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빛>을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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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빛 ㅣ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뭔가 대단히 어두운 분위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구원받을 방법이 없고 불쌍하고 잔혹하고 불행하고... 성장소설의 성격이 강하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나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 다른 문체에 미우라 시온 소설의 스탠스의 넓이를 느낀다.
어느날 밤, 도쿄 근교의 인적 드문 작은 섬인 미하마섬에 쓰나미가 덮쳐와 모든 것을 쓸고 가 버린다. 살아남은 사람은 연인사이인 중학교 2학년의 동급생 "노부유키"와 "미카", 노부유키를 동경하는 나이 어린 "다스쿠", 그리고 다스쿠의 아버지, 등대지기 노인과 관광객으로 섬을 찾은 중년의 카메라맨등. 미카를 지키기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노부유키, 그 증거 인멸을 도모하는 다스쿠. 가족을 잃고 섬을 떠나 각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지 20년이 지나, 이 세 명의 운명이 다시 하나로 얽힌다.
2장에서 그려지는 노부유키와 그의 아내 나미코의 삐걱거리는 모습은 제2의 비극을 예고한다. 섬에 살던 중학생때도, 20년 후 어른이 되어서 결혼하고 가정을 가진 지금도, 미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노부유키. 노부유키는 시청에 근무하며 아내와 딸과 함께 평범한 가정을 꾸려 가고 있었다. 진심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아내와 딸을 소중히 생각하려는 마음은 있다. 그렇지만 그런 그의 행동에 애정은 없다. 노부유키가 사랑하는 것은 지금도 오직 미카 한사람 뿐이었다.
노부유키의 안에 감추어져 있는 잔학성과, 상처입은 과거를 떨쳐내버리려는 듯 딸의 교육에 열을 올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프레스공을 만나러 싸구려 아파트를 찾아가곤 하는 나미코의 행동의 대비가 절묘. 가정과 어린 딸에게 충실하려 하면서도,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위험한 관계를 계속하는 나미코.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갈등하는 평범한 주부의 모습이 으스스할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동안의 미우라 시온의 이미지와는 정말이지 정반대의 이야기. 문장 자체는 담담해서 단번에 읽을 수 있지만, 오싹하는 장면이 몇번이나 등장한다. 애증이라던가 하는 흔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인간의 추악함, 연약함, 무서움을 여과없이 직설적으로 그려낸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 바로 미우라 시온이라는 작가의 역량이라고 해야 할까. 미우라 시온은 애정, 불륜, 관능이 넘쳐나는 진짜 질퍽질퍽한 어른만의 세계를 그려내도 대단한 걸작이 나오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피엔드는 아니다. 읽고 난 후의 무언가가 메말라 버린 듯한 허무감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