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다운 생활문화 일본어
오쿠무라 유지.임단비 지음 / 사람in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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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일본어다운 생활 문화 일본어>라는 제목 그대로의 책입니다. 이 책 대단히 마음에 듭니다. 호감가는 디자인만큼이나, 단어나 어휘를 "재미있게" 습득할수 있는 교재입니다. 책을 자꾸 펼쳐 보고 싶게 만드는 깔끔하고 귀여운 일러스트도 좋지만, 디자인을 제외한 알맹이만 놓고 보아도 최근에 접해본 일본어 관련 교재중에서는 가장 쓰다듬고 싶은 책 중에 하나입니다. 

언어실력이 중급 이상, 고급이라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정도가 되면 적당한 교재를 선별하기가 까다롭습니다. 어정쩡한 수준에 맞는 교재가 의외로 없습니다. 알건 왠만큼 다 아는 상태에서, 보다 어려운 단어나 어휘력을 필요로 하는 수준이다 보니, 어떤 교재를 들여다 보아도 지루해지기 쉽상입니다. 더더군다나 일본인들과 일본어로 꼭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처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격증 취득이나 시험같은 일본어를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말하자면 일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안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번번히 중도에 손을 놓아버리게 되곤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이 책은 분명히 공부할 맛이 나네요. 공부라기 보다는 재미있게 단어나 표현들을 습득한다는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뭐 이 책이 아주 획기적인 공부방법을 제시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내용을 보면 장소에 따른 단어나 문구, 대화, 날씨 계절등 상황에 따른 표현들, 발렌타인데이나 졸업식, 칠월칠석등의 명절과 같은 특별한 날과 관련된 단어, 어휘등을 그림과 함께 주루룩 늘어놓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 나는 특별한 공부할 맛은 효율적인 편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뜻 펼쳐봐도 대단히 편집이 꼼꼼하고 보기 편하게 되어 있다는 인상입니다. 

400여 쪽의 분량에 비해서 다루고 있는 상황들이 의외로 대단히 다양하고 내용의 밀도도 높습니다. 물론 어휘력에 따라 책에 대한 인상이나 체감하는 효율도는 다소 달라지겠지만, 중급이상이라면 상당히 많은 실용어휘를 습득할 수 있고, 고급독자라도 일본의 문화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라면 생소하거나 취약한 분야의 단어나 어휘만 찾아 읽을수 있어서 맞춤 형식으로 얼마든지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각 챕터에 어울리는 일러스트와 부연설명이 간결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비슷한 내용의 책들이 딱딱하기 쉬운데 반해 스무스하게 책장이 넘어가면서도 알맹이는 충실합니다. 저자는 오쿠무라 유지/ 임단비 공저. 이와 같은 류의 교재로서는 딱히 나무랄데가 없는것 같습니다. 발음을 들을 수 있는 CD는 따로 첨부되어 있지 않은 대신에 출판사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mp3파일로 들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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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와티 - 유쾌하고 불손하고 매혹적인 지상 최고의 이야기
라비 알라메딘 지음, 이재경 옮김 / 예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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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와티(hakawati)'란 옛날이야기나 신화, 우화 등을 들려주는 사람을 뜻한다. 즉 이야기꾼이자 여흥거리를 제공하는 예능인이다. 일종의 음유시인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허풍 섞인 이야기로 청중을 즐겁게 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말', 또는 '대화'를 의미하는 레바논어 '하키(haki)'에서 유래했다. (책 속에서)

"하지만 이거 하나는 꼭 명심해!
이야기를 믿을 뿐, 결코 이야기꾼을 믿어서는 안 돼!"

