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리와 시미코의 살아있는 목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 시공사(만화)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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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첫번째작. "살아있는 목"이라는 제목도 음산하지만, 파랗게 변색된 사람의 머리를 들고 있는 여성이라던가 음침한 폐가의 벽에 나타난 얼굴, 핏빛 하늘, 검은 고양이등등이 그려져 있는 표지도 이만저만 엽기적인게 아니다. 얼굴만 보아서는 제법 연륜있어보이는 표지속 여성들은 모두 아직 어린 여고생. 머리를 감싸안고 뒤를 흘깃 돌아보는 아이가 시오리, 위풍당당하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가 시오리의 단짝인 시미코.

한번 읽으면 적어도 이틀은 밤에 오줌을 지릴것 같은 흉칙한 표지에 비해서는 내용은 그다지 공포스럽지는 않다. 호러만화인데 무섭지 않다기보다는 본래 호러를 그린것이 아니라 엽기적이고 기발한 상상을 생각나는 데로 편하게 그려낸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일종의 코믹호러. 시오리와 시미코 두 여고생이 마주치는 사건들은 평범한 사람이 실제로 겪게 된다면 정신줄을 놓아버리지 않고는 배겨낼수 없을정도로 흉악하고 끔찍하고 하나같이 소름끼칠만한 것들뿐이지만 둘에게는 그저 약간 기분나쁜 것, 혹은 호기심의 대상일뿐이다. 

예를 들자면, 시오리가 아이를 돌보아 주러 간 집에는 집안을 가득 메울 정도로 커다란 사람의 머리가 수시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마도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존재가 아닐까)벽장안에서도 나타나고 커다란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거나 하기도 한다. 아이 그 자체부터 시작해서 수상하고 꺼림칙한 것들 투성이인 집이지만 그런건 기분 나쁜 축에도 못 낄정도로 무서운 이 얼굴은 실은 아이의 엄마. 그런데 이 엄마를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가 가관이다.

"우리 엄마야"
"엄마가 얼굴이 크시구나"
"외국인라서 그래"
'도대체 어느 외국이길래...'

분위기 전달을 위해서 첫번째 단편의 내용만 간략하게 소개하면, 토막살인이 발생해서 경찰이 피해자의 신체일부를 찾고 있다. 시오리가 그중 쓰레기봉투에 있던 머리를 발견해서 아이스박스에 보관하고 있었다. 시미코의 조언에 따라 시오리는 머리를 수조에 넣고 기르기 시작한다. 머리 잘 기르기 교본에 나온대로 따라하니까 머리는 점점 생기를 되찾아 먹이도 주는데로 잘 받아 먹고 수조안을 유유히 헤엄쳐 다니기도 한다. 마지막에는 결국 인근 강에다 머리를 방생하는데, " 앗 잉어가 머리를 쪼고 있어." 머리는 못내 아쉬운듯 그동안 정든 시오리를 몇번이고 돌아보면서 멀리 사라져 간다.

애초에 기대한것처럼 아드레날린을 쏟아내게 하는 무시무시한 호러는 아니었지만 은근히 중독성 있는 만화다. 그림체도 역시 그냥 보면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이야기의 분위기와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서 읽고 나면 눈에 아른거린다. 다른 작가의 그림이었다면 아마 완전히 다른 느낌의 이야기가 되었을 것. 일단 취향에 맞는 사람은 같은 책을 몇번을 되풀이해서 읽게 될 정도로 굉장히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반대로 취향에 안맞는 사람은 창밖으로 책을 집어 던져버릴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로 말할것 같으면 반복해서 읽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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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장으로 - 제139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시공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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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지방 외딴섬의 조그만 초등학교에서 양호교사를 하고 있는 세이와, 어릴적 섬에서 같이 자란 선배였던 남편 요스케. 세이가 근무하고 있는 초등학교에 도쿄에서 이사와라는 붙임성없는 젊은 음악선생이 부임해 온다.

세이의 동료교사인 쓰키에는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세이와는 정반대로, "본토" 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본토씨"라고 불리는 남성과 불륜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자영업을 하는 본토씨는 쓰키에를 만나기 위해 한달에 일주일정도 섬으로 건너온다. 쓰키에는 그런 사실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도 않고 섬사람들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일이다.

