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라이프
윌리 블로틴 지음, 신선해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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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불운, 그것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람들을 덮친다. 이 사실이 바로 이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다. 불운은 언제든 준비가 돼 있고, 언제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정말 최악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 불운이라는 놈이 언제 나를 덮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네바다 주 리노의 모텔을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는 플레니건 형제에게 그 날 아침 그 불운이라는 놈은 기어코 찾아왔다. 형인 "제리 리"가 운전하고 있는 자동차 앞으로 한 소년이 탄 자전거가 뛰어든 것이다. 소년은 즉사. 제리 리는 소년의 사체를 차에 싣고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동생 "프랭크"의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차 뒷좌석에서 꼬마 녀석의 창백한 팔을 보았을 때 프랭크는 알았다. 불운이 자신들을 찾아오고야 말았음을, 불운이 자신들의 발목을 콘크리트처럼 단단히 붙들어매고 말았음을.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알콜중독으로 일찌감치 집을 나가 어린시절부터 둘이서 생활해 온 형제의 지금까지의 삶은 어떤 식으로 말해도 행복하다 할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그런 그들에게 조차도 불운은 예외를 두지 않았다. 둘은 찌그러진 1974년형 닷지 퓨리에 올라타고 그대로 내뺐다. 프랭크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리치몬드 폰테인"이라는 그룹의 리드보컬이자 작사를 맡고 있기도 한 저자의 이 멋들어진 데뷔작은, 아티스트가 가진 감수성이라는 것이 특정한 분야에서만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님을 절감하게 해준다. 한없이 우울하고 절망적일 것만 같은 이야기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바닥을 알 수 없는 늪에 빠진것처럼 허우적대는 느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자조적이기는 하나 절망적이지는 않다. 모든 게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그 감각은 마치 허망한 가사를 읇조리는 어느 얼터너티브 그룹의 음악을 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조차 한다. "그녀석이 내 차를 들이받지 않을순 없었을까. 내가 다 망치지 않았다면 걘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됐을 수도 있잖아." 하며 죄책감에 잠들지 못하는 형. 매춘부 엄마에게 학대당한 프랭크의 여자친구. 도박에 중독되서 끝간데 없이 내달리는 친구 토미. 프랭크는 그렇게 자기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자신의 현실을 그저 담담히 말해 나간다. 무언가를 뼈저리게 후회하거나 세상을 증오하지도 않는다. 여섯병 들이 맥주 한박스를 조수석에 얹어놓고 우울한 음악을 들으며 하염없이 황량한 사막길을 달리는 듯한 감각이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감각적인 일러스트 까지 더해져서 정말로 몇곡인가의 같은 곡조의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있는 것 같다.

개나소나 다하는 고등학교 졸업도 못한데다, 지금까지 자신이 한 짓거리들은 하나같이 실패작이고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일은 해본 적이 없다며 자조석인 푸념을 해대거나, 지금까지 재수가 없었다고 앞으로도 계속 재수가 없으란 법은 없잖아 그치? 하며 애써 스스로 위안하려 하는 이들 중에 그 누구도 진정한 악인은 없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가다 보니 어쩌다 오늘에 이르렀을 뿐이다. 야구에 소질을 보이던 프랭크와 그림에 재능있는 제리 리를 향한 '자신을 쓸모없는 놈으로 여기지 말라'는 중고차 가게의 사장 얼 헐리 할아버지의 충고처럼 그들은 언제부턴가 패배자 의식에 젖어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면 그들은 정말로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찾아온 불운 앞에서도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은 자기계발서처럼 아름답게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프랭크처럼 그저 헐리우드 영화같은 허황된 상상을 늘어놓으며 그 안에서 위안을 얻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이런 인생도 있고 저런 인생도 있다. 오히려 그게 더 현실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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