<아라비안 나이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사실 우리에게는 이슬람 문화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낮설게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이 아라비안 나이트만은 유독 예외다. 이 이야기를 읽을때만은 그 문화적 차이, 종교적 이질감에서 오는 거리감이 모두 어디로 사라지는지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인류, 모든 종교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 이 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이 아닌가 싶다. 천일야화의 화자인 세헤라자데처럼 거침없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꾼들, 이 책의 제목인 <하카와티>란 바로 그런 "이야기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슬람 문화권의 이 이야기꾼 전통은 유명하다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결코 이에 못지 않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듣던 옛날 이야기들, 호랑이와 산신령이 단골로 나오는 전래동화들, 말하는 사람마다 미묘하게 내용이 달라지던 구전동화들. 우리나라 사람들의 피 속에도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 이상의 이야기꾼 정서가 섞여있는게 틀림없다. 그래서 더 이런 하카와티들의 이야기 보따리가 친근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아라비안 나이트가, 세헤라자데가 왕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들려주는 천일야화였다면, 이 하카와티는 이 시대 마지막 하카와티를 자부하는 한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아라비안 나이트와 다른점이라면 옛날 옛적, 어느 먼 나라에...로 시작하는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이야기가 채 매듭되지 않은 사이에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고 또 그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를 낳는다. 시대를 건너뛰고 때로는 현대시대로 거슬러 올라오기도 한다. 현대판 천일야화라고나 할까. 책은 800페이지 가량의 두꺼운 한권이지만 그 깨알같은 글씨로 총 4장으로 구성된 내용을 보면 1장이 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책 1권 분량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아라비안 나이트 완역본이 10권인 것을 감안하면 이 단 한권이 얼마나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책의 실린 잠 못 이루게 하는 이야기들을 이런 짧은 글 안에서 모두 소개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낼일이다.

자, 들어보라 . 나를 그대의 신으로 생각하라. 내가 그대를 상상치도 못했던 이야기 속으로 인도하리라.

옛날옛날 어느 먼 나라에 모든 것을 가진 군주가 살고 있었다. 아름다운 도시, 엄청난 재산, 건강과 만인으로부터의 존경, 게다가 아름다운 아내까지. 사랑스러운 공주도 열두명이나 낳았지만, 단 하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대를 이을 왕자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고민하던 군주는 총리대신을 불러 이 문제를 상의하기에 이른다. 두번째 아내를 얻으라 조언하는 총리대신. 그러나 군주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은 오직 아내 한사람 뿐이라며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린다. 그렇다면 노예중 한명을 골라보라는 차선책마저 거절하지만, 아내의 설득으로 결국 군주는 이집트 출신의 "파티마"라는 노예와 잠자리를 가지기로 한다. 그런데 불려온 파티마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자신의 고향에 대단한 주술사가 있으니 부인의 머리카락 한줌을 가지고 가 처방을 받아오겠다는것. 여인의 처방은 실패 한 적이 없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이렇게 해서 파티마는 왕자를 생산할 치료법을 얻으러 먼 길을 떠난다.

2년이나 지속된 내전의 상흔으로 폐허가 된 베이루트 시내. 내가 베이루트에 온 것은 이슬람 문화권의 가장 큰 명절인 이드 알아드하를 가족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도착하고보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 오랜 친구인 "파티마"를 태우러 가던 길에, 나는 예전에 살던 집앞에 발을 멈춘 채 온가족이 공습을 피해 피난하던 당시를 회상한다.

