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걷다 노블우드 클럽 4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흉악한 전 남편을 피해, 스포츠맨으로 알려진 프랑스 살리니가의 6대공작 '라울 드 살리니'와 화촉을 올린 '루이즈 로랑'. 하지만, 그 라울에게 전 남편 '알렉산드르 로랑'으로부터의 협박장이 날아들었다. 신랑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서, 경시청 총감 앙리 방코랭의 지휘하에 파리 경시청의 경호가 시작되지만, 엄중한 감시의 눈을 피해 흉악한 범죄는 결국 일어나 버리고 만다. 방코랭과 화자인 나, 로랑을 치료한 적 있는 정신과 의사 그라펜슈타인 박사, 그리고 형사가 출입구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밀실 안에서 신랑은 머리가 절단된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과연 이 범행은 누군가로 변한 로랑의 소행인가, 아니면....?

밀실파의 거장 존 딕슨 카의 데뷔작이다. 작가의 본질은 처녀작에 나타난다고 흔히 말을 하지만, 그러한 의미로는 이 정도의 데뷔작이 없다. 밀실은 물론이고 괴기스러움이나, 역사를 모티브로 하는 취향, 그로테스크함 속에 숨어있는 유머, 그리고 희미한 로맨스까지 전부 담겨 있어서, 이후로도 일관되는 작가의 성향을 빠짐없이 피로하고 있는 모습이다.

밀실 트릭의 발상은 너무 단순하다, 라고 할까. 좋고 나쁨을 떠나서 과연 장편을 지지할 정도의 아이디어였는지는 의문이다. 이야기 안에서 언급되기도 하는 '그랑 기뇰'(19세기 말 파리에서 유행한 전율적인 연극)이라는 제목의 중편이 이 작품의 원형이라고 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장편 하나를 끌어가기에는 조금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그 대신에 이야기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 방코랭이라는 명탐정 역할의 인물의 추리, 제스쳐와 수수께끼에 쌓인 등장인물 들의 행동, 그리고 예상외의 전개를 반복하는 플롯이다. 앞서 줄거리에서는 생략 했지만, 이후에 제2의 살인이 발생하고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은 점점 더 기묘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광기가 서서히 스며 나오는 듯한 고백이 중심이 된 최종장이 인상적. 특히 마지막 한문장은, 마지막 일격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충격은 아니지만, 실로 훌륭하게 이야기의 마무리를 해주고 있다.

본격 탐정 소설로서 일급이라고 하기 보다는, 기념비적인 카의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탐정 소설의 애호가로서는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트릭의 완성도는 접어두더라도 앞으로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궁금해지게 만드는 견인력 있는 스토리가 훌륭하다. 한번도 카의 작품을 접해본 적이 없는 독자가 흥미를 가지기에는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카의 "원점"으로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콩고의 판도라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4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정창 옮김 / 들녘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는 제목의 자서전이 오래전에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은 적이 있지만, (이사람 나중에 외국으로 도망갔다 잡혀왔다.) 세상은 넓고 작가는 많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해준 책이 바로 본서 <콩고의 판도라>다. 영미권이나 이웃나라 일본 작가의 작풍에 많이 익숙해져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이야기의 발상이나 형식면에서 '아니 이렇게 독창적인 소설이 있었다니' 할 정도로 신선한 자극을 준 소설. 저자는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스페인 국적의 작가다. 결국 책을 완독하기도 전에, 저자의 전작인 "차가운 피부"를 찾아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아쉽게도 국내에 소개된 작가의 작품은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로고를 달고 나온 이 두작품이 전부인 모양이다. 

최근에 이런저런 소설을 닥치는대로 읽어재끼고 있는데, 어느 작품을 읽어도 장르의 구분은 있을지언정, 이야기 구조는 많이 정형화 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완전히 다른 설정의 이야기인데도 어디선가 본듯한, 어딘가에서 이미 써먹은 듯한 장면이나 수법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런면에서 이따금씩 접하게 되는 남미권(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저자들의 책은 비교적 참신하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아마도 그네들의 작품에 덜 익숙한 이유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콩고의 판도라>는 확실히 그런 이유를 뛰어넘는 격이 다른 독창성을 보여준다.

1914년 영국 런던, 유명작가의 대필작가로서 밥을 먹고 사는 "토머스 톰슨"은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한 변호사로부터, 자신의 의뢰인인 살인 용의자 "마커스 가비"의 경험담을 소설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별 생각없이 맡은 일이지만 막상 교도소에 갇힌 이 용의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톰슨은 이 처절하고도 놀라운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린다. 희대의 명작을 완성하고 마커스 가비의 무죄를 밝히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열정적으로 집필에 몰두한다.

