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누비스의 문 1 - 털에 뒤덮인 얼굴
팀 파워즈 지음, 이동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소설이던 영화던 장르 매체 불문하고 스팀펑크를 세계관으로 채용하고 있는 작품은 언제나 대환영이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듯한 그 독특한 느낌과 거칠고 황량한 스팀펑크 계열 작품만의 세기말적 분위기가 너무 너무 매력적이라 언제나 새로운 작품의 소식을 들으면 귀가 번쩍 뜨이곤 한다. 사실 그동안은 읽고 싶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장르의 소설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 소외되어 있을수 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얼마전 런칭한 팬덤스토리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더 컸고 아누비스의 문에 대한 정보를 처음 들었을때부터 발매일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다 읽고 난 지금 그 소감으로 말할것 같으면 SF, 특히 그중에서도 스팀펑크 계열의 작품에 열광하는 독자에게는 가뭄의 단비이자 구세주같은 작품임에 틀림이 없는듯하다. 가슴이 두근거릴정도로 흥분되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환상적인 경험이였다. 

요즈음 등장하는 최신작들은 감탄이 나올정도로 놀라운 상상력과 보통사람의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놀라운 발상으로 중무장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발전하고 진화해온만큼 획기적이고 세련된 스토리를 자랑한다. 그렇지만 그 많은 작품들 중에서 예전에 열광하던 그 SF소설의 느낌을 찾아내기가 쉽지않고 또한 흥미를 느끼기가 어려워서 SF라는 장르에서 떨어져 나가는 독자들이 많이 있다. 물론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독자들이 다시 등장하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개인적으로는 예전같은 작품이 없다라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최근 작품들은 세련되고 절제된 맛은 있지만 예전 작품들에서 받을수 있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 그리고 특유의 암울한 분위기 같은 것들이 결여되어 있는것 같다. 그것은 아무래도 그 글이 쓰여지는 당시의 시대상이라던가 글을 쓰는 사람의 정서가 글속에 반영되어지기 때문일텐데 그런 암울한 기운이 항상 주변을 맴돌던 시대는 이미 지나버렸기 때문에 요즈음 쓰여지는 작품에서 그 매력적인 분위기를 다시 발견할수는 없을것 같다. 에드거앨런포의 음울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현대작가들의 작품에서 느끼지 못하고 스티븐킹의 예전작품들과 최신작의 느낌이 많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팀파워즈의 아누비스의 문은 스팀펑크의 창시자에 의해 쓰여진 작품답게 그 특유의 세기말적 분위기가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있다. 타임워프라는 요즈음같으면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수도 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치밀한 설정과 스토리텔링, 처음부터끝까지 긴장을 늦출수 없게 만드는 약간은 불온한 기운마저 감도는 긴장감과 함께 곳곳에서 등장하는 작가의 유머감각은 정말 오랫만에 SF다운 SF소설을 읽었다는 감회에 젖게 만들어 주었다. 세월이 지난 소설들에서 느끼기 쉬운 지루함이나 고리타분함은 전혀 찾아볼수 없었고 명작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역시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게한 즐거운 시간이였다. 부디 팀 파워즈의 다른 작품들도 모두 번역되어 접해볼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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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연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아내와 토끼같은 자식들이 있는 30대의 "토노 케이치"는 현재 어느 지방 도시의 시청 공무원. 과로사가 속출하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내려와 공무원이 된지가 벌써 9년째, 별다른 사건없이 평온 무사한, 거의 유유자적에 가까운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그런 그가 아테네 마을 재건이라는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아테네 마을이라면 그저 허울 뿐인 초 적자 놀이공원.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지만, 하면 할수록 아이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 근성을 발동하게 한다. 웃고 화내고 가끔은 진중해지는, 케이치의 고군분투기. 공감 지대로다.

