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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
론 커리 주니어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하는 일들이 정해진 운명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으로 기억한다. 새벽에 문득 잠이 깨서 까만 천장을 마주 보고 있는데 돌연 '지금 이 순간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다면?' 하는 의문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때부터 한없이 혼자인것 같은 외로움과 공포가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폭발하듯이 울음을 터뜨려 놓고는 놀라서 달려온 가족들에게 설명할 재간이 없어 하염없이 울어재끼기만 한 적이 있다. 누구라도 한번쯤은 그와 같은 고뇌를 해 본 경험이 있다는 것을 보면 종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이 방대한 우주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본성이 아닌가 싶다. 정말로 그 어린 아이가 아무런 사전정보도 없이 갑자기 떠올린 의문이었다.
올해 서른네 살의 젊은 작가인 론 커리가 단편집<신은 죽었다>에 이어 두번 째로 선보인 이 소설<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은 그런 "세상의 종말"에 대한 고찰이다. 36년 뒤 거대한 혜성과 충돌해 지구가 멸망할 것을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던 "존 티보도 주니어"의 인생은 끊임없는 존재론적 질문, 그 슬픈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과 체념의 반복이다. 주니어는 엄마의 뱃속에서 꿈틀거릴 무렵부터 어떤 특별한 존재로부터 이 비극의 예언을 들으면서 자라왔다. 그 미지의 존재들의 끊임없는 속삭임 덕분에 주니어는 순간순간 번뜩임으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아는 예지능력을 가지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티보도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티보도의 끊임없는 고뇌는 독자가 생각하고 있을 그것과 다름아니다.
필연적인 인류의 최후를 그리고 있지만, 그러나 전혀 구제가 없는 여타 디스토피아 소설과는 조금 다르다. 인간의 삶과 죽음, 우리가 숨쉬고 서있는 지구 뿐만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있어서 우리가 존재하는 의미를 생각해 볼 시간을 부여해준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 한다. 그 희망의 시작과 끝에는 사랑이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랑, 가족과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을 가슴 뭉클하게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 최후의 순간 앞에서 시간을 되돌려 또다른 선택의 길을 보여주는 것은 마치 이래도 종말이 필사적으로 회피해야 할 무엇이냐고 묻는 것만 같다. 또 한번의 기회를 부여받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의 시험에 들고 있는것 같은 착각마저 느껴진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해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이 소설은 이것 자체로 한권의 철학서일지도 모른다. 모든 자연에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스피노자의 철학이나 범신론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죽음은 반드시 찾아오는 숙명이자 모든 것의 완전한 끝이라고 믿는 사람들 조차 누군가의 죽음을 보면서 생전에 좀 더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것은 왜일까. 죽음이 이미 존재의 소멸을 의미할 뿐이라면 무엇을 후회하고 있는 것일까. 왠지 해묵은 물음에 대한 명백한 해답이 보여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