현재시점과 "마커스 가비" 의 경험담이 번갈아 가면서 진행되는데 그 경험담이라는 것이 실로 온갖 종류의 장르를 뒤섞어 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 콩고의 정글속 오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린 모험소설이라고 할수 있는가 하면, 땅을 뚫고 나온 지저인들과의 사투, 지하세계로의 여정을 그린 SF 소설의 형태를 띄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종족을 초월한 사랑을 그린 판타지이자 전체적으로 이 모든 것의 진실이 무엇이냐? 하는 추리소설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그외에도 법정소설이나 등장인물의 심리적인 부분을 부각시키면 심리소설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다. 혹시 그저 이런저런 소설의 잡탕이나, 삼류 컬트 SF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건 절대적으로 오해다.

<콩고의 판도라>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뉘앙스 자체가 그렇다. 무언가가 혼재되어 있는 듯한 느낌. 오락적인 면에 치중한 작품이 아니고, 사실 이것을 장르소설에 범주에 넣어도 되는 것일까 할만큼 순문학 적인 요소도 강하다. 역자후기에 의하면 "식민지 주의, 유럽의 인종차별 주의, 센세이션을 좇는 언론, 베스트셀러 작가들, 지배 도구로서의 종교. 부패한 법정, 국가를 통한 대중선동과 조작 등 풍자를 암시하는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598쪽)고 한다. 그런 풍자로서의 요소가 강한 적절한 유머도 좋았고, 마지막에는 반전도 빼놓지 않는다. 

사람은 타인의 이야기는 신빙성 운운하면서 불신하고 어떻게든 헛점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면 어떤 허황된 것이라도 믿음과 애착을 갖게 되기 마련인가 보다.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준 책이였다.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이라는 외워지지도 않을것 같은 어려운 이름이지만, 앞으로도 이 작가의 행보는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다. (그래도 잘 안 외워지는 건 어쩔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티드 맨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비밀정보국의 직원들도 결국 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공무원이다.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해져 있는 지금, 스파이, 비밀 첩보원이라고 하면 아닌줄 알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집요하게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데, 리얼리티라는 면에서 본다면 비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하면 나올수 있는 캐릭터가 바로 '007'이 아닐까 싶다. 그에 비하면 "스파이 스릴러의 전설적인 거장 존 르 카레의 최신작!" (띠지 문구 인용) 속의 첩보원들은 냉정하지만 때로는 인간적인 고뇌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분노하면서도 이해관계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한명의 인간으로 그려진다. 혹은 철저하게 비열하거나... 그런 현실적인 모습이 이 책<원티드 맨>을 별다른 슈퍼액션 없이도 숨막히게 흥미진진한 첩보 스릴러 소설로 읽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아무리 실감나게 느껴진다고 해도 실제 첩보현장에 몸담아 본적이 없는 독자입장에서 그것을 두고 현실적이다 어쩌다 제대로 된 판단을 할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냉전시대에 실제로 정보국에 소속되어 첩보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는 작가의 작품인만큼, 독자가 느끼는 리얼함은 아마도 실제의 그것일거라 생각한다. 작품들 하나하나가 스파이의 세계를 뼛속까지 잘 알고 있는 작가가 아니라면 도저히 써낼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그에게 '스파이 스릴러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것은 아닐까. 단지 스릴러로서의 재미와 완성도 만으로 그런 평을 듣는 것은 아닐 것이다. <원티드 맨>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흡사 논픽션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소설을 읽을수 있었다. 

소설은, 독일 함부르크 국경 지방에 나타난 남루한 차림의 한 수상한 사내, 그 사내를 돌봐주게 되는 터키출신의 모자, 그를 돕고자 하는 젊은 민권 변호사 "아나벨", 그리고 사내와는 부친끼리의 모종의 협의로 연결되어 있는 은행가 "브뤼" 가,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한 미끼로 사내를 이용하려는 각국의 정보국의 움직임에 휘말려 가는 스토리로 진행된다. 여기서 "이사"라는 이름의 이 사내의 모범적인 인간성과, 그를 보호하려는 사람들의 정의감, 그리고 적어도 윤리의식은 가지고 있는 독일의 정보원들에 대비되는 것이 바로, 이번 작전을 위해 독일까지 날아온 미국 정보원들의 파렴치한 작태다.

미국 정보부원들에게 있어서, 최종적인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라면 이 사내가 정말로 위험인물인지, 유죄인지 무죄인지의 여부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 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차후에도 그의 인권같은 것은 어디에서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작전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명목을 가져다 붙일수 있을 만큼 진정으로 테러를 근절하고자 하는 행위인가 하면, 그게 또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테러를 교묘하게 조장하는 듯한 인상마저도 풍긴다. 

