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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평점 :
몸 만년의 장편 소설입니다. 그의 작품치고는 드물게「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구하고 있는 듯한 인생관의 총결산같은 소설입니다.
소설은, 몸 자신이 화자가 되어서 그가 사교계에서 알게된 엘리엇이라는 시카고 출신의 사업가와, 그 일가, 조카인 이사벨이라는 아름다운 아가씨에게서 비롯되는 다양한 사건들을 시니컬한 시점에서 이야기 해 나갑니다. 그 중에서도 젊은 시절 이사벨의 연인이었던 래리라는 청년과 몸의 대화는, 서두에서 인용하고 있는 우파니샤드의 문장이 상징하는 것처럼, 이야기 전체에 걸쳐 서양과 인도 철학에서의 생에 대한 비교, 철학적인 것이어서, 몸이 노년에 얼마나 철학적인 사색을 하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는 작품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인도 철학을 이야기하는 래리라는 인물은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로, 이사벨과의 약혼이 깨어진 후, 세계를 돌아 다니면서 히피같은 생활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인도의 산속에서 요가 수업을 하고 파리로 돌아온다는 설정입니다. 그 인물상으로 말할것 같으면 매우 쿨하고, 그 지적 편력도 심리학에서 신비학까지 다양합니다. 몸의 지식의 방대함을 엿볼수 있는 것입니다만, 이 래리라는 이상한 청년과 몸의 대화는 특히 영적 지식쪽으로 향하는 경향이 현저합니다. 뭐 그렇다고 그런 어려운 이야기만으로 꽉꽉 채워져있는 내용이 아니라,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상류 사교계에서 일어나는 시시한 사건들이나 애정담이어서 즐길만한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정말이지,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는 자신의 품위 없음을 감추기 위해서 거들먹거리거나 타인에게 상처 입히는 것에 지각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습니다. 이 이야기 안에서도 그러한 자들의 메마른 삶, 자기중심적인 서양의 인간 관계를 보여주면서 그와 비교되는 동양의 정신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의 특유의 감각으로, 그런 모습을 깍아 내리거나 비아냥 거리는 것을 즐기는 듯한 여유도 엿볼수 있습니다만, 그만큼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만큼, 행간에 숨겨져 있는 인간관계의 섬뜩함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 부분이 몸의 진면목이군요.
이러한 지난 시대의 소설을 읽고 있자면, 오늘날에는 그야말로 야단스러운 일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뭐라 잘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결혼후에도 집요하게 과거의 연인의 행방를 쫓는 이사벨이 억누르고 있는 정념에 비하면, 요즈음에는 모두 너무 노련하고 약삭빨라져서 불륜따위는 경박한 것도 뭣도 아닌 흔하디 흔한 일상의 한부분이 되어 버린 듯 합니다. 그런 허무함으로 가득찬 뒷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