파티마는 가장 용맹한 병사 다섯과 마구간지기 청년 자와드와 함께 도시를 나섰다. 여행에 나선지 나흘째 되던 날 염려하던 도적떼의 습격을 받았다. 위기일발의 순간 파티마는 도적들의 질투심을 자극해 서로 싸워 죽이게 한 후 그들의 재물마저 차지한다. 도적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이들과 일행이 된 자는, 파티마가 아닌 청년 자와드에게 반해버린 카얄이라는 남자. 카얄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자와드를 유혹하기로 한다. 카얄은 이레라는 시간동안 하루에 하나씩 자와드를 유혹하기 위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 이야기와 현대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또 그 안에서 이야기꾼에 의해 또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야기의 향연이다.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감히 예측도 되지 않는다. 자, 이들의 앞길에는 과연 어떤 놀라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모든 것은 하카와티 마음 가는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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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서브 로사 1 - 로마인의 피 로마 서브 로사 1
스티븐 세일러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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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세기경 "술라"가 무기한 독재관에 취임하여 국정개혁에 착수할 무렵의 이야기입니다. 무대는 당연히 로마.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그 유명한 "키케로"가 법조계에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이 바로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아버지 살해 혐의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부터라고 하네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웅변가중 하나가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인의 피>는 이 키케로가 활약하던 BC 1세기경의 로마 공화정 말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추리 소설 시리즈 <로마 서브 로서>의 첫작입니다. "저자인 스티브 세일러"는 역사와 그리스-로마 고전을 전공하고 히스토리 채널등의 출연한 로마 전문가. 그래서 그런지 추리소설의 형식을 하고 있음에도 마치 역사소설을 읽고 있는 것처럼 모든 역사적 배경들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와 그의 충실한 노예로 잘 알려져 있는 "티로"를 포함해 실존인물인 "술라", "카이사르", "크라수스", 카틸리나"등에, 저자가 창조해낸 오리지널 인물인 더듬이 "고르디아누스"가 더해져서 자칫 고리타분하고 지루해 질수도 있는 실제 역사 속 사건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연출해 갑니다. 실존 인물들이라고는 하지만, 각 인물의 묘사가 매우 농밀하게 그려져 있고(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을 보는 듯 합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역사의 큰 틀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가상인물인 고르디아누스의 눈을 통해 체워넣는 역할 분담도 잘 이루어져 있어서,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고증에 의한 것이고, 혹은 저자의 상상력의 산물인지 일반 독자의 눈으로는 좀처럼 구별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인물들이 모두 매력적이고, 로마의 노예들의 생활 모습이라던가, 유곽등의 세세한 묘사는, 전쟁과 정치, 스캔들과 같은 큰 줄기의 역사에만 익숙한 사람에게는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일부 지배층만이 아닌 진짜 당시 로마의 사람사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의 유형이라 할 수 있는 존속살인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큰 사명을 안고 로마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마치 관광객이 되어버린 것처럼 주위를 살피느라 연신 두리번두리번 하고 있으니,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사건의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역사, 특히 로마의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볼거리가 많은 소설입니다. 거기에 추리소설광이기까지 하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재 역사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로마의 복잡한 사정을 반영하고 있는 이야기는 풍부하고,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역사추리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소설들이 시대적 배경외에는 가상의 사건을 다루는 경우가 많았던 것과 비교하면 <로마 서브 로사>시리즈는(이제 시리즈 첫작을 읽었을 뿐인긴 하지만) 역사소설과 추리소설 양쪽 모두에서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주는 진짜 역사추리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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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트 - 연쇄살인범 랜트를 추억하며
척 팔라닉 지음, 황보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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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물들이 연쇄살인범(?) "랜트" 사후에, 랜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술전기 형식의 특이한 소설입니다. 무대는 아마도 가상의 근미래. 소설 속에서 연도를 언급하고 있지 않은데다가, 특별히 과학문명의 발달에 대한 묘사가 없는 만큼 일종의 현실세계의 패러렐월드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정부의 엄격한 통행금지 정책에 의해, 정상적인 "주간활동자"와, 질병뿐 아니라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전염, 악영향의 여지가 있는 "야간활동자"로 분류됩니다.

저자는 <파이트클럽>, <서바이버>, <인비저블 몬스터>등 써내는 작품마다 기존 소설의 개념을 깨부수는 파격적인 방식을 채용해 온 "척 팔라닉". 그런 팔라닉의 2007년도판 작품입니다. 팔라닉의 팬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번에는 과연 또 얼마나 기상천외한 모습을 보여 줄 것인가 하는 기대감으로 걷어낸 베일속 <랜트>는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대단히 특이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파이트클럽>이 처음  발표된 것이 1996년. 세월은 흘렀지만 기예는 여전히 기예. 팔라닉의 독특하고 기발함은 전혀 퇴색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맛을 보고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는 이상한 감각과, 동물들에게 자신의 신체를 물어뜯게 하는 기괴한 성향의 소유자인 "랜트 케이시"는 고향인 미들턴을 벗어나, 폭주족을 연상케 하는 "자동차 충돌 파티족"이라는 위험한 게임그룹의 리더가 됩니다. 서로의 차를 들이받는 이 생사가 걸린 무식한 게임을 반복하던 랜트는 결국 사고로 사망합니다. 전설처럼 되어버린 그런 생전의 랜트에 대한 주변인물들의 증언은 단순한 회상에서 시작해서 랜트가 도시 전체에 전염병을 퍼뜨리고, 심지어는 시간여행을 했다는데에까지 흘러갑니다.

굉장히 독특하고 기상천외한 이야기지만 결코 꿀꺽꿀꺽 넘어가는 소설은 아닙니다. 책을 열면 처음에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그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주인공격인 랜트가 직접 등장하지도 않을 뿐더러, 한 페이지 안에서도 화자가 수시로 바뀌는 만큼 집중하기가 쉽지 않고, 구술자들의 증언도 시간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시간여행이라 느껴질만큼 수시로 오락가락합니다. 그리고 소재 또한 대단히 다채로워서 독자는 언제나 지그소 퍼즐의 조각들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는 단편들만을 쫓아다니게 됩니다.

