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티드 맨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비밀정보국의 직원들도 결국 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공무원이다.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해져 있는 지금, 스파이, 비밀 첩보원이라고 하면 아닌줄 알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집요하게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데, 리얼리티라는 면에서 본다면 비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하면 나올수 있는 캐릭터가 바로 '007'이 아닐까 싶다. 그에 비하면 "스파이 스릴러의 전설적인 거장 존 르 카레의 최신작!" (띠지 문구 인용) 속의 첩보원들은 냉정하지만 때로는 인간적인 고뇌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분노하면서도 이해관계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한명의 인간으로 그려진다. 혹은 철저하게 비열하거나... 그런 현실적인 모습이 이 책<원티드 맨>을 별다른 슈퍼액션 없이도 숨막히게 흥미진진한 첩보 스릴러 소설로 읽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아무리 실감나게 느껴진다고 해도 실제 첩보현장에 몸담아 본적이 없는 독자입장에서 그것을 두고 현실적이다 어쩌다 제대로 된 판단을 할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냉전시대에 실제로 정보국에 소속되어 첩보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는 작가의 작품인만큼, 독자가 느끼는 리얼함은 아마도 실제의 그것일거라 생각한다. 작품들 하나하나가 스파이의 세계를 뼛속까지 잘 알고 있는 작가가 아니라면 도저히 써낼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그에게 '스파이 스릴러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것은 아닐까. 단지 스릴러로서의 재미와 완성도 만으로 그런 평을 듣는 것은 아닐 것이다. <원티드 맨>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흡사 논픽션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소설을 읽을수 있었다. 

소설은, 독일 함부르크 국경 지방에 나타난 남루한 차림의 한 수상한 사내, 그 사내를 돌봐주게 되는 터키출신의 모자, 그를 돕고자 하는 젊은 민권 변호사 "아나벨", 그리고 사내와는 부친끼리의 모종의 협의로 연결되어 있는 은행가 "브뤼" 가,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한 미끼로 사내를 이용하려는 각국의 정보국의 움직임에 휘말려 가는 스토리로 진행된다. 여기서 "이사"라는 이름의 이 사내의 모범적인 인간성과, 그를 보호하려는 사람들의 정의감, 그리고 적어도 윤리의식은 가지고 있는 독일의 정보원들에 대비되는 것이 바로, 이번 작전을 위해 독일까지 날아온 미국 정보원들의 파렴치한 작태다.

미국 정보부원들에게 있어서, 최종적인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라면 이 사내가 정말로 위험인물인지, 유죄인지 무죄인지의 여부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 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차후에도 그의 인권같은 것은 어디에서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작전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명목을 가져다 붙일수 있을 만큼 진정으로 테러를 근절하고자 하는 행위인가 하면, 그게 또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테러를 교묘하게 조장하는 듯한 인상마저도 풍긴다. 

아마도 저자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런 미국 정보부의 행태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향후의 활동을 위해서라도 정보원들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협력자인 독일 정보부의 입장조차도 고려치 않는, 마치 하청업자를 대하는 듯한 미국 정보원들의 안하무인적인 태도가 인상에 남는다. '한건 올렸으니까 가서 맥주라도 한잔 하자' 는 대사가 나올것 같은 분위기다. 생각처럼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작품은 아닐지 몰라도, 근래에 보기 드물게 디테일하고 흡입력 있는 소설이었다. 거기에 미국 주도하의 '테러와의 전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까지... 여러모로 거장의 힘을 느낄수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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