지만요. 문장마다 참신한 표현이나 기발한 묘사들이 속출하기도 하구요. 신세대적 발상이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다만 그 해박한 지식에서 기인하는 무게감만은 여느 기발함이나 참신함 만으로는 흉내낼수 없는 본서만의 확실한 차별화 요소입니다.

외국 청소년들의 스쿨라이프를 들여다보는 재미, 낸시드류 같은 소녀탐정이야기를 떠올리게도 되구요, 문학모임에라도 슬슬 다녀온것처럼 지적으로 충만한 느낌도 있습니다. 사회문제와도 얽히는 깊이있는 미스터리를 즐길수도 있고, 다 읽고나면 잡학사전 하나를 통째로 읽고 난듯한 포만감마저 느껴지네요. 다양한 감상이 공존하는 소설입니다. 이것저것 다 들어있다고 해서 결코 B급소설의 그것처럼 난잡하지도 않구요, 혹여 실험적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상당히 안정적이고 완성도가 높습니다. 사소한 것부터 큰것까지 반전이라 할만한 극적전환도 여러번 등장하지만 결코 머리 아프게 꼬여있지는 않습니다.

섣불리 다가가기 힘든 첫인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 넘어서면 새로운 경험을 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읽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책을 읽지 못했다면 이 작가의 후속작이 나오지 않는 한은 절대로 이것과 같은 재미를 맛볼수 있을리가 없거든요. 박식함과, 문학적 재능과, 신세대적인 감각을 모두 갖추고 있지 않으면 쓸수 없는 재기 넘치는 소설입니다. 활자하나, 문장 하나 하나에도 개성이 묻어나옵니다. 지적이면서도 발랄합니다. 기말고사 있는 소설 보셨나요? 이야기가 모두 끝난뒤에는 독자를 상대로 한 기말고사 문제가 출제됩니다. 전체적인 내용을 얼마나 숙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소설안에서 언급되는 다른 문학작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스토리에 관한) 테스트이기 때문에, 만점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몇번이고 또 읽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센스!) 이런 소설이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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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Robot 유, 로봇 - 한국 SF 단편 10선
이영수(듀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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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기 여배우가 자신의 로봇을 폐기하려고 찾아온다. 남자친구이자 충실한 심복으로써 5년을 함께 해 온 로봇이라고 한다. 그런데 폐기하려는 이유가, 떨어지는 화분에 큰 화를 당할뻔한 자신을 구해줬기 때문이라나. 그때 여배우를 대신해 로봇이 화분에 머리를 맞았던 모양이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로봇이라 별 이상은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폐기처분 신세가 된 것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같은 사고를 당하고도 멀쩡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로봇이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라면 어떻게든 둘러댈수 있는것 아닌가? 그래도 싫단다. 무조건 폐기처분 해달란다.

아무리 로봇이라지만 너무 매정한것 아닌가. 그래도 5년을 충실히 봉사해 왔는데. 그녀는 진정으로 이 로봇을 아끼지는 않았던게 분명하다. 그 증거로 5년동안 한번도 로봇 정기점검을 받으러 온 적이 없지 않은가. 만약 정말로 로봇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랬을리가 없다. 그렇지만 그녀의 변은 다르다. 일년에 한번 받는 정기점검은 이 남자가 로봇이라는것을 상기시켜주는 가혹한 시간일 뿐이다. 그동안은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관객의 마음"으로 살아왔다. 이미 환상이 깨어진 이 로봇에 대해서는 더이상 인간에게 주는 것 같은 애정을 줄수가 없게 되었다. 

"당신 사람들이 왜 영화를 좋아하는지 알아요? 영화를 보는 동안 현실을 부정할수 있기 때문이에요.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영화속의 현실이 진짜 현실처럼 느껴지죠. 그래서 가끔 관객들은 영화가 영원히 끝나지 않길 바라요. 차가운 현실로 돌아오기 싫으니까." 179쪽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 중에서>

SF 소설을 읽다보면 인간과 흡사해진 로봇(혹은 안드로이드)들의 처우와 관련된 고찰이 방향만 조금씩 바꾸어서 반복된다. 그들을 그냥 단순한 기계라 할수가 있겠는가! 마치 인종차별문제와도 흡사하다. 언제까지고 반복될지 모를 영원한 SF의 테마다. 이 책에 실린 10편의 단편중에도 물론 이 명제를 논하는 작품들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다. 그런데 로봇이라고는 저혼자 방바닥을 돌아다니면서 먼지를 빨아먹는 청소로봇 밖에 본 적이 없는 주제라서, 사실 이런 고찰이 이제는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똑같은 발상을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수 있는 것은 그런 고찰에서 정말로 무언가를 얻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까지도 SF속 세계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판타지 소설속에서 감초역할을 하는 용과 마법처럼. 과학이 발달한 먼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그 상상속의 세계관이 더욱 견고해지기 때문에, 그 세계가 더욱 "현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관객의 마음" 과도 직결된다.   