아마도 저자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런 미국 정보부의 행태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향후의 활동을 위해서라도 정보원들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협력자인 독일 정보부의 입장조차도 고려치 않는, 마치 하청업자를 대하는 듯한 미국 정보원들의 안하무인적인 태도가 인상에 남는다. '한건 올렸으니까 가서 맥주라도 한잔 하자' 는 대사가 나올것 같은 분위기다. 생각처럼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작품은 아닐지 몰라도, 근래에 보기 드물게 디테일하고 흡입력 있는 소설이었다. 거기에 미국 주도하의 '테러와의 전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까지... 여러모로 거장의 힘을 느낄수 있는 작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즘과 올로지 - 세상에 대한 인간의 모든 생각
아서 골드워그 지음, 이경아 옮김, 남경태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이런 책 있었으면 좋겠다'하고 정말 간절히 바래오던 책이다. 서점에 가보면 백과사전, 언어사전, 무슨무슨 사전, 심지어는 로봇 대백과사전까지 온갖 잡다한 사전들이 있는데, 정작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런 책은 없더라.

무슨 내용이냐 하면, 아니 딱히 내용일 것 까지는 없고 <이즘과 올로지>라는 제목처럼 ~주의, ~론, ~학이라는 말로 뭉뜽그려서 이야기하는 개념들에 대한 설명집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전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딱딱한 사전의 이미지와 이책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것 같다. 그래서 설명집.

신문을 뒤적거리던, 인터넷 서핑을 즐기던, 아니면 소설을 읽을때도 그렇고, 택일신, 초현실주의, 칠리아, 슈펭글러주의, 스푸너리, 작가주의 등등의 끝말잇기를 하는 것 같은 말들이 쉴세없이 등장하는데, 당시에는 문맥상 이해한줄 알고 넘어가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면 그 단어들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설령 알았던 적이 한번쯤 있었던 단어라고 해도 그런적이 있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데 뭐 모르는것과 별반 다를게 없다.
 
잠깐 이 책의 '저자의 말'에서 예시로 들고 있는 문장을 소개해본다.

"보스니아는 강력한 민족주의, 문화적 쇼비니즘과 실지회복주의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과 체첸과 중동에서 온 무자헤딘이 발칸 반도에 전파한 이슬람교의 종파인 와하비즘까지 세력을 키우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사라예보 사람들에게 친숙했던 다문화주의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언뜻 보기에는 그리 낯설지 않은 문장인 듯도 한데, 다 이해한 것 같으면서도 하나하나 살펴보면 솔직히 말해서 '쇼비니즘'이나 '실지회복주의'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고, '와하비즘'은 자주 들어서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든다는 정도. 다행이 이 책에 실린 "방귀기호증" 처럼 마치 웃기려고 막 지어낸 것 같은 말은 만나본 적이 없지만, 혹시 만나게 되었다면 상당히 혼란스러웠을 것이 분명하다. 

이 책에서는 정치와 역사, 철학과 예술, 과학, 경제, 종교, 성도착 외 로 분리해서 각 분야에서 쓰이고 있는 ~이즘과 ~올로지에 대한 뜻과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사전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 것은, 저자의 설명이 여느 사전이나 용어집처럼 무미건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읽는 재미가 있는 사전'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개념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에 위트있는 예시가 따라붙는다거나 저자의 다소 엉뚱한 견해가 들어가기도 한다. 웃기는 것이 목적인 책도 아니고 과도하게 주관적이거나 해서 용어집 본래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도 않고 딱 알맞을 정도까지만 자유분방한, 그런 재미있는 사전이다.
 