이 가상의 세상과 랜트의 행적을 통해서 팔라닉이 말하고자 하는바가 무엇인가를 짐작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워낙 조각이 잘게 나누어져 있어 퍼즐의 난이도가 높다고나 할까요. 다만, 다양한 각도에서의 증언들을 통해서 종교의 본질이라던가, 질병의 감염경로, 정부의 정책, 사회체계등을 포함하는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하는, 말하자면 음모론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에이즈나 매독같은 질병이 동물에게서 인간으로 옮겨온 경로, 그리고 그 최초의 전염원이 된 사람은 누구일까? 라는 평소의 의문에 대해 일말의 실마리를 제공해준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괴이한 발상의 파편들을 읽고 난 듯하지만, 다 읽고 나면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과 함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랜트> 속 세상을 읽고나면 그게 또 소설 속 이야기인 것만은 아닌 것 처럼 여겨지니 이상합니다. 현실이 바로 코메디라는 반증이 아닐까요. 신종플루가 제약회사의 음모에서 비롯되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요즈음 <랜트>속 이야기는 더욱 체감온도가 높게 느껴집니다. 너무나 기괴하지만 흥미진진한, 좀처럼 겪어보기 힘든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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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 밀리언셀러 클럽 104
리 밴스 지음, 한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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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골드만 삭스의 제너럴 파트너 출신인 "리 밴스".
금융계를 무대로, 저자의 경험이나 지식을 한껏 발휘해서 써내려간 서스펜스 소설입니다.
특정 전문분야가 장르소설의 소재로 사용되는 경우는 많습니다만, 실제 모습과는 대부분 차이가 많이 납니다. 전문가의 조언이라던가 자료수집에 근거했다고는 해도 결국 작품을 써내는 작가는 아마추어, 아무래도 조악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면에서 저자가 자신의 안마당이었던 금융계를 데뷔작의 무대로 설정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금융인 출신인만큼 묘사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고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프로금융인이 아닌 일개 독자로서의 <반환>에 대한 인상입니다.

금융계를 무대로 했다고 해서 복잡한 경제소설이나 기업소설을 연상하면 안됩니다. 여러가지 금융거래나 전문 용어가 튀어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전형적인 스릴러물입니다. 주인공 피터의 아내인 제나가 누군가에게 살해되고, 이를 계기로 잘나가던 금융인 피터는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졸지에 아내를 살해한 용의자가 된 피터가 자신의 무죄와 진범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이야기입니다.

스릴러에는 필수인 아찔한 질주감도 있고 여러차례 반전도 있습니다. 일단은 금융스릴러라는 이름표는 달고 있지만, 전문 지식은 불필요, 오히려 그 기조에는 인간 드라마가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친구 사이, 또 잠깐 스쳐지날 뿐인 사람들 사이에 생겨나는 복잡한 감정들까지, 애정과 신뢰라는 감정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매력있는 등장인물들의 드라마가 볼만합니다. 이 인물묘사의 섬세함은 우선은 사람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찰력과 애정이 원동력이겠지만, 그것을 뒷받침 하는 것이 바로 번역. 각각의 인물의 성격에 어울리는 단어가 적절하게 선택되어서 독자가 이 세계관 속에 비집고 들어가기 수월하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무대는 미국에서 러시아로까지 확대됩니다.
실종된 친구 안드레이가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피터, 그리고 하나씩 드러나는 안드레이와 피터의 주변인물들과의 관계, 이 얽히고 섥힌 인간관계에 생각지도 못한 함정이 숨겨 있습니다. 진실은 도대체 어디에?

뜻밖의 결말에 놀라게 하면서도, 이야기의 전개는 매우 경쾌합니다.
외국 작품치고는 우리나라 소설을 읽는 것처럼 쉽게 술술 읽히고 재미있었지만, 다만, 금융스릴러라는 단어에서 애당초 월스트리트의 어두운 단면을 깊숙히 파헤쳐 들어간다거나 하는 논픽션급의 전문적인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던 만큼, 예상을 벗어난데서 오는 일말의 아쉬움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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