인간과 로봇사이의 그 오래된 명제를 다시 한번 들춰내는 것이 있는가하면, 실존 연예인을 소재로 한 작품도 있고, 아무리 피임을 해도 백퍼센트 임신시키는 남자와 같은 독특한 이야기도 있다. 핸드폰 매뉴얼을 보면서 이상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꼬마이야기, 미래의 후손들이 현실에 개입하는 이야기 등등... 생각할 거리와 오락이 골고루 섞여 있는 다채로운 단편집이라는 인상이다. 정도에 차이는 있어도 어느쪽도 예의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관객의 마음" 으로 읽을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9번째로 수록된 "5번째 감각". 청각을 인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회의 이야기. 그 발상뿐만 아니라 어째서 청각을 가진 사람들이 핍박받고 쫓겨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까지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 참 신선했다. 육감이라는 것에 대해서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감각이 정말로 있을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별로 상관은 없는것 같기도 하지만, 테러집단처럼 비밀집회를 갖고 "이것"을 하는 모습에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단편으로 끝낼게 아니라 좀 더 디테일한 설정의 장편으로 꼭 읽었으면 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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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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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나풀나풀 날아가 버릴것 같은 온다리쿠의 기상천외한 단편집. 15편이나 되는 작품이 실로 종류도 다양하다. 호러, 미스터리, 판타지, SF까지 기발한 상상을 보여줄수 있는 장르는 모두 동원한 것 같다. 그렇게 출발은 각양각색의 모습이지만 결국 결말은 모두 환상과 괴기라는 느낌으로 모아진다. 환상특급이나, 기묘한 이야기, 그리고 예전에 신문 해외토픽 란에서 자주 접하던 외국 3류 타블로이드지의 기사가 문득 생각난다. 

외계인의 시체를 주웠다느니, 박쥐인간을 생포했다느니 하는 황당한 기사들을 볼때마다 얼마나 신기하고 놀랍던지. 물론 다 믿었다. 사진까지 실려있는데 설마 신문에서 그런걸 조작하리라고는 그때는 생각도 못했을 때니까. 그런데 이런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을 접하고나면 외계인 아니라 천사를 발견했다고 해도 왠지 섬뜩한 느낌이 앞서게 된다.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자신의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을 보면 위협을 느낀다고 한다. 미지의 영역을 마주하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되는 그런 시스템인 것 같다.

일례로, 유명한 티비시리즈인 환상특급을 보면 대부분은 섬뜩한 서프라이즈가 목적인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때로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결말도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런 에피소드들이라고 해도 결국 감상하고 난 뒤에는 왠지 모를 섬뜩하고 두려운 기분이 잔상처럼 남는다. 미지의 장소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바로 환상소설의 매력이라고 할지, 하여간에 가장 기발하고 놀라운 상상력이 발휘되는 것이 바로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고. 온다리쿠의 이 작품집 나비가 바로 그렇다.

여느때의 온다리쿠와 비교하면 기담이랄까 기묘한 이야기 쪽으로 거의 방향이 치우쳐져 있다. 그럼에도 가볍지 않고, 붕 떠있는 것 처럼 몽환적인 느낌이 묻어나오는게 어느모로 보나 영락없는 온다리쿠표 단편집이다. 요즈음의 온다리쿠의 소설들은 팬조차도 실망스러운 작품들이 출연하는 빈도가 상당히 높아졌는데, 이 작품은 그런 와중에도 아주 좋은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 괴이한 발상이 너무 마음에 든다. 땅에서 거대한 손이 솟아나는 마을, 달팽이가 몰려올것 같으면 발령되는 달팽이 주의보, 피를 흘리며 장난감 로봇을 안고 있는 소녀와 이끼로 움직이는 로봇 등등... 정말 이 아줌마 별의별 상상을 다한다. 좋은 작품이 있는 반면에 그보다 못한 것들도 더러 있지만,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읽고 나면 작은 실망감 정도는 충분히 상쇄된다.

매혹적이고 중독성있는 환상이라고나 할까. 나는 이런 류의 이야기를 접할때마다 어쩔수없이 스티븐 스필버그의 환상특급 이야기를 하게 된다. 어린 시절에 워낙 깊은 인상을 받아서,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그 한편 한편의 충격이 머릿속에 완전히 각인 되어 있다. 그런만큼 그 환상특급을 들먹이고 있으면 매우 인상깊고 기상천외한 이야기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또 이렇게 마무리 짓고 만다. "온다리쿠식 환상특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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