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리투스 1 - 시간과 모래의 미궁
민소영 지음 / 제우미디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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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공화국일 때는 왕이 되려 했다는 게 대역죄가 될 수는 있어도, 왕이 되었을 때는 공화국을 원하는 자들의 목에 반역죄가 걸리는 법이야."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문화나 생활습관만 다른게 아니라, 국가, 지역별로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하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판타지 소설 안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이 소설 역시 그 세계관의 중심에는 서로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몇개인가의 국가로 이루어진 가상의 대륙이  놓여 있다. 대륙은 크게, 탐욕스러운 정복왕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는 제국과 그와는 반대로 공화정을 채택하고 있는 공화국을 그 대립의 축으로 해서 또 하나의 왕국이 존립하고 있는 형국이며, 그밖의 짜잘한 세력들이 현실에서와 같이 서로 대립하거나 우호세력 혹은 중립세력으로서 상황에 따라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국가간의 대립, 이념과 체제의 대립이라는 큰 틀 아래서 각국의 다양한 문화와 각계각층의 개개인들이 교류하며 만들어가는 이야기들이 광범위하게 전개된다. 권력과의 대립, 해전, 악령과 미궁이라는 불가사의한 현상과의 조우, 가족사, 개인사, 가슴아픈 사랑이야기 등등.

망망대해 위에 떠있는 한척의 범선이 그려진 표지는 <스피리투스>라는 제목의 어감과 더불어서 한편의 해양모험소설을 연상하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펼치면 제일먼저 바다위에서의 시추에이션이 눈에 들어온다. "페노인 왕국"의 용병 "불리반"이 이끄는 함선 "페페치치 호"가 제국의 깃발을 휘날리며 바다위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우아하고 아름다운 함선 "시모네"를 나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배에는 선원이 탑승하고 있지 않다. 귀족티가 나는 앳된 소년이 한명 타고 있을 뿐. 페페치치호의 선웓들은 모두 본선으로 돌아가고, 포로인 소년과 함께 인양되는 시모네에 홀로 남아 잠을 청하던 왕국의 해군 장교 "카힐"은 잠에서 깨자마자 황당한 꼴을 당한다. 어느새 시모네는 본선과 떨여져 항해하고 있고, 오히려 자신이 포로 신세가 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배가 사람처럼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흡사 전격 Z작전의 키트다. 시모네는 자의로 움직이는 배였던 것이다.

이 시모네의 존재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바다의 미궁을 그리는 1장 이후에 무대는 곧 바다에서 육지로 전환하지만, 리호크라는 인물을 동경하는, 소녀와 같은 감성의 소유자(소유선)인 시모네의 존재가 있어서 바다에서의 장면이 좀 더 계속되어 주길 바랬다. 외모는 소년이지만 인간을 초월한 기이한 매력을 풍기는 "나단"과 그의 수하인 "리호크"와 "아르마냑", 그리고 주인공인 "카힐"과 우유부단한 천재화가이자 카힐의 아버지인 "체레반", 체레반이 데리고 나타난 소녀화가 "비앙카", 카힐의 배다른 형제 "쟝"과 쟝의 연인 "체칠리아"등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고 있던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삶이 한 데 엮여, 갑자기 지하감옥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축으로 해서 새로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궁안에서는 어김없이 어디선가 스멀스멀 나타나는 악령들. 사람들을 어디론가 끌고간다는 이 악령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악령이 말하는 "숨겨진 자"란? 이러한 설정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저마다의 직업과 사회적 위치, 성격과 특징등 캐릭터의 개성이 제대로 서있다. 너무 비슷한 인물이 없어서 오히려 탈이랄까. 그 중에서도, 사람으로 치자면 미녀인 말하는 배 시모네, 그림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는 소녀 비앙카, 안타까운 사랑의 슬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체칠리아등의 여성 캐릭터들이 특히 마음에 든다.