매우 요염한 소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고해서 과격한 러브 신이 있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담담하게 작은 섬에서의 일상을 써내려가고 있을 뿐이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꽉 눌러놓은 뚜껑 안쪽에서 소리없이 점점 압력이 높아져가는 여자의 마음속. 주인공 세이는 화가인 남편과 사이가 좋다. 그런데도, 어쩐지 근심을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의 이사와를 보면서 세이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머리로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안의 무언가가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이것을 사랑이라고 해야 할지 어떨지. 일부러 의식해서 피해 다녀도 왠지 몸의 안테나가 쫑긋쫑긋하고 움직여 그 존재를 느껴버린다. 남편에게 불만같은 것은 전혀 없으며, 사랑하고 있고, 모든것이 충족되고 있음에도 멋대로 꿈틀거리며 생겨나는 것이 있다. 단조롭고 평온한 섬 생활과 대비되는 그런 기분이 불길한 징조처럼 파문을 넓혀 간다.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그 느낌은 어느 날 자신을 찢고 나올지도 모르고, 주위사람들을 말려들게 해 모두를 곤혹스럽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의 동요를 안고서 일견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고 있다. 조용한 호수의 표면에 내던져진 돌이 만들어내는 파문. 세이의 몸과 마음의 파문은 당연히 상대인 이사와에게도, 동료인 쓰키에게도, 물론 남편에게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입에 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입에 담는 순간, 그것이 현실의 마물이 되어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여자의 이런 부분은 조금은 무섭기까지 하다. 바람기 라든가 하는 것도 아니다. 충족되지 않거나, 외롭기 때문이라던가 그런 불만족의 이유는 전혀 없음에도, 단지 자신의 안에서 움직이는 무언가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대상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려고 하는 그 충동. 그런 조용한 에로티시즘이 그려져 있다.

이런 모습이 섬의 목가적인 생활과 대비되서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섬의 자연속에서 쓰키에의, 그리고, 세이의 몸안에서 흘러넘치는 "성"의 에너지는 자연의 에너지에 호응하는 하나의 생물로서의 건재함을 느끼게 해주는 에너지이다. 점점 죽음에 가까워져 가는 노인이 꾸는 음몽은 그 마지막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생명의 빛을 발하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바라보는 장면은 그 상징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 세이가 파묻는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조용한듯 하지만 물밑에서는 쉴세없이 발을 놀리고 있는 백조처럼, 담담함 뒤에 감추어진 격정과 생명력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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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리모사 Nobless Club 3
윤현승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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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국작가들의 경계문학 단편집인 <꿈을 걷다>에 실린 단편을 읽고 알게 된 작가. 본서 라크리모사 이외에도 꽤 많은 작품들이 있는 모양이지만, 일단 각각 한편씩의 단편과 장편만을 읽어보고 난 소감은 반전을 굉장히 중시하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판타지한 이야기 안에서 거듭되는 반전이 제법 신선하다. 아쉬운 점으로 말할것 같으면 없지는 않아서 몇가지 열거할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재미있다. 디테일한 면보다는 철저하게 엔터테인먼트적인 면에 치중하고 있는 소설. 

이탈리아의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 도서관에서 사서실장직을 맡고 있는 루카르도가 주인공. 아내를 잃고 사랑스런 딸과 함께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는 루카르도에게 경찰에게서 연락이 온다. 연쇄살인 용의자로 도서관장을 쫓고 있다는 것. 영문을 알 수 없지만 경찰이 일러준대로 도서관을 벗어나려는 순간 또다른 전화가 걸려 온다. 전화속에서는 한 여인이 루카르도에게 절대 도서관을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머뭇대는 동안 경찰들이 도서관에 도착해 전해주는 이야기는 심상치가 않다. 살인사건이 있었는데 도서관장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주위에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마치 인체발화라도 한 것 처럼 피해자만 불에 태워 죽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루카르도의 주위에서는 점점 비현실적인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유럽을 무대로 하고 있으면서도 한국적인 정서로 쓰여져 있어서 그런지 상당히 친근하고 흡입력이 높다. 그런점도 있고, 설화, 혹은 동화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도 읽는 내내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를 떠올리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레오나르와의 계약, 진실의 막같은 요소들은 역시 만화인 데스노트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유명작품들을 차용했다거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말을 하려는게 아니고, 소설이면서도 만화책 특유의 비주얼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술술 넘어가게하는 흡입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신경을 많이 쓴 듯한 반전의 경우에도 예의 만화적 상상력이 빛난다. 만화와 소설의 상상력의 경계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그런게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런 친숙한 기분으로 읽을수 있었다. 

스토리상 시간의 제약을 두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따른 긴박감은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초반부의 진행만 놓고 보면 아마도 그런것을 기대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읽다보면 이야기의 초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수있다. 시간내에 해결할수 있을 것인가, 가 아니고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 무서운 아이의 전설, 진실의 막에 걸려있는 조건과 그 논리적 모순,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가 등등, 흥미로운 요소가 산재해있다. 다만 고백하자면 마지막 결말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다시한번 읽어봐야 할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재미있었던 소설. 한번 더 읽는 것도 나름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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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모양 상자 모중석 스릴러 클럽 10
조 힐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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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모던 호러계의 기대주라는 조 힐의 첫번째 장편. 조 힐이라는 작가는 대가 스티븐킹의 아들로서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처음부터 그런 사실이 부각되었던 것도 아니고, 본인도 공식적으로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모양이라, 그것이 브램스토커 상이라던가 월드판타지 상을 수상한 저자의 경력을 폄하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순수하게 실력에 의해 이뤄낸 결과라는 것.

