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의 판도라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4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정창 옮김 / 들녘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는 제목의 자서전이 오래전에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은 적이 있지만, (이사람 나중에 외국으로 도망갔다 잡혀왔다.) 세상은 넓고 작가는 많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해준 책이 바로 본서 <콩고의 판도라>다. 영미권이나 이웃나라 일본 작가의 작풍에 많이 익숙해져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이야기의 발상이나 형식면에서 '아니 이렇게 독창적인 소설이 있었다니' 할 정도로 신선한 자극을 준 소설. 저자는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스페인 국적의 작가다. 결국 책을 완독하기도 전에, 저자의 전작인 "차가운 피부"를 찾아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아쉽게도 국내에 소개된 작가의 작품은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로고를 달고 나온 이 두작품이 전부인 모양이다. 

최근에 이런저런 소설을 닥치는대로 읽어재끼고 있는데, 어느 작품을 읽어도 장르의 구분은 있을지언정, 이야기 구조는 많이 정형화 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완전히 다른 설정의 이야기인데도 어디선가 본듯한, 어딘가에서 이미 써먹은 듯한 장면이나 수법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런면에서 이따금씩 접하게 되는 남미권(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저자들의 책은 비교적 참신하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아마도 그네들의 작품에 덜 익숙한 이유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콩고의 판도라>는 확실히 그런 이유를 뛰어넘는 격이 다른 독창성을 보여준다.

1914년 영국 런던, 유명작가의 대필작가로서 밥을 먹고 사는 "토머스 톰슨"은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한 변호사로부터, 자신의 의뢰인인 살인 용의자 "마커스 가비"의 경험담을 소설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별 생각없이 맡은 일이지만 막상 교도소에 갇힌 이 용의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톰슨은 이 처절하고도 놀라운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린다. 희대의 명작을 완성하고 마커스 가비의 무죄를 밝히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열정적으로 집필에 몰두한다.

현재시점과 "마커스 가비" 의 경험담이 번갈아 가면서 진행되는데 그 경험담이라는 것이 실로 온갖 종류의 장르를 뒤섞어 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 콩고의 정글속 오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린 모험소설이라고 할수 있는가 하면, 땅을 뚫고 나온 지저인들과의 사투, 지하세계로의 여정을 그린 SF 소설의 형태를 띄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종족을 초월한 사랑을 그린 판타지이자 전체적으로 이 모든 것의 진실이 무엇이냐? 하는 추리소설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그외에도 법정소설이나 등장인물의 심리적인 부분을 부각시키면 심리소설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다. 혹시 그저 이런저런 소설의 잡탕이나, 삼류 컬트 SF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건 절대적으로 오해다.

<콩고의 판도라>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뉘앙스 자체가 그렇다. 무언가가 혼재되어 있는 듯한 느낌. 오락적인 면에 치중한 작품이 아니고, 사실 이것을 장르소설에 범주에 넣어도 되는 것일까 할만큼 순문학 적인 요소도 강하다. 역자후기에 의하면 "식민지 주의, 유럽의 인종차별 주의, 센세이션을 좇는 언론, 베스트셀러 작가들, 지배 도구로서의 종교. 부패한 법정, 국가를 통한 대중선동과 조작 등 풍자를 암시하는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598쪽)고 한다. 그런 풍자로서의 요소가 강한 적절한 유머도 좋았고, 마지막에는 반전도 빼놓지 않는다. 

사람은 타인의 이야기는 신빙성 운운하면서 불신하고 어떻게든 헛점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면 어떤 허황된 것이라도 믿음과 애착을 갖게 되기 마련인가 보다.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준 책이였다.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이라는 외워지지도 않을것 같은 어려운 이름이지만, 앞으로도 이 작가의 행보는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다. (그래도 잘 안 외워지는 건 어쩔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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