평범한 직장인에게 일어나는 코믹/ 감동의 에피소드는 "오기와라 히로시"의 전문분야라 할 수 있다. 이제는 비슷한 전개가 너무 많아서 어느게 어떤 내용이었는지 헷갈릴 정도가 되어버렸지만, 대신에 어느 작품이나 다 재미있어서 특별히 이제 그만 썼으면 하는 마음은 결코 들지 않는다. 물론 작품이 거듭될수록 더 노련해지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회전목마>에서는 공무원들의 우유부단하고 안전제일주의인 성향을 다소 과장을 섞어 코믹하게 그려낸다. 풍자라고 해도 좋고 비아냥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여기에는 그래 맞아맞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을 듯 하지만, 내가 겪어본 바에 의하면 공무원이라고 해서 특별히 이렇게 느긋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착실하다고 할까. 좀 더 의욕적이고 모두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다. 잔업도 많다.

그렇지만 부인할 수 없는 건 관청에는 역시 민간기업과는 다른, 뭔가 미묘한 공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 구체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역시 다르다. 긴장감이 결여되어 있다고나 할까. 뭐 그건 그렇다치고, 공무원이든 직장인이든 기본적인 조직의 룰은 마찬가지. 회의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게 제일이다. 어차피 모순으로 가득한 이 사회에서 공무원이나, 사무원이나 눈치보며 살아가는 방법은 다 거기서 거기다. 무리하게 큰 이벤트를 주최했다가 빚을 떠안는다던가 확실히 이런 지방도시, 우리나라에도 실제로 있을 것이다. 코믹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이런면에서는 리얼하다고도 할 수 있어서 여러가지 즐길 만한 요소들이 가득.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설은 그래서 자꾸만 찾아 읽게 된다.

별로 의욕 없는 동료들이나, 이사들에게 둘러싸여서 케이치는 고군분투 한다. 예전에 극단에 몸담고 있던 시절의 동료와 후배들을 끌어들여서 프로잭트의 성공을 기한다. 평범한 공무원 아빠의 고군분투는 마침내 대성공을 맞이하지만...
일종의 성공기로서 재미있으면서도, 현실의 우울한 모습을 살짝 본 것 같아서 조금 씁쓰레한 기분도 든다.
월급쟁이의 비애가 애처롭게 다가온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여러가지 삶의 방법이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한가해서 시간을 때우느라 고생스러운 것보다는, 바빠도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쪽에서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 나갈 수 밖에 없는 인생. 그래서 회전목마일까나? 공무원이나 월급쟁이들은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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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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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린시절 폼페이 화산폭발에 얽힌 일화 하나를 우연히 읽게 된 적이 있었다. 도시하나를 송두리째 삼켜버린 끔찍한 대재앙속에서 주인아이를 품에 안고 죽은 개의 이야기였는데 그 애틋한 이야기와 함께 실린 몇장의 흑백사진이 어린 나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흐릿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그 사진에는 이미 돌이되어버린 개와 아이의 모습을 포함하여 그 외에도 살아있던 순간의 모습 그대로 굳어져 발굴된 다른 피해자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는데 아라비안 나이트에나 나올법한, 사람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끔찍한 마법이 실제로 존재하는것을 확인한듯한 기분이 들어 몸서리를 쳤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 처절하면서도 감동적이였던 이야기와 사진들은 오랜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생생한 기억으로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그 후로 폼페이에 관한 일화라던가 더 많은 역사적 자료를 얻고 싶어서 수많은 서점을 돌아다니고 여러 책을 뒤적여 보았지만 당시의 상황을 만족스럽게 알수 있는 자료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항상 아쉬움이 남아있는 부분이였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 이렇게 소설로 재탄생한 폼페이를 마주하고 보니 감회가 새롭고 가슴이 벅차오르기까지 했다. 이 얼마나 오래 기다려온 작품이란 말인가. 게다가 작가는 팩션의 귀재, 로버트 해리스.

