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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엔젤 - 스탈린의 비밀노트,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2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곳은 소련 붕괴 후의 옐친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 연방. 일당 독재체제가 무너지고 사회주의 경제에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로의 변혁을 강행함으로 인해서 큰 사회불안을 부추기고 있었을 이 무렵의 러시아 연방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이념사이에서 비롯된 자가당착이 뒤섞여 있는 혼돈의 세상이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어두운 과거의 그림자를 끌고 다니는 망령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 악명높은 바로 그 스탈린(Stalin, 1879-1953)입니다.

우리나라의 세계사 교육 과정에서는 얄타 회담등을 다루는 부분에서 잠시 얼굴을 내밀 뿐, 그 유명도에 비해서 독재자로서의 면모나 그가 저지른 공포정치의 실태 등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아크엔젤에서 보여지는 스탈린의 모습은 그런 그의 편집광적인 성격이 많이 부각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가족은 물론이고 측근들까지도 개인적인 감정으로 닥치는 대로 처형해 버리거나, 개의 소리만으로 만든 음악에 맞추어 사람들을 춤추게 하기도 하는등 광기어린 편린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광기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를 지지하고 그리워하는 러시아 국민이 많다는 아이러니한 부분은 어쩐지 수많은 신도들을 거느리고, 세뇌시키고, 착복을 일삼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스탈린이 신격화되고 우상화되는 것에 경고합니다. 맹목적으로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언제라도 제2, 제3의 스탈린이 등장할수 있다고 말입니다.
되살아나는 스탈린의 망령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던 영국인 역사학자 켈소에게 갑자기 한 노인이 찾아옵니다. 이 노인의 이름은 라파바. 스탈린의 심복이자 KGB의 실권자였던 베리아의 경호원이였다고 밝힌 이 노인에게서 켈소는, 스탈린이 생전에 보관하고 있던 노트가 존재하며 심복이였던 베리아가 스탈린이 죽기 직전 그것을 훔쳐내어 지금은 어느 장소엔가 숨겨져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강한 흥미를 느끼는 켈소. 그러나 라파바는 그 직후 곧바로 자취을 감추어 버립니다.
라파바의 딸, 서방의 텔레비젼 기자, 전 KGB 직원, 현SVR 직원등 현대 러시아를 대변하는 여러 위치의 사람들이 노트의 행방을 쫓기 시작하고, 곧 잠들어있던 진실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역사의 어두운 단면을 재조명한 장편 서스펜스라고나 할까요.
저자인 로버트 해리스(Robert Harris)는 BBC 리포터, 정치담당 기자, 칼럼니스트등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일명 히스토리팩션을 주로 써왔는데, 아크엔젤에서도 역시 예의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과 사회,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빛을 발합니다. 현대 러시아사회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묘사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흥미롭고 가치있을뿐만 아니라 아크엔젤이 평범한 스릴러가 아닌 보다 품격있는 이야기가 되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역사의 어두운 단면>을 대하는 주인공의 생각,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내면 묘사도 매우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어서 히스토리팩션의 최고봉이라는 저자의 역량을 온몸으로 실감할수 있는 작품입니다. 로버트 해리스의 팬이나 이런류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의 작품을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사람이나 평소에 러시아나 소련에 전혀 흥미가 없는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단,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 어려운 러시아식 이름들이 소설을 즐기는데 있어서 초반부의 장벽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할것 같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제목이자 무대이기도 한 영단어 "ARCHANGEL"(대천사)은, 러시아 연방의 조그만 항구도시 "ARKHANGELSK"(아르한게리스크)를 가리킵니다. 이 소도시는 볼셰비키(구소련 공산당의 별칭)에 저항하는 반혁명 정부의 거점이 되거나 반공산 혁명을 노린 영국과 미국에 의해서 점령 되기도 하는등, 스탈린과의 관계라고 하는 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곳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