주인공 주드 코인은 인터넷 옥션으로 유령이 붙어있다는 양복을 산다. 도착한 것은 하트모양의 검은색 상자. 상자안에는 판매자가 보내온 예의 양복이 들어있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상한 노인의 유령이 출몰해 주드의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을때는 이미 되돌릴수 없게 되어 버렸다. 노인의 유령은 주드에게 버림받은후 자살했다는 애나의 의붓 아버지로, 죽어서까지 딸의 복수를 꾀하고 있는 것 같다. 최면술을 사용하는 이 노인 유령 크래독에 의해 주드 주위의 사람들이 잇달아 사고를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재앙이 발생한다. 살수가 없다 정말! 주드는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여자친구 조지아와 함께 양복의 판매자인 안나의 언니를 만나러 플로리다로 향한다.

주인공 주드 코인은 왕년의 록스타라는 설정으로, 그의 2마리의 애완견인 앵거스와 본의 이름은 유명 락 밴드인 AC/DC의 멤버의 이름으로부터 따왔다. 그리고 본서의 제목인 하트모양상자도 역시 유명 락밴드인 니르바나의 곡명으로, 어둡고 울적한 죽음을 노래한 곡답게 저자의 선택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락과 호러는 궁합이 좋다. 많은 락밴드가 호러적인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고, 예전에는 아예 뮤지션 자신이 호러영화를 찍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의외로 락 뮤지션이 주인공인 호러 소설은 하트모양상자 이전에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락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락스피리츠가 느껴지는 네이밍이나, 시끌벅적한 사운드를 듣고 있는듯한 문체, 잔학 묘사나 공포의 연출에 있어서 신세대적인 느낌이 강한 호러다. 딘 쿤츠만큼 시종일관 내달리기만 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스티븐킹처럼 질질 끌지도 않는 적당한 템포가 느낌이 좋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크게 새로운 맛은 없는 것 같지만, 그러면서도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서 식상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예측못한 재앙앞에서도 별로 크게 두려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 될대로 되라는 식의 주인공의 태도가 초반부에 긴장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대신에 중반이후부터는 길을 떠난 주인공들에게 시시각각 덮쳐오는 재앙들이 풀스로틀의 스피드로 그려진다. 마지막 대단원까지 숨돌릴 틈 없이 내달린다. 그 질주감이 상쾌하기까지 하다.

사악한 유령 크래독의 무서운 존재감은 충분하지만, 동기 부분에서는 약간 의문이 남는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죽어서까지 저러고 있는건지. 개들의 영혼과 크래독의 대결같은 장면은 환상적인 인상이라 2010년에 나온다는 영화가 많이 기대된다. 잔인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크게 그로테스크한 연출은 없고, 마초적이고 바람둥이 성향을 가지고 있던 주인공이 애정에 눈을 뜨는 마지막 부분이 나름 감동적이기도 해서, 호러소설인데도 책을 덮고 난뒤의 기분은 깔끔한 편이다. 그동안 읽어보지도 않은 주제에,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없었다고 함부로 업신여기고 있던 것 정말로 미안해. 하트모양상자에 이전에, 이미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저자의 데뷔 단편집도 꼭 읽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 나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대작에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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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소텔 이야기 1
데이비드 로블레스키 지음, 권상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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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북클럽이 선택한 소설.

에드거 소텔의 할아버지는, 위스콘신의 시골에서, 자신만의 소신과 안목으로 골라낸 개들을 교배해서 인간을 배려하는 마음이 특출난 명품견을 만들어낸다. 에드거는 청각을 포함한 다른 부분은 모두 정상이나 태어날때부터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화로 부모님이나 개들과 의사소통을 해오고 있다. 가업을 이은 아버지와 트레이닝을 담당하는 어머니에게 사랑받으며 평화롭게 살아 왔지만, 아버지의 남동생인 클로드가 갑자기 돌아오고 나서부터 조용하던 집안의 평화가 깨지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급사하고 나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약해져버린 모자의 생활속으로 클로드가 비집고 들어온다. 에드거는 삼촌인 클로드가 아버지의 죽음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의심하지만, 그것을 폭로하려던 계획이 실패하고 비극을 낳게 된다. 에드거는 충성스러운 세마리의 개와 함께 도망자가 된다. 
 
더 이상 상세하게 설명하면 내용을 다 이야기하게 되므로 그만두지만, 70년대의 미국이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문호들의 작품이나 햄릿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책이다. 때때로 문학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부분도 있고, 마음을 빼앗길듯한 디테일한 풍경의 묘사도 있다. 특히 인간과 개와의 교감이나, 명견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는 부분을 보면 작가가 소텔가의 명품견들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준비와 구상을 해왔음을 엿볼수 있다. 이 가상의 혈통을 이어받은 개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인간과 개와의 교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만, 스토리, 문장, 감동적인 묘사등 훌륭한 부분이 많고 개의 성격 묘사 쪽이 뛰어나 감정이입하기 쉬웠던 데 반해서는, 등장 인물이 이면적이어서 그다지 매력이 느끼지 않는 다. 그리고 결말을 포함한 수많은 사건의 필연성을 완전히 납득시켜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초대형 작품이 되는 요소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면에서는 조금은 욕구불만이 남는다. 훗날 도스토예프스키, 셰익스피어, 카미유, 카프카등의 대문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위대한 책이라는 인상은 강하게 남는다.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엔터테인먼트로서는 어떨런지, 흥미로운 소텔가의 개들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스토리를 단단히 조였으면 더 좋았을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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