로버트 해리스의 <폼페이>는 역사적인 대재앙의 순간을 다룬 스릴러소설이지만 단순히 화산폭발이 가진 스펙터클함과 그앞에서 무기력하게 쓰러져가는 인간이라는, 소재에만 의존한 흥미위주의 작품이 아니다. <폼페이>에서는 화산폭발이 있기 이틀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폭발이 있기 전에 이미 나타났던 그 수상한 징조부터 시작하여 화산폭발, 그리고 폼페이 최후의 순간까지를 그리고 있는데 여기에는 화산폭발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시대상, 사회상, 건축양식, 경제, 학문등 모든것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작가는 자신이 가진, 혹은 수집한 방대한 역사적 지식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작품속에 녹여내고 싶었던 듯 하다.

작품속에 반영된 지식은 스토리를 위한 고증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방대하고 사회 각계각층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등장인물들의 면면 또한 각 분야의 정보를 독자에게 효율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수도기사인 아틸리우스, 노예출신으로 막대한 부를 이룬 졸부 암플리아투스의 딸 코렐리아 그리고 플리니우스, 암플리아토스, 폼포니아우스등 실존인물들이 절묘하게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흥미만점의 이야기는 폼페이 최후의 순간을 간접체험해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다. 이야기로써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의 폼페이에 관한 자료로써도 이 만한 책은 없을듯하다. 또한 중간중간 삽입된 화산학개론등 <폼페이>는 그 소장가치를 높여줄 요소들이 가득하다.

처음 이책을 접했을때 스릴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양장본으로 만들어진데 대해서 조금 의아했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오히려 양장본이 아니였다면 상당히 아쉬웠을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적어도 나에게는 평생 책장 한켠을 차지하고 같이 나이를 먹어갈 책이 될 것 같다. 폼페이 최후의순간에 대한 지적 호기심에 넘치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철저한 고증에 의해 탄생한 <폼페이>는 독후, 가슴에 묵직한 무언가를 남겨줄, 절대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좋은 선택이 될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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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코넬 울리치"라는 이름이 생소한 독자라도 "윌리엄 아이리시"라고 하면 금새 아~ 환상의 여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윌리엄 아이리시의 본명이 바로 코넬 울리치다. 사실은 윌리엄 아이리시라는 필명보다 본명이 더 유명한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코넬 울리치라는 본명보다는 윌리엄 아이리시라는 필명을 먼저 알았다. 이 작가를 알게 해 준 작품이 바로 윌리엄 아이리시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환상의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환상의 여인이 저자의 대표작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밤은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라는 제목의 이 소설이 그보다는 못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흡입력이라는 면에서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단숨에 읽어버렸다.

어두운 밤, 형사 톰 숀은 강가를 걷다가 막 다리에서 뛰어내리려 하고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눈치채지 못하게 살금살금 다가가 자살을 방해한다. 덕분에 죽지 못한 여자의 이름은 진 레이드. 부잣집 외동딸로 부족한 것 없이 자란 그녀가 차가운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으려 한 이유가 무엇인가? 식당 구석자리에 앉아 그녀는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진의 아버지 할란 레이드는 사업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녀 하나가 혼자 있는 진에게 다가와 아버지의 출장을 미루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돌아오는 비행기 편에서 안좋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하녀의 말에 코웃음치는 진, 결국 자꾸만 신경쓰이게 하는 하녀를 해고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계속해서 왜 자꾸 그 말에 신경쓰게 되는 것인지. 결국 비행기 시간을 늦추자는 제안을 하기 위해 아버지가 묶고 있는 호텔로 다급히 전화를 걸어 보지만, 아버지는 이미 비행기 탑승을 위해 호텔을 떠난 뒤였다.

홍보문구나 후기에서 느와르를 강조하고 있는데, 느와르하면 총격전부터 연상되는 나로서는 이것이 느와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두운 우울한이라는 사전적 의미와는 아주 잘 부합한다. 현실이면서도 어쩐지 아득한 꿈길을 걷고 있는 것 같은 독특한 분위기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특이하게도 예언이라는 미신에 가까운 소재를 이야기에 중심에 두고 있지만, 호러나 판타지로 흐르지 않고 교묘하게 현실의 경계선에 걸쳐있는 모양새가 감탄사를 자아낸다.