국산판타지와는 오랫동안 격조해 온 탓에, "민소영" 작가의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으면서도 정작 지금까지 읽어본 적은 없었다. 민소영표 판타지는 <스피리투스>가 처음인 셈인데, 첫인상이 매우 좋다. 1권인 관계로 아직 시작에 불과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 시작이 좋다. 총 3권이 완결이라고 한다. 3권으로 끝나는 이야기라면 대단히 밀도높은 이야기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필요한 모든 정보와 수수께끼를 이번 1권에서 모두 쏟아내고 시작하겠다는 듯이 상당히 많은 화제들이 숨가쁘게 이어진다. 대륙의 역사와 현재 돌아가는 사정, 주인공 카힐을 포함해서 나단과 그 심복들의 정체와 배경, 각각의 등장인물이 안고 있는 사연과 말하는 배의 존재, 이 세계에서의 마법이란? 악령이란? 마치 문제집을 펼쳐든 것처럼 수많은 복선과 의문점들로 빽빽하게 차있다. 아마도 2권이나 3권즈음부터는 해답지을 읽는 기분으로 묵은 의문점을 털어내며 속이 뻥 뚫어지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현재 2권에 대한 기대감은 극도로 높아져 있는 상태. 기다려야 하는 건 조금 싫지만 어차피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 아닌가. 월척을 낚으려면 기다림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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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종족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강수정 옮김 / 예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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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롤 오츠"는 노벨문학상 후보를 발표할 때면 항상 언급되는 이름이다. 엄청난 다작을 하는 작가이기도 하고, 순문학에서부터 호러, 심리, 미스터리, 청소년 소설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런 반면에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은 몇편 되지 않아서 많은 작품을 읽어볼 수 없었던 것은 조금 아쉽기도 하고, 번역된 소설은 모두 찾아 읽어보았음에도 아직 내가 생각하는 "조이스 캐롤 오츠"는 이런 작가다라고 단정지어 말하기가 어려울 만큼 작품마다 전부 다른 맛이 나는 것이 또 인상에 남는다. 그런 "조이스 오츠 캐롤"의 이 <여자라는 종족>은 제목에서 풍기는 그 강렬한 뉘앙스처럼 여자들의 무섭고도 섬뜩한 심리를 그린 9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작품집이다. 한없이 호러에 가깝다고 할까 심리 호러소설이라는 느낌으로 한편한편 읽어내려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아홉편의 단편들의 주인공은 모두 여성이다. 책소개에 의하면 현대사회의 병들고 일그러진 단면과 그 속에서 여성이 교묘하게 억압받고 희생되는 얼룩진 현실을 보여주며, 그리고 그 여성이 그 현실을 탈피하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과정과 충격적인 결말을 그린다고 한다. 따라서 책을 읽기 전에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딜레마나 막다른 상황에서의 불안한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읽어 본 결과 이것들을 "여성들만의 이야기, 여자의 내면에 감추어진 무서움"이라는 식으로만 연결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주인공들의 심리가 반드시 여자들만의 것이라고는 할 수없기 때문이다. 아홉편의 단편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선택이나 그 결말은 하나같이 극단적이고 비정상적인 것들 뿐이다. 이런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심리가 보편적인 여자들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이야기하기 힘들고, "여자의 무서움"이 아닌, "무서운 여자들"이라 받아들였을 때에야 비로소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

철없던 십대 소녀 시절 신입 보안관 대리에게 꾀임을 당해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했던 여자와 이웃마을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사건, 남편이 없는 밤마다 걸려오는 의문의 전화,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 딸을 성매매에 이용해 먹고 사는 아버지,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 전처를 몰아내고 부잣집 귀부인이 된 허영심 많은 여자와 "충격적인 결말", 애딸린 여자를 스토킹하는 정신병자, 여자를 위해 개를 때려죽이고 청부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 잔혹하게 사람이 죽어나가는 충격적인 결말의 연속이다. 겉보기에는 멀쩡하나(혹은 겉보기에도 수상한), 그 속은 종잡을 수 없는 싸이코패스들이 남녀불문하고 우글우글 나온다. 이제는 이런것에 많이 익숙해져서 충격은 없다고 해도 좋지만, 예전에 미국 어느 리얼 다큐멘터리 속에서 총기 난동사건을 벌이다 사살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울해했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충분히 당혹스러워 하면서 읽었을 만한 내용이다. 더더군다나 문장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대가라고 할만한 작가의 글이 아닌가,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없음에도 읽는내내 보이지 않는 검은 연기가 교묘하게 숨어서 뒤를 따라다니는 느낌이었다. 등장인물의 심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대상이 무엇인지 좀처럼 종잡을 수 없게 만들어 놓고, 마지막 순간 그 심리의 방향이 보여올때의 섬뜩함, 그 덕분에 책은 결코 편하게 읽히지만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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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잘린 뚱보아빠>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마흔에 잘린 뚱보 아빠
나이절 마쉬 지음, 안시열 옮김 / 반디출판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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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파탄에 이르고, 아이들에게는 미움을 받고, 우리는 결국 스트레스로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세상을 파괴한다."

