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타더스트 ㅣ 판타 빌리지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작고 털이 묻은것 같은 목소리
동심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단어의 뜻 그대로 아이들의 마음일까. 아니면 꿈과 환상을 쫓는 순수한 마음을 말하는것일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람들이 어린시절 동화책을 읽으면서 느끼던 그 포근하고 가슴벅찬 감정을 그리워하면서도 좀처럼 다시 느끼질 못하는것을 보면 어린이의 마음, 동심이라 이름 붙은것도 납득이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른이 되면 당연히 자연스레 사라지는 그런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바라보고 직시하는 능력이 단련되고 발달되어 감에 따라서 그런 감성적인 부분이 점차 무뎌져 갈 뿐이지 태어날때부터 가지고 있던 그 순수한 마음은 누구에게라도 여전히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는 무뎌진 감성만큼 그것을 불러내는 방법도 잊고 살게 된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때로는 어린시절로 돌아가보고 싶은 욕심에 옛추억에 잠기며 동화책을 펴들기도 하지만 어린아이의 눈높이로 쓰여진 그것들은 이미 발에 맞지 않는 낡은 신발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런것을 아무리 붙잡고 있어봤자 그리운 감정을 맞이할수 있을리가 없다. 어른이면 어른의 눈높이에 맞는 매개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좀처럼 찾아내기가 쉽지않다.
그래서 더욱 이 작품이 가뭄에 단비같이 반갑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성인에게 딱 맞는 맞춤신발같은 작품.
별을 찾아 떠나는 환상의 모험이야기.
스타더스트는 동화다. 동화라고 단언할수 있다. 꿈과 환상이 담겨있고 가슴벅차고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읽고 있으면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만병통치약같은 책일리는 없다. 다만 동심을 불러내는 방법을 떠올리고 계기를 만들어주는 책이라고나 할까. 성인 취향의 소설들중에서 이만큼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책은 나로써는 떠올리기가 쉽지않다.
여타 판타지 문학들이 작가의 상상을 기반으로 한 가상의 세계를 창조해내면서 수많은 설정, 사건, 세계관을 구축해내는데 있어서 완벽을 기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일반 소설들은 어느정도 독자들이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는 덕분에 독후, 비슷한 느낌을 받기 쉬운 반면에 판타지 소설의 경우는 전혀 생소한 가상의 무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가상의 세계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완벽하고 오류가 없는 세계관의 구축을 위해, 리얼리티에 만전을 기하는 조금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작업을 수반한다.
독자는 작가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실패한 독자들이 판타지는 재미없더라 라는 선입관과함께 자연스럽게 환상문학에서 떨어져 나간다.
반면에 스타더스트는 전체적으로 여백이 많이 있는 느낌이랄까. 세세한 묘사보다는 음유시인의 노래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더 많은 품을 들인듯하다. 독자의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만들어낼 여지를 더 많이 만들어주는책.
독자의 잠자는 동심이 머리를 쳐들고 꿈틀거릴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책.
읽고 있으면 어느새 어릴적 동화책의 한구절만으로도 수많은 장면을 상상해내고 꿈꾸던때와 같은 경험을 할수 있게 해준다.
역자 후기에 등장하는 유니콘이 죽는 장면. 해설에서는 그 장면의 잔인함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잔인하다는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분명 텍스트는 잔인하게 죽어가는 유니콘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그것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내가 상상하는 이미지, 내가 바라는 이미지로.
백설공주가 독사과를 먹고 죽는 장면을 읽으면서, 중독되어 두눈은 까뒤집히고 피부는 새까맣게 변해버린 시체의 처참한 모습을 연상하는 대신에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백설공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렸듯이, 자신이 꿈꾸던 모습,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각자의 이야기를 진행해나가게 되는것이다.
물론 이미 오랫동안 동심을 잊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환상적인 독서를 할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나는 비록 가슴벅찰 정도로 즐거운 경험의 여운이 남아있지만 다른 누군가가 너무 평범한 작품이였다고 말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리웠던 감정을 맛보는데 성공했고, 스타더스트 덕분에 이렇게 즐거운 독서를 한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스타더스트의 작가 닐게이먼은 아마도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비교적 동심을 잘 유지하고 있는 인물인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그것을 움직이는 작품을 쓸수 있는거라 생각한다.
스타더스트가 슈렉같은 헐리우드 애니메이션이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도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근본적으로 닐게이먼의 글이 가지고 있는 매력, 즉 독자 개개인의 상상력이 최대한으로 개입되어 만들어지는 이 동화속 세계를 충분히 표현해 내는데는 무리가 있을것 같다. 이제 곧 개봉하는 영화도 많은 기대가 되지만 역시 소설에서만 느낄수 있는 감정을 표현해내는데는 역부족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영화대로 또다른 스타더스트의 세계를 멋지게 만들어 주길 바란다. 그것은 아마도 감독의 동심이 묻어나는 스타더스트가 되겠지.
'그때 누군가가 그의 귀에다 대고 작고 털이 묻은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P.98
과연 감독이 상상한 작고 털이 묻은것 같은 목소리는 어떤 목소리일까 궁금하다.
매력적인 이야기만큼이나 표지 디자인도 미려하고 번역도 정말 맘에 든다. 물흐르듯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번역덕에, 번역판 스타더스트가 술술 잘 읽히는 더욱 매력적인 책이 될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닐 게이먼의 작품은 같은 번역가님이 번역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남성작가의 작품을 여성 번역가가 번역을 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 내 경험으로는 실망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남성작가의 힘있는 필체의 작품이 여성향으로 탈바꿈하거나, 여성작가의 문체가 너무 터프함이 느껴지거나, 남성과 여성의 감성에 차이에서 오는 부자연스럽고 위화감 느껴지는 번역을 만날때는 힘이 빠지고는 한다. 맥가이버의 성우는 배한성이여야지 톰과제리의 송도순일순 없듯이 번역소설에도 이런 시스템이 정착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세한 부분까지 포함해서 모든면에서 만족스러운 작품이였다. 스타더스트를 읽는것도 즐거웠지만 닐게이먼이라는 작가를 알았다는 것이 더 큰 행운이였다. 부디 이 즐거움이 나만의 유별난 경험은 아니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