흡입력은 정말 굿이다. 처음 자살을 시도하는 여자의 특이한 분위기부터 흥미롭기 시작하더니, 하녀가 다가와서 불길한 예감을 펼쳐놓고는 눈치보면서 자꾸만 아버지를 못가게 하는 초반부에서 벌써 긴장감이 짙은 안개처럼 몰려든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전화기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진의 심정이 고스란히 내것이 된다. 아 나 왜 전화를 안받냐고, 빨리좀 받으라고 다리를 떨면서 중얼거렸던 것 같다.

예언이 정말로 실현될 것인가. 형사들은 그것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나라면 어떻게 행동 할 것인가? 예언을 믿고, 혹은 의심하고, 그것을 쫓아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완전히 실감나는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만약 누군가에게서 죽음의 예언을 들었을 때 과연 나는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일축할 수 있을 것인가 하면 꼭 그렇다고 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입장에 놓였을 때의 미묘한 갈등이 오히려 어떤 현실보다도 몰입하게 만든다.

시종일관 수상한 공기가 떠돌아 댕긴다. 현실이면서도 왠지 꿈속을 걷는 듯한 음습한 분위기, 안개 저편으로 저세상이 보일 것 같은. 운명은 바꿀수 없는 것일까. 그건 모르겠다. 내가 지금 정해진 운명을 스케줄대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내 의지에 의해 수시로 바뀌고 있는지는 두가지를 다 살아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냥 주어진 지금을 묵묵히(가끔은 말도 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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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더스트 판타 빌리지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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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고 털이 묻은것 같은 목소리

동심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단어의 뜻 그대로 아이들의 마음일까. 아니면 꿈과 환상을 쫓는 순수한 마음을 말하는것일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람들이 어린시절 동화책을 읽으면서 느끼던 그 포근하고 가슴벅찬 감정을 그리워하면서도 좀처럼 다시 느끼질 못하는것을 보면 어린이의 마음, 동심이라 이름 붙은것도 납득이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른이 되면 당연히 자연스레 사라지는 그런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바라보고 직시하는 능력이 단련되고 발달되어 감에 따라서 그런 감성적인 부분이 점차 무뎌져 갈 뿐이지 태어날때부터 가지고 있던 그 순수한 마음은 누구에게라도 여전히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는 무뎌진 감성만큼 그것을 불러내는 방법도 잊고 살게 된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때로는 어린시절로 돌아가보고 싶은 욕심에 옛추억에 잠기며 동화책을 펴들기도 하지만 어린아이의 눈높이로 쓰여진 그것들은 이미 발에 맞지 않는 낡은 신발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런것을 아무리 붙잡고 있어봤자 그리운 감정을 맞이할수 있을리가 없다. 어른이면 어른의 눈높이에 맞는 매개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좀처럼 찾아내기가 쉽지않다.
그래서 더욱 이 작품이 가뭄에 단비같이 반갑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성인에게 딱 맞는 맞춤신발같은 작품.
별을 찾아 떠나는 환상의 모험이야기.

스타더스트는 동화다. 동화라고 단언할수 있다. 꿈과 환상이 담겨있고 가슴벅차고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읽고 있으면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만병통치약같은 책일리는 없다. 다만 동심을 불러내는 방법을 떠올리고 계기를 만들어주는 책이라고나 할까. 성인 취향의 소설들중에서 이만큼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책은 나로써는 떠올리기가 쉽지않다.
여타 판타지 문학들이 작가의 상상을 기반으로 한 가상의 세계를 창조해내면서 수많은 설정, 사건, 세계관을 구축해내는데 있어서 완벽을 기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일반 소설들은 어느정도 독자들이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는 덕분에 독후, 비슷한 느낌을 받기 쉬운 반면에 판타지 소설의 경우는 전혀 생소한 가상의 무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가상의 세계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완벽하고 오류가 없는 세계관의 구축을 위해, 리얼리티에 만전을 기하는 조금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작업을 수반한다.
독자는 작가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실패한 독자들이 판타지는 재미없더라 라는 선입관과함께 자연스럽게 환상문학에서 떨어져 나간다.