정년퇴직 후에 남자들의 모습이 쪼그라드는 경우가 많다. 사회생활을 할때는 그렇게 당당하고 대범하던 사람이 집안에 들어앉아서는 한없이 쪼잔해져서 이제는 나이들어 버린 아내를 들들 볶는다는 것이다. 애꿎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쉼없이 살림살이를 트집잡으며 잔소리꾼 시어머니 노릇을 자처한다. 죄없는 아내만 황혼무렵이 되어서 다시 시집살이를 하는 셈이다. 멀쩡하던 사람이 정년퇴직을 계기로 이렇게 돌변하는 것은 왜일까?

이 책의 저자가 최근에 읽었다는 <사나이>라는 제목의 책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다. "거의 모든 남자들에게 삶이란 없다. 그들은 단지 삶이 있는 척 할 뿐이다. 남자들은 외롭고 겁먹고 비참하고 강박적일만큼 경쟁적이다. 이러한 비극적 상태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 주된 이유중 하나는 영혼 없는 직업과 경력의 노예가 되어 그것들이 시키는대로 은퇴할 때까지 참된 삶을 사는 것을 유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퇴의 날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늦는다. 일하는 동안은 생각할 시간도 없이 너무 바쁜 나머지 텅빈 인생을 살고 결코 풍성하고 지속적인 내적 삶을 발전시키지 못한다. 남자에게 있어서 일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분은 정체되어 있거나, 혹은 이미 퇴화되어 버린 상태다. 새로운 자리에서 남자는 더이상 노련한 상사가 아니라, 자칫 잘못하다가는 부적응자가 되어버리는 신출내기 신세로 전락해 버린다.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삶의 균형이 무너진 채로 살아온 탓이다.

저자는 한 회사의 호주 지사의 경영자였다가 잠시 회사를 물러나 있을 기회를 얻는다. 마흔이 되어 모처럼 일년동안의 휴식기간을 갖게 된다. 처음에는 경제적인 부분에서 걱정이 앞서는 아내와 의견충돌도 있지만, 저자의 말에 의하면 비열한 여편네도 아니었고 콧수염도 없는 아내의 이해를 구해 결국 집안에 들어앉는다. 쉬는 동안 그동안 소홀히 했던 가정생활에 충실하자 마음먹지만, 막상 쉬고 보니 가사와 네명의 아이를 돌봐야 하는 육아는 모든것이 당혹스럽고 서툴기만 하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의 길은 요원해 보이기만 하다.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고 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간호사들에게 돌아가면서 항문을 내맡기는 모멸감을 견딘 끝에 치루를 치료하고, 알콜중독 증세를 호전시키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살을 빼기 위해 시작한 수영실력은 하루하루 늘어만 간다. 친척들의 결혼식 참석을 겸해 예전같으면 엄두도 못냈을 장기 유럽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하나씩 하고 싶었던 일들을 찾아 성취해 나간다. 무엇보다도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다는 두 아들과 쌍둥이 딸들과의 관계개선이 가장 큰 성과다. 더이상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아이들도 이제는 아빠를 피하지 않는다. 아이들과의 관계에 어색해 하던 중년의 남자가 일을 벗어나서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되어 가는 유쾌한 경험담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이런 자유로운 삶에 있어서 경제적인 여건은 역시 족쇄가 된다. 보모를 자르고, 지금의 큰집은 좀 더 작은 곳으로 옮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데다 앞날은 더욱 암담하기만 하다. 결국 다시 사회로 복귀 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면 일년여 동안 익숙해졌던 삶의 즐거움들 특히 수영!을 포함해서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다시 소리지르기 시작하고 예전의 어색한 아빠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저자는 이제는 모든 것을 즐기려 한다.