수록된 용어 가운데는 대한민국의 문선명 목사가 창설한 '통일교'에 대한 설명도 있는데 통일교 공식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는 '구름 떼 같은 증인들' 이라는 문서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2001년 크리스마스 정오에 천국에서 세미나가 개최되었는데 예수, 공자, 무함마드, 부처가 마르틴 루터나 성 베드로 같은 유명인들을 대동하고 참석했다고 한다. 게다가 깜짝 손님도 있었으니 그 면모를 보면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 덩샤오핑... 이 날 세미나에서 이들은 문선명 목사를 구원자이자 메시아로 선포했고, 하느님의 간략한 감사장 수여식까지 있었다고 한다... 통일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그 어떤 설명보다도 효과적인 예시가 아닐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트레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9
기예르모 델 토로 외 지음, 조영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옛날 유럽에서는 사람의 영혼이 심장에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뇌의 기능에 대해서 모르던 시절이기 때문에 특정한 병의 경우에는 머리와 아무 상관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악한 기운이나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처방을 하기도 했다고 하니, 시술을 받은 환자는 십중팔구 사망이거나, 나머지 한두명의 경우도 치명적인 뇌장애를 입게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무지도 이런 무지가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불과 이삼십여년전 MRI같은 첨단 장비가 없던 시절에는 군대에서 허리디스크로 통증을 호소하다 정신병이나 꾀병 취급을 받기도 했다. 고래로부터 진리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과학과 의술의 발달과 함께 위험하고 잘못된 상식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런데 여기, 오랫동안 전세계 누구도 진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치명적인 정보의 오류를 밝혀낸, 또 하나의 획기적인 발견이 담긴 책이 있다. 제목은 <스트레인>. 저자는 '판의 미로', '헬보이' 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와 촉망받는 스릴러 작가" 척 호건". 이 작품 <스트레인>은 3부작으로 예정된 "뱀파이어" 시리즈 중 그 대망의 첫번째 이야기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뱀파이어 대해 알고 있었던 기본적인 지식들중 일부는 아주 터무니 없는 것들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모두가 잘못된 지식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 운나쁘게 뱀파이어와 맞닥뜨렸을때 가장 기본적이고 손쉬운 대응방법으로 손꼽히고 있는 몇몇 방법들- 예를 들자면 흡혈귀에게 십자가를 들이댄다거나 마늘냄새를 맡게 한다거나 하는- 은 아무런 효과도 없는 거의 자살행위에 가까운 시도다. 이 책에서 두명의 공저자는 그 어떤 위대한 의사나 과학자들도 밝혀내지 못한 뱀파이어의 놀라운 생체 시스템과, 하나의 개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짧은 시간안에 기하 급수적인 번식률을 보일 수 있는지 그 엄청난 진실을 밝혀내면서, 선량한 사람들이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을 막고,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수 있는 뱀파이어 퇴치법을 제시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출발한 여객기가 뉴욕 공항에 착륙한 뒤 돌연 교신이 끊기고 모든 전원이 차단된다. 멀쩡하던 비행기가 순식간에 유령 비행기로 돌변하는 순간. 비행기 안의 승객들은 이미 모두 사망한 상태. 그러나 사망자들의 얼굴에는 그 어떤 사고나 공포의 징후도 남아있지 않다. 미 연방 질병 관리 센터의 에프와 로라는 비행기 내부를 조사하던 중 미세하게 숨이 붙어있는 생존자와 정체를 알 수 없는 흙이 들어있는 커다란 관을 발견한다.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현상으로 추측하고 있었지만 생존자 포함 탐승객들의 몸에서 이상한 정황들이 포착되는 가운데 관리중이던 시체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

곧이어 뉴욕시 여기저기에 출몰하는 좀비화된 시체들. 대응방법이 없는 가운데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 혼란스러운 에프와 노라의 앞에 한 수상한 노인이 나타난다. 노인은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하며 반신반의하는 에프를 집요하게 설득하려 한다. 이 노인의 정체는? 노인이 말하는 이 사건의 배후는 진실인가?

아마존 독자 리뷰 중에 있는 -'블레이드'와 'CSI'가 만났다- 는 표현 처럼 <스트레인>은 21세기형 뱀파이어 스릴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뱀파이어라는 소재자체는 식상하다면 식상한 것이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이 뱀파이어의 고정적인 이미지를 거의 그대로 차용하고 있었다면 이 소설에서는 변이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개념으로 흡혈귀를 바라본다.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리면 왜 뱀파이어가 되는지, 피해자의 갑작스런 신체구조의 변화가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 아니 그전에 왜 흡혈욕구를 일으키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과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설은 일찌기 없었다.(없었다기 보다는 본적이 없다. 어쩌면 그런 시도가 이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유리병 속에 담긴 심장의 반응은 정말 '기예르모 델 토로' 다운 충격적인 상상력이었다.

새로운 접근법뿐만 아니라, 전설과, 과거의 이야기도 적절하게 삽입되서 뱀파이어라는 소재 자체가 가진 매력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미래형의 완전히 새로운 뱀파이어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잘 조화된 퓨전요리라고나 할까. 흥미로운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박진감 넘치는 액션신까지 포함해서 스릴러로서도 매우 완성도가 높다. 3부작중 첫번째 이야기인 만큼 마지막은 여운이 남는 결말. 이정도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는데,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과연 또 어떤 기발한 상상력이 동원될 것인지... 지금은 부디 그 기다림이 너무 길어지지 않기를, 그것만 바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