반면에 스타더스트는 전체적으로 여백이 많이 있는 느낌이랄까. 세세한 묘사보다는 음유시인의 노래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더 많은 품을 들인듯하다. 독자의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만들어낼 여지를 더 많이 만들어주는책.
독자의 잠자는 동심이 머리를 쳐들고 꿈틀거릴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책.
읽고 있으면 어느새 어릴적 동화책의 한구절만으로도 수많은 장면을 상상해내고 꿈꾸던때와 같은 경험을 할수 있게 해준다.
역자 후기에 등장하는 유니콘이 죽는 장면. 해설에서는 그 장면의 잔인함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잔인하다는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분명 텍스트는 잔인하게 죽어가는 유니콘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그것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내가 상상하는 이미지, 내가 바라는 이미지로.
백설공주가 독사과를 먹고 죽는 장면을 읽으면서, 중독되어 두눈은 까뒤집히고 피부는 새까맣게 변해버린 시체의 처참한 모습을 연상하는 대신에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백설공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렸듯이,  자신이 꿈꾸던 모습,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각자의 이야기를 진행해나가게 되는것이다.
물론 이미 오랫동안 동심을 잊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환상적인 독서를 할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나는 비록 가슴벅찰 정도로 즐거운 경험의 여운이 남아있지만  다른 누군가가 너무 평범한 작품이였다고 말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리웠던 감정을 맛보는데 성공했고, 스타더스트 덕분에 이렇게 즐거운 독서를 한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스타더스트의 작가 닐게이먼은 아마도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비교적 동심을 잘 유지하고 있는 인물인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그것을 움직이는 작품을 쓸수 있는거라 생각한다.
스타더스트가 슈렉같은 헐리우드 애니메이션이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도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근본적으로 닐게이먼의 글이 가지고 있는 매력, 즉 독자 개개인의 상상력이 최대한으로 개입되어 만들어지는 이 동화속 세계를 충분히 표현해 내는데는 무리가 있을것 같다. 이제 곧 개봉하는 영화도 많은 기대가 되지만 역시 소설에서만 느낄수 있는 감정을 표현해내는데는 역부족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영화대로 또다른 스타더스트의 세계를 멋지게 만들어 주길 바란다. 그것은 아마도 감독의 동심이 묻어나는 스타더스트가 되겠지.

'그때 누군가가 그의 귀에다 대고 작고 털이 묻은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P.98

과연 감독이 상상한 작고 털이 묻은것 같은 목소리는 어떤 목소리일까 궁금하다.

매력적인 이야기만큼이나 표지 디자인도 미려하고 번역도 정말 맘에 든다. 물흐르듯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번역덕에, 번역판 스타더스트가 술술 잘 읽히는 더욱 매력적인 책이 될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닐 게이먼의 작품은 같은 번역가님이 번역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남성작가의 작품을 여성 번역가가 번역을 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 내 경험으로는 실망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남성작가의 힘있는 필체의 작품이 여성향으로 탈바꿈하거나, 여성작가의 문체가 너무 터프함이 느껴지거나, 남성과 여성의 감성에 차이에서 오는 부자연스럽고 위화감 느껴지는 번역을 만날때는 힘이 빠지고는 한다. 맥가이버의 성우는 배한성이여야지 톰과제리의 송도순일순 없듯이 번역소설에도 이런 시스템이 정착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세한 부분까지 포함해서 모든면에서 만족스러운 작품이였다. 스타더스트를 읽는것도 즐거웠지만 닐게이먼이라는 작가를 알았다는 것이 더 큰 행운이였다. 부디 이 즐거움이 나만의 유별난 경험은 아니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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