와인젤리를 살 때, 가장 맛있는 빨간색과 검은색의 와인젤리를 먹기위해서는 초록 주황 노랑등의 다른 잡다한 색도 같이 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우연히도 빨강과 검은 와인젤리만 파는 것을 발견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열일곱 패킷이나 산 그것은 생각처럼 맛있게 넘어가지 않는다. 빨갛고 검은 와인 젤리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다른색이 있기 때문이였던 것이다! 꿈꾸던 것들이 굉장하지 않을수도 있다. 올바른 태도를 가지면 나쁜 것들이 늘 그렇게 나쁘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들이 실은 우리들이 좋은 부분을 즐길수 있는 이유가 되어준다. 결론은, 남자들이여 참된 삶을 유보하지 말고 매사에 충실하자. 삶의 균형을 잃지말자... 쯤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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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 라이프
윌리 블로틴 지음, 신선해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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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 그것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람들을 덮친다. 이 사실이 바로 이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다. 불운은 언제든 준비가 돼 있고, 언제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정말 최악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 불운이라는 놈이 언제 나를 덮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네바다 주 리노의 모텔을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는 플레니건 형제에게 그 날 아침 그 불운이라는 놈은 기어코 찾아왔다. 형인 "제리 리"가 운전하고 있는 자동차 앞으로 한 소년이 탄 자전거가 뛰어든 것이다. 소년은 즉사. 제리 리는 소년의 사체를 차에 싣고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동생 "프랭크"의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차 뒷좌석에서 꼬마 녀석의 창백한 팔을 보았을 때 프랭크는 알았다. 불운이 자신들을 찾아오고야 말았음을, 불운이 자신들의 발목을 콘크리트처럼 단단히 붙들어매고 말았음을.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알콜중독으로 일찌감치 집을 나가 어린시절부터 둘이서 생활해 온 형제의 지금까지의 삶은 어떤 식으로 말해도 행복하다 할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그런 그들에게 조차도 불운은 예외를 두지 않았다. 둘은 찌그러진 1974년형 닷지 퓨리에 올라타고 그대로 내뺐다. 프랭크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리치몬드 폰테인"이라는 그룹의 리드보컬이자 작사를 맡고 있기도 한 저자의 이 멋들어진 데뷔작은, 아티스트가 가진 감수성이라는 것이 특정한 분야에서만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님을 절감하게 해준다. 한없이 우울하고 절망적일 것만 같은 이야기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바닥을 알 수 없는 늪에 빠진것처럼 허우적대는 느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자조적이기는 하나 절망적이지는 않다. 모든 게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그 감각은 마치 허망한 가사를 읇조리는 어느 얼터너티브 그룹의 음악을 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조차 한다. "그녀석이 내 차를 들이받지 않을순 없었을까. 내가 다 망치지 않았다면 걘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됐을 수도 있잖아." 하며 죄책감에 잠들지 못하는 형. 매춘부 엄마에게 학대당한 프랭크의 여자친구. 도박에 중독되서 끝간데 없이 내달리는 친구 토미. 프랭크는 그렇게 자기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자신의 현실을 그저 담담히 말해 나간다. 무언가를 뼈저리게 후회하거나 세상을 증오하지도 않는다. 여섯병 들이 맥주 한박스를 조수석에 얹어놓고 우울한 음악을 들으며 하염없이 황량한 사막길을 달리는 듯한 감각이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감각적인 일러스트 까지 더해져서 정말로 몇곡인가의 같은 곡조의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있는 것 같다.

