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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Robot 유, 로봇 - 한국 SF 단편 10선
이영수(듀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9년 2월
평점 :
한 인기 여배우가 자신의 로봇을 폐기하려고 찾아온다. 남자친구이자 충실한 심복으로써 5년을 함께 해 온 로봇이라고 한다. 그런데 폐기하려는 이유가, 떨어지는 화분에 큰 화를 당할뻔한 자신을 구해줬기 때문이라나. 그때 여배우를 대신해 로봇이 화분에 머리를 맞았던 모양이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로봇이라 별 이상은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폐기처분 신세가 된 것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같은 사고를 당하고도 멀쩡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로봇이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라면 어떻게든 둘러댈수 있는것 아닌가? 그래도 싫단다. 무조건 폐기처분 해달란다.
아무리 로봇이라지만 너무 매정한것 아닌가. 그래도 5년을 충실히 봉사해 왔는데. 그녀는 진정으로 이 로봇을 아끼지는 않았던게 분명하다. 그 증거로 5년동안 한번도 로봇 정기점검을 받으러 온 적이 없지 않은가. 만약 정말로 로봇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랬을리가 없다. 그렇지만 그녀의 변은 다르다. 일년에 한번 받는 정기점검은 이 남자가 로봇이라는것을 상기시켜주는 가혹한 시간일 뿐이다. 그동안은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관객의 마음"으로 살아왔다. 이미 환상이 깨어진 이 로봇에 대해서는 더이상 인간에게 주는 것 같은 애정을 줄수가 없게 되었다.
"당신 사람들이 왜 영화를 좋아하는지 알아요? 영화를 보는 동안 현실을 부정할수 있기 때문이에요.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영화속의 현실이 진짜 현실처럼 느껴지죠. 그래서 가끔 관객들은 영화가 영원히 끝나지 않길 바라요. 차가운 현실로 돌아오기 싫으니까." 179쪽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 중에서>
SF 소설을 읽다보면 인간과 흡사해진 로봇(혹은 안드로이드)들의 처우와 관련된 고찰이 방향만 조금씩 바꾸어서 반복된다. 그들을 그냥 단순한 기계라 할수가 있겠는가! 마치 인종차별문제와도 흡사하다. 언제까지고 반복될지 모를 영원한 SF의 테마다. 이 책에 실린 10편의 단편중에도 물론 이 명제를 논하는 작품들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다. 그런데 로봇이라고는 저혼자 방바닥을 돌아다니면서 먼지를 빨아먹는 청소로봇 밖에 본 적이 없는 주제라서, 사실 이런 고찰이 이제는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똑같은 발상을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수 있는 것은 그런 고찰에서 정말로 무언가를 얻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까지도 SF속 세계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판타지 소설속에서 감초역할을 하는 용과 마법처럼. 과학이 발달한 먼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그 상상속의 세계관이 더욱 견고해지기 때문에, 그 세계가 더욱 "현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관객의 마음" 과도 직결된다.
인간과 로봇사이의 그 오래된 명제를 다시 한번 들춰내는 것이 있는가하면, 실존 연예인을 소재로 한 작품도 있고, 아무리 피임을 해도 백퍼센트 임신시키는 남자와 같은 독특한 이야기도 있다. 핸드폰 매뉴얼을 보면서 이상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꼬마이야기, 미래의 후손들이 현실에 개입하는 이야기 등등... 생각할 거리와 오락이 골고루 섞여 있는 다채로운 단편집이라는 인상이다. 정도에 차이는 있어도 어느쪽도 예의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관객의 마음" 으로 읽을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9번째로 수록된 "5번째 감각". 청각을 인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회의 이야기. 그 발상뿐만 아니라 어째서 청각을 가진 사람들이 핍박받고 쫓겨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까지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 참 신선했다. 육감이라는 것에 대해서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감각이 정말로 있을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별로 상관은 없는것 같기도 하지만, 테러집단처럼 비밀집회를 갖고 "이것"을 하는 모습에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단편으로 끝낼게 아니라 좀 더 디테일한 설정의 장편으로 꼭 읽었으면 하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