개나소나 다하는 고등학교 졸업도 못한데다, 지금까지 자신이 한 짓거리들은 하나같이 실패작이고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일은 해본 적이 없다며 자조석인 푸념을 해대거나, 지금까지 재수가 없었다고 앞으로도 계속 재수가 없으란 법은 없잖아 그치? 하며 애써 스스로 위안하려 하는 이들 중에 그 누구도 진정한 악인은 없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가다 보니 어쩌다 오늘에 이르렀을 뿐이다. 야구에 소질을 보이던 프랭크와 그림에 재능있는 제리 리를 향한 '자신을 쓸모없는 놈으로 여기지 말라'는 중고차 가게의 사장 얼 헐리 할아버지의 충고처럼 그들은 언제부턴가 패배자 의식에 젖어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면 그들은 정말로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찾아온 불운 앞에서도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은 자기계발서처럼 아름답게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프랭크처럼 그저 헐리우드 영화같은 허황된 상상을 늘어놓으며 그 안에서 위안을 얻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이런 인생도 있고 저런 인생도 있다. 오히려 그게 더 현실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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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심리학 가위바위보 - 일상 속 갈등과 딜레마를 해결하는
렌 피셔 지음, 박인균 옮김, 황상민 감수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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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바위 보> 라는 애매한 제목만으로는 이 책의 내용을 다른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갈등 상황에서 인간은 어떤 심리 게임을 하며, 그 게임의 결과를 가져오는 마음의 덫은 무엇일까. 이 책은 게임 이론에 기반을 두고 죄수의 딜레마나 공유지의 비극같은 다양한 사회적 딜레마를 예로 들어 갈등의 문제를 속속들이 파헤친다. 특히 내시의 덫을 적용하여 인간이 갈등 상황에 처했을 때 벌이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사람들은 갈등 상황을 빠져나오려다가 더 심각한 상황에 빠지고는 한다. 이 책에서는 그 덫을 피하거나 빠져나오기 위한 방법으로 협력을 강조한다. 그러나 경쟁과 대립에 익숙한 우리에게 협력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협력은 모든 이에게 최상의 결과를 제공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만 더 나은 결과를 얻으려 하고 결국 모두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협력을 유지하려면 상호 조율을 통해 만들어낸 협의안을 반드시 지킬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의 차로 인해 상호조율을 통해 협의안을 끌어내기가 쉽지않다. 또한 그 협의안이 지켜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기도 힘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인간의 이기심을 이용하여 협력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 한다. 협력을 통해 갈등상황을 해결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갈등상황에서의 인간심리에 맞추어 경제이론 자체가 수정되어야 한다는 행동경제학에서의 접근방법과 비교하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공유지의 비극, 죄수의 딜레마등 내시의 덫이라는 유명한 이론의 기본적인 특성과, 내가 자르고 네가 골라라 같은 전략을 사용하여 자원을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 그리고 게임 이론을 살펴보면서 다양한 사회적 딜레마가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본다. 후반부에는 가위바위 보 게임을 변형한 주목할 만한 전략, 새로운 협력적 흥정 방법, 신뢰를 이끌어내는 방법, 맞받아치기 전략등 다양한 협력 전략이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주고 사회속에서 이를 사용하여 협력을 활성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그런 다음에는 게임 자체를 바꾸거나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거나 양자 역학 이론을 멋지게 응용하여 사회적 딜레마를 피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지금까지 발견한 협상 전략을 짚어보고 다양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열 가지 전략에 대한 나름의 팁을 공개한다.

이 전략들이 결코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갈등 상황에서 협력과 충돌이 미묘한 균형을 깨뜨릴 수는 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딜레마 상황에 빠져 있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파악한다면 그 안에서 빠져 나올 해결책 협력의 방법이 보인 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속에서 끊임없이 딜레마와 맞닥뜨리고 있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할 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런 개인의 딜레마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의 갈등을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있어서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이 조금은 힌트가 되어 줄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개개인이 자신이 처한 갈등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바라보게 되었을 때 사회구성원간의 상호 신뢰도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모두를 곤혹스럽게 하는 지금의 사회갈등들도 다같이 윈-윈할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합의점을 도출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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